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점 문제 #3
페이퍼백.
비록 해적판이긴 했습니다만, 국내에서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자가 바로 페이퍼백입니다. 라이센스료를 지급하지 않은 불법책자라서 제작비가 거의 들지 않았고, 그만큼 가격이 저렴해서 초중고교생에게 컬렉션의 취미를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명 '갱지'라 불리는 최저가의 종이질로 인쇄를 할 경우, 이 페이퍼백은 지금도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할 수 있습니다. 인쇄는 처음 필름을 만들 때만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수가 많아질수록 순수익이 높아지게 되죠. 2쇄판, 3쇄, 4쇄 등등 부수를 늘려도 1쇄 때 제작한 필름이 그대로 사용됩니다. 후기의 일반본, 양장본을 염두에 둔다면 페이퍼백의 제작원가는 대단히 미미하며 권당 700-800원 선으로도 2만부 이하의 손익분기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페이퍼백의 장점은 단연코 가격입니다. 대여점이 대여가격을 50원으로 낮춘다고 해도 650-750원의 가격차 밖에 나지 않습니다. 기존의 가격차이가 3,000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줄어드는 셈이죠. 하지만 대여점은 페이퍼백의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게 불가능합니다.
제작과 관련된 이유로서 페이퍼백은 최저의 질로 출간되어야 합니다. 장시간 구독하면 책 자체에 문제가 생길 정도의 질이 필요한 상품이죠. 몇몇 출판사가 페이퍼백을 출시했다가 실패한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출판사는 '페이퍼백을 출시한 적이 있으나 실패했었다'라는 것을 이유로 들어서 그것의 실패를 확정짓는데, 페이퍼백의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한 채 출시해서 생긴 문제일 뿐입니다. 고급의 질로 출간한 페이퍼백은 제대로 된 페이퍼백이 아닙니다. 3,500원짜리 책을 페이퍼백으로 만들어서 3,000원에 팔면 누가 사겠습니까. -_-
'독자들은 예쁜 책만 산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그 말이 주정으로 들립니다. 페이퍼백은 미워도 되며, 아니 미워야 하며 처음에 언급했듯 최저의 제작단가로 최악의 책이 되어야 합니다. 내용이 중요할 뿐이죠.
그럴 경우, 대여점 시스템에서는 페이퍼백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대여점은 책의 손실을 독자에게 넘길 수도 있고, 또는 관대하게 자신이 책임질 수도 있습니다. 그게 어느 쪽이건 대여점은 다시 페이퍼백을 구매해야 합니다. 반품하기가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애초에 페이퍼백을 출시할 때 반품불가 정책을 펼쳐야 살아남습니다) 안정적인 대여를 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품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페이퍼백에 대한 독자의 직접적 구매력이 강화됩니다. 흔히 돌아다니는 말로 '군것질 한 번만 참고 책을 사라'는 얘기가 직접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대여점이 갖고 있던 '값이 싸다'의 장점이 판매시장 쪽에도 구축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가깝다'의 장점 흡수입니다.
대여점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반품제도가 무엇인지도 아실 겁니다. 요즘 대여점이 어렵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대중창작계의 몰락 이전의 문제입니다. 대여점의 수를 축소발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여전히 대여점은 포화상태입니다. 그래서 망하는 대여점이 생기는 겁니다.
그 이유가 반품제도입니다. 대여점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던 것은 '적은 투자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특이성 때문에, 한 동네에 3-4개의 대여점이 들어서도 손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적은 투자'가 바로 '반품제도'입니다. 이 반품제도를 믿고 수요와 공급의 한계치까지 대여점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갑작스레 출판사가 '반품제도'를 막아버렸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여점은 그동안 쌓인 거품이 일시에 빠지며 대 포화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대여점은 아직도 포화상태이며, 거품이 모두 빠지기 전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 과정이 말로는 쉽지만, 직접 당하는 대여점의 입장에서는 미칩니다. 적은 투자를 한 만큼, 다른 업종으로의 변환이 쉽지 않죠.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연명해야 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 대여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 얻고있는 수익 이상의 것을 얻어내어 거품이 자리잡은 공간을 메꿔야 합니다. 즉, 대여점은 자신들의 거품을 메꿔줄 새로운 수익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얘기죠.
그렇기 때문에 대여점은 페이퍼백의 판매를 환영할 것입니다. 서점, 편의점, 문구점뿐 아니라 대여점 자체도 판매망으로 이용하자는 얘기입니다. 대여점이 '대중창작 전문서점'으로 바뀌는 거죠. 이렇게 되면 대여시장이 가지고 있었던 '가깝다'의 장점을 그대로 흡수하게 됩니다.
이제 판매시장은 페이퍼백에 관련해서 '싸고 가깝다'라는 부분으로 대여점과 대적하게 됐습니다. 남은 것은 '좋다'의 독점입니다.
아무리 값이 싼 페이퍼백이라고 해도 안팔릴 책은 안팔립니다. 재미없는 책을 보느니 군것질을 할 독자들이 우리나라의 대다수입니다. 그것을 제일 먼저 인지하는 쪽은 출판사입니다. 초기의 페이퍼백은 분명 양으로 밀어붙이겠지만(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페이퍼북 자체에 대한 홍보력을 주니까요) 중기에 들어서 그 중 상당수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판사들은 페이퍼북이라고 해도 팔릴만한 작품만을 선정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그 때 제일 먼저 따지는 부분이 작품의 퀄리티입니다. 책 자체가 페이퍼북이기 때문에, 원고의 그림보다는 스토리를 더 중시하는 현상이 벌어지겠죠. 하지만 페이퍼북에 이어서 출간되는 일반본과 양장본은 그림에도 독자분들의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럴 경우, 페이퍼북의 대상에서 제외된 작가들은 어떻게 될까요? 뭘 먹고 살죠? 신인들은? 페이퍼북은 일반본과 양장본의 수익까지 포함하여 제작되는 책인데,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신인작가들을 과연 쓸까요?
