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1일 월요일

잡상

하나.

예전 잠수하기 전에 이야기 관련 표절 문제로 잠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 점점 의문이 커져갔던 부분이다. 설정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짚을 수 있는(호빗<->하플링 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기도 있지만) 표적이 존재하지만, 이야기는 그렇지 않아서라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

많이 궁금했다. 시드니 셀던作 '게임의 여왕'을 읽으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는 기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이고깽' '환생물' '영지물'처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다 보면 이렇게까지 비슷한 줄기는 표절로 이해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창작계에서는 표절 대신 플롯이라 부른다.

내 욕심이 많아서일지 모르겠으나, 너무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들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플롯 밖 세계'를 찾을 수 없는 인식 한계에 빠진 건 아닐까 고민한 적 있다.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플롯을 넘어서는 다른 이야기가 정말 존재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독자 무시한 채 혼자 막 나가서 이야기를 쓰지 않아도, 독자가 읽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도,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일 것이 존재할 것 같다.

그래.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어디서 본 것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나는 재미있어서 환호한다. 그래도 왜 이렇게 아쉬울까.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독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게된다면 눈 감고 죽을 수 있을 텐데.(눈 뜨고 죽는 거 확정. -_-)


둘.

포스팅을 한 적 있었던가? 너무 익숙한 의식이라서 포스팅을 했을 것도 같은데.

세상에는 물질과 시간이 있다. 사회는 이 둘을 통한다.

시간 가치는 나날이 오른다. 시간을 절약하는데 투자하는 값이 점점 상승폭을 그린다. 운송/유통업이 크게 성장하고 다른 자가 얽매이는 시간을 대신 얽매여주는 업종이 활약중이다. 하지만 정작 눈에 띄게 오가는 것은 지불하고 받을 때 사용되는 '값'이라는 놈이기에, 사람들은 시간 대신 물질이 더 귀하다고 착각한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사람 간 친밀감 표시로 물질을 주고서 자신이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물질을 주고 시간을 요구하는 사람관계도 있다. 물론 이것은 사회에서 고용주와 피 고용인 관계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착각할 때 이 문제가 대입된다. 최근 부모는 자식에게 직접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물질로 해결 보는 성향이 있다.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대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자식이 싫어한다고 변명하는 부모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써먹는 유명한 말이 있다. 시간낭비.

대화를 하려면 대화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즉, 자식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문화에 대해 부모도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 버느라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모가 진짜로 있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가 잘 나가는 것을 보면 시간 없다고 구라치는 부모가 더 많을 것같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와 사회에 떠들 시간이 있다면, 당신 자식과 대화할 수 있는 본인 역량부터 갖추는 게 옳다. 청소년 보호법이라느니 뭐니 떠드는 그것이 오히려 어중간한 부모들에게 어긋난 인식을 주고 있다. 내 새끼 내가 챙겨야지 사회에 맡기면 안된다. 사회 믿어서 발등 안 찍힌 적 있었냐? 아직 자식이 부모를 열심히 따르고 있다면 서둘러라. 자식과 대화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라.(강압적으로 부모 하고싶은대로 자식을 조종하려 들면 마마보이 파파걸이 되어서 사회 격리상태에 빠질 수도 있으니 참조할 것)

이런 부모자식 관계에만 물질 시간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친구지간도 마찬가지다.

만약 당신 주변에 돈에 인색한 친구와 시간에 인색한 친구가 있다면 돈에 인색한 친구를 선호해라.

돈이라는 건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놈의 운하가 어찌될지 모르는데 돈만 믿고 살다가 큰 코 다친다. 시간은 그 친구가 죽지 않는 한 항상 존재한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친구가 가장 오래 남고 믿음직한 친구다.


셋.

자신이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주장을 자신에게 하면 나쁘다. 자신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주장하다보면 기준 이상을 주장하는 공상주장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누가 고쳐주고 싶어도 알 수가 없어서 고쳐주지 못한다. 공상주장에 빠진 이는 외부 것을 받아들일 때 장점보다 단점 위주로 보게 되고, 자신이 각별하게 좋아하는 장점을 보면 치명적 단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 창작자가 이렇게되면 효도르 암바다. 하나뿐인 각별한 장점에 눈이 멀어 여러 가지 단점을 파악못하거나, 내면에서 자신이 거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며나와 유행에 휘둘리는 혼탁한 창작자가 된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1개:

  1. 간만에 올리시네요. 잠시 딴 소리지만...들어올때마다 깜짝 깜짝 놀래요. 이 파란화면...윈도우 오류 화면하고 비슷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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