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5일 수요일

집에 와서 방금 깼습니다.

아까 새벽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귀환포탈을 시전했습니다. 마나가 차면 다시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마나가 차긴했는데, 포탈 루트가 막히기 직전이라서 새벽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펌] '언론탄압'이 맞는지 가슴으로 답해주십시오

‘언론탄압’이 맞는지 가슴으로 답해주십시오
47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께 드리는 공개질의


  

홍보수석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이라는 자리는 중책입니다. 한 언론사의 취재, 편집, 보도를 책임지는 ‘기자의 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공인 중의 공인입니다.

그런 국장들께서 한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그것도 48년 만에 47개사에서 말입니다. 결코 보통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평기자들이나 고위 편집간부들이 단체의 명의로 혹은 출입처의 이름으로 정부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자들의 사령탑이자 최종 책임자인 국장들이 하나의 사안 때문에 모여 집단으로 공개적인 의견을 냈다는 것은, 사안의 심각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겠지요.

지난 31일, 저희의 생각을 담은 글이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나갔지만, 국장들께서 모인 사안의 무게를 감안해 진지한 마음으로 몇 가지 확인하고 질의하는 것이 서로간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판단돼 공개질의를 띄웁니다.

1. 47개 언론사 참석자 모두가 ‘결의문’에 동의합니까?

저희는 먼저 그 자리에 참석하신(일부는 위임장으로 대신했지만) 47개 언론사 참석자들이 결의문의 주장에 대해 아무 이견 없이 동의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편집·보도국장 결의문’이라는 형식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 만큼 내용과 절차와 형식에 있어 설득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결의문을 보면 저희가 보기엔 단정적인 상황인식, 사실을 호도한 대목,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 적지 않게 눈에 띕니다.

참여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다”,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진지하게 묻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동의하신 겁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진실로 이번 조치가 군사정권 때의 언론탄압보다 훨씬 고약하다고 인식하고 계십니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대언론 정책보다 ‘죄질’이 나쁘다는 데 동의하십니까?
평생의 기자생활을 돌아봤을 때 이보다 더 힘든 시절은 없었다는 절박한 위기감으로 결의문에 동의하신 것입니까?

부디 답해 주십시오.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지닌 국장들께서 한결 같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각 사안을 놓고 진지하고 근본적으로 토론을 해야 할 사안입니다. 우리도 한국 언론의 장구한 투쟁사와 수난사를 모르지 않습니다. 정말 참석자들이 모두 언론인으로서 자기 이름의 무게를 실어 그렇게 주장했다면, 정부와 언론의 괴리는 그냥 방치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책임 있는 답변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2. 정부쪽 입장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습니까?

정부의 구상이 다 옳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현상엔 양면이 있습니다. 이번 조치도 언론계가 열린 마음으로 돌아봐야 할 부분은 일체 없다고 보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살펴볼 필요도 없는 ‘악’ 그 자체라고 모두가 생각하십니까?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언론계는 총리훈령을 특히 문제 삼고 있습니다. 훈령 가운데 언론계가 깊이 우려를 제기한 문제의 대목은 대화를 통해 조정해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나머지 조항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이번 조치가 공직자들의 취재회피 수단이 되지 않도록 강제하는 내용, 성실한 취재응대를 의무화 한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훈령의 제정배경 역시 이런 요구를 한 언론단체들 입장을 감안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점은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시다면, 훈령제정을 요구한 언론단체들이 정부와 한 통속으로 언론을 옥죄기 위해 공범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훈령과 별개로 정부가 언론계 대표들과 정보공개제도 확대를 위한 TF를 구성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습니까? 또 공직자들이 내부고발을 할 경우, 현재 정해진 정부의 해당 기관이 아니라 언론기관에 고발하는 것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상초유의 방안을 정부에서 강구중이란 점도 알고 계십니까?

취재접근권 제한을 우려해 핵심적 개선사항을 전달한 대표적인 부처 출입기자들의 요구사항이 정부와의 대화과정에서 대부분 수용됐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까?

