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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소수 독자의 고집

보장부수? 그거 최저생계비인데요?

주변에 시끄러운 일도 있고, 마감도 있어서 시간을 쪼개야 할 상황이지만, 몇 자 적는다. 트랙백한 포스팅에 대하여 적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달린 덧글과 관련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

일단, 나는 보장부수 반댈세.

여기까지는 덧글을 남긴 일부 독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도 불러야겠지만, 근거가 다르다.

나는 보장부수가 신인작가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거다. 출판사 관점에서 작가군은 잘 나가는 작가군이 있고, 적당하게 나가는 작가군이 있고, 손해는 보지 않는 작가군이 있고, 손해 보는 작가군이 있고, 어떨지 알 수 없는 신인작가군이 있다.

최악으로 봐도 남궁훈님은 손해는 보지 않는 작가군 이상의 위치에 있는 분이다. 여기까지는 보장부수의 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장부수라는 말이 나타나면서부터 출판사의 작가 컨택에 변동이 있었다. 무엇이든 과도기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대여점 등장시기에는 대중 출판계가 급작스레 호황(갑자기 생긴 대여점이 일시에 책을 사들이는 시점을 말한다.)을 맞았다가 팍 무너졌다. 서점시장의 형성기에는 대여시장이 급격한 불황에 빠졌다.(서점시장이 자리를 잡을 즈음에는 대여시장도 활성화된다는 것이 내 평소 지론이니 이건 이거대로 넘어가자. 이것까지 얘기하면 길다.)

마찬가지로 보장부수로 인한 컨택의 초기 변화는 '대대적인 작가 영입 시대'였다. 많은 작가와 많은 글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이는 과도기적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를 영입하는 기준선이 높아졌다. 안 팔릴 것 같은 작가라도 컨택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오히려 기존에 데리고 있던 신인작가조차 내치는(과거에는 투자의 관점으로 계속 책을 출간했다.) 상황이 되었다. 시장이 불황인 탓도 있지만, 작가 영입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보장부수로 인해 높아진 탓도 있다.

요즘 출판사들은 신인 작가에게 거의 눈도 돌리지 않는다. 웹상에서 눈에 띄게 호평받는 작품이 아닌 이상, 대부분 출판사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작가 어렵다. 그것이 보장부수로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은 다른 죽작가와 신인작가에게 줄 기회를 빼앗는 독이기도 하다.

하지만, 덧글에 남긴 독자분의 말씀처럼 출판사가 그 비용을 독자에게 뜯어내지는 않는다. -_-

인세로 인하여 책값에 변동이 있다는 사고는 북미쪽 사고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진작 이문열 책은 권당 3만원이 넘어야 하고 똑같은 책인데도 작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야 했다. 우리나라 출판계의 서적은 작가군에 한해서 의료보험 처럼 사회주의 방식을 따른다. 책값을 정하는 건 책의 질이나 시장의 변동이지 작가와 출판사 간 관계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또 하나 꼭 말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

자기가 보기에 요즘 글이 너무 저질이라면서 이런 작가 다 사라져야 한다느니 도태되어야 한다느니 말씀하시는 분을 봤다. 아니, 최근에 참 많이 보인다. 그런 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당신들이 보라고 쓴 글 아니다. 읽기 싫으면 읽지 말고 읽지 않았으면 그 입 다물라.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만약 '노벨 평의회에서 반지의 제왕과 얼음과 불의 노래는 저급 소설이어서 노벨상을 줄 수 없다.' 라고 말하거나, 국내 순문학계에서 '드래곤 라자는 문학계의 질을 떨어뜨린 졸작.'이라는 말을 하면 거품 물고 길길이 뛰지는 않을까 싶다.

근처 어린이집에 가서 듄이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을 읽는 애 있나 찾아봐라. 랜덤으로 여중생 백 명 잡아서 그 앞에 늑대의 유혹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놓고 어느 것을 읽는지 확인해봐라.

