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5일 금요일

용들의 전쟁 [일합편] 2

투두둑.

 

어젯밤 바람이 실어온 흙먼지가 이후식의 손길에 의해 흩어졌다. 막사 입구를 덮은 가죽이 단 한 번도 미동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후식은 막사 안 금사희를 보자마자 빙그레 웃었다. 금사희는 좌불처럼 침상에 누운 채 글을 읽던 중이었다.

 

“무엇을 읽고 계십…… 아니, 그건 강호비사(江湖悲史)가 아닙니까.”

 

강호비사는 동방량의 아버지이자 전대 정도맹주였던 맡았던 동방제(東方帝)가 쓴 글이었다. 동방성이 검을 든 이후, 강호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싸움들을 기록한 책이었으니 역사서라고 봐야 옳았다.

 

“저는 이 글이 좋습니다.”

 

금사희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수하를 시켜 각지의 사건들을 수집했던 정보만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 없겠지요. 이 책은 살아있습니다, 이교주.”

 

“살아있다고요?”

 

“그렇지요. 순수합니다. 최근 역사서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간교하고 조잡하지요. 말로는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기전체(紀傳體)라지만, 제깟 것들이 보여주고 싶은 내용만 써놓고 그에 반하는 사(史)는 쏙 빼놓지 않습니까? 생기 없이 수작만 잔뜩 부린 책들보다 이 책이 몇 배 더 낫습니다.”

 

“어떠합니까?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글이 싸움을 싫어합니다. 피에 눈살을 찌푸리고 상처에 신음을 흘립니다.”

 

“읽었다가는 무림을 떠나야겠군요.”

 

이후식의 농담에 금사희가 호탕하게 웃었다. 금사희는 머리맡에 책을 두고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침상에 앉은 저 모습은 어찌 보아도 사도맹을 이끄는 자라 여기기 어려웠다. 도인화(道人畵) 한 폭을 보는 듯하구나! 이후식은 내심 감탄하며 금사희를 바라보았다. 도인이 가볍게 기지개 켰다.

 

“이 싸움이 끝나면 글을 쓸까 합니다.”

 

“글이라고요?”

 

“짧은 글을. 하지만 세월이 담긴 글을 쓸 것입니다. 시작을 알리는 글이며 계속 살아서 걷는 글이겠지요. 저는 글에 없으나 제가 속에 있는 그런 글입니다.”

 

“전대 정도맹주처럼 사서(史書)를 쓰실 겁니까?”

 

“사서라… 허허허.”

 

금사희는 쓰게 웃더니 시가를 읊듯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동방성이 가문의 검을 들어 창천이 혈천으로 바뀌고 속세를 떠난 자들까지 혈호(血湖)에 몸을 담았노라. 중소세력은 거대세력에게 규합되었고, 약육강식의 길만 하늘을 가로지르네.

 

천하가 삼분되니 정과 사와 마로다.

 

정도여!

 

근본을 추구하고 거짓을 멀리하며 시류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이로다. 올곧구나. 작은 수작에 현혹되지 않고 내가 보는 저것이 바로 길임을 깨우치는 이들이로다.

 

세력이 모여 삼십사문 십삼파 육사.

무공과 무기의 변형을 인정하지 않아 사도를 불렀구나.

 

사도여!

 

세상 변화에 순응하며 하늘이 미처 내놓지 못한 길을 찾는 정신이로다. 새롭구나. 하찮은 물건도 하늘의 일부임을 알고 포용하고 가꾸는 자들이로다.

 

세력이 모여 십이문 이십일파 이곡.

무공과 무기를 변화하여 피를 불렀구나.

 

마교여!”

 

콧노래를 부르며 듣던 이후식이 갑자기 참견했다.

 

“민교(民敎)라 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씁니다.”

 

금사희는 딱 잘라 말한 뒤 다시 흥얼거렸다.

 

“수행, 수행, 수행! 행동의 모든 근본이 힘에 있구나. 행동을 위해 힘을 찾고 힘을 찾기 위해 수행하는 정신이로다. 강하다! 하나보다 둘의 힘이 크고 둘보다 열의 힘이 크다는 것을 깨치니 이웃하는 자를 크게 늘어나도다.

 

오로지 일교!