이들은 대여시장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대본소 작가들이 따로 있고 잡지 연재의 판매 시장 작가들이 따로 있었던 것처럼, 대여 시장 작가군이 형성됩니다.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죠. 신인들의 데뷔기회나 밀려나간 노장들의 공간으로 대여 시장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대여시장은 마이너로서의 역할을 하고, 그 공간을 통해 판매시장인 메이저로의 진출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의 분리이며, 이전의 안정된 시장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사항은 페이퍼백 시스템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이제부터는 또 다른 파급효과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페이퍼백의 제일 큰 장점은 컬렉션 문화의 형성입니다. 국내의 컬렉션 문화가 가장 활성화된 때는, 바로 이 페이퍼백이 양산된 시기였습니다. 이것은 페이퍼백에만 극한되지 않고 코믹판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결과적으로 판매시장의 활성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만 초기의 현상 때는 페이퍼백이 코믹판을 훨씬 앞섰기 때문에, 메이저 출판사들이 서둘러서 라이센스의 습득에 열을 올렸죠. 페이퍼백이 가라앉은 이유는 메이저의 라이센스 습득에 따른 법적대응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주장하는 새로운 페이퍼백은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고, 코믹판이나 양장본도 같이 출간하는 동일 출판사의 페이퍼백입니다. 충분히 병행 발전할 수 있는 상품이며, 출판사의 시장조절 또한 가능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작가와 출판사의 일부 희생이 필요합니다. 작가는 페이퍼백에 대한 수익을 최소화하는 데 동의하고, 출판사 또한 페이퍼백의 책정가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이라도 페이퍼백 자체만으로 수익을 얻기 위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상품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페이퍼백은 시장질서의 조율과 컬렉션 문화의 형성, 그리고 상품홍보의 관점이 더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컬렉션에 맛들인 독자들은 분명히 코믹판과 양장본에도 관심을 갖게될 것입니다. 또한 대여시장은 대여시장대로 페이퍼북에 참여하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시장을 형성하며, 대중창작 서점으로서의 이익에 추가보상을 받는 경우를 얻게 될 공산이 큽니다. 이제까지 주가 되었던 대여상품이 서브적인 존재가 되어 수익을 주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대여시장은 규모가 축소되면서 '싸고 가깝다'의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판매시장은 '좋고 가깝고 내꺼다'라는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게 될 것입니다. 즉, 대여시장의 기반이 흔들리는 결과겠지만, 현 시점의 대여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인 '대여점의 위기'가 해결됩니다. 대여시장은 축소되지만, 대여점의 수익은 '대중창작 전문서점'으로써 확대되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페이퍼백 출시에 대한 과정을 언급하겠습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5년 7월 13일 수요일
2005년 7월 12일 화요일
대여점 문제 #2
대여점 문제 #2
대여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여러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독자에게 호소하기'였습니다. 꿈은 가지라고해서 이상이지만, 꿈이라고해서 몽상입니다.
맛있게 하드를 먹고있는 아이에게 '너 그거 먹지마'라는 말을 툭 던지면 안먹는 아이도 있겠지만, 먹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아이에게 더 호감이 가는 음식을 줘야 하드를 외면합니다. 그게 시장원리입니다.
또 한 가지가 정부의 결정이 있습니다. 시차제나 이중정가제등 여러 가지 대책이 나왔습니다.
귀찮으니 복사하겠습니다. 꿈은 가지라고해서 이상이지만, 꿈이라고해서 몽상입니다.
맛있게 하드를 먹고있는 아이에게 '너 그거 먹지마'라는 말을 툭 던지면 안먹는 아이도 있겠지만, 먹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아이에게 더 호감이 가는 음식을 줘야 하드를 외면합니다. 그게 시장원리입니다.
말이 참 많았습니다. 대여점을 이용하는 독자들을 죄인으로 몰기도 하고, 대여점 자체를 죄인으로 몰기도 했습니다. 정부를 죄인으로 몰기도 하고, 작가도 죄인이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첫 글에 밝혔듯 죄인은 출판사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에게 죄를 묻는다면 출판계는 굶어 죽습니다. 주시해야 할 부분은 '출판사가 죄인'이라는 부분이 아닙니다. '시장을 변형시킨 존재가 출판사'라는 점입니다. 작가, 독자, 대여점이 한 게 아니라 출판사와 서점, 총판이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가 출판사와 서점, 총판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시장의 균형을 맞추려면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데, 그게 출판사와 서점, 총판이라는 소리입니다. 정부와 독자와 작가와 대여점 업주가 백 날 소리지르고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출판계의 미래를 가로막는 거대한 문의 열쇠를 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첫글에 밝혔듯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추를 풀고 다시 끼우는 일입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아무리 예쁘게 다듬어봤자 잘못 끼워진 단추일 뿐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잘못 끼워진 녀석들을 풀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손해볼 일이 아닙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들로 어떻게 좀 해보려고 닦고 기름치고 장식했던 과거를 허망하게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 끼워지는 단추는 그만큼 예쁜 단추가 된 것이죠.
잡소리는 치우고... -_-
거꾸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균형을 이루며 독자적으로 발전하던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이 하나로 통합되어 시장구조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대여시장은 '값싸고 편하다'의 무기를 갖고 있었고, 판매시장은 '좋고 내꺼다'라는 무기를 갖고 있었는데, 판매시장에서 '좋고'의 독점을 포기하는 바람에 먹혀버렸습니다.
여기가 잘못끼워진 단추의 시발점입니다.
때문에 판매시장은 '좋고'를 독점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단숨에 빼앗아버리면 그만이라고 하기에는 추가로 벌어진 문제점이 많으니 길게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좋고'를 단숨에 독점할 능력이 출판사에게는 없습니다. 이미 컬렉션에 대한 호감도를 잃어버린 독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통합된 대여시장에게 적응된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적 '라이코스'가 가세하여 독자를 길들였습니다.
'너희는 만화를 돈 주고 보니?'라는 문구 하나로 만화에 대한 가치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또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어 인터넷 만화들이 성행했고, 독자들은 점점 대중창작에 대한 컬렉션으로서의 관점을 상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관점을 회복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판매시장의 장점을 늘리는 일입니다. 단지 '내꺼다' 하나만으로 시장구조를 변형시킨다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생각입니다.
그럼 무슨 수로 장점을 늘릴까요?
대여시장의 장점을 일부 흡수해야 합니다. '값싸고 편하다'라는 장점을 상당수 흡수하여,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의 장점 간 격차를 줄이는 게 첫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 '좋고'의 독점을 하면 됩니다.
이 추상적인 말에 분노를 느끼시는 분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말은 누가 못해? 철수야, 지구를 지켜. 어떻게 지켜? 나쁜놈을 물리쳐. 어떻게 물리쳐? 잘. -_-;;
그런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을 적겠습니다.
'값싸고'라는 장점흡수는 가격다운입니다. 책값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죠.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은 책값을 올리고 있습니다. 책값과 관련하여 '이중 정가제'라는 대안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책값을 내려서 가격차를 줄이는 것입니다.(개인적으로 이중 정가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을 갖고있으며, 그것이 실행된다해도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편하다'라는 장점흡수는 유통망 확장입니다. 대여점과 같은 수의, 그것도 같은 위치의 유통망을 설치하는 게 대안이죠. 적어도 책을 구매할 때 대여점으로 걸어가는 것 이상으로 걷게해서는 안됩니다.
