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정말 다수의 어른들과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본분을 '공부'라고 한다.
자. 커밍아웃.
레디오스의 고교 때 성적은 내신 10등급에서 9등급이었어염. 컨닝도 하면서 시험봤는데 그 따위에염. 고등학교 때는 깡패질도 안하구 술도 안마시구 담배도 안피구 여자친구도 없었는데 반에서 50등 안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어염. 국어는 잘했는데 그건 국어선생님이 절 애정이 있어서 패셨기 때문에 그래염.
레디오스가 통신에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맞춤법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구염. 문장 수식어 앞뒤 제대로 맞추는 법도 몰랐어염. '철수를 힘내서 공부햇엇다.'는 기본이었구여, '되지같은 색끼가 그렇게 말하면 돼겠니???!!!'같은 건 필수였어염.
고교 때 내 친구들은 혼란에 빠졌다. 끼리끼리 놀아야 하는데 나를 '끼리끼리'라는 모임에 끼워줘야 할 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이놈의 새끼가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워, 여자한테 말도 못 걸어, 싸움도 안 해... 등수는 비슷해서 어울릴 만 한데, 그 밖의 부분은 영 범생이었단 말이다. 책 열심히 읽고, 수업시간에 땡땡이 한 번 안 까고, 결석은커녕 지각조차 안하는 놈이다. 고민은 했지만, 어쨌건 같이 놀았다. 선생님 말대로 '쌩 양아치같은 놈'이라는 애들이 내 친구들 중에 많았다. 어찌됐건 난 재미있는 놈이었으니까.
그 때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였댄다.
이어지는 내용
시간이 지났고, 말마따나 세월이 흘렀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라는 건 상당히 많이 남아서 내 자판에 제법 애용됐다. 공부를 잘 안해서 그럴까? 학창시절의 기억 속에 '수업받는 도중의 무엇'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선생님이 초록색 칠판에 백묵으로 뭔가를 적으며 뭐라고 말씀하시던 그 내용들은 그저 '옹알웽알'에 불과하다. 수업내용은 머리속에 따로 저장되어 있었고, 선생님들의 말씀도 모습만 지워지고 내용의 일부만 내것인 양 남아있다.
이렇게 현실로 돌아오니 재미있는 생활들이 가끔 보인다.
내 친구들 중에는 공부를 잘 하는 녀석들도 많다. 그 이유는 위에서 밝힌대로 내 생활 자체가 마치 모범생같았기 때문이다. 내 짝을 제외한 녀석들은 내가 수업에 충실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인데 단지 머리가 나빠서 시험성적이 엉망이라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오해는 아이큐 검사가 발표되고, 내 만화가 전교에 떠돌아 다니면서 풀렸지만, 이미 그 전에 사귄 친구들과는 계속 만났다.
고교 동창들을 만나는 것도 따로따로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 끼리끼리 만나고, 못하는 녀석들도 끼리끼리 만난다. 어디까지나 내 경우겠지만, 공부 잘하던 애들보다 못하던 애들이 서로 더 잘 만난다.
그리고...
공부 못하고 말썽 많이 피워서 선생님한테 뒤지게 맞았던 경험이 많은 녀석들이 선생님을 더 많이 찾는다. 특히 스승의 날에 선생님 찾아가는 애들을 보면 대부분 학창시절에 조낸 맞았던 놈들이다.
또 하나 그리고...
그놈들이 찾아가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조낸 깠던 선생님들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내 주변의 현실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수업에 열중했던 선생님보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다닌 선생님이 더 기억에 남고 '학창시절의 고마움'을 고백받는 노후생활을 더 많이 영위하신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직장 얻었어요'라는 말보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사람됐어요'라는 말을 하는 놈들이 더 많다. 뭐냐. 학교에서의 본분은 정말 공부냐?
