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8일 목요일

차기 연재작 결정했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좀 더 다듬어서 연재할 생각입니다.

다만, 용들의 전쟁이 완결되기 전까지는 절대봉인. -_-

제목은 '지옥견문록'입니다.

관문

족보를 보면 박혁거세가 시조다. 왕의 곁을 보좌하며 고려의 정치와 경제를 한손에 주물렀던 그분도 박승진의 직계조상이었다.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역사를 기록했던 조상도 계셨다. 청렴결백하여 청백리(淸白吏)가 되신 조상의 이름이 지금도 전고대방(典故大方) 청백리록에 남아있다. 마을사람들이 끼니 걱정을 하니 집안 창고를 열어 베품하신 향리도 있었고, 얄팍하게 이문을 추구하는 일 없이 상도(商道)를 지켰던 분도 족보에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고고조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팔 때 제값보다 한 근을 더 주시는 호탕함을 보이셨다. 고조 할아버지는 나라의 혼탁함을 걱정하여 스스로 칼을 들고 산 속을 호령하셨다.

“다들 훌륭한 분이신데 뭐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아빠?”

박성희가 물었다. 엄마가 대신 답했다.

“왕에서 산적까지 갔잖니. 낙원에서 지옥까지. 제대로 하향곡선이네 뭐.”
“그래. 난 그게 불만이야.”

박승진은 다시 조상목록을 나열했다. 다행히 증조부 때부터는 상승곡선이 되었다. 박승진은 그 이유를 딱 잘라 표현했다.

“친구를 잘 사귀었기 때문이야.”

박승진의 증조부는 저잣거리에서 이하응이라는 자와 크게 싸우고 술로 화해하여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주상전하가 되어버렸다. 그 일로 집안 살림이 좀 나아졌다. 박승진 조부는 돈을 펑펑 쓰며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홍문관(弘文館)에서 사귄 이완용이라는 친구에게 훗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재산을 어찌 처분할 수 없어서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도와줬는데, 그 중 서재필과 이승만이라는 젊은이가 제일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박승진은 말했다.

“아버지 친구가 진짜 제대로였지.”

박승진의 아버지는 무술을 좋아했다. 검도에 심취하던 중, 도장에서 만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성질이 더럽고 단순한 면이 있었으나, 의리에 목을 매는 친구인지라 아버지와 오랜 시간 각별하게 지냈다. 얼마 후 아버지의 친구 차지철이 상사와 함께 큰일날 짓을 하더니 정말로 큰일났다.

“그래서 우리 집 재산이 이렇게 많은 거야.”

박승진은 턱을 치며들며 자랑했다. 외형만으로 보면 박승진과 박성희는 도저히 부녀지간으로 볼 수 없었다. 16세의 박성희가 다소 조숙해 보이는 탓도 있지만, 박승진이 너무 젊어 보였다. 올해로 35세가 된 박승진은 25세 때부터 젊어 보이고 싶어 별 짓을 다했다. 일찍 결혼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탓이다. 박승진의 외모는 20대 초반도 아니고 딱 20세처럼 보였다. 가수 이승환에게 피부관리의 진수를 배우고, 장국영이 죽기 전에 직접 쓴 비급(秘笈)인 ‘불로즉사(不老卽死)’를 얻어 ‘불로의 장’을 대성한 결과다. 박성희는 동안(童顔)의 아빠를 보며 ‘후’하고 길게 숨을 뱉었다.

“근데 아빠 친구는 왜 그래요?”
“내 말이.”

만만찮은 동안의 여인이 딸의 말에 동조했다. 조상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민소영의 입술은 샐쭉하게 튀어나온 채였다. 33세의 여인이 딸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다는 외형적 근거는 딱 하나, 엉덩이를 반쯤 덮을 정도로 기다란 천년여왕 헤어였다. 딸같은 아내와 아내같은 딸과 아들같은 아빠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동시에 한숨을 뱉었다.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박승진도 3대에 걸친 진정한 가훈 ‘친구를 사귀거라’에 따라서 친구를 사귀었고,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말아먹었다. 그래서 분주한 주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봐요.”

박승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세 명이 돌아봤는데, 그 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중간 위치의 사내가 턱으로 물었다. 왜?

“나중에 붙이면 안돼요? 지금 내 친구랑 통화가 안되서 그렇다니까요. 통화만 되면 다 해결될 거라고요.”

맨인블랙의 수장은 대답대신 박승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박승진이 앉아있던 뱅갈호랑이 가죽 소파에 거침없이 빨간딱지를 붙였다. 그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이제 여기에 손대시면 안됩니다.”
“평소에도 손을 댄 적 없어요. 이건 엉덩이나 등만 대라고 만든 물건이니까.”
“그것도 안 됩…….”

무뚝뚝하게 답하던 수장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수장은 토미 리 존스의 이마처럼 주름을 늘리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생물학적 물체는 이 카드를 붙인 물체의 표면에서 10센티미터 이내로 접근금지입니다.”

박승진은 투덜거리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마주앉았던 박성희와 민소영도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박승진이 기회를 틈타 박성희의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블랙이 더 빨랐다. 빨간딱지가 가차없이 달라붙자, 박승진은 놈과 눈싸움했다. 윌 스미스처럼 두꺼운 입술의 사내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든다. 그리고 민소영이 앉았던 의자에도 딱지를 붙였다.

“사방이 번쩍거리는군.”

박승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선수들과 이탈리아 국대들이 몽땅 이곳에서 월드컵이라도 벌인 것처럼 집안 전체가 빨간딱지 투성이었다. 박승진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으며 알아들을 수 없을만큼 작은 소리로 욕설을 뱉었다. 그 순간 윌 스미스 입술의 끄트머리가 살짝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지금 곧 카펫에서 나와주시겠습니까?”

빨간딱지가 거실을 장악하고 있었던 7미터 폭의 정방형 카펫에 부착되었다. 박승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불평했다.

“벌써 붙였으니까 그쪽이 돌돌 말아줘요. 아저씨들은 몰랐겠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아직 경공술을 못해요.”
“피아노 줄이 있잖아요, 아빠. 피아노는 아직 딱지가 안 붙었어요.”

박성희가 빈정댔고, 맨인블랙들이 피아노를 향해 미친 듯 달려갔다. 박승진은 우울한 얼굴을 들었다. 벽과 천장이 맞닿는 모서리에 아버지와 형들의 사진이 보인다. 아버지는 늘그막에 얻은 박승진을 제일 부끄러워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더 했다. 친모가 아니었던 것이 제일 큰 원인이겠지. 그 때문인지 몰라도 부모와 형님들 내외 가족들이 모두 백화점 쇼핑 나들이를 갔을 때, 박승진 가족만 참여하지 못했다. 모두 다 박승진 내외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까먹었던 것이다. 아무튼 삼풍은 무너졌고, 박승진은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 이제 모든 재산들이 빨간딱지와 함께 있으니 박승진은 조상 볼 면목이 없었다.

========= 맛보기? -_- =============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8개:

  1. ....친구를 '잘' 사귀어야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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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차기 완결작이 아니라 차기 연재작인 거죠? [물끄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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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음.. 완결전까지 절대봉인이라.. 이거야말로 절대마법 봉인인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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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발 원고 분량 차기 전까지는 연재하지 말아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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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민소영'



    ...............



    아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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