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내용
하나, 둘. 하나, 둘.
보도블록을 밟던 도중 옛 생각-그것도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 햇볕을 가리고 이름 모를 연장과 꼬챙이 비슷한 도구를 저으며 블록을 하나하나 채우던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밟고 있는 블록이 왜 이렇게 정갈하고 규칙적이었는가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블록이 규칙적인 이유는 쌓는 자의 정성과 기억이 담겨져서 그렇다. 가끔 나는 블록 사이의 선을 밟지 않고 길을 걸었는데 오늘이 그랬다. 하나 둘, 하나 둘. 마음 속으로 수를 세며 걸었다.
블록이 사라질 때쯤 사잇길이 보인다. 아직 이곳은 블록을 쌓지 못했고, 앞으로도 쌓일 일이 없을 것 같다. 차도 지나다니고 사람도 지나다니지만, 인도도 아니고 차도도 아닌 길이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이다. 등으로 산을 기댄 집들이 보였다. 친척들도 있고 부모님도 계신 집이다. 숨통을 트일 요량으로 깊숙하게 들이켰는데 뱉기가 아까웠다. 세상에! 내가 어릴 때 이런 공기를 마시고 자랐다니! 잔병이 금세 도망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무거운 걸음을 잠시 잊고 흙을 밟았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산은 진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흙을 밟는 시간이 아까웠다. 할 일이 많았다. 주문 받은 것을 제 시간에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휴일을 이용해서 노력하면 존재하지 않을 성과들이 슬그머니 찾아올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오기 싫었다. 만남이 귀찮고 무거웠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이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이 흙을 밟고 집을 찾기가 싫어진다. 할 일이 적어 내 등에 지워진 앞길의 작업량이 가벼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누가 꼭 묻는다. 일 잘 되냐고. 잘 된다고 말한다. 속이 쓰리다.
“왔구나.”
시간이 짧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환하게 웃으며 ‘아이고! 왔구나!’라 외치는 사람들이 갑자기 좋아진다. 내가 남겨두고 온 일상만 묻지 않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사랑한다. 산이 하늘에 눌린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산이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웃는다. 조상을 찾는 특정한 날의 일상들은 제쳐두고 오직 만남만 기억된다. 얘기보다 웃음이 많을 때 더 행복하다.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웃으며 건강을 묻는다. 내가 싫어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낸다. 참 이상한 것은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들이 대부분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뿐이다. 웃음 지을 이야기를 준비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찡그리지 않을까를 고민하다 온다. 놀라운 것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웃을 생각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곁 사람들은 웃기 위해 나를 배려하고, 나는 찡그리지 않기 위해 배려한다.
내가 준비한 것들은 과정에 잊혀진다. 의무감으로 걸음했던 일상이 급속히 사라진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산은 내게도 등을 기대라 한다. 숨을 들이켜면 뱉기가 아까워 머리가 어지럽다. 시간이 짧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또 하나의 비극이 시간을 늘려준다. 돌아갈 곳. 해야 할 일. 두고 왔던 그놈들을 머릿속 웹사이트에서 꺼내들면 시간이 급작스레 늘어나며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이제 가봐야죠.”
“그래, 가야지.”
혈연은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나를 배웅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으신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호들갑을 떠신다. 이젠 내가 두고 온 놈들을 찾아갈 때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곳만 왔다 가면 그놈들이 우습다. 오늘도 아버지는 말씀하시겠지.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더니 큰소리를 내셨다.
“자! 시작하거라!”
“예, 아버지!”
내가 처음 이 집을 나와 도시의 욕망에 몸을 던질 때도 아버지는 이렇게 외치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 말씀을 하지 않다가 도시가 나를 억눌러 어깨를 무겁게 할 때 다시 외치셨다. 처음엔 몰랐으나 작년부터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시작이었구나. 옛 일 다 까먹고 나는 시작하는 것이구나. 가슴에 담긴 숨을 잠깐 뱉고서 새로운 숨으로 채웠다. 돌아보니 산에 등을 기댄 집이 손을 흔든다. 산이 등을 기대라며 웃고, 하늘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좋은 일 가득해도 시작이고 어깨가 무거워도 시작이었다. 어찌되었건 내가 찾는 것은 좋은 일 가득한 길이 아닌가.
흙길은 짧다. 아무리 멀어도 짧은 길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걷다보면 등뒤의 산을 느끼고 높은 하늘을 보게된다. 보도블록이 보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이 생각났다. 자신이 블록을 채울 땅만 보고 있었던 그 여인이 믿음직하다. 선을 밟지 않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믿자. 그 정성을 믿으니 나는 하늘만 보고 걸으면 된다. 시작이 아닌가. 가슴 후련하게 걸으면 그만이다. 내년 추석에는 웃기 위한 준비를 하자. 도시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산을 믿고 하늘을 믿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을 믿고… 내게 情을 주는 사람들을 믿자. 걸어보니 걸어지더라. 신나는 일이 아닌가!
“하!”
호통과 웃음을 터뜨릴 때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고향을 찾는 꿈이었다. 추석은 아직도 3일이나 남았다. 이런 젠장!
“엽!”
이렇게 기쁠 데가 있나. 이번 추석부터 웃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으하하! 1년 벌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모두 즐거운 한가위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보도블록을 밟던 도중 옛 생각-그것도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 햇볕을 가리고 이름 모를 연장과 꼬챙이 비슷한 도구를 저으며 블록을 하나하나 채우던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밟고 있는 블록이 왜 이렇게 정갈하고 규칙적이었는가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블록이 규칙적인 이유는 쌓는 자의 정성과 기억이 담겨져서 그렇다. 가끔 나는 블록 사이의 선을 밟지 않고 길을 걸었는데 오늘이 그랬다. 하나 둘, 하나 둘. 마음 속으로 수를 세며 걸었다.
