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맥만 짚어보려 하겠지만, 상당히 긴 얘기가 될 것이다.
장르시장의 커다란 축은 둘로 나누게 된다. 하나는 대여시장이고 또 하나는 판매시장이다.
그중 대여시장과 관련한 오해와 잘못된 정보가 의외로 많이 나돈다. 그 중 몇 가지를 나열하겠다.
1. 대여시장은 대여점의 출현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장르시장을 망가뜨린 원흉이다.
2. 대여시장이 없어지면 장르시장이 크게 활성화 된다.
3. 대여시장은 장르시장의 저질화라는 문제를 낳는다. 고로, 대여시장이 없어지면 장르시장은 퀄리티 높은 작품만 출간될 것이다.
이게 대표적인 오류 정보다.
1. 대여시장은 대단히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최근 방영하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도중에 대여점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_-
조선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 장르시장에 대여시장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이 공존해왔다. 대여점이 출현하기 이전의 대여시장은 대본소(만화가게)라고 불렀다. 이러한 시장이 존재하고, 초기에 대여점이 등장하여 각종 소설류와 만화류를 대여공급할 때도 시장은 죽지 않았다. 즉, 장르시장을 망가뜨린 원흉은 대여시장이 아니다.
장르시장을 망가뜨린 원흉은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의 균형 파괴'다. 정확한 시발점은 IMF당시 대여시장이 크게 활성화되던 시기다. 당시, 김성모의 럭키짱을 비롯하여 다수의 대여시장용 단행본이 출간되어 크게 흥행했다. 이 때 중심이 되었던 출판사는 '대명종' '삼양' '야컴'등이며, 대여시장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적인 코믹스를 출간했다.
이와 동시에 대여시장의 할아버지격이었던 대본소가 몰락하기 시작한다. 대본소 시장인 만화가게는 평균적으로 '독서 200원 대여 400원'의 시스템이었고, 대여점은 '만화 대여 300원, 소설 대여 500원'으로 시작했다. 대본소 만화의 페이지는 160-180이고 대여점 코믹스의 페이지는 180-220이었으나, 책값은 대본소 만화 쪽이 더 비쌌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대본소 만화보다 대여점 단행본이 훨씬 우월한데도 가격은 대본소 만화가 1,500원 가량 더 비쌌던 것이다.(대본소 말기에 대본소 만화의 가격은 4,000원에 육박했고, 대여점 단행본은 2,500원이었다.)
어째서 이런 얘기를 하냐면, 그 때의 상황이 지금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서다. 대본소 만화는 총판에서 만화가게에 배급하는 시스템이었으며, 가격을 올리건 내리건 상관 없이 장사를 하려면 구매해야 했다. 대여점의 득세로 인하여 대본소 시장이 몰락하자, 줄어드는 수요에 대한 손해를 가격상승으로 커버했던 것이다. 현재는 대여점이 이런 상황에 들어서며 줄기차게 책값을 올리고 있다.(하지만, 올해 책값이 급격하게 오른 것은 예정 외의 변수였다. 종이값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인하여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책값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즉, 대여시장 서적의 가격이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책값을 올려도 기본 수요는 정해져 있어서다. 문 닫는 대여점의 수요감소액을 아직 운영중인 다른 대여점이 충당해주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중심이 된 출판사(대명종, 삼양, 야컴 등등)의 대박행진이 IMF 이후로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또한 IMF의 영향이 판매시장에 일부 타격을 주는 상황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이 때, 판매시장을 주도하던 메이저 출판사가 돌이킬 수없는 선택을 했다. 바로 판매시장에 내놓을 작품들을 가지고 대여시장으로 진출한 것이다. 대원, 서울, 학산은 판매시장에서 대여시장 쪽으로 눈길을 돌려 모든 책을 일제히 총판에 쏟아부으며 대여시장 장악에 열을 올렸다.
이것이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의 균형이 파괴된 원인이다. 판매시장은 일시에 붕괴되며 대여시장에게 흡수되었고, 장시간 판매시장의 암흑기가 도래했다. 물론 이 때 대원, 서울, 학산은 대여시장을 장악하며 출판시장 전체를 지배했다. 이것은 훗날, 대여시장에서 활동하던 마이너 출판사들 대다수가 몰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삼양과 같은 기반이 튼튼한 일부 출판사만 살아남았다.)
이것이 1의 소문에 대한 답이다.
2. 대여시장이 없어지면 장르시장이 활성화된다는 말은 꿈같은 소리다. 판매시장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다. 이 수요가 커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작품으로서의 붐이며, 또 하나는 시장으로서의 붐이다. 돈은 책 사는데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은 책 읽는데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컨텐츠를 제압할 커다란 붐이 일어나야 수요가 늘어난다.
"어떤 작품 하나가 대박을 터뜨리면 사정이 좀 나아질 텐데."
출판 관계자가 가끔 이런 소리를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게 바로 작품으로서의 붐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시장으로서의 붐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시장이 넓어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반드시 들어간다. 대다수의 작가는 글을 좋아해서 작가가 되었고,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가가 되기 전부터 줄기차게 책을 읽는다. 퀄리티야 어떻건 많은 작가가 존재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독자가 존재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인터넷 카페를 예로 들겠다. 카페 인원이 적으나 퀄리티가 높은 글만 올리는 카페가 있고, 퀄리티 다 무시한 채 수많은 인원이 모인 카페가 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퀄리티 높은 글'의 숫자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진다.(물론 퀄리티가 낮은 글도 많다.) 그리고 카페의 가치도 후자의 경우가 더 높아진다. 시장형성은 이런 식이다.
