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가 메말라서인지 '죽은 자를 위한 배려'를 이해못할 때가 있다. 사람이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죽으면 마치 그것이 면죄부라도 되는 양 주변인들의 태도가 싹 바뀌는 부분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 거냐.
난 '사형 반대론자'다. '사람이 사람을 죽음으로 심판할 수 없다'같은 논리와는 관계없이 사형반대다. 내 논리는 간단하다. 죽는다고 죄가 씻기는 것이 아니라서다. 죄는 죄로 남는다. 사형으로 죄가 씻긴다는 것을 누군가 증명해주면, 난 사형 찬성론자가 될 뿐 아니라 자살 찬성론자까지 되어주겠다. 기꺼이.
사형이 필요한 경우는 한 가지다. 놈이 너무 뛰어난 재주가 있어서 어떤 감옥에 가두더라도 반드시 빠져나와 다시 범죄를 저지를 때. 이런 사람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형벌의 심판은 앞으로 있을 죄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것이 외부의 누군가에 대한 경고문이 될 수 있고, 죄인의 범죄 재발 가능성을 자유억압으로 제거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앞날의 문제지, 저질러버린 일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저질러버린 일에 대해서는 잘잘못의 평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내 견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뉘우침으로 자살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누군가 잘못을 해서 비난을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죽었다고해서 비난자를 비난하는 새로운 행동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또 하나의 죄를 지었다고 판단한다. 그나마 당신 편이었던, 그나마 당신을 사랑했던 자들에게 떠넘기는 죄를 지었군.
애초에 과거는 과거다. 과거의 죄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은 과거라는 것이 시간의 부속품이라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미래를 다시 가꿔서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과거의 죄만 딸랑 남겨놓고 미래를 지우는 행동은 '죄인'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뜻과 같다. 근데 어쩌다 자살자 얘기로만 진행되는 거냐. 굳이 자살자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타살, 또는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해도 결과는 같다. 뚜렷하게 기억되는 과거의 죄를 가진 채 죽은 거다. 만회할 미래를 놓친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 넌 지금 자살해도 나한테 욕먹지롱.(천안 삼천포~ 흐응)
갑자기 이 얘기를 쓰게 된 경위는, 몇몇 웹상의 글을 읽다보니 꽤 많은 사람들 시선이 과거에 머물러있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과거를 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거에 머물러있다는 건 문제가 된다. 미래를 가꾸기 힘들어지는 이유다.
공을 쌓고 죄를 버려야 한다. 버려진 죄를 보고 공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버려진 죄를 보느라 내가 지금 공을 쌓는지 또 다른 죄를 쌓는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 탑은 영원히 세워지지 않는다.
죽음은 미래와의 단절이다. 자신을 과거의 업적만으로 완성시키고싶다면 자살해도 좋다. 물론 난 그 사람에게 과거의 업적도 뛰어넘을 능력이 못되는 개병신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만.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7월 30일 월요일
죽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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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까지 사형보다 무거운 형벌을 생각해내지 못해서 사형 찬성론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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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죽음에 관하여자살의 자는 자신을 가르키는 말이고 살은 죽음의 살로 풀이하면 자신을 죽인다, 라는 말이 된다.돌려 말하자면, 자살이란 즉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몇 마디 적자면, 웹상에는 자살을 위해 혹은 자살 생각에 몰려든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그 무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외로움에 사무쳐 있는 사람들이다.그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하지만 대부분은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