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30일 목요일

담배 끊었다.

무려 2시간 20분이 넘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장난

난 장난이 심하다. 내가 만약 얌전하게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 드는 부뚜막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내 머릿 속은 온통 장난질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어릴 때는 얌전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내 장난의 전성기 시절은 미술학원에 있을 때였다. 내가 다녔던 미술학원은 성격적으로나 외모적으로나 고무줄을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이 많았고, 태양을 향해 단체로 달리고싶을 정도로 마음이 맞는 남학생들이 많았다. 이런 공간에서마저 조신하게 자랐다면 그 애 엄마랑 울 엄마랑 아는 사이가 분명하다.

난 그 때의 환경과 싱크로율이 높았다. 그래서 장난의 수위가 갈수록 강해졌는데, 피크에 이르렀을 때가 하필 여름이었다. 에어컨 바람 시원한 학원 내에서 날밤새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새벽만 되면 옹기종기 모여서 무서운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여름이었다. 한 여름 내내 무서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읊어댔으니, 그 레퍼토리도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난 바디랭귀지에 들어갔다.

카레이도는커녕 덤블링조차 못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소라'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눈이 크고 겁이 많다. 놀라게 만드는 보람이 있고, 그 반응이 눈망울에서 감동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는 애였다. 녀석은 짤없이 1번 타겟이 되었다.

새벽쯤, 소라 혼자 실기실에서 구성(디자인 계열 실기시험 과목)에 열중했다. 다른 애들은 데생에 열중했고, 데생실과 구성실이 창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문은 복도 쪽이다. 복도를 통해야만 데생실과 구성실을 오갈 수 있다) 겁이 많은 소라는 데생실과 연결된 커다란 창문의 블라인드를 모두 개방한 상태로 구성을 하고 있었다.(그 창문은 열리지 않는 폐쇄창문이다) 덕분에 나는 알고 말았다. 구성실에 걔 혼자 있다는 것을. 난 석고대로 천천히 걸어가 여러 석고상 중에 줄리앙을 선택하여 품에 안았다. 기본 석고상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벼웠고, 아그립파는 호러감이 떨어졌던 이유다. 내가 석고상을 들고 데생실을 나가려 하자 데생실 내의 모든 사람들이 날 봤다. 난 모두에게 조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구성실에 소라 혼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난 줄리앙을 들고 복도와 연결된 구성실 문에 접근했다. 구성실 문에는 가로 50cm, 세로 70-80cm쯤 될 창문이 하나 있었다. 난 그 창문 아래서 왔다갔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리앙을 머리에 지고. 열려진 데생실 문에서 날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끔 긴장된 목소리로 '하지 마, 오빠'라고 [속삭이는] 여자애도 있었다.(이 여자애가 나중엔 제일 크게 웃었다)

시간이 흘렀다. 5분도 아니고 10분도 아니고 20분 가까이 흘렀다. -_-

소라는 여전히 구성에 열중이었다. 날 구경하던 녀석들도 하나 둘 데생실 안으로 들어간다. 난 스스로가 불쌍하고 처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꼭 벌 서는 것 같잖아! 그래도 꿋꿋하게 20여분 동안 석고상을 머리에 지고 구성실 창문을 오갔다.

30분이 되기 직전에 감동의 비명이 울렸다. 정말이지 건물 자체가 떠나갈 정도로 커다란 비명소리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아아. 너무 행복했다, 이 비명소리. ㅠㅠㅠㅠㅠ

당연하게도 소라 녀석은 복도에서 줄리앙이 걸어가다가 창문을 통해 자신을 힐끗 봤다며 기겁중이었다. 막 울었다. 미안하다며 용서를 빌었지만 무쟈 맞았다.

이것을 계기로 여러 가지 장난을 많이 했다. 데생실에 불꺼놓고 의자 붙여서 잠자던 애가 있었는데, 그 주변 의자와 이젤을 다 치운 뒤 석고상들을 죽 늘어놓았다. 모두 다 녀석을 바라보게 만들고.

누가 잠자러 오기를 기대하며 소파 아래 40분 정도 숨어있던 적도 있다. 누군가 사무실 불을 끄고 소파에 눕길래 소파 안쪽의 목재를 살며시 노크했다. 처음엔 반응이 없다가 서너번 더 노크했더니 기겁하는 '원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혼날까봐 더 이상 노크도 못하고 거기서 잤다. ㅠㅠㅠㅠ

요즘은 장난할 건수가 별로 안 생긴다. 심심하다. ;ㅁ;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인질 협상 종료.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라고 쓸 필요도 없다. 석연치 않기는 개뿔. 탈레반측이 갑작스레 깨달음을 얻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이 깃털로 달린 날개 많은 천사를 만나지 않고서야 저렇게 풀려날 리가 있나.