이런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과정이 하나같이 ‘취재봉쇄’요, ‘기자들의 접근을 가로막으려는 일관된 목적을 지닌 것’으로 모두들 보고 결의문에 참여하신 것입니까?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직도 일부 기관의 기자실은 몇몇 언론사의 폐쇄적 전유물입니다. 정부는 그런 구조를 개방형으로 고치고자 합니다. 한정된 언론사들은 오붓한 공간이 없어지니 불편하겠지만, 수혜를 입는 언론사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 날 모임엔 그런 부조리 구조를 질타했던 일부 언론사의 국장들까지도 참석하셨습니다. 그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그냥 가자는 말씀인가요? 다시 없던 일로 돌릴까요? 후배 기자들이 기자실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과거로 회귀할까요?

언론사마다 처지가 다르고 입장이 다를 것입니다. 국장들마다 가치가 다르고 판단도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획일적 성토의 목소리가 일치되게 나온 것은 당일 현장분위기를 이끈 주최측의 주도에 휩쓸려서 입니까, 아니면 그저 묵시적 동의의 결과입니까?

3. 집단행동이 불가피했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합니까?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은 누가 모이라 해서 모이고 누가 어느 쪽으로 가자고 해서 가는 분들이 아닌 것으로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큰 취재원인 대통령이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민감한 국정 이슈를 갖고 대화하자고 정중히 초청해도 안 오는 일부 신문이 종종 있었습니다. 저희로선 유감스럽지만, 그런 위치가 국장입니다.

국장 개인은, 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편집국 혹은 보도국을 대표합니다. 때로는 회사를 대표할 때도 많습니다. 그 만큼 무거운 자리일 겁니다.

집단으로 모이고 집단으로 의견을 낼 만큼 한가한 자리도 아니요, 집단으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자리도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부 신문이 48년 만에 모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48년…. 그 세월의 무게가 저희를 슬프게 합니다. 왜 그런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지난 48년 동안 모임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48년이든 148년이든 세계 어디에서도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이라는 자리는 그렇게 집단으로 모여 행동을 하는 자리가 원래 아니거나, 이번 사태가 그 만큼 위중하기 때문일 겁니다. 모인 분들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자라면 이번에 갑자기 왜 모였는지 누군가 명쾌하게 말해 주십시오. 아마 후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명쾌하게 말해 주십시오. 기자생활 수십 년 하시는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 언론사의 그 숱한 굴곡의 세월, 역사의 숨 막히는 고비고비에 이만큼 결연하게 항의해본 일이 있습니까? 기자들이 정보기관에 끌려가고 해고될 때, 5공정권이 보도지침이 편집국에 ‘하달’될 때는 뭘 하셨습니까, 정권 핵심인사가 기사를 넣어라 빼라 강압할 때는 할 말을 했습니까?

결의문엔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선배 언론인들과 국민의 성원을 가슴 깊이 새겨온 우리는 이번 사태를 맞아 역시 언론자유는 구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무릅쓰고 쟁취하는 것임을 새삼 절감한다….” 동의합니다. 그러기에 답을 구하려 합니다.

번거롭게 생각 마시고 부디 말해 주십시오. 저희에겐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장들 개개인께선 20년 이상의 기자생활을 하신 분들입니다. 언론계에서 정치권력과의 온갖 신산을 다 겪어 오신 분들입니다. 과거의 그 많은 소용돌이보다 지금의 상황이 견디기 힘든 굴욕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만큼 이 정부의 악행이 심각하다고 느끼는지 정말 진지하게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4. 품격에 맞는 절차가 선행됐습니까?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비를 걸려는 건 아닙니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48년만의 모임’이라고 하니 절차와 형식이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이번 모임은 신문방송편집인협회(편협)가 연락을 한 것으로 압니다. 편협은 회원 개개인이 참여하는 임의단체입니다. 본시 국장단 모임은 정형의 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편협과 국장단 모임의 상관관계는 무엇입니까? ‘편협=편집·보도국장단’입니까? 아니면 편협 회원간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분위기에 따라 국장단 일동의 성명으로 현장에서 둔갑시켜 위상을 높인 것입니까? 그에 대한 동의는 이뤄진 것입니까?

또 모임의 성격이나 결의문 내용은 사전에 개개인에게 보내 동의를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현장에서 배포해 채택한 것입니까? 미리 고지한 내용이면 각 언론사의 중론을 모은 것입니까? 현장에서 채택했다면 충분한 토론은 거쳤으며, 직접 참석하지 않은 국장들의 동의는 사후에라도 거친 것입니까?

개개인이 모두 서명을 한 것입니까, 아니면 회의 참석만으로도 동의로 간주한 것입니까?

