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일 월요일

어느 전사의 이야기

나는, 태클을 걸었을 뿐이고,

오랜 옛날 미어주께써라는 사제가 세상을 떠돌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시절은 무섭게 성장하여 수많은 파티로부터 호평을 얻었던 환몽이라는 마법사가 각종 인던을 섭렵하고 미어-환몽 콤비로서 명성을 떨치던 시기와 일치한다.

어느날 환몽이 쪼쪼렙 오크 한 마리를 데려왔다. 킹더루비라는 이름의 이 오크는 '인던전사는 타우렌'이라는 공식을 말하자 새침 떼며 중얼거렸다.

"피통 5% 종특... 그깟것 상관없어. 전사는 뽀대야."

미어주께써는 말했다.

"여보게, 오크 소년. 자네가 아직 뒷치기를 몰라서 깝치는데 피통 5%와 쿵쿵따는 누구도 무시못할 전사의 자랑이 될 걸세. 그러니 그 시퍼러둥둥한 오크의 껍질 따위 팽개쳐버리고 타우렌의 땅에서 새로운 탄생의 기쁨을 맛 보시게."

"싫어. 난 얘한테 정들었어."

이 안하무인 소년은 대사제의 조언에 코웃음 치며 녹템도 아닌 상점에서 구한 도끼 한 개를 들고 크로스 로드로 떠났다.

이틀 뒤, 환몽이 미어주께써를 찾았다.

"그 때 깝쳤던 오크놈이 사냥에 허덕이는 꼴이 불쌍하니 인던 한 번 돌아주자."

"그 소년, 아직도 오크요? 허어. 근성이 가상하구려. 그러십시다."

"자. 포탈을 열테니 잠시 기다려."

"아니, 여기가 오그리마인데 뭣하러 포탈을 여는 거요? 그냥 날아가면 될 걸."

"수도원이야. 언더 포탈 연다?"

미어주께써는 분개했다.

"버스에도 기본이 있소! 쪼렙이면 쪼렙답게 통곡이나 갈 것이지, 뭐 잘났다고 벌써부터 수도원이요? 그렇게 크면 애가 커서 뭐가 되겠소? 내 그 아이를 도울 마음이 사라졌으니 혼자서 크게 냅두시오!"

"쪼렙끼리 파티 모아서 통곡 다녀왔던데? 성채도 갔다 오고 가시덩굴 우리까지 쓸었더라. 수도원도 파티 모아서 가려는 걸 억지로 잡았어."

"아니, 그제 크로스 로드로 출발한 쪼렙이 뭔 깡으로 거길 다 다녀왔다는 게요? 지금 몇 렙인데?"

"36렙."

"......"

미어주께써는 환몽의 초대에 응하여 킹더루비를 확인했다. 어디서 뭘 했는지 모르겠으나 눈에 흉흉한 광채가 일고 녹템 이곳저곳이 멀쩡한 데가 없어 큰일낼 놈으로 보였다. 하지만, 외모와 다르게 말투와 행동은 대단히 싹싹했다. 미어주께써는 킹더루비가 장차 큰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태우는데 집중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여유를 내어 킹더루비를 살펴볼 마음을 먹었다.

"제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살펴보는 정도가 아니라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킹더루비에게서 1초라도 눈을 떼면 피통이 50이내에서 간당간당하는 순간이 반드시 왔다. 만렙 법사의 딜어그로니, 만렙 사제의 힐어그로니 다 필요없었다. 킹더루비는 도발망발 다 써가며 어떻게든 만렙에게서 어그롤 뺏고 싶어 안달난 전사였다.

"버스 타는 주제에 어그로 빼앗지 마!"

"아아, 만렙이라 그런가? 어그로 뺏기가 왜케 힘들지?"

"그러니까 빼앗지 마!"

"역시 만렙. 흑흑흑. 또 못 빼앗았다."

"내 말 좀 들어!"

"방태로 바꾸면 좀 더 나을까?"

"40렙도 안된 주제에 방태하지 마!"

미어주께써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스킬창의 스킬을 모두 뽑아서 킹더루비의 레벨에 맞는 힐 스킬로 교체했다. 환몽이 병사들 잔뜩 모아서 신폭을 쓸 때보다 킹더루비가 돌진 방가 방가 도발 방가를 할 때가 더 바빴다. 쪼렙 주제에 태세교체 꼬박꼬박할래? 미어주께써는 먼 훗날 저놈이 쓰랄 형님 배때시에 사시미 박아넣을 아서스같은 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렀다. 킹더루비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채팅창에서 환몽이 어그로 뺏겼다고 투덜대는 일이 잦아졌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새 킹더루비는 만렙이 되었다. 그날부터 오그리마 은행 지붕에는 날마다 통통통 날뛰는 오크 한 마리가 하루 평균 12시간 가량 나타났다. 채팅을 촉수로 하는지 전사 구한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귓말 보내서 파티에 합류하고, 자기가 파티를 구할 때면 오그리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귓말을 들을 정도였다.

점점 오그리마가 술렁거렸다.

<듣보잡전사: 솔룸 법사 사제 구합니다.(3/5)>
<......>
<......>
<킹더루비: 솔룸 구합니다.(1/5)>
<개념법사: 손!>
<아빠쟤흙먹어: 손!>
<귓속말: 법사 손!>
<흑마유니콘: 손!>
<귓속말: ㅅ노>
<비습후슬러시무릎: 돚거손!>
<귓속말: 꼭 가고 싶습니다. ㅠㅠㅠㅠㅠ>

미어주께써는 녹템전사를 향한 주변사람의 열광적 반응에 당황했다. 용맹셋도 다 못 맞춘 전사에게 왜 이리 열광한단 말인가. 설마, 이제 갓 만렙을 단 주제에... 미어주께써가 환몽을 돌아보자, 트롤 마법사는 담배를 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 애는 벌써 어그로를 지배하는 경지에 이르렀어."

<다음 호에 계속... 그런 거 없다.>

댓글 16개:

  1. 무서운 어그로 블랙홀 신공...-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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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오오 단박에 이해가 갑니다 낄낄ㄸ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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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자왕 출현 기념으로 이거 쓰신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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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WoW를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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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그로 신공은 정말 중요하죠. 패치기념 단편인가요~

    그나저나 선배님이 꼬드기는 중인거군요ㅋ...(그리고 왠지 선배한테 사제 안 어울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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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 그리운 그 곳에 나는 못 돌아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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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이쿠...왠지 익숙한 그분아이디가...-ㅅ-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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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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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회고록 쓰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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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어그로를 지배하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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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그러나 토돌의 첫데뷔전에서 루비님은 망신살이 뻗쳤다는 흑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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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익숙하지 말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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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어익후 왠지 그분을 알 것 같은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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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아련 이번 패치로 방특전사 대상향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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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아니, 오히려 제가 백만 번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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