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2일 토요일

정치 끄적임

어지간하면 이것으로 정치관련 포스팅을 마칠까 한다. 살아남으려면 바빠야 하니까. 어떠한 포스팅에도 내가 덧글을 남기는 경우도 없을 거다. 살아남으려면 바빠야 하니까. 야멸치게 보이더라도 바쁜 티를 내야겠다.

투표장에 갔을 때 느낀 점 하나.

노인들이 많다. 김영삼이 될 때나, 김대중이 될 때나, 노무현이 될 때나, 늘 그렇듯 투표장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사람들은 허리를 굽히고 있고 얼굴에 주름이 많다. 대화를 나눌 때 '빨갱이 새끼'라는 소리가 필연적으로 나온다. 저번 노무현 대통령 당선시 투표장에서 유일하게 본 젊은 사람이 우연하게 만난 내 형수님이셨다. 그 외에 모두 노인.(어쩌면 나도 노인 ㅅㅂ)

나이 많으신, 연륜 풍부하신 분들 판단이 옳을 수 있다. 이분들은 결코 투표를 건너뛰지 않는다. 생애 모두가 오프라인이었으며, 말과 말 속에 행동이 들어가야 뭔가 바뀐다는 것을 알고 계시다. 핸드폰 문자 보내는 기술이 덜 떨어졌으면 인생도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듯, 정치 얘기하면서 투표장 안 간 노인은 같은 노인들 사이에서 파고다 공원 못 갈 노인 되어버린다.(물론 빨갱이 찍으면 더 못 간다.) 원칙과 이론은 결코 행동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분들이다.

먼저 노빠 입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뭘 했는지 얘기하고 싶다.

저 노인분들께서 언급하시는 빨갱이론에 나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내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다. 정동영 빨갱이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누가 그랬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아버지 무릎 위에는 조선일보가 떡 하니 놓여있다. 한겨례 신문이야 당연히 빨갱이 신문이시다.

이분들께서 왜 빨갱이론에 심취하셨을까?

때를 거슬러 1980년 후반으로 가자. 당시 대학생들이 전대협을 이끌고 힘차게 싸우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생들은 전대협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지금 우리나라가 빨갱이를 문제 삼을 때가 아니라는 것. 삐라가 뿌려지는 것 이상으로 언론이 구라치고, 5호담당제 이상으로 사회정화운동이 우릴 감시하고, 김일성이 모래알로 쌀을 만들면 전두환 이순자는 평화의 댐을 만든다. 새벽별 보기 운동과 새마을 운동이 뭐가 다른 지 대학교 때 배우기 시작했다. 휴전선 만들어지고서 남한 사람 죽인 사람이 빨갱이보다 남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대학교 때 배운다. 이 지역적인 정보만으로 대학생들이 뭉쳐서 전두환과 노태우를 압박했다.

왜 이 얘기를 했을까?

당시에 대학에 가지 않았던 사람, 대학에서 나돌던 그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지금 다 허리 굽어지고 6.25동란 때 빨갱이에게 치를 떨던 분들이다. 여전히 그분들은 기존 정보만을 고수하며 어린 것들 행태에 혀를 찬다. 내가 한총련 요즘 하는 꼴을 보고 혀를 차는 것처럼.(가끔 내 입에서도 한총련한테 빨갱이 소리를 하고싶을 때가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번 대선 투표율이 이렇게 저조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명박이 고작 저 정도 표로 대통령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인터넷이 무서운 건 노무현 당시 대선 때 증명됐다. 만약 그 때 노무현이 당선되지 않았다면 이회창은 필연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제 곧 이명박이 할 선택.

이미 네이버나 기타 인터넷 정보들이 미약하게나마 혼선을 빚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아니었다면 미약만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대학시절 나눴던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메이저가 반조중동이었지만, 앞으로 메이저가 조중동 계열이 되는 인터넷 정보시대가 열릴지 아무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 덕에 이명박과 노무현을 같이 깔 수 있었던 거다. 이걸 보통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를 얻은 덕에 기득권 반발도 얻었고 국민 볼모로 한 압박도 얻었다. '노무현은 힘이 없다'라고 말들 하는데,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노무현에게 엄청난 힘을 줬고,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아낌없이 그 힘을 썼다. 다만 그 힘이 기존 힘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했을 뿐이다. 이제 이명박이 대통령 되었으니 노무현과 상대되는 저 힘이 다시 발휘될 때다.

이에 대하여 후회없다. 나는 지난 5년을 자랑스럽게 여기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지만(노빠 입장에서 노무현과 맞먹는 후계자를 찾는 것도 꿈같은 일이다) 꿋꿋하게 표값을 한 저분께 아낌없이 박수를 드린다.

5년 간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범한국적 '말꼬리 잡기' 유행이 벌어진 것이다. 시발점은 한나라당이다. 이들은 표현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말꼬리 잡는 표현법을 주로 사용했다. 원칙 중시로 밀어붙이는 대화를 망가뜨리려면 말꼬리 잡기가 최고다.(덧글 싸움을 해본 사람을 잘 알거다) 이에 열우당 바보들이 말꼬리 잡기 놀이에 동참하면서부터 제대로 된 정치계 대화는 사라졌다. 노무현이건 이명박이건 말과 말 사이에 가끔 삽입되는 표현 한 개가 그대로 본문이 되어버리는 언론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말꼬리 잡기가 재밌어서 언론이 동참했고, 끝끝내 국민도 동참했다. 이제는 범국민적 놀이가 되어버린 말꼬리 잡기다. 글자 찾기 놀이가 직업인 기자들만 신나던 5년이었다.