이 2가지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페이퍼백'입니다. 1,000원 미만의 소책자(가급적 700-800원 미만이 되는)를 출간하여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것입니다. 페이퍼백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적도록 하겠습니다. 밖에 나갈 일이 생겼네요. ㄱ-;;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대여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여러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독자에게 호소하기'였습니다. 꿈은 가지라고해서 이상이지만, 꿈이라고해서 몽상입니다.
맛있게 하드를 먹고있는 아이에게 '너 그거 먹지마'라는 말을 툭 던지면 안먹는 아이도 있겠지만, 먹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아이에게 더 호감이 가는 음식을 줘야 하드를 외면합니다. 그게 시장원리입니다.
또 한 가지가 정부의 결정이 있습니다. 시차제나 이중정가제등 여러 가지 대책이 나왔습니다.
귀찮으니 복사하겠습니다. 꿈은 가지라고해서 이상이지만, 꿈이라고해서 몽상입니다.
맛있게 하드를 먹고있는 아이에게 '너 그거 먹지마'라는 말을 툭 던지면 안먹는 아이도 있겠지만, 먹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아이에게 더 호감이 가는 음식을 줘야 하드를 외면합니다. 그게 시장원리입니다.
말이 참 많았습니다. 대여점을 이용하는 독자들을 죄인으로 몰기도 하고, 대여점 자체를 죄인으로 몰기도 했습니다. 정부를 죄인으로 몰기도 하고, 작가도 죄인이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첫 글에 밝혔듯 죄인은 출판사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에게 죄를 묻는다면 출판계는 굶어 죽습니다. 주시해야 할 부분은 '출판사가 죄인'이라는 부분이 아닙니다. '시장을 변형시킨 존재가 출판사'라는 점입니다. 작가, 독자, 대여점이 한 게 아니라 출판사와 서점, 총판이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가 출판사와 서점, 총판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시장의 균형을 맞추려면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데, 그게 출판사와 서점, 총판이라는 소리입니다. 정부와 독자와 작가와 대여점 업주가 백 날 소리지르고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출판계의 미래를 가로막는 거대한 문의 열쇠를 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첫글에 밝혔듯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추를 풀고 다시 끼우는 일입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아무리 예쁘게 다듬어봤자 잘못 끼워진 단추일 뿐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잘못 끼워진 녀석들을 풀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손해볼 일이 아닙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들로 어떻게 좀 해보려고 닦고 기름치고 장식했던 과거를 허망하게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 끼워지는 단추는 그만큼 예쁜 단추가 된 것이죠.
잡소리는 치우고... -_-
거꾸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균형을 이루며 독자적으로 발전하던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이 하나로 통합되어 시장구조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대여시장은 '값싸고 편하다'의 무기를 갖고 있었고, 판매시장은 '좋고 내꺼다'라는 무기를 갖고 있었는데, 판매시장에서 '좋고'의 독점을 포기하는 바람에 먹혀버렸습니다.
여기가 잘못끼워진 단추의 시발점입니다.
때문에 판매시장은 '좋고'를 독점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단숨에 빼앗아버리면 그만이라고 하기에는 추가로 벌어진 문제점이 많으니 길게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좋고'를 단숨에 독점할 능력이 출판사에게는 없습니다. 이미 컬렉션에 대한 호감도를 잃어버린 독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통합된 대여시장에게 적응된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적 '라이코스'가 가세하여 독자를 길들였습니다.
'너희는 만화를 돈 주고 보니?'라는 문구 하나로 만화에 대한 가치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또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어 인터넷 만화들이 성행했고, 독자들은 점점 대중창작에 대한 컬렉션으로서의 관점을 상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관점을 회복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판매시장의 장점을 늘리는 일입니다. 단지 '내꺼다' 하나만으로 시장구조를 변형시킨다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생각입니다.
그럼 무슨 수로 장점을 늘릴까요?
대여시장의 장점을 일부 흡수해야 합니다. '값싸고 편하다'라는 장점을 상당수 흡수하여,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의 장점 간 격차를 줄이는 게 첫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 '좋고'의 독점을 하면 됩니다.
이 추상적인 말에 분노를 느끼시는 분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말은 누가 못해? 철수야, 지구를 지켜. 어떻게 지켜? 나쁜놈을 물리쳐. 어떻게 물리쳐? 잘. -_-;;
그런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을 적겠습니다.
'값싸고'라는 장점흡수는 가격다운입니다. 책값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죠.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은 책값을 올리고 있습니다. 책값과 관련하여 '이중 정가제'라는 대안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책값을 내려서 가격차를 줄이는 것입니다.(개인적으로 이중 정가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을 갖고있으며, 그것이 실행된다해도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편하다'라는 장점흡수는 유통망 확장입니다. 대여점과 같은 수의, 그것도 같은 위치의 유통망을 설치하는 게 대안이죠. 적어도 책을 구매할 때 대여점으로 걸어가는 것 이상으로 걷게해서는 안됩니다.
이 2가지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페이퍼백'입니다. 1,000원 미만의 소책자(가급적 700-800원 미만이 되는)를 출간하여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것입니다. 페이퍼백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적도록 하겠습니다. 밖에 나갈 일이 생겼네요. ㄱ-;;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대여점 문제 #1
대여점 문제 #1
-문제의 시작
잘못된 정보가 있습니다. 대여점 문제는 대여점 때문에 생겼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처음부터 얘기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 어지간하면 간단히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제의 시작
잘못된 정보가 있습니다. 대여점 문제는 대여점 때문에 생겼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처음부터 얘기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 어지간하면 간단히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우리나라 대중창작계는 2개의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판매시장이고 또 하나는 대여시장입니다. 이 둘은 마치 바이오 리듬처럼 주기를 만들면서 떨어지고 겹치고를 반복하죠. 대여시장이 최근에 나타난 시장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 절대 아닙니다. 소위 '만화가게'라고 불리는 대본소를 통하여 '대여시장'이 발전했고, 서점과 문구점을 통해서 '판매시장'이 발전했습니다.
만화가 유통된 과정은 여러 가지입니다. 대표적인 대여시장이 대본소였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불청객 시리즈' '무당거미 시리즈' '슈퍼스타 시리즈'등 어른들이 알고있는 다수의 만화들은 대부분 대여시장을 통해 공급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소케트군' '꺼벙이' '심똘이' '소년007'등 판매시장을 통한 만화들이 독자들을 이끌었습니다. 판매시장을 형성한 만화들은 주로 소년지 신문에 연재가 되거나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같은 잡지 연재작품들이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의 영역을 강하게 침범하는 일이 없었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죠.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같은 해적판 만화들이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고, 현재의 무가지처럼 풍선껌의 별책부록으로 만화가 유통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서 대여점이 생겼을 때도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은 서로의 영역을 크게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대여점이나 대본소의 입장에서는 판매시장이 지니고있는 고퀄리티 작품들을 흡수하고 싶었지만, 판매시장의 출판사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진행과정에서 양쪽 모두 커다란 전환점이자 전성기 시절을 맞이했습니다.
