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서 옷을 구입한 적이 있는가.
크고 작은 의류점들이 가득한 동대문의 상권은 언제나 사람들이 넘친다. 밤에도 화려한 불빛이 가득하고, 맵시 가득한 의류들이 고객을 유혹한다. 너무도 많은 옷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어떤 옷을 고를 지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곳에서 1년 전에 구매한 청바지가 있다. 그 청바지가 마음에 들어서 동대문의 모든 의류점을 휩쓸었다. 하지만 구할 수 없었다.
만약 당신이 어떤 특정한 옷에 관심을 갖고 그 옷을 찾기위해 동대문 상가를 휘젓는다면 같은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 아니, 동대문 뿐 아니라 의류상가가 대규모로 형성된 곳에서는 그 옷을 찾기 어렵다. 그 특정한 옷은 손님이 없어서 파리를 날리는 어느 작은 의류점의 구석에 놓여져 있다. 때로는 그것이 진열된 작은 구석의 의류점이 있고, 당신은 그것을 발견했을 때 무척 기뻐할 것이다. 게다가 주인도 당신의 기쁨을 진심으로 환영할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
이런 상황이 유행의 문제로 벌어지는 것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세상이 점점 다양해지며 수많은 문화들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너무 짧게 진행되는 문화의 격변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소비자, 또는 접하는 자의 사고회로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급히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수박 겉핥기 신공'이다.
사람들은 신속하게 문화를 접하고 신속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음미할 시간 따위는 없다. 바빠 죽겠다. 애인이 화를 내며 '끝이야!'라고 말을 하면, 그 날 안으로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속이 풀리는 '시간 급박증 연애환자'들도 늘어가고, 어제 올린 포트 폴리오에 대한 답변이 오늘 오지 않아서 낙담하는 사람도 있다. 내년에 또 시험보면 될 것을, 올해 시험 망쳤다며 하얀 나비 될까 고민하는 수험생도 있다. 내 좌우명이 '순간에 최선을'이라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건 '순간에 운명을'이 아닌가.
창작하는 사람답게 창작에 대한 얘기 좀 해야겠다.
장르가 다양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제일 하고싶은 말은 '장르가 우선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젓가락과 숟가락은 변하지 않지만, 자동 젓가락과 경보기능 숟가락같은 신제품은 언제고 변한다. 대중창작의 기본은 '재미있는 창작물'이지, '재미있는 장르'가 아니다.
아래아래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부분과 연결되는 이야기 좀 하겠다.
우리나라 만화계가 좀 더 다양화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내 생각엔 오히려 축소되었다고 여겨진다. 컨텐츠야 당연히 다양해졌다. 하지만 창작 그 자체가 컨텐츠에 맞춰서 다양성을 띄고 있느냐하는 문제에는 고개를 젓고 싶다. 최근에 나온 대부분의 만화는 '서정'은 있으나 '서사'는 없다. 일순간 감정을 건드리거나 재미를 부여하여 독자를 끄는 작품은 많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독자들을 잡는 '드라마류'의 작품이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이것은 비단 만화창작뿐 아니라, 영화나 소설에서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심지어 TV드라마에서도 '드라마'적 요소를 피하는 성향마저 생겼다.
심한 경우는 작가 스스로 현대 시류를 파악한다는 자조 하에 창작적 영역을 좁히는 경우마저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창작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자기 마음이다. 하지만 관점이 달라졌다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작가가 '장르'를 '주'로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중창작을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아까 말했듯 '재미'다. 이 재미라는 놈은 여러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모습을 모두 음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너무 급박해서 재미를 음미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인터넷 상으로 다양한 창작물이 쏟아지고 있으며, 어느 것을 고를까 고민하는 독자들이 있다. 나 또한 그 속에 담겨진 하나의 독자다. 그러나 내가 어느 날 꼭 읽고 싶은, 꼭 접하고 싶은 창작물이 보이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재미있는 창작물들은 일순간 나를 허탈하게 만들곤 한다. 나는 책꽂이로 눈을 돌려 고전이라 불리는 녀석들에게서 위안을 삼는다. 또는 내가 써서 내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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