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0일 화요일

전에 검색하다가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위인.

민정중(閔鼎重)  1628(인조 6)~1692(숙종18)

조선의 문신. 시호는 文忠(문충),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 慶州 府尹(경주부윤) 機(기)의 손자, 관찰사 光勳(광훈)의 아들.

宋時烈(송시열)의 문인. 1649년(인조27) 庭試文科(정시문과)에 장원, 典籍(전적)·禮曹 佐郞(예조좌랑)·司書(사서)·正言(정언)·修撰(수찬)·校理(교리)·湖南 御史(호남어사)등을 역임하고, 현종 때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이조·공조·호조·형조의 판서, 참찬의정부사(參●議政府事)등을 지냈다.

1675년(숙종1) 許積(허적)·윤휴(尹●) 등 南人(남인)이 집권하자 西人(서인)으로서 長興府(장흥부)에 유배되었다가, 1680년 庚申大黜陟(경신대출척)으로 풀려나와 좌의정에 올랐다. 1689년 己巳換局(기사환국)으로 許積(허적) 등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고 서인이 쫓겨날 때碧潼(벽동)에 安置(안치)되어 죽었다. 후에 復官(복관), 글씨를 잘 썼다. 효종 廟庭(묘정) 및 양주(楊州)의 石室書院(석실서원), 忠州(충주)의 樓巖書院(누암서원), 長興(장흥)의 淵谷書院(연곡서원), 咸興(함흥)의 운田書院(운전서원), 碧潼(벽동)의 九峯書院(구봉서원) 등에 祭享(제향)되었다.

저서·작품】 《노봉집(老峯集)》 《노봉연중설화(老峯筵中說靴》 《임진유문(壬辰遺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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