인생역전이라는 이벤트를 언급하자면 나만한 대표선수도 드물다. 초등학교 때 3학년 이후부터는 미술을 제외하곤 '수'라는 놈을 받아본 일이 없었고 반석차 30등 이내로 들어본 적도 없던 내가, 중학교 들어가는 입학시험에 전교35등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들어갔다. 1000명이 넘는 전교생 중에서 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험에서 300등 바깥으로 밀려나가며 반 석차 33등이 되어서 뒤지게 맞았다. 그 이후 계속 하락세를 구가하더니 중3때는 드디어 반석차 50위권 바깥으로 떨어져나가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름방학 끝나고나서 매 시험마다 반석차를 20등씩 올려놓더니 반 15등이라는 경악할 성적을 기록하며 인문계 고등학교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대건 고교 입학시험 때 전교 37등을 기록하며 선생님의 기대를 받았다. 물론 그 다음 시험 결과발표 후 뒤지게 맞았다.
대학 떨어지고나서 재수, 삼수를 거쳤을 때는 뭐랄까... 당연하다는 듯 일류대만 지원하는 실력이 되었다.(미대 지망자였지만 삼수까지 하면 실기는 거의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 내가 말하는 건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난 선생님의 방해를 받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지원서를 넣을 수 있었고, 오히려 선생님이 그것을 권장했다. 삼수 때 대학에 합격했다. 난 당연하다는 듯 합격 발표를 받아들였는데, 엄마빠는 난리가 났다. 내 아들 대학에 합격했다며. -_-
문제는 대학에 가니 고교 때 배웠던 학업내용을 써먹을 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내가 미대라서? 그렇지도 않다. 난 미대에 갔지만, 전공필수, 전공선택 외에, 교양과목도 배운다. 정말 써먹을 데가 없었다.
그러면 대학 때 배운 건 써먹을 데가 있냐고? 웬 걸. 진짜 없다. 난 대체 학교를 왜 다녔냐 싶을 정도로 써먹을 데가 없었다. 단지 공부, 수업만을 두고 얘기하자면 내 인생의 상당수 과거는 개발살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를 잘 다녔다고 생각한다. 정말 학교가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다. 그것은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었다. 나와 대화하는 친구의 감각이, 나를 챙겨주는 누군가의 배려가, 나를 인식하는 모든 존재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마다 내게는 순기능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내가 아끼는 어린 누군가가 학교에서의 본분을 묻는다면 나는 어쩌면 '공부'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중심적인 기둥이든, 절대적 악당이건 간에 그 기준을 통해 사람관계가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는 필요악일 지도 모른다.
한 번 쯤은 지루한 수업시간의 기억을 떠올려보고 싶다. 하지만 이 바람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많고 즐거웠던 사람 관계들이 그 앞을 막아서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공부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지 궁금하다. 알고 싶다. 그 속 마음을...
그저 공부 잘해야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얻어서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자식 낳아서 좋게 좋게 살다가 행복하게 뒈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인 건가?
'네가 뭘 원할지 정확히 모르는 동안에는 모처럼 찾아올 기회를 미처 못알아보고 놓치지 않도록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라는 주장은 그나마 받아들일만 하더군요.
답글삭제그건 확실히 받아들일만 하네요. ^^
답글삭제꼬야님 말이 확실히 와닿네요...
답글삭제음.. 학교하면.. 역시 많은 사람, 사람, 사람. 즐겁기도 했었고 짜증나기도 했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학교.... 아련하군요 뭔가;
시작하면 기회 따로 시작점이 있는게 아닌데 있다면 있는 기회를 준비하느라 놓쳐버리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답글삭제중학교,고등학교 입학시험,,,,학력고사;;;; 세대차이 나요!!!
답글삭제쳇!
답글삭제대건고교? 설마 대구의 대건고요? 설마...선배?
답글삭제푸하하하~선생님..재밌었어요...
답글삭제저도 아이들한테 공부하라고 악다구니를 쓰지만
학교에서 배운 거 써먹는 건 읽기 쓰기 하고 사칙연산정도네요..
나이가 드니...학교적 친구도 주변에 많이 남아있지않구요..
아이럽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