수행을 통한 무공을 공유하고 경쟁하니 큰 힘을 얻는 자들이며 그 힘을 위해 혈풍을 외면치 않는구나.

 

이리 삼분된 천하가 오랜 시간 강호를 들끓게 하나니…….”

 

“…….”

“…….”

 

“끝입니까?”

 

“이번 싸움의 결과를 봐야 뒤를 쓸 것 같습니다. 허허허.”

 

“강호비사를 읽어야겠습니다. 금맹주의 뜻을 좀 더 알고 싶군요.”

 

“이 싸움이 끝나면…….”

 

금사희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시선을 이후식 어깨 뒤로 넘겼다. 입구를 막은 가죽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방향은 정확히 동방량 막사 쪽이었다.

 

“저놈 곁에 붙어있을 생각입니다. 미운 놈이지만 궁금한 게 많은 놈이기도 하지요.”

 

“동방맹주는 큰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교주. 저는 저놈 곁에 붙어서 그 길을 꼭 따라가야겠습니다.”

 

“하하하.”

 

이후식은 웃음과 포권을 함께 던지며 뒷걸음했다. 막사 바깥으로 나오니 찬 공기가 가시고 사방에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승천하는 중이었다.

 

“좋은 날이구나.”

 

이후식은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많아 맑은 날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늘 저편에 있을 또 다른 하늘을 생각하니 두 눈에 살기가 흘렀다.

 

“곧 때가 오겠지.”

 

 

 

둥둥둥!

 

싸움을 기다리는 북소리가 요란했다. 양 진영에서 끊임없이 북을 두드린다. 길게 이어진 금줄이 사람에게 밀려 비틀거렸다. 끊어질 듯 금줄이 늘어질 때마다 누군가 호통을 터뜨린다. 금줄은 원형으로 된 널찍한 공간을 만들었다. 안에는 동방량과 금사희, 그리고 싸움 시작을 알릴 이후식만 있었다.

 

“헛차.”

 

동방량이 목을 좌우로 몇 번 꺾더니 제자리에서 작게 여러 번 도약했다. 공간 반대편에 있던 금사희는 동방량이 몸 푸는 모습을 묵묵히 주시하고 있었다.

 

쿵!

 

이윽고 동방량이 금사희 쪽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금사희도 상체를 기울여 반응했다. 마치 동방량이 걸음으로 암기를 쏘았다고 여기듯 급박한 기울임이었다. 구경꾼들은 둘 움직임이 어떤 뜻을 가졌을지 몰라 마른침을 삼켰다.

 

휘이. 펄럭! 팍! 퍼더득.

 

금줄 안 원형 공간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금사희 옷자락이 바람을 헤치는 소리뿐이었다. 첫 내디딤 이후 동방량은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금사희는 몸을 뒤틀고, 팔을 휘저었다. 마치 동방량 걸음에 장단 맞춰 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투덕.

 

갑자기 동방량도 금사희처럼 몸을 흔들었다. 둘 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멋들어진 춤도 아니라서 구경꾼들이 눈매를 찌푸렸다. 절대자 둘이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던 이유다. 좀 더, 어떻게든 둘 움직임이 지닌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구경꾼들은 금줄에 배를 내밀며 열심히 눈매를 찡그렸다. 그 때까지 투장(鬪場)에 있던 이후식이 천천히 바깥을 향해 걸으며 중얼거렸다.

 

“땅이다.”

 

몇몇 사람들이 이후식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후식은 금줄을 건너 밖으로 나오며 탄식했다.

 

“내 갈 길이 멀구나. 무량검 진격(震擊)도 놀랍거니와 이를 알고 회피하는 공작왕도 무섭다.”

 

말뜻을 눈치 챈 두엇 무인이 급히 신형을 낮췄다. 바닥에 귀를 댄 채 잠시 침묵하다가 기겁하며 상체를 세운다.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립니다. 이것이 진격입니까?”

 

이후식은 ‘진격은 임의로 지은 이름입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하고는 마련된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십수 명 무인들이 앞선 무인들 흉내를 내어 땅에 귀 붙였다. 그 중 내공 약한 몇몇이 불편한 얼굴로 몸을 세우다가 토악질했다.