내 개인적 의심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협상이 따로 있다. 협상 내용이 탈레반 요구사항과 한국의 입장을 각각 반영하는 적정선에 이르렀으리라 추정된다.

골치아픈 것은 인질 납치 초기부터 국군 철수를 언급하고(애초에 납치가 벌어지건 말건 철수할 예정이긴 했지만, 납치 사건과 아울러 철수를 언급한 건 문제가 된다) 누가 보더라도 뭔가 있을 것 같은 협상체결의 결과다.

어쨌건 한국은 테러집단과 협상을 성립한 것이다. 그 이전에도 한국은 납치범과 협상을 성립한 경력이 있다.

이제 한국인은 테러범들에게 있어서 인질 엔트리넘버 다섯 손가락 순위에 들어가 버렸다. 통행료만 주면 누구든 무사통과 시켜주던 네팔 반군들도 한국인이라는 걸 알면 욕심을 부리고 싶어질 테고, 테러범도 아닌 떼강도마저 한국인 여행자를 돈으로 보게 될 지 모른다.

한국인은 여행이 위험해졌다. 자! 여행자들이여 잊지마라.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는 '아노... 쓰미마셍!'이다. 매국노니 나라의 자존심이니를 따질 필요없다. 여행자는 누구 덕분에 큰 위험에 빠진 상태니까.

만약 끝까지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싶다면 희망의 빛이 있기는 하다.

1회용 희망이긴 하지만, 당신이 만약 인질이 된다면 놈들이 내미는 캠코더에 이렇게 외쳐라.

"당신을 믿어요, 전두환씨."

희망의 빛(아아. 위쪽 빛은 너무 강해염)이 정말로 당신을 구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영웅이다. 만약 샘물교회 신자라면 추락한 한국 내 입지를 충분히 상쇄할 것이다. 29만원이 대신 잡혀있을 때, 1천만 촛불잔치에 참여하지 않아도 봐주마.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초 삽질

내 모니터가 제대로 운명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아련이가 준 모니터는 어느 정도 잘 버텨주다가 며칠 전부터 작정하고 앙탈부린다.

색상이 너무 거슬렸다.

오늘 비도 오고 잡일도 많아서 자택원고에 매진하는데 이놈이 끝까지 옛 색상을 보여줄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새벽 1시쯤에 결심했다. 그래. 네 색상따위 다시는 보고싶지 않아!

2시간 30분 동안 화면을 흑백으로 보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별 짓 다했는데 결국 실패한 지금...

모니터를 때리고 있다. 네 색상 따위 보고싶어염. 제발...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원시인이 되기로 했다.

Adobe Flash Player 관련 쿠키를 지워버렸다. 어딜가도 동영상 광고가 뜨지 않는다.

오랜만에 네이버 들어가서 마음편히 검색도 해보고...

창 위쪽에 뜨는 알림표시줄의 '뚜릭'소리만 무시하면 만족.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추잡: 갑자기 VT시절이 생각나서 추가글 끄적.

아무리 인터넷이 느리다해도 옛날 모뎀시절보다 느리지는 않다. '뤼리롸이라히 와롸하~'하고 음악 흐를 때 덩치님들에게서 도망가는 도둑님 발처럼 빨라졌다. 하지만 그 빨라진 시간대의 상당수 여유를 광고가 잡아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ㅅ-

2007년 8월 21일 화요일

통합 답변 -_-

용들의 전쟁 다음편이 늦고 있는 이유는...

재밌게 쓰기 힘들어서입니다. 추가 변명으로는 압축하기 힘들어서도 있습니다. 용들의 전쟁은 7권 완결예정이며, 이 분량으로 현재 스토리를 온전하게 끝내려고 발악중예요.

처음엔 압축이 뭐가 어렵냐는 취지 하에 펑펑펑 술술술 써나가다가 '재미'를 놓쳐서 혼비백산했습니다. 압축을 할 건 하더라도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지면 아끼지 말고 과감하게 질질 끌어야 한다(-_-??)는 걸 배웠달까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ㅅ;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19일 일요일

정말 잘 쓴 글이란...