난 생각한다.

'경제가 정말 살아날까?'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경제가 살아나는지 청사진이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 대선 후보들 중에서 뚜렷한 청사진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나는 문국현을 찍었지만, 그렇다고 문국현이 정말 대통령이 됐으면 올 5년은 끔찍했을 것이다. 이번 투표를 통해 힘을 얻어서 기득권에 확실히 대항할 세력을 5년 동안 최대한 확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동영은 이회창과 정치적 동급으로 보고 있다.)

운하 판다고 한다. 내 착각일 수 있겠으나, 예전에 이명박 까는 글들 중에서 소유 의혹을 받던 토지중, 운하가 관통하는 지역을 본 것 같다. 뭐 이건 루머니까 무시하고, 이명박이 운하를 파겠다며 청사진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 또한 운하사업이 대단히 희망적임을 알리는 인터넷 정보들이 세상에 대두될까 무섭다. 기득권은 이제 이명박이 대통령 되었으니까 돈을 마음껏 풀테니 경제가 살아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까 두렵다.

김대중 대통령 때 얘기를 해보자.

IMF가 터진 직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그 대란 속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내가 아는 것이 맞다면 예상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 영화보는 사람, 핸드폰 구입하는 사람, 인터넷 요금 마음껏 내는 사람, 카드 만드는 사람 등등 소비 시장이 대폭 활성화되었다. 이 원인은 중간에 언급한 카드 때문이다. 마음껏 빚질 수 있는 거품세상을 만들어서 기업들을 먹여살리고 활성화시켰기 때문에 고통이 덜 했던 것이다.(나는 이것을 당시 입장에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에서도 국민들이 IMF때 얻은 위기를 그대로 끌고갔다. 왜냐하면 우리가 겪은 IMF는 지금 '할부'로 풀어나가는 중이어서다.

이를 다시 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상황을 풀어나가는 방법으로 거품경제를 다시 사용할 경우, 국민들 할부금은 또 다시 늘어날 것이다. 집값 안정? 집을 대박 만들면 된다. 고층 건물 무수히 세우고, 사방 팔방에 집이 넘쳐나게 만들면 집값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 건축비용이나 토지비용들은 빚으로 남게 된다. 그 빚을 떠맡는 사람이 이명박이나 기득권 세력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러 정보들을 잘 지켜봐야 할 시간이 왔다. 이제 기득권 여론이 인터넷에 침투할 때가 되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노빠였던 사람조차 '이명박이 그래도 잘 하고 있네'라는 말을 하게 될 수 있다. 압박이라는 것이 국민에게 직접 닿으리라 생각한다면 이것도 오산이다. 국민에게 직접 닿는 것은 언제나 유통업체인 언론, 기업, 사회단체다. 유통업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은 간접적 압박을 받는 것이다. 이 압박을 뚫고 세상을 꿋꿋하게 바라볼 수 있는 국민이기를 바란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괜히 한 것이 아니다. 경제를 살린다느니 힘이 어쩌고 떠들기 전에 나라 이름부터 제대로 보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지 어느 한 세력이 독점할 수 있는 전제주의 국가가 아니다. 악플 열심히 달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이 이러니 별 수 없다. 나는 대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켜주지 못한 국민이다. 간신히 얻은 민주주의였건만 힘이 딸렸다.

洪性禾 올림

댓글 6개:

  1. 저는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이명박의 운하하나가 나라를 말아먹기 충분하다고 보기에 이 글에 많이 흔들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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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명박의 대선 광고 '경제 꼭 살려주이소' 보면서 앞으로 대한민국 어떻게 되어나갈 건지 볼장 다 봤습니다. 그것만 해도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 경제가 대외의존형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보다는 대외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연 4.5%에 달하는 경제 성장율을 꾸준히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 4.5%의 경제성장율을 하위로 돌리는 소프트웨어가 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서민들이 느끼게 될 체감경제는 이런 소프트웨어의 증설과 보완이 시급한 것입니다.



    국민적인 대합의가 이번 대선에서 결정난다 이거였지요. 근데 결과는 똑같은 외형 부풀리기가 힘을 얻었으니 죽는 한이 있어도 국내에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저로서도 대한민국 뜰까 말까할 정도로 맥이 놓입니다. 5년은 지켜봐야 겠지만 아마 다음대선에서 정신 차리리라는 생각은 못하겠습니다. 레디오스님 말씀처럼 슬슬 인터넷 조질때도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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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말 묻고 싶습니다.

    운하만은 안돼라고 말하며 이명박에게 기표한이들에게...



    공약만은 안됀다며 선택을 한 행위는 무엇을 위한 것이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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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말 지못미 Korea.....내년 4월부터 운하 판다는 건 생각만해도 좌절입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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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떻게 해야 최악을 그나마 차악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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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솔직히 다른건 모르겠는데 내년부터 등급제 없어진단 말 듣고

    속 시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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