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25일 일요일

시공도시(時空都市) 서장. 원예부장 정연실, 서울로 상경하다.

## 100% 연중글입니다. 10분 정도 시간 떼울 마음이 아니면 읽지 않으시기를 권장합니다. 다른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습작을 쓴 거니까요. 심하게 말해서 수틀리면 연재고 평상심이면 다음편 100년지 대계입니다. ;ㅁ;

* * *

시공도시(時空都市)

서장. 원예부장 정연실, 서울로 상경하다.

두툼한 분홍빛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일어났다. 흘끔거리는 시선들이 정연실을 향하고 있었다. 어디가 이상해서 저런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일까. 정연실은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특별하게 삐친 머리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얀 상의, 까만 치마에 얼룩이 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시선을 던졌다. 손수건으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은 구두인데 자꾸만 쳐다본다. 겁이 나서 어깨를 움츠렸다.

“아.”

주변의 시선이 없었다면 마음놓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서울은 화려했다. 벽보다 유리가 더 많은 것 같은 건물이었는데, 용케도 그 큰 덩치가 무너지지 않는다. 문이 많고 사람이 많았다. 어디서든 입구라는 게 있으면 무조건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경찰아저씨도 보였고, 말로만 들었던 서울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보였다. 어르신들은 천박하다며 혀를 찼던 교복이었지만, 정연실은 부러웠다. 자신이 입은 하얗고 까만 단색의 교복보다는 저렇게 스트라이프선으로 매무새를 장식한 교복이 몇 배는 더 이뻐 보였다. 예전에 서울로 도망쳤다가 붙잡혀온 명호 오빠가 말했던 빵 가게도 보였다. 정말로 빵을 쪼개서 배춧잎과 맛있다는 고깃덩이를 사이에 끼워 넣었다. 정연실은 남이 들을까 두려워 속삭이듯 탄성을 뱉었다. 서울은 예상보다 훨씬 멋있었다. 서울에 오길 정말 잘했어! 정연실은 행복했다.

쏴아아아아! 꽈릉!

정연실은 우울했다. 9월인데 비가 막 오고 지랄이다. 번개가 칠 때마다 몸을 움찔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옆집 노복이보다 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모두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초췌했으며,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주변의 눈을 아랑곳 않고 행동하는 게 정연실을 놀라게 만들었다. 자신이 떠나온 성주리(城主里)에서는 저런 식의 생활을 보내는 자가 딱 한 명 있었다. 바둑부의 유치영이라는 남자애였는데, 다들 그 애를 향해 미쳤다고 말하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었다. 그런 사람들이 서울역에는 무척 많았다. 말로만 듣던 텔레비전이 신기했으나,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서 감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연실은 지금 문 밖으로 나와 비를 마주하고 있었다.

쏴아아!

비는 끝도 없이 내렸다. 밤인데도 주변이 밝았다. 춥지는 않았지만 괜히 불안하여 보따리를 꼭 안았다. 몇몇 사람들이 정연실을 지날 때마다 힐끔거렸다. 누군가 “촬영중인가?”라고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정연실은 사람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자꾸만 땋은 머리를 다듬었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계획을 다 잡았었는데, 이렇게 비가 앞길을 막으니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막막했다.

“에이.” 정연실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일단 가고 보자!”

쏴아아아아!

보따리를 머리에 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 못했는데 교복이 흠뻑 젖어 속옷이 비쳤다. 정연실은 팔뚝을 가린 교복이 속살의 빛을 그대로 내비치자, 깜짝 놀라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보따리를 급히 펼쳐 짙은 색 겉옷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이거 쓰세요.”

누군가 정연실에게 우산을 건넸다.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였는데 우산이 2개다. 손을 저어 거절했지만, 사내는 끝내 정연실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 땅굴로 들어가 버렸다. 서울 사람이 무섭다는 말은 거짓말이구나. 정연실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우산을 쓰고 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정연실은 비로소 서울 구경을 시작했다. 자신이 제일 즐기는 골목골목을 찾아 열심히 걸었다.