가장 궁금한 것은 ‘편집·보도국장 일동’으로 돼 있는 결의문의 성격입니다. 회사를 대표한 결의입니까, 국장들 개인의 결의입니까? 그 어느 쪽이라도 언론은 ‘불편부당’ ‘중립’ ‘공평무사’의 가치를 지엄하게 요구받습니다.

그날의 결의가 회사를 대표해 결의한 것이라면, 해당 언론사가 이번 사안에 대해 중립보도-균형보도를 포기하고 특정한 입장을 회사방침으로 정했다고 봐도 되는 것인지요? 개인의 결의라면 취재, 편집, 보도의 최고 책임자가 특정한 사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특정한 입장으로 집단행동을 취한 상황에서 보도의 중립성은 무엇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인지요?

저희의 공개질의에 대해 참석자 모두가 자사 매체를 통해서든, 서한을 통해서든, 구두로든 시각과 입장을 분명히 밝혀 주시길 요구합니다. 48년만의 모임에 걸맞는 책임과 무게로 답해 주시길 원합니다. 한국언론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역시 이번 모임에 대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성의 있고 진지한 자세로 토론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메아리가 없더라도, 국장단 한 분, 한 분이 그 동안 견지해 온 언론자유의 가치와 신념을 놓고 공개적인 토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묘하게 인상적인 글이어서(호소의 성격이라서일 지도) 퍼왔습니다. ㅇㅅㅇ

청와대 사이트에서 펌

추잡: 세상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이라면 다 개별적으로 상담실에 가서 '독특한 대화'로 풀었을 텐데. 이제는 청와대가 당당하게 단체를 직시하며 말로 맞장뜨는 시대가 됐군요.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가치관

난 이 부분에 대해 의외로 고지식하다. 누군가의 입장에 대해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어떠한 입장은 직접 내 스스로 저지르고 겪어보기까지 했으면서 여전히 내 관점이 참이라는 고지식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글과 출판의 경계, 계약의 경계다.

난 시대가 바뀌어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하나의 기준점을 고수한다.

1. 출판사가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

2. 작가가 출판사를 선택하는 이유.

1의 경우, 출판사는 '이 작품이라면 반드시 흑자를 낼 수 있어'라는 관점으로 선택한다고 본다. 여기에 작가가 누구냐하는 네임밸류도 포함되어 있고, 현재의 유행을 염두에 둔 시간적 배경도 포함되어 있다.

2의 경우, 작가는 '이 출판사라면 반드시 내 작품을 잘 팔아줄 수 있어'라는 관점으로 선택한다고 본다. 여기에 출판사가 그간 해왔던 사회적 네임밸류도 포함되어 있고, 직원의 능력을 염두에 둔 인간적인 면도 포함되어 있다.

그게 전부다. 간단한 말 같지만 이 기준이 계약 후에 벌어지는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첫 번째로 출판사는 '설득할 수 있는 오타나 비문을 제외한 그 어떤 작품의 변화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팔 수 있는 작품이기에 계약한 것이다. 그걸 이리저리 뜯어고칠 계획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면 작가에게 사기를 친 것과 같다. 또한 작품을 통해 흑자를 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출판사의 책임이어야 한다.(물론 나같은 작가가 계약의 내용대로 제한시간 내에 원고를 주지 못하여 변수가 생기는 건 당연히 예외다. 이런 부분이야 계약서에 적혀있으니까 뭐 통과.) 그 때문에 적자가 난다고 예정된 발행부수를 줄이는 것은 작가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다.

이게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상당히 바뀌어서 위의 기준에 맞출 수가 없다. 대표적인 이유가 다수의 출판사 경쟁이다. 작품의 시작만 보고 계약을 할 수 밖에 없는 스피드 컨택시대인지라 처음 몇 페이지만 보고 뒷권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가 막힌 기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위 문항들은 성립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위의 기준에서 일부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그 변형을 기준이라 여겨서는 곤란하다. 애초에 작가는 출판사에게 원고를 줄 때, 완결편까지 주고 계약사항을 논의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에 대한 예외사항이라면 네임밸류다. 네임밸류만으로 흑자를 볼 확신이 들 경우, 출판사는 원고의 완결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작가는 '출판과 관련된 어떠한 요구도 해서는 안 된다'