먼저 판매시장과 대여시장 모두를 이용했던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의 해적판 만화가 대여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좀 더 고급의 질로 출간된 해적판 만화는 '방의표가 주인공인 도시의 욕망(시티헌터)'나 '대야망/대룡' 등등의 뛰어난 일본작품들로 대여점의 호황기를 이끌었습니다. 이 때 제법 많은 대본소가 등장하여 만화가게의 포화상태를 만들었죠.
그것이 사그라들 즈음에는 판매시장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좀 더 강력한 변화였습니다. 500원짜리 소책자로 출간된 해적판 페이퍼백은 단숨에 판매시장을 휩쓸며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이제까지 대본소를 중심으로 만화를 접하던 독자들은 컬렉션이라는 개념을 깨우쳤고, 한국 만화계에 본격적인 판매시장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서 라이센스판 일본만화가 국내에 유입됐습니다. 판매시장의 흐름을 끊지 않고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이 발전이 대여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나라는 유래없는 만화계의 전성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깨질 수가 없었습니다. 판매시장을 장악한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대여시장이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대여시장에 관여하는 출판사는 판매시장을 침범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균형이 깨지게 된 것은 IMF때입니다.
대여시장은 이제까지 겪지 못했던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했습니다. 반면에 판매시장은 조금씩 부진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구매능력을 갖췄던 독자들이 IMF의 몸사리기에 동참하면서 대여시장을 찾기 시작해서입니다. 덧붙여서 일에 쫓기던 분들이 여유시간을 얻고 책으로 눈을 돌렸는데, 하필 가까운 곳에 대여점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게임방이 성행하기 직전의 여백기간동안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판매시장의 부진과 대여시장의 호황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출판계의 암흑기를 초래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대여시장이 가장 원하던 것. 바로 판매시장을 장악한 출판사들이 대여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판매시장을 장악한 출판사들은 대여시장까지 먹어버릴 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시장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고있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되려 먹혔습니다.
시장구조의 관건은 구매층의 발길을 조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대여시장의 장점이 '값싸고 편하다'라면, 판매시장의 장점은 '좋고 내꺼다'입니다. 서로가 맞물리며 균형을 이루던 와중에, 판매시장이 대여시장을 먹기 위해서 '좋고'의 독점을 포기했습니다. '좋고 값싸고 편하다'의 대여시장과 '좋고 내꺼다'. 결론은 '값싸고 편하다'와 '내꺼다'의 대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먹히는 게 당연합니다.
이러한 시장구조와 관계없이 결론적으로 판매시장 쪽의 출판사는 대여시장도 장악한 꼴이 되었습니다. 시장구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이익을 챙긴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출판사의 전략이 성공한 것 같지만, 멀리 보면 앞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근시안적 대책이 된 셈입니다.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이 통합됨으로 인해서 벌어진 문제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결론은 현재의 대여점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판매시장을 다스리던 메이저 출판사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과정을 볼까요?
대여점 문제가 불거질 때, 화두에 오른 것은 '대여점이 나쁘다'가 대세였습니다. 또는 '정부가 나쁘다'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중심화두에 올라온 적은 별로 없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너무도 고마운 진행이죠. 덕분에 출판사는 시장위기를 핑계로 작가에게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사의 권한, 그것도 메이저 출판사의 권한이 강화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옛 일 말하면서 불평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앞으로가 문제죠. 제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졌는 지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맞추기 위해서는 제대로 맞춰진 단추의 위치가 필요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만화가 유통된 과정은 여러 가지입니다. 대표적인 대여시장이 대본소였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불청객 시리즈' '무당거미 시리즈' '슈퍼스타 시리즈'등 어른들이 알고있는 다수의 만화들은 대부분 대여시장을 통해 공급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소케트군' '꺼벙이' '심똘이' '소년007'등 판매시장을 통한 만화들이 독자들을 이끌었습니다. 판매시장을 형성한 만화들은 주로 소년지 신문에 연재가 되거나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같은 잡지 연재작품들이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의 영역을 강하게 침범하는 일이 없었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죠.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같은 해적판 만화들이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고, 현재의 무가지처럼 풍선껌의 별책부록으로 만화가 유통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서 대여점이 생겼을 때도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은 서로의 영역을 크게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대여점이나 대본소의 입장에서는 판매시장이 지니고있는 고퀄리티 작품들을 흡수하고 싶었지만, 판매시장의 출판사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진행과정에서 양쪽 모두 커다란 전환점이자 전성기 시절을 맞이했습니다.
먼저 판매시장과 대여시장 모두를 이용했던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의 해적판 만화가 대여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좀 더 고급의 질로 출간된 해적판 만화는 '방의표가 주인공인 도시의 욕망(시티헌터)'나 '대야망/대룡' 등등의 뛰어난 일본작품들로 대여점의 호황기를 이끌었습니다. 이 때 제법 많은 대본소가 등장하여 만화가게의 포화상태를 만들었죠.
그것이 사그라들 즈음에는 판매시장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좀 더 강력한 변화였습니다. 500원짜리 소책자로 출간된 해적판 페이퍼백은 단숨에 판매시장을 휩쓸며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이제까지 대본소를 중심으로 만화를 접하던 독자들은 컬렉션이라는 개념을 깨우쳤고, 한국 만화계에 본격적인 판매시장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서 라이센스판 일본만화가 국내에 유입됐습니다. 판매시장의 흐름을 끊지 않고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이 발전이 대여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나라는 유래없는 만화계의 전성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깨질 수가 없었습니다. 판매시장을 장악한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대여시장이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대여시장에 관여하는 출판사는 판매시장을 침범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균형이 깨지게 된 것은 IMF때입니다.
대여시장은 이제까지 겪지 못했던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했습니다. 반면에 판매시장은 조금씩 부진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구매능력을 갖췄던 독자들이 IMF의 몸사리기에 동참하면서 대여시장을 찾기 시작해서입니다. 덧붙여서 일에 쫓기던 분들이 여유시간을 얻고 책으로 눈을 돌렸는데, 하필 가까운 곳에 대여점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게임방이 성행하기 직전의 여백기간동안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판매시장의 부진과 대여시장의 호황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출판계의 암흑기를 초래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대여시장이 가장 원하던 것. 바로 판매시장을 장악한 출판사들이 대여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판매시장을 장악한 출판사들은 대여시장까지 먹어버릴 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시장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고있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되려 먹혔습니다.