“아가씨, 어디가?”

어떤 골목에서 여자의 목소리처럼 고성인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정연실이 고개를 돌려서 상대를 확인했다. 목소리와 다르게 거친 인상의 사내다. 그리고 4명의 사내가 또 있었다. 정연실은 “그냥 가는 중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사내들이 웃었다.

“잘 데는 있어?”

“있을 거예요.”

정연실의 대답에 사내들이 또 한 번 웃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3명의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정연실의 뒤쪽에서 다가온다. 앞에 있던 5명 사내 중에 2명이 정연실의 좌우를 포위했다. 목소리가 가녀린 사내는 친절함을 보였다.

“오빠랑 같이 갈래? 방 하나쯤은 만들어 줄 수 있거든.”

쏴아아아아!

비가 거세졌다.

* * *

성주리에는 3개의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위석 고등학교만 남녀공학이었다. 위석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2배는 더 넓은 운동장을 갖고 있었으며 특별활동을 위한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재정이 좋았다. 특별활동 건물은 학교 본 건물의 절반쯤 되는 크기의 3층 건물이었다. 그곳 3층의 중심부에 학생회실이 있었다. 별빛이 밤하늘을 장악한 맑은 날씨. 학생회실의 창문은 그런 하늘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동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 연실이는 정말 서울로 간 거야?”

학생회장 김민종이 창 밖을 채운 별을 보며 물었다. 뒤에서 박승진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김민종은 짧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뒷짐을 지고 창 밖을 보는 모습이 어울려서 달이라도 비춘다면 한 폭의 그림같을 것이다. 반면 박승진은 전형적인 마당쇠 인상이었다. 넉넉한 마음이 박승진의 입가에 어린 미소를 통해 느껴졌다. 하지만 박승진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박승진이 답했다.

“편지를 남겼어, 회장. 아무래도 금방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아.”

“대체 서울이 뭐가 좋다고 가는 건지. 이장님도 걔가 떠난 건 알고 계셔?”

“이장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둘째 딸인데 모를 리가 있겠어? 하지만 데려오라는 말은 안 하시더라. 데려오라 하셔도 무슨 수로? 그 넓은 서울에서 걔를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어?”

“짜증나네.”

김민종이 불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저었다.

탕!

칠판이 몇 번 떨리다가 진정됐다. 김민종은 칠판을 향해 다시 한 번 손을 저으려다가 한숨으로 마무리했다. 내력으로 인한 진공음이 적막했던 학생회실을 잠시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김민종이 창문 밖으로 손을 뻗었다.

“저 많은 꽃들을 버려놓고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원예부에 이제 누가 남았다고.”

“내가 하면 안될까? 그래도 걔한테 몇 가지 잡기는 배웠는데…….”

“아서라.” 김민종이 웃으며 지풍을 쏘았다. 건물 아래 화단이 ‘쾅!’하고 폭음을 일으키며 수십 개의 꽃잎을 흩어놓았다. “환영원예술(幻影園藝術)은 잠깐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냐.”

박승진이 길게 한숨을 쉬며 뒤통수를 다시 긁었다.

“그럼 어떻게 해. 부장이 없어졌다고 원예부를 폐부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 * *

쏴아아아하!

빗물 가득한 골목에 동공 풀린 자들이 잔뜩 엎어져 있었다. 꽃잎이 바닥에 가득하다가 빗물에 녹아 사라졌다. 정연실은 울상이 된 얼굴로 부러진 우산살을 매만졌다. 한쪽이 무너진 우산을 들고 비를 막았다가, 슬며시 치우며 하늘을 보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땅에서부터 하늘로 쏘아지는 빛이 너무도 강렬했다.

“하아아.”

