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5일 일요일

노파심에 적는다.

살수차에 의한 촛불밤샘집회 강제진압

예전에 포스팅했던 글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적겠다.(그 포스팅을 링크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특정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내용이어서 비밀글 처리를 한 상태였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집회를 방송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줄 누가 알았을까? 과거 시위할 때 방송차가 보이기라도 하면 환호성을 지르던 게 기억난다.

'우리 뜻을 알릴 수 있겠구나.'

'진실을 알릴 수 있겠구나.'

이런 기대를 하며 감동 젖은 눈으로 방송차를 바라보았던 젊은날이 있었다.

자. 노파심에 앞서 원론부터 말하자.

시위라는 것은 4.19혁명 때부터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다들 아는 그대로 '목숨 걸고' 내밀었던 국민의 목소리다.

시위 목적은 단 하나였다. 흔히들 착각하는 '세상을 바꾼다.'라느니, '옳은 것을 바로 잡는다.'가 시위 목적이 아니다. 이딴 소리를 하려면 시위 때려쳐라. 내가 아는 그것이 옳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많지 않다. 내가 옳다고 자신하는 사람 상당수가 만용인 경우가 오히려 많다. 게다가 지금 가장 논란이 되는 주체가 누구인가. 지가 옳다고 생각해서 일 저지르는 그 사람이 문제 아닌가. 세상을 바꿀 목적은 더 위험한 발상이고.

시위 목적은 '진실을 알린다.'가 되겠다.

4.19도, 부산, 6월 항쟁이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은, '세상을 바꿔서'가 아니고, '많은 국민에게 호응을 얻어서'도 아니다. 순서가 바뀌었다. 진실을 알렸기에 많은 국민이 호응했고, 그래서 세상이 바뀐 것이다.

진실을 감추기 위하여 당시 삼대 방송사 중 하나였던 TBC까지 박살냈던 정부였다. 그 속에서 진실을 알릴 방법은 직접 거리로 뛰어들어 크게 외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시위 문화가 이루어졌고 국민에게 호응을 얻었다. 6월 항쟁에 큰 주체가 되었던 전대협이 국민에게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정부가 감춘 진실을 직접 알려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에 이르렀다.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보다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않다. 세계 모든 나라가 인터넷을 하고 있다지만 전국민이 진실을 접할 기회를 가장 많이 확보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저 인터넷 문화가 원래 그래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나라 국민성을 염두에 둬라. 알고 알리는 데 대한민국 국민만큼 열중하는 나라는 없다. 이것은 시위문화가 이룩한 산물이다.

즉, 전대협을 비롯한 6월 항쟁 주체가 남긴 업적이 지금 사회를 만든 것이다. 이는 선배들이 이룩한 터전이다.

한총련이 개짝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당수 대학생들이 한총련을 외면하는 이유는 얘들이 전대협처럼 시위에 열중하고 선동하면 된다고 착각해서다. 전대협은 진실을 알릴 방법이 시위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한총련은 '진실을 알린다.'보다 '선동하자.'에 더 중점을 두어서 외면받았다. 선동을 위하여 진실을 감추는 경우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정부나 얘들이나 다를 게 없지.

그렇다면 지금 촛불 문화제와 같은 시위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천만에! 이 또한 진실을 알리려는 시위다. 인터넷이 할 수 없는 '진실을 알리는 방법'으로 촛불 문화제가 열린 것이다.

인터넷으로 충분하지 않냐고? 절대 충분하지 않다.

지금 시위가 알리는 진실은 그저 단순한 진실로 국한시킬 수 없다. 외치는 구호가 진실이 아니라 외치는 사람들이 곧 진실이다.

알리는 대상은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과거 반쪽짜리 민주주의 정부에 길들여진 두려움 많은 일부 국민'이 첫째며,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는 지를 모르는 정부'가 둘째다. 이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면 오프라인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실명화가 부족한 온라인에서는 '조작'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배가 남긴 터전이라고는 해도 완전하지는 않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온라인에서의 숙제다. 또는 더 좋은 방법으로 진실을 알릴 방법을 구하겠지.