 

이를 견식 했던 자들이 있었다. 사마 연합이 동방세가를 공격했을 때, 동방량이 바로 이렇게 발을 굴렀다. 내력이 땅을 후려쳐 금사희가 디뎌야 할 발자취를 봉쇄하는 무공인 것이다. 내력을 끌어올림이 땅에서부터 비롯되니, 만약 휘말렸다면 공격도 방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사태에 이르리라. 하지만 금사희는 휘말리지 않았다. 여러 디딤을 미리 준비하여 동방량 울림에 휘말리지 않을 발 디딤을 찾아다닌 것이다.

 

쿵!

 

동방량이 갑작스레 큰 걸음으로 다가섰다. 금사희도 빠르게 일보 나섰다. 진동이 거세지고 땅에 귀를 붙이지 않은 자들마저 토악질한다. 서로 이 보 가까이 다가섰을 때, 금사희가 우권을 당겼다.

 

“갈!”

 

콰! 콰사사!

 

우권을 당김과 동시에 걷어찬 흙덩이들이 동방량을 향해 날아갔다. 팽팽하게 우권을 당긴 채로 금사희가 신형을 날린다. 공중에서 수백 수천 개 알갱이로 흩어진 흙들이 작은 대지가 되어 금사희 발에 밟혔다. 동방량 진격을 무력화하려고 스스로 허공에 땅을 만든 것이다. 둘 거리가 순식간에 공세권으로 들어섰다. 동방량은 호선을 그리듯 검을 세우더니 급전환하여 상대 가슴을 찔렀다.

 

씨아! 학!

 

다들 공작왕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금사희가 내민 우권이 검 끝을 향한다. 마치 검을 권으로 막겠다는 듯. 놀랍게도 정말로 그러했다. 검이 금사희 우권을 뚫고 들어간다. 검신 안쪽까지 주먹이 박힐 때까지 금사희는 여전히 우권을 뻗고 있었다.

 

찌엉!

 

유리가 깨지는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물러선 자는 동방량이었다. 마치 춤을 추듯 검을 허공에서 여러 번 휘젓더니 다섯 보 물러섰다. 수많은 자들이 금사희 팔을 걱정하여 시선을 모았다. 놀랍게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이곳 저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어찌 된 거지?”

 

“조금 전에 검이 주먹을 관통하지 않았어?”

 

“설마 금강불괴가…….”

 

정도맹 무사들 얼굴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금강불괴라니! 창백한 주변 사람들 얼굴을 보던 동방천이 답을 주지 않았다면 정도맹 사기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관통시킨 거다.”

 

“예?”

 

“공작왕은 중지와 약지 사이를 벌려서 그 사이로 검을 지났고 검신을 엄지로 퉁겨 큰 진동을 일으켰다. 조금 전에 아버님이 검무로 진동을 중화시키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아아. 휴 다행…… 헉! 그, 그 순간에 그렇게 했다는 겁니까!”

 

동방천 설명은 정도맹 사기를 ‘조금’ 떨어뜨렸다. 반면 사도맹 사기는 크게 올랐고, 여기저기서 깃발이 흔들리며 북소리가 요란했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불쾌했는지 동방천은 고개를 돌렸다. 찌푸린 눈살을 마주하는 무인 한 명이 동방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검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칠 때 검신을 비틀었다면 손을 자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손이 잘라달라고 가만히 있어주겠느냐?”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날을 좀 더 옆으로 틀거나 회전한다면……. 어찌되든 권은 팔과 붙어있으니 움직임이 검신을 능가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멍청하군. 상대는 금사희다. 임기응변의 변초 만을 둔다면 천하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공작왕이란 말이다. 게다가 그런 변초에 변초를 더하고 상대가 변초에 따라 움직였다고 치자. 그것이 누구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느냐?”

 

“예?”

 

“변초를 취하는 만큼, 정공의 위력이 감쇄된다. 조금 전 공작왕이 대단했던 이유는 정공의 기를 사도의 기로 맞서서 물리쳤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님께서 변초를 썼다면 좀 더 맞서기 쉬워졌겠지. 변초에 변초라…….”

 

“아!”

 

동방천이 말하는 의미를 깨달은 자가 손뼉을 쳤다.