'이 부분을 썼어야 할 이유가 있어?'라고 물을 게 없는 글.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16일 목요일

좀 놀랐다.

대한민국에 충성을 바친다는 게 달갑지 않은 건 둘째 치고, 그것을 부끄럽다 여길 정도의 글들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올라오는 걸 봤다.

지금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국회의원 나부랑이와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존재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다. 나라 없는 국민이 무슨 꼴 나는 지 역사서 사방팔방에 널리고 널렸다. 이민가면 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민을 가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으면 엿된다.

공기처럼 너무도 귀에 익숙한 단어라서 무시해도 된다 여기는 듯 하다. 충성이라는 게 말마따나 입에 발린 허접개소리는 절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들은 초등학교 1학년 바른생활책 초반부에 나오는 것들이다. 그런 거 염두에 두면 초딩소리 들을까봐 겁내는 건 아닐테고... -_-

그런 거 무시한 사람들 얘기 좀 해보자.

대표로 뽑힌 것들이 국가에 충성할 생각은 안하고 끽해야 100명도 못되는 자기네 세력이나 딸랑 1명짜리 자기 안위에만 열올린 결과가 어떤가. 국가 최고기관에 총부리 들어오고, 광주에 사는 우리들 심장에 총알 박힌게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국가에 충성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들이 높은 자리 잡아채서 그런 거다.

정말 마음껏 자유로운 것과 충성이라는 제약이 있는 것의 비교는 종교를 보면 안다. 맹목적이기까지 한 충성을 요구하는 종교는 오랜 시간 번창하지만, 자유도에만 극단적인 평가를 주는 종교는... 당장 찾아봐라. 보이나. 있었지만 망한 거다. -_-

충성은 자유에 있어서 악이지만 필요악이다. 그것이 없다면 나비효과처럼 이리 저리 거치고 거쳐서 결국 나 자신을 박살낸다. 광적으로 애국심에 열광하는 것도 문제지만, 애국심 자체를 부정한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정치는 까대도 나라는 까대지 마라. 누워서 침뱉기다.

요즘 왜 자꾸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12일 일요일

규칙에 대해서

통신문화의 커다란 사건이라면 난 첫째로 찬우물과 플라자를 들겠다. 이곳이 글로써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즐기게되는 첫 번째 마당이 되었다고 여겼다.

개척지의 문제점은 서로를 배려하기위한 규칙조차 개척시대라는 것이다. 개척자 모두가 빠르게 발전하기위해서는 공존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할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한, 서로는 공존에 대해 두려워한다. 때문에 공존은 늦어지고 그만큼 독자적인 경쟁만 앞서게 된다. 그 경쟁은 자신이 앞서나가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뒤쳐지게하는 공격적 경쟁이 된다. 어쩔 수 없다. 자가발전의 경쟁보다는 공격적인 경쟁이 좀 더 편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발전이 더뎌진다. 만약 주변에 또 다른 개척지가 있고 그곳이 좀 더 빠르게 규칙을 만들어 공존에 힘썼다면, 공격적 경쟁에 열을 올리던 개척지는 언제고 먹혀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규칙은 쉽게 만들 수 없다. 많은 수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는 더더욱 만들기 어렵다. 개척지라는 하나의 공간만을 인식하는 상태에서의 규칙은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겠지만, 2개의 개척지, 또는 3개 4개의 개척지가 공존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다수의 개척지들을 포함한 규칙은 빠르게 만들어지지 못한다. 결국 이것은 '개척지들 사이의 공격적인 경쟁'이라는 필연적 상황을 만들게 된다. 당연히 발전이 더뎠던 개척지들은 먹힌다. 그리고 규칙이 빨리 만들어진 지배개척지의 규칙을 따르게 된다. 자신들의 개척지에 맞는 규칙이 따로 있다해도 저쪽 개척지의 규칙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좀 더 고생한다.(산악지역 개척지에게 먹혀버린 해안가 개척지는 오지게 고생할거다)

찬우물과 플라자가 그렇다. 이 개척지는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는 몇몇 유저들을 만류하는 규칙이 어설펐다. 그것은 곧 '상대에 대한 안전한 공격'을 보장하는 상황이 되어, '이런 일을 벌여도 된다'는 의식의 시발점이 되었다.