이 모든 것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하여 감을 잡는 누군가가 바탕을 깔 때가 조금 다를 뿐이다. 대여시장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없앤다면 반드시 그를 대체할 시장이 나올 것이며, 대여시장이 안고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나타난다. 또는 더 심각한 문제점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나타날 확률이 높다. 시장형성은 단체의 필요성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대여시장을 잃은 대여시장계층의 군중이 그에 준하는 다른 시장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시장은 결국 대여시장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이유는 간단하다. 대여시장의 시스템을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이 많은 사람이 과연 대여시장 없어진다고 자기가 알던 노하우를 싹 다 잊어버릴까? 분명히 새로운 시장 틈새에 들어가서 변질이건 변화건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시장의 형태로 바꿀 것이다.)
즉, 대여시장이 없어지면 다른 대여시장이 또 나타난다.
외국 유머에 이런 게 있다.
어떤 정치가가 비리를 저지른 것이 들통났다. 대통령은 정치가를 불러 해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치가는 말했다.
"각하. 저는 수많은 비리를 저질러 돈을 벌었습니다. 빌딩도 두 채나 있고 요트도 세 척 있으며 전 세계에 열다섯 채의 별장을 지었고 첩도 일곱 명이나 있습니다. 저는 비리를 통해 제가 원하는 대부분의 것을 얻었지요. 그런데, 각하께서는 지금 저를 대신할 누군가에게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모으게 할 셈이십니까?"
이런 얘기다. -_- 대여시장을 없애고 새로운 대여시장에게 골머리를 썩느니, 지금의 대여시장이 가진 문제점을 고치는 게 더 낫다.
3. 퀄리티라는 것은 대단히 상대적인 말이다. 대여시장이 없어진다고 하여 퀄리티 낮은 작품까지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혹시 국내 만화가가 몇 명인지 아는 사람 있는가? 1,000명이 넘는다면 그 중 몇 명의 만화가 이름을 알고 있는가? 당신이라면 100명의 작가가 그리는 만화만을 보고 싶어서 900명의 만화가가 활동할 공간을 죽여버리겠는가? 문제는 저 100명의 만화가 중에서 90명은 과거에 900명에 속하던 만화가 중 한 명이었는데?
선택해야 한다. 10개의 퀄리티 높은 작품만을 읽거나, 100개의 퀄리티 높은 작품이 담긴 1000개의 퀄리티고 뭐고 알 수 없는 작품을 찾아 헤메거나다. 10개의 시장과 1000개의 시장. 10개의 시장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해요.' '부모 잘 만난 사람만 작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대여시장 얘기 끝.
두 번째로 인세에 대한 얘기를 적겠다.
이건 작가뿐 아니라 일부 출판사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장르시장에서 작가는 네 종류의 원고료를 받는다.
하나는 인세다.
인세는 책을 인쇄한 부수만큼 원고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4,000부를 찍으면 4,000부 책값의 몇% 만큼 원고료를 받게 되는데, 이것을 인세라고 한다.
둘째는 매세다.
매세는 책을 판매한 부수만큼 원고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4,000부를 찍었지만 100부가 팔렸으면 100부 책값의 몇% 만큼 원고료를 받게되는데, 이것을 매세라고 한다.
셋째는 매절이다.
매절은 책을 얼마나 찍건, 얼마를 팔건 상관없이 원고를 넘기는 순간 원고값을 받고 땡인 경우를 말한다. 과거 대본소 시절에 성행하던 원고료 방식이었으나, 지금 이렇게 원고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네번째는 부분인세다.
여기서 많은 착각을 한다. 이 부분인세라는 것은 대여시장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원고료 방식이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부분인세를 '원고료를 속였다.' '부수를 속였다.' 라는 말로 표현하며 '사기쳤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사기친 게 맞다. 5,000부를 찍고 작가에게는 4,000부를 찍었다며 4,000부 책값의 몇% 만큼 원고료를 줬기 때문이다. 1,000부는 출판사가 꿀꺽. -_-
그래서 예전 책을 보면 가끔 뒷장에 '인지'라는 것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출판사가 부수를 속이지 못하도록 작가가 판매할 책마다 표시를 하는 것이다.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책을 판매할 경우,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고소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잘 나가는 작가의 경우 1만부가 팔리면 1만부의 책에 일일이 인지를 붙여야 하는데 그걸 언제 다해? 차라리 그 시간에 책 한 권 더 쓰지. -_-
자! 딴소리 그만하고 본론을 얘기하자면, 이러한 부분인세의 방식이 이제는 표면화되었다. 대여점이 반품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 출판사가 아예 표면적으로 '우리는 부분인세를 주겠다!' 라고 선포한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보장부수'라고 한다.
계약할 때, 상당수 작가들은 보장부수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말을 들었을 것이다.
"보장부수는 1권에 무조건 4,000부는 찍을 거고요. 2권과 3권도 3,500부를 찍을 거예요. 약속합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가 4,000부를 찍고 4,000부 책값의 몇%를 원고료로 받는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예를 들면 6,000부를 찍고, 4,000부 책값의 몇%를 원고료로 주는 것이 4,000부 보장부수다. 나머지 2,000부는 반품제도의 책돌리기에 사용된다. 그러다 팔리면 출판사가 냠냠인지 아니면 작가에게 인세를 주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 -_-
대여시장에서 출판업을 하는 경우, 이런 추가 부수가 어쩔 수없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우, 작가에게 사정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많은 작가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까. 뭐, 심지어 신생출판사도 모르는 경우마저 있으니...
레디 오스 성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