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4일 금요일

글과 작가

많은 작가들이 글 속에 자기 사상을 투영한다. 속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어 글에 담고, 때로는 독자가 설득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다.

마찬가지로 글을 통해 작가를 보는 독자들이 있다. 글 속에서 보이는 사상을 신용하거나 거부하며 호불호를 가린다. 때로 거친 독자들은 글이 곧 작가라는 판단을 내려 칭송이나 비난을 선택한다. 애초에 이를 원하고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그렇지 않은 독자와 작가도 있다.

손이 거북이보다 느린 나로서는 창작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이야기가 많이 남는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대략적 이야기를 원고에 적어 남겨두지만 죽을 때까지 건드리지 못할 글들이 태산이다.

조금 전 이 글들을 살폈다. 어느 때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글도 있고, 당장 쓰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글도 있으며, '아아, 이 녀석은 죽을 때까지 건드릴 수 없겠구나.'라는 판단을 내리게 만든 글도 있다. 그런 저런 생각에 빠져 글을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대중적인 관점에 너무 치우쳤다가 뜻밖의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상적으로 비난받을 글을 뒤로 물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민족주의를 개 쓰레기로 치부하는 글,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환단빠가 된 글, 한반도 옛 역사를 깽판 놓는 글, 기독교 조낸 까는 글, 기독교 조낸 숭상하는 글, 살인과 유괴를 찬양하는 글, 예술을 조롱하는 글, 극렬 마초글, 극렬 페미 글 등, 논란의 여지가 보일 글들을 뒤로 물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야기를 만들 때는 사상이니 뭐니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정작 그것들을 다시 접할 때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것이다.

내게 사상이 있다면, 황희즘이자 박쥐론이다. 이쪽도 옳을 수 있고 저쪽도 옳을 수 있다는 관점을 선호한다. 어느 쪽이든 자기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 수 있어서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이런 사고가 흐트러진 것은 독자를 너무 신경써서가 아닐까 한다. 특히 최근 웹상의 독자 추세는 창작물이 지닌 사상에 대해 너무 몰입하여 작가의 사상과 일치시키는 성향이 크다. 정말 그러한 창작물이 존재하고, 때로 작가 스스로 독자에게 그러한 반응을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난 아니다. 내 이야기가 한 사람만 주인공으로 삼아서 줄기차게 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단 하나의 세계와 시간을 언급하는 것도 아닌데, 특정 사상 하나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런 내가 사상론에 휘말린 손으로 이야기를 분류하는 모습이 걱정되어 포스팅한다. 조심해야지.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15개:

  1.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군요....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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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군요. 태그가 결론이로군요. 딴짓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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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알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레스실버는 아름다운 연애소설을 쓰기 때문에 앗앗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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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황희즘이 촥 와닿는 단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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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포스트모더니즘 이라는 전문용어가 따로있죠..



    유시민 같은분이 대표적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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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태그에서..........OTL

    아니...그래도 KOG CLOSE편 마감 치셨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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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ㅋㅋㅋ 태그 최고군요 ㅠㅂ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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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윽. 도저히 어떤 작품인지 짐작이 안가는 작품이 많군요(..) 연중목록 30편 이외에도...;; 레디님은 코스모스만 끝내고 가셔도 앞으로 백년은 거뜬할 거에요-_-;



    아, 그리고 그거 방금 다봤답니다. 랄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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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박쥐론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항상 이 사람이 옳기도 하고 저 사람이

    옳기도 하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죠-.,-

    주변 친구들은 안 좋게 보지만-.,-

    유유부단하고 친구나 가족이 싸우는데(?)

    편을 안들어준다나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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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안녕하세요 :D 오랜만에 들렸어요 후후; 이글루 구경하다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글이에요 ㅠㅠ 공감 백배 입니다.. 역시 작가님들은 독자님들을 생각하기때문에 여러모로 힘드시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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