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5일 일요일

삶의 마니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7074.html

이 사람이 단지 자격증과 헌혈증을 모으는데 맛들여서 이런다해도 난 박수치겠다. 노력해서 얻는,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한 때는 당연했던 말, '노력해서 얻는다'가 이상할 정도로 희미해지는 모습을 가끔씩 본다.

10의 노력을 하여 10을 얻던 어느날, 9의 노력을 해도 10을 얻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 방법을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나타났고, 8의 노력을 하여 10을 얻는 방법도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7의 노력을 하여 10을 얻는 방법을 찾기 위해 4의 노력, 5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시간까지 버려가며 5의 노력으로 10을 얻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방법을 찾기 위해 10의 노력을 했다는 걸 잊고 있다. 그렇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20의 노력을 해도 1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도 나온다.

난 한씨의 저런 순수한 노력이 좋다. 돈 놓고 돈 먹는 사회를 이용해서 펑펑 벌어들이는 사람들만 쳐다보느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보다 몇백 배 낫다.

예전에 했던 말 같은데... 대학시절에 이런 일화가 있다.

도예과에 들어온 학생 중 한 명(공예디자인 학과는 금속공예와 도예로 나뉜다)이 도예과를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배XX 교수님을 보니 도예과를 선택하면 돈을 잘 벌 것 같아서요.

배XX 교수님은 상당한 부자시다. 서울에 빌딩도 갖고계시고, 91년 당시에 외제차 사브를 몰고다니셨고, 미국 일본 등에서 도예로 크게 인정받는 분이셨다.

어느날 배XX 교수님이 그 학생의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배XX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바보야. 난 오히려 도예해서 돈을 버렸어. 우리집이 원래 부자였을 뿐이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쥬만지.

꽤 오래 전에 극장에서 봤던 영화다. 당시에 로빈 윌리암스를 무척 좋아해서 개봉 첫날 줄 서서 봤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 전 케이블에서 방영해줬는데 다시 봐도 재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당시의 판타지 영화들이 스토리가 제일 잘 된 것 같다.

한 가지 인상적인건...

쥬만지에서 나온 아역배우 중 누나로 나왔던 애.

아역배우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는데, 스파이더맨의 메리 제인역을 맡은 배우였다. 아역배우 출신이었군. 얼굴이 거의 변하지 않고 자랐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3일 금요일

의미

난 어지간해서는 뭔가에 의미를 두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게 되나. 의미없는 건 존재하지 않아.

별 생각없이 죽여버린 '지금도 레디 오스 성화'라는 제목대신 '피의 소리'가 들어간 이유는 간단했다. 이것저것 클릭하다보니 관리창에 들어갔고, 거기서 끄적거리다가 생각난 걸 적어버렸을 뿐이다.

근데 왜 '피의 소리'라고 적었을까.

그 때 마침 인간의 마음은 피가 좌우한다라는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다. 범죄자를 회개시키는 방법도 몸속의 피를 남의 것으로 홰까닥 바꿔버리는 게 짱이다라고 단정했을 정도. 성격 아빠닮았네. 당연하지. 피를 물려받았는데. 뇌세포의 일부가 정자에 담겨져 난자에 입성하는 논리였다면, 사춘기 지난 남정네들 다 골빌 걸?(어! 신빙성 있다!)

그런 이유로 마음의 소리, 성격의 소리, 감정의 소리를 축약하여 '피의 소리'라고 적었다.

요즘 내가 너무 객관적이고 계산적인 쪽으로 세상사를 판단하는 버릇이 생겨서 감정적인 놈이 되고자 그런 일을 벌였을 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게 울컥하는(감동하는) 하루하루를 기다리기보다 걍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들 테다!(그래서 용들의 전쟁을 쓴 건데 아놔)

꽤 충전이 되었다. 내 감정을 건드리는 글을 곧 만날 것 같다. 리하이 막당. 그간 삽질만 하느라 고생많았어.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1일 수요일

새벽 5시 30분

인데 더우면 어쩌자는 거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까대는 글

세상엔 참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작가성향이라는 게 있다.

난 간단하게 성향을 둘로 나눈다. 흡수하는 작가와 반사하는 작가.

이 성향의 한쪽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별로 없다. 특히 반사만 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말도 안된다. 흡수하지 않으면 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 참. 내가 언급하는 창작은 늘 그렇듯 대중창작이다.

대중 문화는 뭣도 모르면서 대중창작으로 크게 성공하길 바라는 작가를 보면 겉으로는 웃으며 대할 지 모르겠으나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누군가의 작품을 까대는 게 재밌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내가 묵시강호를 못쓰는 이유중 하나가 이런 게 있다.

최종장의 전장이 되는 화산논쟁편에서는 원고지 400매 가량의 분량 속에 지문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대사와 의성어, 의태어만으로 진행된다. 그것만으로 화산에서 논쟁을 벌이는 모든 자들과 주변 경관이 독자들의 뇌리에 영상으로 그려져야 한다. 난 아직 감당하기 어렵다.

의성어 의태어 대사만 주구장창 남발한다고해서 그게 잘못된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가 그 장면을 썼을 때, 그것이 최선이라 판단하여 썼을 수도 있다. 또는 머리속에서 빠르게 지나치는 영상대로 글을 쓰다보니 그렇게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졌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자지 마! 지금 자면 죽어!'라는 문장에서 앞 단어 하나만 빼놓고 야설이라 말하는 것 같다. -_-

대중창작에서 책이 잘 팔리는 요소중에 가장 큰게 뭔지 아는가?

독자와의 공유다. 있어보이는 말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도 한다. 어떤 글을 쓰건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가장 대중성있는 글이다. 잘 팔리는 작품의 상당수가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몇몇 비평가들이나 '작가들'은 그걸 비웃는다. 그래놓고 자기가 대중창작가란다. 요소의 발전이 문제지 요소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요소 자체를 비웃으며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것을 볼 수 없으면 평생 가도 최고의 대중창작가는 될 수 없다. 내가 죽었다깨나도 '흡수할 능력이 못되는' 문화에 대해서만 반사하는 게 옳다. '흡수하기 싫다'고 반사반사 열심히 해대면 남는 거 별로 없다. 늙어서 글 제대로 쓸 수 있나 보자.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