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30일 목요일

장난

난 장난이 심하다. 내가 만약 얌전하게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 드는 부뚜막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내 머릿 속은 온통 장난질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어릴 때는 얌전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내 장난의 전성기 시절은 미술학원에 있을 때였다. 내가 다녔던 미술학원은 성격적으로나 외모적으로나 고무줄을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이 많았고, 태양을 향해 단체로 달리고싶을 정도로 마음이 맞는 남학생들이 많았다. 이런 공간에서마저 조신하게 자랐다면 그 애 엄마랑 울 엄마랑 아는 사이가 분명하다.

난 그 때의 환경과 싱크로율이 높았다. 그래서 장난의 수위가 갈수록 강해졌는데, 피크에 이르렀을 때가 하필 여름이었다. 에어컨 바람 시원한 학원 내에서 날밤새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새벽만 되면 옹기종기 모여서 무서운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여름이었다. 한 여름 내내 무서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읊어댔으니, 그 레퍼토리도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난 바디랭귀지에 들어갔다.

카레이도는커녕 덤블링조차 못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소라'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눈이 크고 겁이 많다. 놀라게 만드는 보람이 있고, 그 반응이 눈망울에서 감동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는 애였다. 녀석은 짤없이 1번 타겟이 되었다.

새벽쯤, 소라 혼자 실기실에서 구성(디자인 계열 실기시험 과목)에 열중했다. 다른 애들은 데생에 열중했고, 데생실과 구성실이 창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문은 복도 쪽이다. 복도를 통해야만 데생실과 구성실을 오갈 수 있다) 겁이 많은 소라는 데생실과 연결된 커다란 창문의 블라인드를 모두 개방한 상태로 구성을 하고 있었다.(그 창문은 열리지 않는 폐쇄창문이다) 덕분에 나는 알고 말았다. 구성실에 걔 혼자 있다는 것을. 난 석고대로 천천히 걸어가 여러 석고상 중에 줄리앙을 선택하여 품에 안았다. 기본 석고상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벼웠고, 아그립파는 호러감이 떨어졌던 이유다. 내가 석고상을 들고 데생실을 나가려 하자 데생실 내의 모든 사람들이 날 봤다. 난 모두에게 조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구성실에 소라 혼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난 줄리앙을 들고 복도와 연결된 구성실 문에 접근했다. 구성실 문에는 가로 50cm, 세로 70-80cm쯤 될 창문이 하나 있었다. 난 그 창문 아래서 왔다갔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리앙을 머리에 지고. 열려진 데생실 문에서 날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끔 긴장된 목소리로 '하지 마, 오빠'라고 [속삭이는] 여자애도 있었다.(이 여자애가 나중엔 제일 크게 웃었다)

시간이 흘렀다. 5분도 아니고 10분도 아니고 20분 가까이 흘렀다. -_-

소라는 여전히 구성에 열중이었다. 날 구경하던 녀석들도 하나 둘 데생실 안으로 들어간다. 난 스스로가 불쌍하고 처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꼭 벌 서는 것 같잖아! 그래도 꿋꿋하게 20여분 동안 석고상을 머리에 지고 구성실 창문을 오갔다.

30분이 되기 직전에 감동의 비명이 울렸다. 정말이지 건물 자체가 떠나갈 정도로 커다란 비명소리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아아. 너무 행복했다, 이 비명소리. ㅠㅠㅠㅠㅠ

당연하게도 소라 녀석은 복도에서 줄리앙이 걸어가다가 창문을 통해 자신을 힐끗 봤다며 기겁중이었다. 막 울었다. 미안하다며 용서를 빌었지만 무쟈 맞았다.

이것을 계기로 여러 가지 장난을 많이 했다. 데생실에 불꺼놓고 의자 붙여서 잠자던 애가 있었는데, 그 주변 의자와 이젤을 다 치운 뒤 석고상들을 죽 늘어놓았다. 모두 다 녀석을 바라보게 만들고.

누가 잠자러 오기를 기대하며 소파 아래 40분 정도 숨어있던 적도 있다. 누군가 사무실 불을 끄고 소파에 눕길래 소파 안쪽의 목재를 살며시 노크했다. 처음엔 반응이 없다가 서너번 더 노크했더니 기겁하는 '원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혼날까봐 더 이상 노크도 못하고 거기서 잤다. ㅠㅠㅠㅠ

요즘은 장난할 건수가 별로 안 생긴다. 심심하다. ;ㅁ;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6개:

  1. .........심심하신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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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확실히 줄리앙 그놈이 호러감있게 생기기는 했어요....특히 머리카락이....[이건 뭐 파도 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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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거기서 잤다...(<-여기서 뒤집어졌어요;ㅁ;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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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진짜 유쾌하군용 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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