이제 노파심을 말한다.

저렇게 진실을 외치는 시위를 이용하여 '선동을 위한 진실 감추기'를 시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제 딴에는 시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국민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 눈에 띄게 선동하다보면 언제고 한나라당의 전여옥 꼴 난다.(난 전여옥이 진정한 한나라당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_-) 진실은 진실로 말해라. 어떤 진실은 현재 주장에 반하는 진실이 될지라도 가감없이 밝혀야 한다. 진실을 감추거나 과장하지 말자. 지금 존재하는 진실 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진실 감추기와 과장으로 좀 더 많은 효과를 볼 수야 있겠지. 내가 이렇게 말하는 논리 자체를 순진하다 여길 수도 있겠다. 과장하고 울컥할 내용들만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 국민이 그닥 나서지 않을 테니 세상 바꾸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 동의한다.

그래도 진실은 진실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기 정부도, 차차기 정부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만들지 않은 정의란 어떤 금칠을 해도 불의다. 바뀐 세상은 좀 더 발전된 능구렁이의 모습으로 진실을 감추겠지. 병을 고치려면 확실하게 고쳐라.

그러니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는 모든 단체들이 순수한 진실만을 가슴에 안고 불을 밝혔으면 한다. 선동과 세상 바꾸기라는 시커먼 속을 가슴에 품고 촛불을 흔들지 말고.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진실을 알고 싶은 거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21개:

  1. 오랫만에 의견이 합치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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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제 시위방송 보다가 잤습니다. 자다가 일어나보니 가관이네요? 에효.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체 눈과 귀와 코를 막으면.... 순응할거라고 생각하는건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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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순수...를 믿기엔, 서로 너무 머리가 자라지 않았을까요.. :) 서로 다른 마음으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이는 것이,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목적을 떡밥 정도로 생각한다면 ...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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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공감하는 글이네요.

    이 나라가 어찌 돌아가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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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근데 정말 나라가 걱정이예요. 이러다 어디로 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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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어제 시위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떠돌다 좋은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느끼지만 노소를 떠나 아직 바른생각을 가지고 또 그것을 알리는 사람이 있어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깨우치는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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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잘 읽었습니다...

    다른 분 말씀대로 붉은 꽃은 피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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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 답답합니다.. 정말..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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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이것저것 정말 어렵습니다. 요즘은 진실을 아는것과 냉정을 지키는게 특히 어려운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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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한총련은 뭐랄까... 제 모교 한총련 사람들은 기술적 기교적으로 꼬셔서 선동으로 끌고가는 것이 참 탁월했었어요. 그런 면에선 감탄스러웠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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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저는 참여정부 호불호 빼고는 그다지 의견이 갈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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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런 저런 정보 폭주로 인하여 순정보 만큼이나 과장 정보가 많아서 저도 뭔가를 함부로 논하기 어렵더군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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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그래도 이렇게 곪은 상처가 여러 번 터지다보면 언제고 치료되리라 믿어요. 우리나라 국민이 어떤 사람인데... 막아서 될 일이 아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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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그렇기에 더더욱 모임을 견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자 마음에 따라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주장만을 펼치면 기껏 결합된 모임의 결속성이 떨어질 수 있기에 이런 노파심을 가진 거니까요. 적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뭘 하나?"라는 생각만큼은 갖지 않도록 거리에 나선 다수 시민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바로 그 떡밥! ;ㅁ; 그것만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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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잘 돌아가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기대해 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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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정부가 국민 목소리 반만이라도 알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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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니치님.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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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절대로 붉은 꽃 사절... ;ㅅ;



    그나저나 그 정신병자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겠어요.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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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그래도 저들 말마따나 10년 만입니다. 민주사회여야 할 세상에서 하는 시위이기에 주체가 다 초보거든요. 한동안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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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예. 냉정이 관건이라고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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