시장구조의 관건은 구매층의 발길을 조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대여시장의 장점이 '값싸고 편하다'라면, 판매시장의 장점은 '좋고 내꺼다'입니다. 서로가 맞물리며 균형을 이루던 와중에, 판매시장이 대여시장을 먹기 위해서 '좋고'의 독점을 포기했습니다. '좋고 값싸고 편하다'의 대여시장과 '좋고 내꺼다'. 결론은 '값싸고 편하다'와 '내꺼다'의 대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먹히는 게 당연합니다.
이러한 시장구조와 관계없이 결론적으로 판매시장 쪽의 출판사는 대여시장도 장악한 꼴이 되었습니다. 시장구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이익을 챙긴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출판사의 전략이 성공한 것 같지만, 멀리 보면 앞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근시안적 대책이 된 셈입니다.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이 통합됨으로 인해서 벌어진 문제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결론은 현재의 대여점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판매시장을 다스리던 메이저 출판사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과정을 볼까요?
대여점 문제가 불거질 때, 화두에 오른 것은 '대여점이 나쁘다'가 대세였습니다. 또는 '정부가 나쁘다'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중심화두에 올라온 적은 별로 없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너무도 고마운 진행이죠. 덕분에 출판사는 시장위기를 핑계로 작가에게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사의 권한, 그것도 메이저 출판사의 권한이 강화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옛 일 말하면서 불평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앞으로가 문제죠. 제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졌는 지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맞추기 위해서는 제대로 맞춰진 단추의 위치가 필요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5년 7월 10일 일요일
날 당황스럽게 만든 실수.
며칠 전부터 내 컴퓨터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이 1분쯤 숨어있다가 "쨘! 놀랬지?" 놀이를 시작했던 것. 여러 가지 정보를 구해서 그 방법대로 해봤지만, 부팅만 하면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했다. 혹자는 바이러스라고 해서 철저하게 검사를 해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사소하지만 신경이 쓰였다.
결국 어제 오후에 나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저것 해보면서 열을 올리던 도중에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윈도우XP의 업데이트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있는 컴퓨터는 내 동생이 선물해준 것이다. 이전까지 아무 걱정없이 윈도우2K를 쓰며 꼬박꼬박 업데이트를 했었던 나는 정품이 아닌 XP의 업데이트가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로그인이 안됐다. o..TL
여기서 또 한 번 실수를 했다. 이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윈2K로 운영체제를 바꾸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정품CD를 놔두고 왜 불법품을 쓰냔 말이다. 난 망설이지않고 D드라이브에 윈2K를 깔았다. 그리고 2K 운영체제로 로그인하여 C드라이브를 포맷했다. 그 다음은 재정비. D드라이브의 글과 자료집들을 C로 옮기고 C에 윈2K를 또 깔았다. 난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을 C드라이브에 넣고 글과 자료들은 D드라이브에 넣는 버릇이 있다. 귀찮은 과정이지만 이렇게 정리해야 속이 후련하다.
이제 D드라이브를 포맷할 차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포맷이 안됐다. 그래서 강제로 지웠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 몰라, 모른다. 난 무모한 아이일 테야. -_-
이제 글과 자료들을 D로 옮겼다. 남은 일은 각종 하드웨어의 드라이버를 설치하는 것.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설치만 하면 다 끝이 난다.
인터넷이 안된다. o..TL
잊고 있었다. 이 컴퓨터는 내가 싫어하는 원보드로 이루어진 놈이라는 걸. 당연히 랜카드가 리얼텍 8139라고 여겼던 나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이름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보드장착 랜카드! 윈도우2K는 이 랜카드의 드라이버를 갖고있지 않았다.
다시 XP를 깔아야했다. 다행히 내 동생이 컴퓨터점을 운영할 때 갖고있던 CD가 있었다. 하지만 CD키를 모른다. 새벽5시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CD키를 물어봤다. 열심히 적어서 등록했더니 구라랜다. 내것은 홈 에디션이고 쟤것은 다른 날라리XP였던 것이다.
비로소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건 쉽지 않겠구나. 랜카드를 구입해야겠다. 난 예정된 마감시간을 계산해봤다. 오전 11시 전에는 랜카드를 장착해야 오후 1시까지 글을 마칠 수 있다. 그래. 아침 일찍 용산에 가서 구입하자.
집에서 용산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혹시 모르니 여유시간 30분을 추가하자. 그러면 오전 8시 반에 출발하면 되겠군. 난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샤워했다. 그리고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용산에서 2000원짜리 랜카드를 구매한 뒤 시계를 봤다.
10시 40분.
10시 40분...
난 생각했다. 미친 거냐, 성화야? 돌아오는 시간을 왜 계산하지 않은 거지? 진정한 치매의 장을 열고싶은 게냐!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는 지를...
귀환 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_-;;
빌어먹을! 와우를 접은 지가 언젠데... 아니, 그 이전에 와우에 푹 빠져있는 상태라도 그렇지!
시간적 오류로 버벅거리다가 하도 한심해서 적는다.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사소하지만 신경이 쓰였다.
결국 어제 오후에 나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저것 해보면서 열을 올리던 도중에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윈도우XP의 업데이트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있는 컴퓨터는 내 동생이 선물해준 것이다. 이전까지 아무 걱정없이 윈도우2K를 쓰며 꼬박꼬박 업데이트를 했었던 나는 정품이 아닌 XP의 업데이트가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로그인이 안됐다. o..TL
여기서 또 한 번 실수를 했다. 이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윈2K로 운영체제를 바꾸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정품CD를 놔두고 왜 불법품을 쓰냔 말이다. 난 망설이지않고 D드라이브에 윈2K를 깔았다. 그리고 2K 운영체제로 로그인하여 C드라이브를 포맷했다. 그 다음은 재정비. D드라이브의 글과 자료집들을 C로 옮기고 C에 윈2K를 또 깔았다. 난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을 C드라이브에 넣고 글과 자료들은 D드라이브에 넣는 버릇이 있다. 귀찮은 과정이지만 이렇게 정리해야 속이 후련하다.
이제 D드라이브를 포맷할 차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포맷이 안됐다. 그래서 강제로 지웠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 몰라, 모른다. 난 무모한 아이일 테야. -_-
이제 글과 자료들을 D로 옮겼다. 남은 일은 각종 하드웨어의 드라이버를 설치하는 것.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설치만 하면 다 끝이 난다.
인터넷이 안된다. o..TL
잊고 있었다. 이 컴퓨터는 내가 싫어하는 원보드로 이루어진 놈이라는 걸. 당연히 랜카드가 리얼텍 8139라고 여겼던 나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이름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보드장착 랜카드! 윈도우2K는 이 랜카드의 드라이버를 갖고있지 않았다.
다시 XP를 깔아야했다. 다행히 내 동생이 컴퓨터점을 운영할 때 갖고있던 CD가 있었다. 하지만 CD키를 모른다. 새벽5시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CD키를 물어봤다. 열심히 적어서 등록했더니 구라랜다. 내것은 홈 에디션이고 쟤것은 다른 날라리XP였던 것이다.
