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7일 일요일

조선과 대한민국

이녁님과 소넷님 포스팅을 읽으면서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엉뚱한 말이 되겠지만, 이 나라 사람은 너무 영웅주의에 심취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고 하여, 이 분이 없으면 고려가 없고 조선이 없으리라 판단하기는 좀 그렇다. 고려에 지방호족이 있고, 조선에 건국공신이 있다. 얘들 없이 혼자 나라 세우고 잘 다스렸습니다. 히어로 해피앤딩! 이럴 리야 없지.

아무 이유도 없이 나라가 세워지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당시 세상을 뒤집을 커다란 세력, 또는 세상을 뒤집을만큼 연합을 이룬 세력이 '이득'을 노리고 세상을 뒤집어서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이 나라는 썩었소! 우리 새 나라를 세워보세!" "오오, 당신 말이 맞으니 피가 끓소!" 같은 턱도 없는 이유로 나라가 세워졌다고 여기신다면, 당신은 좋아하는 이성에게 "넌 정말 착해." 라는 말로 구애를 거절당할 만큼 순진한 사람이다.

간단하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또는 확률 높은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도 물론 있으나, 이 분들 얘기는 주로 안타깝게 실패하는 영화 스토리에 자주 써먹힌다. 즉, 세상을 바꾸려면, 또는 바뀐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를 유지할 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승만 얘기 좀 해보자. 얘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을 당시에, 친일이니 반일이니 할 정신머리가 어디에 있었겠냐. 일단 살고 봐야 했고, 자리 보전하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여도 부족할 판이었다. 미국에 빌붙었으니 자본주의로 밀고 가야 할 시점에서 이승만의 선택은 하나 밖에 없었다. 자본이 많은 애를 측근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이 당시에 자본이 제일 많은 애들이 누굴까? 동족이 죽건 말건 나 하나 잘 살자고 일본에게 빌붙은 개새끼들이 태반일 수밖에 없다. 이승만이 친일세력을 받아들인 것은 지가 살자고 한 짓이지 친일 관점을 가져서가 아니다.

박정희가 군인세력으로 자본가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독재라고 하여 정말 홀로 신났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의 역량이 판가름 나는 부분은 이게 아니다.

다시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가서...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을 등에 업고 고려를 건국한 뒤에 온 정력 다 써서 나라를 지켰다. 호족들에게 부인 잔뜩 얻어가며 꿋꿋하게 버티긴 했지만, 끝내 뒷수습은 하지 못하여 혜종이니 정종이니 개박살났다. 사람 죽이고 왕이 된 광종은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스너프라는 것을 인지하고 건국에 큰 역할을 했던 호족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고려가 장수 국가로서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도 뒷수습은 못했다. 정도전 제압 등 건국공신을 아작낸 사람은 역시 스너프 태종이었다. 단물 다 빨아먹었을 때 잽싸게 해치우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을 확실히 인지해야 하는 것을 이 두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광종이 쓸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종이 나왔고, 태종이 쓸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이 나왔다.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이용해놓고 냅뒀다. -_- 그럼 스너프 박정희가 그 역할을 대신했어야 하는데 냅두기는커녕 보탰다. -_-;;;;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콤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이 두 사람의 뒷수습 삽질 때문이라고 본다.

뒷수습에 들어가기 시작한 건 잃어버린 10년 때다. 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에게는 스너프 기질이 전혀 없었다.(역시 박정희나 전두환이 했어야 한다.)

고려와 조선이 미처 보여주지 못한 역사의 패러렐 월드가 대한민국에 이르러 드러난 것이다. 광종과 태종이 썰지 못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명박이 등극한다. -_-

우리는 지금 한반도 신역사의 산증인이다. 아이 자랑스럽기도 하여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28개:

  1. 너무나 다이나믹해서 진짜 신역사에 있는 듯한 실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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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밑에서 세번째 줄. 너무 강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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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때 썰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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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너무 간단해서 말이 안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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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허헉.... ㅠ_ㅠ 명쾌한 해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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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고려는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세웠지만,



    지금 이나라는 고려때로 치면 권문세족(친원세력)이 이나라 다 먹은 꼴이네요...



    조선의 기둥을 만든 신진사대부들을 자기 파이 지킬려고 이방원이 다 썰어댔지만,



    대한민국의 기틀을 좀먹는 권문세족들은 그 누가 썰어댈수 없다는 것이 슬프군요..



    하기야 대통령이 그 계보와 관련이 있으신 분이니...



    백만의 국민의 목소리를 이겨버린 쥐선생!! 정말 역사의 한페이지 쓸만 하군요 제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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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오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너프!



    ...라는게 안한 게 아니라 했어요. 했는데 문제는 그 집권세력(...)에 의해 일어났다는게 문제.