블록이 사라질 때쯤 사잇길이 보인다. 아직 이곳은 블록을 쌓지 못했고, 앞으로도 쌓일 일이 없을 것 같다. 차도 지나다니고 사람도 지나다니지만, 인도도 아니고 차도도 아닌 길이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이다. 등으로 산을 기댄 집들이 보였다. 친척들도 있고 부모님도 계신 집이다. 숨통을 트일 요량으로 깊숙하게 들이켰는데 뱉기가 아까웠다. 세상에! 내가 어릴 때 이런 공기를 마시고 자랐다니! 잔병이 금세 도망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무거운 걸음을 잠시 잊고 흙을 밟았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산은 진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흙을 밟는 시간이 아까웠다. 할 일이 많았다. 주문 받은 것을 제 시간에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휴일을 이용해서 노력하면 존재하지 않을 성과들이 슬그머니 찾아올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오기 싫었다. 만남이 귀찮고 무거웠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이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이 흙을 밟고 집을 찾기가 싫어진다. 할 일이 적어 내 등에 지워진 앞길의 작업량이 가벼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누가 꼭 묻는다. 일 잘 되냐고. 잘 된다고 말한다. 속이 쓰리다.
“왔구나.”
시간이 짧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환하게 웃으며 ‘아이고! 왔구나!’라 외치는 사람들이 갑자기 좋아진다. 내가 남겨두고 온 일상만 묻지 않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사랑한다. 산이 하늘에 눌린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산이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웃는다. 조상을 찾는 특정한 날의 일상들은 제쳐두고 오직 만남만 기억된다. 얘기보다 웃음이 많을 때 더 행복하다.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웃으며 건강을 묻는다. 내가 싫어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낸다. 참 이상한 것은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들이 대부분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뿐이다. 웃음 지을 이야기를 준비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찡그리지 않을까를 고민하다 온다. 놀라운 것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웃을 생각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곁 사람들은 웃기 위해 나를 배려하고, 나는 찡그리지 않기 위해 배려한다.
내가 준비한 것들은 과정에 잊혀진다. 의무감으로 걸음했던 일상이 급속히 사라진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산은 내게도 등을 기대라 한다. 숨을 들이켜면 뱉기가 아까워 머리가 어지럽다. 시간이 짧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또 하나의 비극이 시간을 늘려준다. 돌아갈 곳. 해야 할 일. 두고 왔던 그놈들을 머릿속 웹사이트에서 꺼내들면 시간이 급작스레 늘어나며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이제 가봐야죠.”
“그래, 가야지.”
혈연은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나를 배웅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으신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호들갑을 떠신다. 이젠 내가 두고 온 놈들을 찾아갈 때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곳만 왔다 가면 그놈들이 우습다. 오늘도 아버지는 말씀하시겠지.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더니 큰소리를 내셨다.
“자! 시작하거라!”
“예, 아버지!”
내가 처음 이 집을 나와 도시의 욕망에 몸을 던질 때도 아버지는 이렇게 외치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 말씀을 하지 않다가 도시가 나를 억눌러 어깨를 무겁게 할 때 다시 외치셨다. 처음엔 몰랐으나 작년부터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시작이었구나. 옛 일 다 까먹고 나는 시작하는 것이구나. 가슴에 담긴 숨을 잠깐 뱉고서 새로운 숨으로 채웠다. 돌아보니 산에 등을 기댄 집이 손을 흔든다. 산이 등을 기대라며 웃고, 하늘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좋은 일 가득해도 시작이고 어깨가 무거워도 시작이었다. 어찌되었건 내가 찾는 것은 좋은 일 가득한 길이 아닌가.
흙길은 짧다. 아무리 멀어도 짧은 길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걷다보면 등뒤의 산을 느끼고 높은 하늘을 보게된다. 보도블록이 보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이 생각났다. 자신이 블록을 채울 땅만 보고 있었던 그 여인이 믿음직하다. 선을 밟지 않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믿자. 그 정성을 믿으니 나는 하늘만 보고 걸으면 된다. 시작이 아닌가. 가슴 후련하게 걸으면 그만이다. 내년 추석에는 웃기 위한 준비를 하자. 도시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산을 믿고 하늘을 믿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을 믿고… 내게 情을 주는 사람들을 믿자. 걸어보니 걸어지더라. 신나는 일이 아닌가!
“하!”
호통과 웃음을 터뜨릴 때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고향을 찾는 꿈이었다. 추석은 아직도 3일이나 남았다. 이런 젠장!
“엽!”
이렇게 기쁠 데가 있나. 이번 추석부터 웃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으하하! 1년 벌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모두 즐거운 한가위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번 1년은 다음 연재를 위해 쓰여질테니 모두가 기쁨에 겨워
답글삭제마다하지 않을 홍복이 아니겠습니까?!
깐깐한 도로사정에 고통받지 마시고 정말 풍성한 추석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오호라!!
답글삭제오빠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웃고 지낼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요.
답글삭제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ㅁ'/
웃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멋진 1년이 되겠군요.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답글삭제추석 잘 보내시오.
답글삭제즐거운 한가위 우아하게 독서로 보낼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내일부터 도서관 닫네요 아하하...이제 생각났냐(...)
답글삭제바나나가 웃으면 바나나킥
답글삭제사과가 웃으면 풋사과
한입먹은 사과는 파인애플
아름다운 풀은 뷰티풀
죽은 아몬드는 다이아몬드
애낳다가 죽으면 다이애나
이 빠진 호랑이는 tigr
죽은 얼음은 다이빙
메리 추석 ~
레디형님 행복한 추석되세요~!
답글삭제즐거운 추석 되세요~
답글삭제모두모두 즐거운 추석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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