비로소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건 쉽지 않겠구나. 랜카드를 구입해야겠다. 난 예정된 마감시간을 계산해봤다. 오전 11시 전에는 랜카드를 장착해야 오후 1시까지 글을 마칠 수 있다. 그래. 아침 일찍 용산에 가서 구입하자.
집에서 용산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혹시 모르니 여유시간 30분을 추가하자. 그러면 오전 8시 반에 출발하면 되겠군. 난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샤워했다. 그리고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용산에서 2000원짜리 랜카드를 구매한 뒤 시계를 봤다.
10시 40분.
10시 40분...
난 생각했다. 미친 거냐, 성화야? 돌아오는 시간을 왜 계산하지 않은 거지? 진정한 치매의 장을 열고싶은 게냐!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는 지를...
귀환 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_-;;
빌어먹을! 와우를 접은 지가 언젠데... 아니, 그 이전에 와우에 푹 빠져있는 상태라도 그렇지!
시간적 오류로 버벅거리다가 하도 한심해서 적는다.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5년 7월 9일 토요일
창작의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니다.
지금도 레디 오스 성화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경험자들은 3가지 단어를 제시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그것이다.
일부의 작가들이 무진장 부러워하는 '재능'은 위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즉, 재능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반석차 31등이 29등을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 노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재능이기 때문이다. 재능을 선천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지레 포기한 채 구름 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그 구름은 아무나 불러도 날아오는 근두운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재능은 만들 수 있다.
그럼 이 천재들은 어떤 노력을 했기에 재능을 가졌을까?
본의 아니게 삶을 찾고 욕심을 부린 결과다. 어릴 때 만화를 좋아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고 남을 즐겁게 만드는 과정에서 쾌락을 찾는 삶이 창작에 대한 재능을 만든다. 좀 더 많은 만화를 보고, 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좀 더 많은 놀이를 즐길수록 재능은 증폭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는 새 오늘에 이른다. 숨쉴 때 들어오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놈이라서 미처 의식하지 못하기에 재능을 선천적인 것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물론 이 속에서도 운이 따른다. 사귀는 친구의 재능이 어떠하냐에 따라 자기발전의 폭이 달라진다. 읽고있는 만화책이나 소설책의 수준이 어떠하냐에 따라 재능의 폭이 달라진다. 좀 더 높은 재능을 유발하는 친구나 책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최대한 많이 얻어야 한다. 그래야 확률이 높다.
이것을 다른 말로 '다독'이라고 한다. 다독은 그저 책을 읽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수많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고, 그 경험 중 무언가가 자신의 다음 행동에 재능으로서의 도움을 주게된다. 그렇다면 창작과 관련된 경험이 뭘까? 모든 것이다! 창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겪은 모든 경험 자체가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A와 B가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친구를 사귀고 똑같은 경험을 했다면 이 둘의 재능은 같을까?
그렇지 않다. 이 경험 속에서 재능의 수준이 또 다시 나뉜다. 그것은 경험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다.
똑같이 당구를 시작해서 똑같이 연습을 했어도 실력차이가 난다. 그 이전에 당구와 관련된 경험(예를 들어 구슬치기나 야구같은 경험)을 했다는 건 예외로 치자. 똑같은 과거를 가졌어도 실력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 경험에 대한 집중력과 사고의 차이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더니 천장에서 빨간공과 하얀공이 쿠션을 그리며 돌아다니고, 친구가 공을 칠 때 그 공이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스스로도 모르게 떠올리는 것. 단독 드리블 돌파로 골키퍼와 1:1상황이 되어 슛을 날릴 때 시네루로 골대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경험에 대한 집중력이 재능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똑같은 만화를 봐도 그 만화에 대해 이것저것 떠올리고,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농담을 들으면 그것을 다른 친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더 재미있는 반응을 불러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소설책을 읽는데 각 지문이 말하는 배경이 스스로도 모르게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다상량'이라고 한다.
'다작'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재능에서 제외하겠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이 삶들이 당신을 만든 것이다. 당신에게 창작의 재능이 있다면 당신은 창작의 재능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 삶을 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가꾼다면 당신의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중창작을 하면서 '작가는 고독해야 돼'라며 주변을 떨치는 사람. 대중창작을 하면서 '남의 작품을 읽으면 내 작품이 흔들릴 수 있어'라며 타작품을 외면하는 사람. 장담하건대 대중창작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알고 세상의 작품을 알아야 대중을 위한 창작의 재능을 놓치지 않는다.
나이를 따지고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 따져야 할 건 있다. -_-;;
나보다 10여 년이나 어린 것들이 자신은 나보다 재능이 없다며 투덜대는 걸 보면 칵 쥐어박고 싶다. 나보다 10여 년이나 나이 많은 선배가 늙으면 젊은애들 감각을 따라갈 수 없다고 불평하는 걸 보면 칵 물어버리고 싶다. 일단 어린아?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단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창작에 목을 매며 살던 놈이란다. 3년만 기다려라. 30년 채운다. 30년간 창작에 목을 매며 재능을 키웠던 놈에게 투덜이가 웬 말이냐. 내가 선배의 재능을 훔치듯 너도 지금 내 재능을 훔쳐서 10년 후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질 수 있잖냐. 투덜대야 할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늙은님? 젊은애들이 백 날 노력하면 뭐합니까? 늙은이들도 백 날 노력하는데. 똑같이 노력하면 늙은이가 죽을 때까지 젊은이는 당신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니막. 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요즘 젊은이들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외면하거나 '에잉, 요즘 젊은 것들이란... 쯔쯔.'라고 궁시렁대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재능을 키워도 늦지 않다. 진작부터 재능을 키웠던 녀석들보다는 빨리 성장할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강화된 상태니까. 다만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접하는 문화의 일면을 티껍게 바라보지만 마라. 창작적 관점에 있어서 이 세상에 잘못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접하는 모든 생활에,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라. 그것이 당신의 창작재능을 키우는 열쇠다.
창작의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경험자들은 3가지 단어를 제시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그것이다.
일부의 작가들이 무진장 부러워하는 '재능'은 위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즉, 재능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반석차 31등이 29등을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 노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재능이기 때문이다. 재능을 선천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지레 포기한 채 구름 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그 구름은 아무나 불러도 날아오는 근두운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재능은 만들 수 있다.
그럼 이 천재들은 어떤 노력을 했기에 재능을 가졌을까?