 

“사도의 무공에 휩쓸리는 꼴이겠군요!”

 

동방천의 시선은 이미 금줄 안으로 넘어가 있었다.

 

쐐애액!

 

검이 바람을 일으킨다. 흙먼지가 솟아오르며 뚜렷한 바람 길을 그리고 있다. 동방량과 금사희는 속에서 수를 나누었다. 정도맹 무사들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승세가 정도맹에게 있다고 여긴 두 가지 이유가 모두 무너지는 듯했다. 첫째 이유는 정도맹 편에 절대무적인 ‘무량검 동방량’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 이유는 권이 제 아무리 잘났어도 검을 이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동방량이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보였고, 금사희는 주먹질만 하고 있지 않았다. 옷차림이 하도 정갈해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공작왕 금사희는 사도맹 대표가 아닌가! 찢어진 옷자락이 연검처럼 날카롭게 동방량 숨통을 노렸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마령화 투명사(透明絲)처럼 팽팽히 머물러 움직임을 방해한다.

 

“피다!”

 

누군가 외쳤다. 동방량 어깨에 핏물이 배였다. 금사희의 왼손 약지에도 핏물이 배였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어느 순간에 금사희가 손톱을 뽑아 날렸던 것이다. 몇 합을 겨루었는지 모를 어느 순간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무기를 가진 자는 동방량 쪽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무기가 되는 금사희에 비해 동방량은 그저 검이라는 또 하나의 몸뚱이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구우우!

 

꽝!

 

턱을 칠 듯 솟구치던 발이 동방량 정수리를 노리고 추락했다. 날카로운 검 끝은 틈새를 노려 사도맹주 심장으로 쏘아지던 중이었다. 정수리를 관통할 듯 추락한 발뒤꿈치가 애꿎은 땅바닥을 부쉈다. 심장으로 뻗었던 검 끝이 상대 정강이에 닿기 직전이었다. 검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아가고, 팔다리가 어떻게 휘둘러지는 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모두 다 눈꺼풀을 껌벅이는 것조차 아쉬워서 흰자위에 실핏줄을 띄었다.

 

타탓!

 

금사희는 정강이를 보호하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검은 땅을 퉁겨 다시 허공으로 솟는가싶더니 주인 등 뒤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동시에 동방량이 외쳤다.

 

“허야!”

 

경호성이 젊은이 것 못지않게 맑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금사희 조차 눈을 의심했다. 검이 세상을 가르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한 폭 그림이며, 그림이 그려진 화폭을 검이 찢어버리는 것처럼.

 

지이이이!

 

“핫!”

 

짜아!

 

수직세로 내리치는 일검은 찢겨진 공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마치 굵직한 암흑 몽둥이로 내리치는 것 같다. 금사희는 저 위세를 결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짙은 어둠에 싸인 검기 때문에 뒤로 회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암흑 검신은 금줄을 넘어설 정도로 길 것이다. 흑기(黑氣)가 위세 강하여 측면 회피세 밖에는 길이 없는데, 좌우측 생로 모두가 묘하게 간지러웠다. 뭔가 숨겨져 있다. 아니, 숨겨진 것이 아니라 동방량 일검이 그 모두를 휘감고 있구나! 금사희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혀차!”

 

이번에는 금사희의 외침. 찰나의 순간에 금사희는 일검의 정체를 알았다. 땅이 알려줬다. 그것은 거대한 검이었고, 열 명의 장정이 나란히 서 있는 넓이를 검신이 모두 감당할 크기였다. 검이 아직 반도 내리쳐지지 않았는데 땅이 비명을 지른다. 땅에서 느껴지는 파괴력을 전달받은 금사희가 그 위세에서 검의 크기를 계산했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기의 한계를 염두에 두니 가장 안전한 길은 정면이었다. 금사희는 검이 후려치는 앞을 향해 내달렸다. 세상이 찢어지는 검의 외침과 다르게 금사희의 움직임엔 소리가 없었다. 누군가 마음속으로 외쳤다. 무성신법! 소리를 내었다면 무성신법의 ㅁ자도 꺼내지 못할 짧은 순간이었다.

 

콰카카카카카!

 

땅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금사희의 오른손 검지가 동방량의 등줄기를 눌렀다. 금사희는 동방량의 뒤에서 낮게 말했다.