두 번째가 리니지다. 이것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울티마 온라인이나 몇몇의 게임에서 벌이던 노골적인 범죄행위(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메인이벤트로 대중화시킨 게임이 리지니1이다. 당하고싶지 않아서 현질하고, 현질해서 자신을 키운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고, 누군가를 괴롭히면 내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야말로 온라인에서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의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이 의식은 오랜시간 지속되며 인터넷 게시판 공간에도 자연스레 침투되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글을 올리면, 그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이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중화의 계기다.

세 번째가 DC다. 그러한 행위 자체가 모토가 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운영자일지 아니면 유저일지 몰라도 DC에서 상대를 조롱하고 비웃는 문화가 아예 기본이 되어버린 것은 또 하나의 통신문화변혁이라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좋은 글, 좋은 유저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니까. 난 일부의 유저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지 자체의 규칙부재를 언급하고 있는 거다.

자유? 좋다. 방종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초등학교때 다 배웠으리라 믿겠다. 그 차이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규칙이 왜 필요한 지 아는가? 규칙에 의해 자유가 왜 억압받아야하는 지 아는가.

자신을 위해서다. 내가 아무리 자유를 추구하며 미친듯 발전해봐도 단체의 공유된 발전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핸드폰을 발명한 사람이 자동차를 탈 수 있었던 이유는, 자동차를 만든 사람 때문이다. 핸드폰을 창조하고 자동차를 창조해서 나 혼자 전화걸고 타고다니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 동안 네 주변사람들은 은하철도999를 타고 우주 저 편에 가서 돌고래가 지구의 진짜 지배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야 말게 될 거다. 적절한 규칙은 가장 빠르게 나를 발전시키는 도구다. 스트랭쓰만 오지게 올린 전사나 인트만 작정하고 올린 마법사는 모든 몬스터를 완벽하게 공략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것엔 적정선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며, 사회는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적정선을 만들었다. 규칙은 나라는 존재가 죽었다 깨나도 발전할 수 없는 영역을 몇천 배 빠른 시간 내에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도구다.

타인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발전의 일면이라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 같은데 꿈깨라. 그것이 자유라며 외치고 싶은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 같은데 더 꿈 깨라. 발전은 공격과 방어쪽 성향의 발전만, 걍 간단히 말해서 스트랭쓰와 인트만 뒤지게 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정작 가고싶은 방향이 있지만, 공격과 방어를 할 수 밖에 없어서 그 방향을 선택하지 못하는 제한적 자유만 얻게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규칙이 제대로 잡혀있는 공간도 절대군주로 인한 맹목적 규칙이 아니고서는 버티기 힘든 곳이 많다는 점이다.

언제고 통신공간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날 날이 오겠지.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시각. -_-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추천하는 SF영화 '세레니티'

아아! 흡족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SF영화가 있었다니! 전반적으로 모든 면에서 기준치를 훨씬 뛰어넘는 퀄리티를 보여준 명작이다.

다만 포스터가...(기대하고싶지 않아지는 포스터잖앗! '지구를 지켜라'급 포스터라고!)

TV드라마가 조기종영되는 비극을 겪었다던데 참 아쉽다. 각 인물간 개성도 뚜렷하고(마치 '카우보이 비밥'처럼 각 인물간의 과거가 설정되어 있을 것같은 느낌이랄까) CG 액션 대사 스토리 등등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하나 있다면 여동생님. 진작에 나가 싸우지 그랬어요. ㅠㅠ)

SF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추천! 재미있습니다.

확실히 스토리를 재밌게 짜는 사람들은 대사도 센스있다.

"함정일까요?"
"함정이야."
"역시 함정이군요."
"잠깐만요! 그녀가 선장님을 정말 보고싶어서 부른 것일 지도 모른다고요. 가끔은 사람의 감정적인 면도 생각해주세요!"
"음...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나와 그녀가 대화하는 동안 한 번이라도 싸운 적이 있어?"
"없죠."
"함정이야."
"......"



"선장은 우리의 추적을 언제까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난 쪽수로 밀어붙이는 얼라이언스 따위는 겁나지 않아. 당신이 의회가 보낸 최고의 자객이라면..."
"레이놀드 선장.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소. 더 이상 시간낭비하지 않게 말이오. 당신은 나를 화나게 하지 못하오."
"그 사람과 1시간만 같이 있어봐요." <-선장 애인의 말

재밌어! 재밌어!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보고싶은 것만 보지 말자.

디워관련 글을 보고 몇 자.