    여운영, 김구씨 같은 독립운동가 계통 정치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당하고, 숱한 국회의원들이 간첩으로 몰려서 - 반공반공! - 숙청당했잖슴까아.



    결과적으로 한국은 권력 앞에서 줄서기 좋아하고 불의한 일이 있으면 못본 척 하며 명분보다는 기회주의가 판치는 좋은 나라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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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보고 있으니 눈에서 갑자기 짠물이...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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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레디오스님!!! 저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전 그저 호기심에 검색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거였다니 흑흑흑..



    내 순수가 더럽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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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태종이 정도전을 벤 실제적인 이유는 '가장 활약한 나를 냅두고 딴 놈을 왕세자로 삼아? 이 개객히 죽여버리갔어.'였죠. 왕자의 난을 일으킬 당시의 태종에게는 숙청이니 뭐니 그런 생각을 할 머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태조와 건국 초기의 조선은 정도전의 단물을 아직 다 빨아먹지 못한 상태였였습니다(…) 조금은 삽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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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라는 이유로(응?) 답글 러시.(그러고보니 여긴 답글을 달았어야 했었잖아? -ㅁ-;;)



    잘 되었다기보다 진행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



    현재진행형이에요. 일단 작가진 구축은 90% 이상 이루어진 상황이고요.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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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다이나바이트의 위대함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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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제 평생 누군가의 가슴에 와닿는 글을 잡담으로 쓰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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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훗날 수습할 때도 간단했으면 좋겠는데 꿈같은 일이겠죠?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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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하루 하루가 13일의 금요일이라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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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ㄴ아ㅓㅣㄹ님;ㅏ러ㅣ;ㅏㅁㄴ러ㅣㅏㄴㅇ머ㅣ러;ㅣㅁ리ㅓㄹㄴ;ㅣㄹㄴ임;ㅓㄻ



    아놔. 당분간 덧글 자제하겠다고 작심했는데 안 달 수 없게 하네.



    살아있었구나. ㅠ_ㅜ 연락도 안 되고(요청에 따른 통화 정지에 이어 결번 콤보에 실신당했음) 찾아봐도 흔적조차 없어서 평생 못 볼 줄 알았다. 대체 그간 뭐하고 살았던 거야, 이 초절정 웬수야.



    다른 사람은 그래도 소식이나 알지. 너에 대해서는 완전히 깜깜이더라.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본 소식이라도 좀 알려줘. -ㅁ-;;



    덧글 때문에 심장 내려앉긴 처음이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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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딱 그렇군요. 썰지 못하면 계보에서 왕이 나온다는 뜻이려나요. ;ㅅ;



    그나저나 스너프를 검색하셨습니까아...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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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으흑흑. 어떤 의미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연장선이라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니, 일제 강점기 자체가 사대부 시대의 연장선이며 아직 국민의식적인 측면에서 기성이라 불리는 어르신들 가치관이 왕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여겨지기도 하죠.



    '똑바로 본다.' '똑바로 한다.' 라는 의미를 관철하기가 참 어렵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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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응! 죽기라도 했을까 봐!



    난 꾸준한 운동과(응?) 성실한 태도로(뭐라고?) 건강유지에 전념해서(커피 빼고) 이제는 누구보다 튼튼한 몸으로 장시간에 걸친 창작에 힘쓰는(...) 바람직한 바이러스가 되었어. ㅇㅅㅇ!



    정말 5년은 됐겠다. 세상에! 전화로 미처 얘기하지 못했지만, 반가운 정도가 아니었다고. 사무실에서 와와 함성 질렀다. -ㅁ-;;



    내가 바깥 세상을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으니 우연히라도 볼 일이 있을 리 만무하지. 이번 기회에 산천이 아직 의구한지 세상 구경 좀 해야겠다. 계속 내부에 틀어박혀 있어서 몰골이 해골이니 약 반 달-한 달 간 꽃단장 좀 하고 연락할게! ㅇㅅㅇ!



    꺆! 넘 반가워!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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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피짠물이라고도 하죠. 내 눈에서 피짠물을 뽑은 그넘! 잊지 않겠다! ;ㅅ;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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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오랜 시간 글만 쓰다보니 대화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글은 디따 수다 떤다. -ㅁ-/



    아하하. 중간 중간 자주 연락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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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으음... 커그랑 판갤이랑 노무현 홈피랑 시드노벨이랑 특정 이글루스 포스팅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어요. ^^



    제가 원해 타락을 권장하는 주의입니다. 용서를...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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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trackback from: kz의 생각
    고려와 조선이 미처 보여주지 못한 역사의 패러렐 월드가 대한민국에 이르러 드러난 것이다. 광종과 태종이 썰지 못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명박이 등극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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