고개를 땅으로 숙이며 길게 한숨쉬었다. 정연실이 잠시 눈을 치켜 떴다. 골목의 지저분한 벽 귀퉁이에 민들레 한송이가 보였다. 정연실은 미소를 지으며 민들레를 어루만졌다. 곧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며 벽 전체가 민들레로 덮였다. 하지만 정연실이 골목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 민들레 무리들은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 한 송이 민들레만 외롭게 남아서 잠깐의 부귀영화를 그리워했다.

* * *

“편지라고?”

3개월만에 본 김민종의 밝은 얼굴이다. 박승진이 식은땀을 억지로 감추며 김민종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박승진의 곁에 있던 통신부원(通信部員) 김기영도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민종이 둘에게서 느껴지는 어둠의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급히 편지를 펼쳤다.

“이 자식, 그래도 서울에서 잘 살고있나 보구나. 걱정했었는데 잘 됐다.”

김민종의 환한 얼굴은 편지의 글을 읽는 즉시 굳어버렸다. 박승진이 말했다.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지? 그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건 우리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잖아.”

“믿을 수 없어.”

김민종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말은… 강호뿐 아니란 얘기잖아. 시공의 비틀림이…….”

“연실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걔는 거짓말 안 하는 애잖아. 시공의 비틀림으로 인해 강호의 도시들만 이곳으로 온 게 아니라, 또 다른 세계의 도시들도 겹치고 있는 게 분명해.”

김민종은 박승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다시 한 번 사진을 보았다. 가장 거슬리는 사진은 역시 정연실의 모습이었다. 수십 명의 폭주족들을 뒤에 달고 찍은 이 펑키스타일 여보스는 대체 누구냐! 또 다른 사진에서 정연실은 문신 가득한 오른팔로 각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편지에서 언급된 ‘인간이 하늘을 날아다니게 할 수 있는 기계’를 찍은 사진도 인상적이었지만, 어떤 남자의 시체를 찍은 사진이 제일 놀라웠다. 몸의 절반이 기계였는데, 편지에 의하면 팔에서 살인광선이 나오고 이장님보다 더 빠른 경공술을 펼친다고 했다.

“일단 이장님에게 가서 긴급사항 허가를 받고 마을회관으로 가.”

김민종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박승진과 김기영이 학생회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김민종의 시선은 편지와 사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김민종은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뚫어질 듯 노려봤다. 신음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으으음. 경기도에 신수(神獸)들이 사는 도시가 발견됐다는 소문이라……. 대체 시공이 어디까지 비틀어지려는 거지?”

<<'1장. 분열된 서울의 어둠. 제1 삼국시대'편으로 계속>>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중글'입니다! -_-/(빌어먹을! 스토리는 끝까지 다 잡아놓았는데... oTL)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23개:

  1. 무시무시하게 복잡하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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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 분신술이 필요하신겁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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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혹시 타락고교와 관련있는 세계관은 아니죠? ^^

    재미있을 것 같은데..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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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런, 유혹에 넘어가 읽고 다음이 궁금해 좌절했습니다...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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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시간나면 이것도 미리니름을...(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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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왜 이장님만 보면 오촌리가 떠오르는걸까요...

    그나저나 이장님보다 빠르고 팔에선 살인광선이라니 이거 큰일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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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여기서도) 생일 축하드립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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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오호! 경축^ㅁ^ 이로써 레디님의 나이는 삐이-가 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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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생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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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아앗,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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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엣? 생일이셔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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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아앗 생일이셨어요? 마감치면 생일파티 해야겠다아~~

    (마감은 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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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감사합니다. ㅠ_ㅜ(마감 때문에 이번 생일은 글과 함께 지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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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생신이신가 보군요. 감축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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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헉, 생일이셨습니까!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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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레디오스의 따님, 링크양을 납치.

    돌려받고 싶으시다면, 어서 빨리 연중글들을 다시 재개하..퍽;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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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시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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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생일이셨군요. (...) 생일 축하드리고요, 선물로는 요새 애완용 바퀴가 선풍적인 인기라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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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엇차, 생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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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김현// 감사 안 할 테야! ;ㅁ; 우씨.



    프리시커// 에헷.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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