잘 팔아줄 출판사이기에 계약한 것이다. 표지 일러스트나 겉표지의 문구, 종이의 질, 인쇄의 질, 홍보 등의 다양한 출판행위에 대해 작가가 뭔가를 요구할 자격은 없다. 일단 계약한 이상, 출판사의 판매능력을 믿어야 한다. 작가가 요구할 것은, 자신이 썼던 글이 온전하게 읽히느냐에 대한 부분 뿐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죽 자기 글에 자신이 없으면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을 쓸까'라는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의 변화로 조금씩 변형되었다. 출판사는 작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대신, 안쪽의 영역 침범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는 추세가 첫째다. 작가들뿐 아니라 독자들의 성향 속에 글뿐 아니라 일러스트라던가 책의 페이지수라던가 여러 가지 부분들까지 작품의 일부로 여기는 게 들어가 있다는 게 둘째다. 그런 성향이 만들어진 이유는 큰 폭으로 상승한 책값, 그리고 대여점 시스템을 통해 대거 유입되어 책을 선택하는 폭이 넓어지게 된 상황이다.

난 이런 변화를 정상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여전히 내겐 기준의 가치관이 지배적이다. 그러면서도 변화에 적응한 출판과정을 걷는다. 소나무처럼 뻣뻣하게 버티다가 뚝 부러지면 나만 손해인 걸.

그래도 언젠가 저런 출판시스템이 이루어지겠지라는 바람을 갖고있다. 저 시스템이야말로 그냥 속 편하게 글만 쓰면 되는 시스템이니까.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추잡: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글을 예전에 쓴 것 같다. 뭐 시간 떼우기 포스팅이니까 통과. -ㅅ-;;

담배와 관련하여 가장 사악했던 시절.

가끔 여기 들러주는 제갈폭룡군의 본명은 이성우. 내 대학동창이다.

조용하면서도 건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성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이 갔다. 교회를 통해 사람관계를 많이 쌓아온 탓인지 대인관계를 이루는 솜씨가 무척 좋았다. 그리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베이직이었다.

내가 입학한 곳. 91년 당시 경기대학교 공예 디자인 학과로 불렸던 이곳은 그런 건실한 종교인이자 베이직 사고를 가진 이성우가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경기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91학번은 나를 포함해 악마 그 자체들이었기 때문이다. 우케케케케케케!!!

오리엔테이션 때 뭉쳐버린 7인의 악마들은 1인의 천사를 타락시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구내 식당에 모이면 문인식과 이지훈과 나와 정지은이라는 태고적 악마들이 담배를 내밀며 이성우에게 말했다.

"성우야, 아앙~ "
"자 쭈욱 빨아봐.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만물 중의 하나야. 하느님 뜻 거부할래?"
"자, 내껀 88이야. 제일 순해. 어서 아앙~"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이는 내 피와 살이다. 어어? 뼈가 없네. 자, 예수님의 뼈 디스 한 개비 아앙~"

성우는 그 때마다 두 눈 질끈 감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저를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사탄의 유혹에서... 아앙

결국 성우는 몇 달을 참지 못하고 담배를 배웠다.(농담 아니라 우리 사탄들은 정말로 몇 달 동안 저 짓 했다)

그리고 지금 성우는 골초로 잘 살고있다. 미안. 나 요즘 끊어가고 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사무실에서 집에 가야하는데...

자꾸 타이밍을 놓친다.(아무래도 거리가 거리니 만큼 정확한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 집에 못 간다)

오늘로 3일째.

집에 가야 하는데... ;ㅅ;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추잡: 어? 나 감금당한 건가?

2007년 9월 4일 화요일

포스팅을 올리는 속도가 빠르다!

글이 막혔다는 얘기다. 안 돼! ;ㅅ;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죽음의 행군

만화의 영상미만 따지면 이 작품보다 내게 더 큰 충격을 준 만화가 없다.

그 충격이 어땠을지 궁금한 사람은 아래 주소로 가 보길.(단, 이 주소는 죽음의 행군 원고의 일부를 올린 주소기 때문에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 이 책은 15,000원에 구입할 수 있으니, 맛뵈기라 생각하고 감상하시길 바란다. 누군가 이 작품을 구매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는다. 다행히 소량만 올려진 주소니까.) 

http://blog.daum.net/allurelove/5067444

그림을 클릭하면 사이즈가 좀 더 커져서 작가의 정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원고가 오직 펜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걸 생각했을 때, 난 소름이 돋았다. ;ㅅ;

레디 오스 성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