다른 세상을 자기 세상과 섞어서 손가락질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렇게 된 이유는 서점시장이 대여시장에게 흡수되어 서점시장이란 것 자체가 사라져서다. 서점시장이 대여시장에게 흡수된거지 대여시장이 서점시장에게 흡수된 게 아니다. 없어진 서점시장의 논리를 왜 대여시장에게 대입하며 손가락질 하는가. 당신의 시장은 지금 막 생기는 중이다.

가끔 이런 사람이 보인다.(독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상 어떤 작가도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만족시키지 못한 일부 독자에게 욕을 먹었다고 연재를 접느니 절필을 하느니 네가 글을 써보라느니 화 내는 작가를 접한 사람 많을 거다. 그럼 묵묵하게 읽던 다른 독자들은 뭐가 돼? 같은 논리다. 당신이 그토록 욕 하는 작가의 글을 재밌게 읽은 독자는 뭐가 돼? 애초에 당신을 위한 글이 아니다. 그를 대신할 다른 글을 읽을 거면서. 아니면 게임을 하거나 연애를 할 거면서. 만약, 돈을 날리더라도 대여시장의 책을 구해 읽는다면 이유가 뭔가? 출판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서점시장의 도래를 위한 작가를, 서점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글을 찾는 목적이 아닌 건가?

좋은 작품은 어디서 구했는지부터 묻자.

이우혁님이나 이영도님, 김경진님처럼 처음부터 서점라인으로 뛰어들 역량을 갖춘 작가가 또 누가 있지? 전민희님의 글은 어디서 읽었고, 민소영님의 글은 어디서 읽었으며, 오트슨님이 서점시장으로 뛰어들기 전에 얼마나 많은 대여시장 출판사가 입질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가? 독자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냐고?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신경쓰게 하지는 말란 말이다.

당신들은 비틀즈에게 모짜르트의 곡을 요구하는 일부 집단의 논리와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는 거다. 시장이 다르다. 시장이 다르다고. 시장이 다르다는 말을 몇 번 얘기해야 알아 먹겠는가. 대여시장에서 대여시장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여 서점시장을 바라보지 않을 것 같은가? 그 때를 위해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건 시장 잃은 독자의 욕까지 감수해야 할 의무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시장을 왜 잃었는데? 작가가 시장을 버렸냐? 냄비주의에 입각하여 한탕 해본답시고 서점시장을 대여시장에 몰아넣은 사람이 작가냐? 어떤 작가도 자기 작품이 서점에 깔리기를 바라지 대여점에 깔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되도록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이 작가다. 대중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목표가 뭔지 아는가? 많은 독자가 재미있어 하는 글을 쓰는 거다. 이중에 독자 성향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눈요기가 되는 것만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으며, 독자를 이끌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무엇이 이슈가 될 건지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방법론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 자체가 가진 목적을 지적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심지어 그것이 글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장사꾼 기질의 집필자라 해도 그 사람을 예로 들어 작가 다수를 욕하는 독자도 있다. 장사꾼은 다수가 아니다. 당신의 눈에 차지 않는 글을 썼다고 다 장사꾼이 아니란 말이다.

작가가 당신을 위하여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세상에는 당신과 다른 글을 글로 즐기는, 묵묵히 시장의 변화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글을 찾는 독자가 더 많다. 작가는 그러한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그저 책을 많이 샀다고하여 독자가 아니다. 작가에게는 자기 글을 알아주는 사람이 독자이며 그를 위해 좀 더 재미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자기 글을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이 비난의 화살을 쏜다면 길 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뺨 맞는 기분일 거다.

내가 보기에 레벨 업했다고 쪼렙 PK하는 게이머처럼 보인다. 자기도 초딩 때는 철권1 하며 즐거워했을 거면서 문방구 앞 작은 게임기에서 철권2하는 애들에게 그딴 게임한다고 구박하고 문구점 주인에게 좋은 게임 다 놔두고 왜 이따위 허접한 게임기를 두었냐며 불평하고 있어.

레디 오스 성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