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내용
그리고 커피를 끓인다. 어렵지 않다. 나의 커피 취향은 간편해서 맥스웰 하우스 커피믹스 3봉을 뜯어 컵에 쏟아부으면 그만이다.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잔에 붓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스푼으로 휘젓는다. 스푼을 제 자리에 놓고 컵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컴퓨터의 전원을 누른다. 그리고 의자를 당겨 커다란 테라스칸의 유리문 앞에 둔다. 유리문을 활짝 열어 햇살 옴팡지게 쏟아지는 창을 드러낸 뒤 그것과 마주해 앉는다. 비로소 기지개를 켠 뒤 커피잔을 가지러 책상으로 걸어간다. 다시 의자로 돌아온 나는 햇살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는 꿈을 이룬다.
문득 담배가 피고싶다.
일어나 담배가 놓여진 곳을 향해 걷는다. 일정치 않은 위치의 그것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가볍게 담배를 들어 불을 붙이고 깊게 연기를 들이마신다. 내가 담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피울 때 더 즐겁다. 때로는 어지럽다. 커피와 담배와 햇살을 함께 음미하다가 창문을 연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쏟아지듯 들어온다. 내가 원하는 바람을 맞이할 때는 기분이 좋다.
컴퓨터 앞에 앉기 전에 뭘 할 지 고민한다. 정말로 내가 하고싶은 게 저 컴퓨터 속에는 상당히 많다. 오늘은 인도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찾아본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각종 주소들을 외면하고 인도신화만 줄기차게 찾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하면 소리내어 읽는다. 커피를 마신다.
한글 창을 연다. 쓰고싶은 글들이 태산이며, 써야만 할 글들이 태산이다. 이 뻔뻔한 나는 여전히 쓰고싶은 글들부터 손을 댄다. 막히는 순간 산책을 하고싶다는 욕심을 갖는다. 루비를 돌아보면 녀석도 짐작한듯 꼬리를 흔든다. 조용히 일어나 녀석의 응가를 치울 비닐봉지 하나를 뜯는다. 그것을 주머니에 쑤셔넣는 순간부터 녀석은 문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옷을 마저 입고 문을 연다. 녀석이 먼저 달리고 나도 따라 달린다.
집안에서 창을 열 때 맞이하는 바람보다 바깥의 바람이 훨씬 따뜻하다. 예상 밖의 따사로움에 감격하며 좀 더 오랜 시간 걷는다. 때로는 자전거에 루비를 태우고 달린다. 마치 어느 식당의 배달자전거라도 되는 양, 뒤쪽 좌석은 큼지막한 플라스틱 박스를 달아놓았다. 루비는 그 안에서 바람을 쐬고, 난 신나게 달린다.
땀에 젖어 돌아오면 커피를 탄다. 고양이 혀인 나는 뜨거운 것을 못 먹는다. 커피가 강햔 증기를 뿜을 때 욕실로 들어간다. 손가락 끄트머리가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샤워한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면 커피는 적당한 온도가 되어 나를 기다린다. 담배를 먼저 피운 뒤 커피를 마신다.
한글 창을 연다. 산책하면서 떠올렸던 각종 이야기들을 신나게 적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인물의 대사는 소리내어 외친다. 글쓰기에 지칠 무렵은 노래를 듣는다. 이젠 외우겠다싶을 정도로 자주 들었던 음악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할로윈의 노래에 미쳐 발광한다.
오늘은 약속이 있다. 곧 나가봐야 한다. 만나고싶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 지를 떠올린다. 그 사람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린다.
뭔가를 하기 전에 뭔가를 하고싶은 마음이 들도록 떠올리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의 생각이라는 것이 뭔가를 하는 것을 정말 즐겁게 한다. 마치 축복받은 것처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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