만화 좋아하는 자들아, 마녀사냥을 이제 그만두자박군님의 포스팅에 연결된 모든 글에 대해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남긴다.
내가 늘 그렇듯 예시 하나 꺼내보자.
'한국 판타지는 망했다. 무조건 차원이동에 먼치킨이 깽판이나 친다.'
'옛날 한국 무협은 정말 개판이었다. 개연성 드럽게 없고 절벽 뛰내리면 기연에 주인공이란 놈은 무슨 향수를 발랐는지 미녀란 미녀 다 맛가서 달라붙는다.'
젠장. 예시가 둘이다. 아무튼... -_-;;
이어지는 내용
아무데나 '한국 XX'를 갖다붙이지 좀 마라. 위 포스팅에 연결된 모든 글들에게 묻고싶다. 본인이 말하는 것이 정말로 '한국 만화'인지를. 정말로 '한국 만화계'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이 보고있는 '한국의 일부 만화계'를 두고 하는 말인가.
내용을 보면 마치 서로의 영역을 포함하여 고민하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의미를 잘 음미하다보면 이런 원수지간이 없다. 상극으로 놀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같은 논리마저 있다. 대여시장과 판매시장, 새롭게 구축된 인터넷 시장 등등이 월드 오브 코믹 크래프트의 얼라이언스랑 호드가 되어 성질을 부린다.
한국 만화? 한쪽은 망했고, 한쪽은 활성화가 되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망했다' 쪽이다. 왜냐고? 한국에서 '난 만화업에 종사하고 있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 중, '난 망했어.'라고 우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거다.
대본소 시절의 작가들, 그리고 포스팅에 언급된 대여점 시절의 작가들, 잡지연재작가들, 현 활동 작가들의 모든 입장을 따져보자. 현재 한국 만화계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쪽이 어디인지 아는가? 아동만화 계열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동만화 계열의 작가들 중에서 상당수가 대본소, 대여점 시절의 작가출신이다. 이 사람들은 작가도 아닌가? 이전에도 말했지만 한국의 만화가들 다 모아봐라. 이름 아는 사람이 더 많은가, 이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가 보자. 내가 아는 만화가만 만화가인 건 아니다.
난 한국 만화계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름이다. 그 잘난 잡지쪽 좀 구경해보자. 예전에 내가 기억하는 작가들,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이 요즘 얼마나 남아서 만화를 창작하는가. 만화가가 유흥가 삐끼도 아니고, 맨날 새로운 상판떼기로 탈바꿈해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만화계가 어렵지 않다고? 그럼 고병규씨 심갑진씨 신작도 좀 보여달라. 챔프1기 작가들 중 대박까지 터뜨려놓고 어느 순간 소멸하신 분들의 신작 좀 보고 싶다. 국내 만화 스토리 작가중 유일하게 밀리언셀러를 2번이나 기록하신 엄재경님도 게임해설 관두시고 만화계로 돌아오세요. 임재원씨도 짱 그만 하시고 마음 편히 신작내세요.
신인작가들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국 만화계가 잘 나간다고 할 수 없는 거다. 기존의 작가들 입장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이며, 그것은 현재의 신인작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한국 만화의 발전'은 독자입장인 것이지, 절대로 작가입장일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댁의 사정이시구려.'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것이 어느 한쪽만 틀어져도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거나 하향 곡선을 그린다. 독자가 무너져도, 작가가 무너져도, 출판사가 무너져도 시장은 휘청거린다. 대여시장 무너져서 다른 직종을 찾는 만화가들의 입장과 목소리,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로 일본진출과 자리잡음에 성공한 만화가들의 입장과 목소리들을 모두 종합해보자. 한국 만화계는 한편으로는 잘 돌아갔고, 한편으로는 크게 무너지고 있다. 이걸 구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싸잡아서 흑백논리를 펼치지 말자는 얘기다.
그리고 하나 더.
어떤 포스팅 중에서 중간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만화가가 만화를 창작하며 먹고 살아야지, 그걸 드라마화하고 영화화해서 벌어들이는 컨텐츠료로 먹고 살면서 '만화계 잘 나가고 있어'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는가? 거기에 정신 팔면서 잘도 좋은 신작내겠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신이 하는 '만화'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생기게 된 '부수입'이다. 그것은 창작계의 문제지, 만화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만화 시나리오 작가들 중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빠져나간 일이 있다. 카드사들이 영화보라고 열심히 할인혜택 주실 때의 일이다. 그럼 만화계가 잘 나간 건가? -_-;;
여전히 힘들게 살면서 고생하는 동료 작가들이 있다. 내일의 끼니마저 걱정하는 동료 작가들마저 있다.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은 동료 작가들이 많이 생겼다. 이 사람들 고생하는 모습을 보다가, '[한국 만화계]가 힘들지 않다'는 싸잡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무척 불쾌해진다. 얘들도 사람이고 '한국 만화가'라는 것 좀 인식해달라.
물론 구걸하는 건 아니다. -_-;;
유지호님의 글에 대해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저것이 한국 만화계의 전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묻고싶다.
대본소, 대여점 작품들이 한국 만화계의 좀이라도 되는 것인지. 그쪽 분야를 적대적으로 평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뭔가. 그쪽에서 정말 어려워한다면 그쪽의 '한국 만화'는 정말 어려운 거다. 그걸 굳이 '잘 나가는 만화계'를 들먹거리며 부정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나도 한 몫 거든다. 한국 만화계는 어렵다. 한 작가가 특별하게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으나, 꾸준한 평작으로 기준선 이상의 작품을 계속 냈다. 그런 작가가 죽을 때까지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못되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