디워를 좋게 보는 사람과 나쁘게 보는 사람 사이에서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이 '애국심'이 좋게 보는 사람 글에는 별로 안보이고, 나쁘게 보이는 사람 글에 자주 등장한다.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너희들은 '애국심'으로 영화를 보냐. 영화 그 자체로 평해라.

영화 그 자체로 평하는 사람 댓글에도 '우리나라 사람은 애국심으로 영화를 평가한다'는 논조의 비아냥이 올라가곤 한다.

왜 그게 보일까. 디워를 호평하고싶어하는 사람중에 '애국심'을 강하게 내세운 사람은 심형래 밖에 못봤다.(물론 한 둘 보긴했지만, 디워평을 썼다고 보기 어려워서...;;)

까고싶어서 깔 것만 찾다보니 깔 게 보인 건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워에 호평하는 사람들 편이다. 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토리의 빈약함에 대해 인정하면서 좋은 점을 언급하기 때문이다.(숨겨진 스토리니 뭐니 하면서 스토리마저 끌어올리려고 했던 분들은 제외)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9일 목요일

습기가 많아서인지...

가스렌지가 발화되지 않았다. 딱딱! 소리만 날 뿐, 점화하는 불꽃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라면을 먹으려던 참이었기에-라면은 먹고싶을 때 먹지 못하면 화나게하는 효능이 있다- 점화버튼과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헛수고.

어차피 한 번 발화되면 내부 습기가 모두 사라져서 이후로는 괜찮아진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실제로 그랬다)

난 연습지 한 장을 찢어서 둘둘 말아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점화했다. 흐뭇했다. 음하하!

이제 남은 건 불붙은 연습지 처리. 불이 심하게 피어오른다. 녀석을 욕실로 가져가 샤워를 시켜주면 훌륭한 타살이 되겠지.

욕실로 몸을 돌리는 순간 녀석이 발악했다. 화라락하고 타오르는데 그 위세가 너무 강력해서 내가 쫄았다. 놈을 놓쳤다!

발 아래로 떨어졌다. 깜짝 놀라 발을 치웠더니 종이가 한 장 보인다. 식용유를 엎질러서 잠시 대놓고있던 종이다. 아잣화라락!

불놀이야~~!

급히 욕실에서 샤워기를 틀고 거실 바닥에 분사!

물놀이야~~!

이젠 지쳤어. 후...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8일 수요일

오오! 트릭 3기!!

나카마 유키에 주연의 트릭!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트릭의 세 번째 시즌!

보지마! 막 화나려 그래. 아 재미없어.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5일 일요일

삶의 마니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7074.html

이 사람이 단지 자격증과 헌혈증을 모으는데 맛들여서 이런다해도 난 박수치겠다. 노력해서 얻는,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한 때는 당연했던 말, '노력해서 얻는다'가 이상할 정도로 희미해지는 모습을 가끔씩 본다.

10의 노력을 하여 10을 얻던 어느날, 9의 노력을 해도 10을 얻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 방법을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나타났고, 8의 노력을 하여 10을 얻는 방법도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7의 노력을 하여 10을 얻는 방법을 찾기 위해 4의 노력, 5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시간까지 버려가며 5의 노력으로 10을 얻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방법을 찾기 위해 10의 노력을 했다는 걸 잊고 있다. 그렇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20의 노력을 해도 1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도 나온다.

난 한씨의 저런 순수한 노력이 좋다. 돈 놓고 돈 먹는 사회를 이용해서 펑펑 벌어들이는 사람들만 쳐다보느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보다 몇백 배 낫다.

예전에 했던 말 같은데... 대학시절에 이런 일화가 있다.

도예과에 들어온 학생 중 한 명(공예디자인 학과는 금속공예와 도예로 나뉜다)이 도예과를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배XX 교수님을 보니 도예과를 선택하면 돈을 잘 벌 것 같아서요.

배XX 교수님은 상당한 부자시다. 서울에 빌딩도 갖고계시고, 91년 당시에 외제차 사브를 몰고다니셨고, 미국 일본 등에서 도예로 크게 인정받는 분이셨다.

어느날 배XX 교수님이 그 학생의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배XX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바보야. 난 오히려 도예해서 돈을 버렸어. 우리집이 원래 부자였을 뿐이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쥬만지.

꽤 오래 전에 극장에서 봤던 영화다. 당시에 로빈 윌리암스를 무척 좋아해서 개봉 첫날 줄 서서 봤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 전 케이블에서 방영해줬는데 다시 봐도 재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당시의 판타지 영화들이 스토리가 제일 잘 된 것 같다.