본의 아니게 삶을 찾고 욕심을 부린 결과다. 어릴 때 만화를 좋아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고 남을 즐겁게 만드는 과정에서 쾌락을 찾는 삶이 창작에 대한 재능을 만든다. 좀 더 많은 만화를 보고, 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좀 더 많은 놀이를 즐길수록 재능은 증폭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는 새 오늘에 이른다. 숨쉴 때 들어오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놈이라서 미처 의식하지 못하기에 재능을 선천적인 것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물론 이 속에서도 운이 따른다. 사귀는 친구의 재능이 어떠하냐에 따라 자기발전의 폭이 달라진다. 읽고있는 만화책이나 소설책의 수준이 어떠하냐에 따라 재능의 폭이 달라진다. 좀 더 높은 재능을 유발하는 친구나 책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최대한 많이 얻어야 한다. 그래야 확률이 높다.
이것을 다른 말로 '다독'이라고 한다. 다독은 그저 책을 읽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수많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고, 그 경험 중 무언가가 자신의 다음 행동에 재능으로서의 도움을 주게된다. 그렇다면 창작과 관련된 경험이 뭘까? 모든 것이다! 창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겪은 모든 경험 자체가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A와 B가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친구를 사귀고 똑같은 경험을 했다면 이 둘의 재능은 같을까?
그렇지 않다. 이 경험 속에서 재능의 수준이 또 다시 나뉜다. 그것은 경험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다.
똑같이 당구를 시작해서 똑같이 연습을 했어도 실력차이가 난다. 그 이전에 당구와 관련된 경험(예를 들어 구슬치기나 야구같은 경험)을 했다는 건 예외로 치자. 똑같은 과거를 가졌어도 실력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 경험에 대한 집중력과 사고의 차이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더니 천장에서 빨간공과 하얀공이 쿠션을 그리며 돌아다니고, 친구가 공을 칠 때 그 공이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스스로도 모르게 떠올리는 것. 단독 드리블 돌파로 골키퍼와 1:1상황이 되어 슛을 날릴 때 시네루로 골대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경험에 대한 집중력이 재능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똑같은 만화를 봐도 그 만화에 대해 이것저것 떠올리고,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농담을 들으면 그것을 다른 친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더 재미있는 반응을 불러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소설책을 읽는데 각 지문이 말하는 배경이 스스로도 모르게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다상량'이라고 한다.
'다작'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재능에서 제외하겠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이 삶들이 당신을 만든 것이다. 당신에게 창작의 재능이 있다면 당신은 창작의 재능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 삶을 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가꾼다면 당신의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중창작을 하면서 '작가는 고독해야 돼'라며 주변을 떨치는 사람. 대중창작을 하면서 '남의 작품을 읽으면 내 작품이 흔들릴 수 있어'라며 타작품을 외면하는 사람. 장담하건대 대중창작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알고 세상의 작품을 알아야 대중을 위한 창작의 재능을 놓치지 않는다.
나이를 따지고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 따져야 할 건 있다. -_-;;
나보다 10여 년이나 어린 것들이 자신은 나보다 재능이 없다며 투덜대는 걸 보면 칵 쥐어박고 싶다. 나보다 10여 년이나 나이 많은 선배가 늙으면 젊은애들 감각을 따라갈 수 없다고 불평하는 걸 보면 칵 물어버리고 싶다. 일단 어린아?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단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창작에 목을 매며 살던 놈이란다. 3년만 기다려라. 30년 채운다. 30년간 창작에 목을 매며 재능을 키웠던 놈에게 투덜이가 웬 말이냐. 내가 선배의 재능을 훔치듯 너도 지금 내 재능을 훔쳐서 10년 후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질 수 있잖냐. 투덜대야 할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늙은님? 젊은애들이 백 날 노력하면 뭐합니까? 늙은이들도 백 날 노력하는데. 똑같이 노력하면 늙은이가 죽을 때까지 젊은이는 당신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니막. 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요즘 젊은이들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외면하거나 '에잉, 요즘 젊은 것들이란... 쯔쯔.'라고 궁시렁대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재능을 키워도 늦지 않다. 진작부터 재능을 키웠던 녀석들보다는 빨리 성장할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강화된 상태니까. 다만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접하는 문화의 일면을 티껍게 바라보지만 마라. 창작적 관점에 있어서 이 세상에 잘못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접하는 모든 생활에,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라. 그것이 당신의 창작재능을 키우는 열쇠다.
창작의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5년 7월 8일 금요일
어긋남은 있어도 틀리지는 않았다.
지금도 레디 오스 성화
세상에 불만은 없다.
불만이 있다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를 고쳐야 한다. 내가 세상의 일원이니까 별 수 있나.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남에게 뭔가를 원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세상에게 뭔가를 원하지만 않으면 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를 고쳐야 한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해탈과정을 거쳐 부처님이 되신 뒤 좋은 불당 하나 찾아가라고? 미쳤냐? 그나마 십자가에 못박힌 채 대량생산되는 예수님보다야 낫겠지만, 오십보 백보지. 내가 왜 태어났는데.
나를 고쳐야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 힘으로 얻어내서 원하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한 걸음이다. 남에게 뭔가를 원한다면 나를 고쳐서 남이 그것을 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냥 달라고 찡찡대고 투덜대면 걔가 주나? "한 번만 주라, 응?"이라며 애원하는 섹스구걸도 아니고, 인생을 이루어가는 보석인데 그걸 그냥 주나? 누런 이빨 드러내며 손바닥 벌리는 사람만 거지가 아니다. 남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래야 내가 행복하고 사회가 안녕한다."라고 행동방식을 구걸하는 것도 상당한 거지다. 카악 퉤. 일을 하라고, 일을! 남이 그걸 하기를 바라면 그걸 하게끔 만들라고.
눈깔 빛내며 "호오. 당신은 그곳에 있습니까?"라고 묻지 마라. 날 흡수해서 어쩔 건데? 내가 당신이 원하는 행동양식을 따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은 당신의 계획 속에는 내 모든 미래가 확고하게 자리잡힌 거냐? 그저 맡길까? 왜 날 낳지 않았지? 나에게 그것을 강요하기 이전에 했어야 할 일을 잊고 있군. 아직 내 머리통엔 자네가 만든 칩이 박혀있지 않아.
나에 대한 걱정은 너무도 고맙다. 하지만 내가 뭘 해도 당신은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존재하고 있다면, 당신은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내가 널 만들었어. 오냐. 머리를 숙여주마. 감사합니다, 마스터. 이제는 제 앞에서 칼 들고 얼쩡거리는 저 꼬마에게 내가 아버지라고 밝혀도 되겠습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어긋남은 있겠지. 하지만 내 길은 틀리지 않다. 틀렸다고 해도 내 잘못이다. 남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가서 틀린 삶을 살았다면, 나의 끝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될 것이다. 그러고싶지 않다. 누군가를 원망하고싶지 않다. 원망 또한 남을 향한 강요가 아닌가. 내가 싫은 걸 남에게 하고싶지 않다.