 

“앞으로 오초 후에 네 목숨은 없다.”

 

“미안하다. 혈을 바꿨다.”

 

“나도 안다.”

 

동방량이 몸을 돌려 금사희를 마주했다. 둘은 껄껄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지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북채를 든 채 입을 벌리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하자. 북을 울려라.”

 

“예?”

 

북치기가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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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언급된 금사희와 이후식의 대화는 어떻게든 살려야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역시 분량 관계 상 삭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하나 욕심을 부렸다가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게 뻔하니까요.

 

그래도 용들의 전쟁 전체 내용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웹 연재를 하게되면 반드시 살려야 할 장면이죠.

 

책에서 이미 짐작하셨던 분도 계시겠지만, 용들의 전쟁 서장은 전지적 시점에서의 언급이 아닙니다. 어느 누군가의, 또는 그저 역사적 기록에서의 언급으로 간략하게 기술하여 본문 진행과 엇나가는 부분이 많도록 유도했습니다. 서장의 일반적 시각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가 용들의 전쟁 '쟁탈편'과 '불꽃편'이거든요. 아무래도 그것마저 온전하게 보여주지는 못할 듯합니다. 막당과 곽성린, 녹지현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요.

 

지금 올린 본문은 공작왕 금사희가 강호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기술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금사희의 역사서 수정판이 서장의 내용입니다. 6권에서는 나오지 않겠지만, 자연과의 싸움에 들어간 동방량 옆에 항상 금사희가 붙어 있으면서 사서를 쓰는 데 열중합니다. 특히 동방량의 임종시, 금사희도 극한의 청경에 이르러 같은 꿈 속에 들어갑니다. 금사희는 동방량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게 되지만, 정작 동방량이 왜 적룡에게 돌을 던지고 탄식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금사희는 그것을 동방량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후 벌어질 동방가 자식들의 이야기는 원하는대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부분을 지우는 만큼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아쉬운 건 마령화의 과거와 관련한 이야기를 모두 삭제하여 구천대제 권가연은 그저 미친년(-_-;;) 정도로 결론짓게 된다는 부분입니다.(사실 이 부분은 조금 다행입니다. 저렇게 맛탱이가 가기에는 다소 부족한 과거였거든요. 웹 연재를 새로 하게되면 권가연의 과거를 재수정하여 일심법사와 연동시킬 생각입니다.)

 

일합편의 뒤이은 내용은 좀 더 조각조각 뜯어보고서 괜찮겠다싶으면 나머지도 올리겠습니다. -ㅁ-/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7개:

  1. 미안하다. 오래되어 까먹었다.

    권가연이 미친년이냐.........훗훗-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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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런데 '앞으로 오초 후에' 에서, 초秒가 무협에서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시간 단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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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엘 - 2008/12/05 07:38
    원래 설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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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itsia - 2008/12/06 13:25
    맨 처음 금사희가 작혈왕을 죽일 때부터 뭔가 꼬인 기분이었어요. 나중에 수정판을 쓰면 금사희의 저 무공을 폐해야겠습니닥.(가끔 왜 썼을까 싶어요. -ㅁ-;;)



    근데 그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초 단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한자어라서 안도했던 것 같은데, 잇시아님 말씀대로 무협에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안 써야짓.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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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itsia - 2008/12/06 13:25
    itsia님의 덧글을 보고 '다섯 초식' 이란 의미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가, 가 들어가면 애초에 금사희와 동방량의 '다섯번의 초식'이란 게 순식간에 지나갈 그럴 만한 것이 아닐 것 같았단 말이지. (킬킬) 그렇다고 시간의 작은 단위 중에선 떠오르는게 '일각' 이라던가, '반각' 이라던가, ...아, '반의반의반의반각 후에 넌 죽는다' 라던가, 는 어때? ㅇㅅㅇ

    그냥 '조금 뒤면' 재미없어보여서.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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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가엘 - 2008/12/08 19:58
    그렇다면 '다섯 호흡'이라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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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itsia - 2008/12/06 13:25
    다섯 호흡 좋은데요?! >ㅁ< 감사합니다!



    하지만, 수정판에서 북두신권은 안 넣을 거예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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