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8일 일요일

착각하고 있는 것!

커그에서의 논쟁은 피하고싶으니 여기다 적는다.

[많이 팔고 싶어서 일부의 작가가 양산형을 쓴다. 고로 양산형을 찾는 다수의 독자가 문제다.]

라는 말이 있던데...

이런 말이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위의 말과 이 말을 연관시켜서 대입하고 있지만, 그 접근방식이 틀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꼴등이 있어서 일등이 있다]와 다른 의미다.

양산형을 만드는 원인은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수의 독자들이 갑작스레 침범한 어떤 작품에게 환호하며 그것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 시작의 여운이 독자에게 남는다.-이것을 다시 말하면 독자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 여운을 잊으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간단하다. 양산형의 근본은 초기작에 대한 독자의 애정이 여운으로 남은 결과다.

그렇다고해도 여운은 어디까지나 여운이다. 여운은 시나브로 사라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운이다. 이 여운을 여운으로 보지 않는-다시 말해서 불멸의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여운을 상품으로 보는 존재들이다.

많이 팔고 싶어서 양산형을 쓰는 것과 '양산형을 찾는 독자'는 관련이 적다는 얘기다.

출판사는 총판 핑계를 댈 수 있다. 양산형이 아니면 반품하거덩.

총판은 대여점 핑계를 댈 수 있다. 양산형이 아니면 받지를 않거덩.

이 2개의 관문을 거치는 게 쉽지가 않다. 작가가 독자와 직접 거래를 할 때 양산형같은 걸 신경쓸까?

판매 서적과 대여 서적의 차이 중에서 이런 부분이 있다.

대여 서적은 '일반적인 대중창작 문화를 기준한 창작물'을 중점적으로 육성한다. 만화에서는 학원물이고, 소설에서는 이계물이고, 로맨스 소설에서는 '꽃보다 남자'인 원인이 바로 이 시장문화다. 정작 판매 서적으로 넘어갔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판매서적으로서의 만화는 '강풀의 작품'도 있고, '양영순의 작품'도 있으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 판매 서적으로서의 소설은 '초기의 귀여니 로맨스'가 있고, 'NT노벨'이 있고, '밀리터리류'가 있다. 소설이 아닌 다른 성격으로 '판타지 라이브러리'같은 서적도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한 가지 얘기.

혹시 '황매'라는 출판사를 아는가? 이 출판사의 첫번째 히트작이 바로 '귀여니의 글'이다. 이 글의 잘잘못만 따지느라 이 글의 출간과정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이런 글도 출판하냐!'라면서 황매출판사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 지 모른다.

이 출판사는 귀여니의 글을 출간할 당시에,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의 관점으로 출간했다. 그 증거로 현재 황매가 출간하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꽤 다수의 작품이 실험적이다. '귀여니의 글'을 욕하는 사람들이 가장 바라던 '출판사의 관점'으로 출판기획을 했던 출판사가 욕을 먹었던 셈이다.(여기에 대한 언급은 개인적 견해가 들어갔을 수도 있다. 출판사 관계자분이 내가 제일 존경하던 만화 스토리 작가분 중 한 분이셨으니까.-아스팔트 사나이, 기계전사109 등의 작품을 쓰신 분이다-)

결론은 작가가 양산형을 쓰는 이유는 출판사, 총판, 대여점이라는 1, 2, 3차 관문을 통과할 능력이 그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그 관문을 모두 돌파해서 독자에게 손을 내밀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럼 왜 양산형이 아니면서도 좋은 작품은 독자가 찾지 않느냐?

안 찾기는 개뿔. 찾는다. 눈을 희번득거려가며 찾는다. 그리고 찾았다. 찾아서 그 작품 자체가 좋은 성과를 올리고 독자의 입에서 회자된다. 문제는 그 좋은 작품을 칭송하기보다, 나쁜 작품을 까대는 데 더 집중하는 사람들인 거다.

통계로 하자고? 좋은 작품보다 양산형이 더 많지 않느냐고?

자. 여기서 드디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을 꺼내야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은, 성장을 의미한다. 시작부터 양화를 그리는 자는 드물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 속에 너무도 당연해서 빼놓은 표현이 있다. [양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따지면 [악화도 양화를 구축한다]가 되겠지만, 난 '도'를 '가'로 표현한 이유가 강조의 의미라고 보고 있다.

시작하고 도전하는 이들의 작품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양화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발전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시간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그 시간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발판은 시장의 형성이다. 시작과 도전의 존재가 많을 수록 시장에 대한 가능성은 높아지고, 그 뚜렷한 통계를 믿고 시장을 확장시키는 출판사, 총판, 서점들이 생긴다. 작가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요소가 되는 것이다.

독자가 양산형을 찾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양산형을 쓴다는 소리는 하지 말자. 당신의 능력을 탓해라. 능력이 되면 그런 말 하는 것 자체가 쪽팔린다.

'저는 글을 못 씁니다. 그래서 먹고 살려면 양산형을 써야 합니다.'

라는 말은 3중복이다. '저는 글을 못 씁니다.'와 '먹고 살려면 양산형을 써야 합니다.'는 같은 뜻이다. 같은 뜻을 두고 인과관계처럼 연결시키는 '그래서'를 사용했다는 것은 '저는 글을 못 씁니다'라는 뜻을 글 자체로 표현한 것이다. 내 옆에 플라스틱 메카폰이 있다면 머리를 때렸을 것이다. 공부하세요.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10개:

  1. 사실 양산형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그걸로 생활비를 충당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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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포화상태가 되기 전에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몇몇 작가분들 사이에 '다음 유행은 뭘까?'라거나 '이게 유행이 될 거야. 빨랑 써야지!'같은 답답한 대화가 오가죠.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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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양산형으로 먹고 살고, 두 자식까지 대학 잘 보낸 멋진 분이 계십니다. (...) 하지만 출판사와 총판, 대여점이 다같이 양산형만을 찾는다고 해도, 분명 독자들이 그런 양산형을 찾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라고 해도 이미 기존에 안주하고 있는 출판사와 작가, 독자, 대여점들이 있는 이상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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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부단한 자기 연마가 없으면 작가가 아니죠... 솔직히 많이 찔리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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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럴 때 쓰는 말이 있죠

    비겁한 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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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혹시 김화백님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분작품은 양산이면서도 양산이라고 보기 힘든 면이 있는

    전 진지하게 명대사의 홍수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발상이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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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234 // 혹시 제게 하시는 말이라면; 같은 김씨지만 만화가 아닌 소설쪽에서 한 분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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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런 분 많아요. 제가 아는 분만 해도 4명인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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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잘 이해가 안 가서 묻습니다만, 驅逐 대신 構築으로 쓰고 계신 게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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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예. 저는 후자의 구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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