작가들 힘들다고? 요즘 출판계가 극악이라고? 그래 맞다. 극악이다. 그런데 어쩌라고? 힘드니까 직업 바꾸라고? 옛날 생각하는 건 정말 싫지만, 옛 얘기 하나 꺼내보자. 나 고등학교 때 이과 선택했다. 국어 디따 잘하고 미대를 목표로 하는 놈이 이과를 선택했다. 왜냐고? 먹고 살기엔 이과가 낫다고 하니까. 그런데 요즘 그렇던가? 이렇게 오래 살고도 세상이 돌고 돈다는 거 아직 모르겠나?
세상은 언제나 바뀐다. 주기가 있다. 그 주기에 휘말려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지만, 묘하게 그 주기를 잘못 따라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건 그 따위 주기를 무시한 채 항상 그곳에 있는 사람은 절망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때가 왔을 때 그곳에 있어야 한다. 뭐 잘된다고 거기가서 깔짝대고, 뭐 안된다고 잽싸게 도망가는 것보다야 낫다고 본다. 누가 뭐라고 하건 난 여기에 있다.
난 세상에 바라는 게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얻겠다. 넌 내가 바라는 것을 몰라도 된다. 주게끔 만들겠다.
그러니 제발 나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칭얼대지 마라. 구걸하지 마라. 한두 푼 줄 수는 있겠지만, 내 인생을 줄 수는 없다. 게다가 넌 절실하게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잖아? 잊고있나본데 난 레디 오스 성화라는 필명으로 창작을 하고 있는 창작가라고! 내가 죽기 전까지 좀 더 많은 세상을 알고싶고 좀 더 많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창작가란 말이다. 난 신문기자도 아니고, 만평가도 아니고, 만화가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고, 게임제작자도 아니고 그저 창작가란 말이다. 나의 한계를 네가 정하지 말아라. 어제의 한계와 지금의 한계는 너만 아는 게 아니라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1초 후의 내 한계는 나도 몰라. 네가 날 알아?
나의 어긋남을 갖고 미래를 보지 말아라. 어긋난 길을 바로 잡는 것도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틀리지 않은 길을 보고 있는 건 나 밖에 없으니까.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세상에 불만은 없다.
불만이 있다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를 고쳐야 한다. 내가 세상의 일원이니까 별 수 있나.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남에게 뭔가를 원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세상에게 뭔가를 원하지만 않으면 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를 고쳐야 한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해탈과정을 거쳐 부처님이 되신 뒤 좋은 불당 하나 찾아가라고? 미쳤냐? 그나마 십자가에 못박힌 채 대량생산되는 예수님보다야 낫겠지만, 오십보 백보지. 내가 왜 태어났는데.
나를 고쳐야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 힘으로 얻어내서 원하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한 걸음이다. 남에게 뭔가를 원한다면 나를 고쳐서 남이 그것을 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냥 달라고 찡찡대고 투덜대면 걔가 주나? "한 번만 주라, 응?"이라며 애원하는 섹스구걸도 아니고, 인생을 이루어가는 보석인데 그걸 그냥 주나? 누런 이빨 드러내며 손바닥 벌리는 사람만 거지가 아니다. 남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래야 내가 행복하고 사회가 안녕한다."라고 행동방식을 구걸하는 것도 상당한 거지다. 카악 퉤. 일을 하라고, 일을! 남이 그걸 하기를 바라면 그걸 하게끔 만들라고.
눈깔 빛내며 "호오. 당신은 그곳에 있습니까?"라고 묻지 마라. 날 흡수해서 어쩔 건데? 내가 당신이 원하는 행동양식을 따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은 당신의 계획 속에는 내 모든 미래가 확고하게 자리잡힌 거냐? 그저 맡길까? 왜 날 낳지 않았지? 나에게 그것을 강요하기 이전에 했어야 할 일을 잊고 있군. 아직 내 머리통엔 자네가 만든 칩이 박혀있지 않아.
나에 대한 걱정은 너무도 고맙다. 하지만 내가 뭘 해도 당신은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존재하고 있다면, 당신은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내가 널 만들었어. 오냐. 머리를 숙여주마. 감사합니다, 마스터. 이제는 제 앞에서 칼 들고 얼쩡거리는 저 꼬마에게 내가 아버지라고 밝혀도 되겠습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어긋남은 있겠지. 하지만 내 길은 틀리지 않다. 틀렸다고 해도 내 잘못이다. 남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가서 틀린 삶을 살았다면, 나의 끝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될 것이다. 그러고싶지 않다. 누군가를 원망하고싶지 않다. 원망 또한 남을 향한 강요가 아닌가. 내가 싫은 걸 남에게 하고싶지 않다.
작가들 힘들다고? 요즘 출판계가 극악이라고? 그래 맞다. 극악이다. 그런데 어쩌라고? 힘드니까 직업 바꾸라고? 옛날 생각하는 건 정말 싫지만, 옛 얘기 하나 꺼내보자. 나 고등학교 때 이과 선택했다. 국어 디따 잘하고 미대를 목표로 하는 놈이 이과를 선택했다. 왜냐고? 먹고 살기엔 이과가 낫다고 하니까. 그런데 요즘 그렇던가? 이렇게 오래 살고도 세상이 돌고 돈다는 거 아직 모르겠나?
세상은 언제나 바뀐다. 주기가 있다. 그 주기에 휘말려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지만, 묘하게 그 주기를 잘못 따라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건 그 따위 주기를 무시한 채 항상 그곳에 있는 사람은 절망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때가 왔을 때 그곳에 있어야 한다. 뭐 잘된다고 거기가서 깔짝대고, 뭐 안된다고 잽싸게 도망가는 것보다야 낫다고 본다. 누가 뭐라고 하건 난 여기에 있다.
난 세상에 바라는 게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얻겠다. 넌 내가 바라는 것을 몰라도 된다. 주게끔 만들겠다.
그러니 제발 나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칭얼대지 마라. 구걸하지 마라. 한두 푼 줄 수는 있겠지만, 내 인생을 줄 수는 없다. 게다가 넌 절실하게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잖아? 잊고있나본데 난 레디 오스 성화라는 필명으로 창작을 하고 있는 창작가라고! 내가 죽기 전까지 좀 더 많은 세상을 알고싶고 좀 더 많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창작가란 말이다. 난 신문기자도 아니고, 만평가도 아니고, 만화가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고, 게임제작자도 아니고 그저 창작가란 말이다. 나의 한계를 네가 정하지 말아라. 어제의 한계와 지금의 한계는 너만 아는 게 아니라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1초 후의 내 한계는 나도 몰라. 네가 날 알아?
나의 어긋남을 갖고 미래를 보지 말아라. 어긋난 길을 바로 잡는 것도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틀리지 않은 길을 보고 있는 건 나 밖에 없으니까.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4년 5월 3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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