한 가지 인상적인건...

쥬만지에서 나온 아역배우 중 누나로 나왔던 애.

아역배우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는데, 스파이더맨의 메리 제인역을 맡은 배우였다. 아역배우 출신이었군. 얼굴이 거의 변하지 않고 자랐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3일 금요일

의미

난 어지간해서는 뭔가에 의미를 두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게 되나. 의미없는 건 존재하지 않아.

별 생각없이 죽여버린 '지금도 레디 오스 성화'라는 제목대신 '피의 소리'가 들어간 이유는 간단했다. 이것저것 클릭하다보니 관리창에 들어갔고, 거기서 끄적거리다가 생각난 걸 적어버렸을 뿐이다.

근데 왜 '피의 소리'라고 적었을까.

그 때 마침 인간의 마음은 피가 좌우한다라는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다. 범죄자를 회개시키는 방법도 몸속의 피를 남의 것으로 홰까닥 바꿔버리는 게 짱이다라고 단정했을 정도. 성격 아빠닮았네. 당연하지. 피를 물려받았는데. 뇌세포의 일부가 정자에 담겨져 난자에 입성하는 논리였다면, 사춘기 지난 남정네들 다 골빌 걸?(어! 신빙성 있다!)

그런 이유로 마음의 소리, 성격의 소리, 감정의 소리를 축약하여 '피의 소리'라고 적었다.

요즘 내가 너무 객관적이고 계산적인 쪽으로 세상사를 판단하는 버릇이 생겨서 감정적인 놈이 되고자 그런 일을 벌였을 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게 울컥하는(감동하는) 하루하루를 기다리기보다 걍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들 테다!(그래서 용들의 전쟁을 쓴 건데 아놔)

꽤 충전이 되었다. 내 감정을 건드리는 글을 곧 만날 것 같다. 리하이 막당. 그간 삽질만 하느라 고생많았어.

레디 오스 성화 올림

2007년 8월 1일 수요일

새벽 5시 30분

인데 더우면 어쩌자는 거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까대는 글

세상엔 참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작가성향이라는 게 있다.

난 간단하게 성향을 둘로 나눈다. 흡수하는 작가와 반사하는 작가.

이 성향의 한쪽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별로 없다. 특히 반사만 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말도 안된다. 흡수하지 않으면 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 참. 내가 언급하는 창작은 늘 그렇듯 대중창작이다.

대중 문화는 뭣도 모르면서 대중창작으로 크게 성공하길 바라는 작가를 보면 겉으로는 웃으며 대할 지 모르겠으나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누군가의 작품을 까대는 게 재밌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내가 묵시강호를 못쓰는 이유중 하나가 이런 게 있다.

최종장의 전장이 되는 화산논쟁편에서는 원고지 400매 가량의 분량 속에 지문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대사와 의성어, 의태어만으로 진행된다. 그것만으로 화산에서 논쟁을 벌이는 모든 자들과 주변 경관이 독자들의 뇌리에 영상으로 그려져야 한다. 난 아직 감당하기 어렵다.

의성어 의태어 대사만 주구장창 남발한다고해서 그게 잘못된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가 그 장면을 썼을 때, 그것이 최선이라 판단하여 썼을 수도 있다. 또는 머리속에서 빠르게 지나치는 영상대로 글을 쓰다보니 그렇게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졌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자지 마! 지금 자면 죽어!'라는 문장에서 앞 단어 하나만 빼놓고 야설이라 말하는 것 같다. -_-

대중창작에서 책이 잘 팔리는 요소중에 가장 큰게 뭔지 아는가?

독자와의 공유다. 있어보이는 말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도 한다. 어떤 글을 쓰건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가장 대중성있는 글이다. 잘 팔리는 작품의 상당수가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몇몇 비평가들이나 '작가들'은 그걸 비웃는다. 그래놓고 자기가 대중창작가란다. 요소의 발전이 문제지 요소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요소 자체를 비웃으며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것을 볼 수 없으면 평생 가도 최고의 대중창작가는 될 수 없다. 내가 죽었다깨나도 '흡수할 능력이 못되는' 문화에 대해서만 반사하는 게 옳다. '흡수하기 싫다'고 반사반사 열심히 해대면 남는 거 별로 없다. 늙어서 글 제대로 쓸 수 있나 보자.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