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5일 월요일

The Oracle 1회

The Oracle 1회

1. 금가루

인상이파는 주류 밀거래, 자릿세 받기, 장물 밀거래, 윤락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중 윤락업을 제외하고-그것도 자세히 조사하면 제외라고 하기 어렵지만- 모든 사업이 불법적이었다. 인천, 그것도 남구, 거기다 주안2동이라는 작은 영역에서 4개파가 세력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인상이파였다. ‘IS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차리고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어 터를 잡고 있었는데, 사장은 양인상이라는 자였다.

“인상이형 어디 갔어요, 오전무님?”

60평의 널찍한 사무실에 7개의 책상과 7개의 의자와 7개의 컴퓨터만 딸랑 놓여져 있기 때문에, 강채성 부장은 늘 불만이다. 내년이면 30세가 되는 강채성은 양인상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고 인상이파에서 가장 덩치가 컸다. 또한 ‘진정한 인상파’라는 뒷별명이 남겨질 만큼 인상적인 용모를 하고 있었다. 계란형 얼굴이었는데 뒤집어진 계란이라서 보기에 괴로웠으며, 이목구비가 심하게 뚜렷해서 두려웠다.
 
외모만큼 성격도 과격한 편이라서 힘을 쓰는 일을 자주 맡았고, ‘적당한 구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양인상이 아랫사람에게 가장 큰 불쾌감을 느낄 때는 ‘채성이 네가 알아서 해.’라고 명령한다. 강채성이 잘못의 원흉일 때도 같은 명령을 내린다. 강채성은 스스로에게도 적당한 형벌을 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상이파의 멤버들 사이에서 인기투표를 한다면 양인상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사람이 강채성이었다.

“지석이가 오늘이잖아요. 지석이 만나러 갔어요.”

“벌써요? 같이 가려고 차도 대기시켰는데…….”

강채성이 깍듯하게 대하는 사람은 오록현 상무였다. 21세의 어린 나이고, 조직에 들어온 것도 늦은 후배지만 강채성은 항상 오록현을 형님처럼 모셨다. 그 이유는 양인상이 오록현을 자신의 오른팔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결정되는 순간부터 강채성은 오록현을 형식적 윗사람으로 모시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어르신으로 모셨다. 오록현도 나름대로 강채성을 형님처럼 모시며 깍듯하게 대했다.

“운동도 할 겸 걸어가신대요.”

“거기가 어딘데 걸어간답니까! 한참 걸릴 텐데.”

강채성의 고함에 오록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사무실이 쉬는 날이었다. 일요일에도 쉬는 날이 없고 국경일도 마찬가지였지만, 오늘같은 날은 예외였다. 4년이나 함께 동고동락했던 고지석 팀장이 외지로 발령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업무상 차질이 많아졌으나-고지석이 맡고 있는 일을 넘겨줄 만큼 믿을만한 녀석이 없었다- 모두가 환영했다.

26세의 고지석은 1주일 전에 결혼했고, 부인이 된 여자가 사퇴를 권고했다. 고지석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2일 전 양인상에게 조심스레 뜻을 밝혔다. 그러자 양인상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포스트잇 한 장을 고지석의 얼굴로 집어던지며 “이런 개새끼! 갈테면 가 봐!”라고 고함쳤다. 싸늘한 한기가 사무실을 적실 때, 양인상은 곧장 밖으로 나가서 2시간만에 돌아왔다.

그 때까지 양인상의 책상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고지석의 안면에 또 종잇장이 날아들었다. 문서 한장과 통장이었다. 양인상은 고지석에게 수퍼마켓 문서 하나와 통장을 줬다. 사퇴는 안되니 외부지사를 운영하라는 엉뚱한 소리와 함께. 물론 말이 그렇지 수퍼마켓과 3천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퇴직금으로 준 것이다. 오늘은 그 수퍼마켓에 물건을 들여놓는 날이었다.

“이미 도착하셨을 거예요. 상희가 같이 갔으니까 택시 탔을 걸요? 걔 오늘 하이힐 신었거든요.”

“아, 그럼 다행이지만……. 상희가 오늘은 어쩐 일로 일찍 왔대요?”

“제가 일찍 온다고 했었거든요.”

“어어. 상희가 아직도 오전무님 좋아해요? 얘가 요즘 철이 들었나? 순정파가 됐네.”

“처음부터 저를 좋아했대요. 다른 놈팡이는 제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만난 거라나?”

“허허.”

강채성은 노인처럼 너털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컴퓨터 전원을 켠 채 잠시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화면이 켜지자 키보드만한 손으로 마우스를 쥐었다. 그리고 커서를 시작Bar에 가져가더니 시스템 종료를 클릭하고 확인을 눌렀다. 자신이 컴퓨터를 켰다 껐다는 데에 큰 만족을 느낀 듯 강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강채성은 오록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오전무님은 왜 안가셨어요?”

“좀 이따가 가려고요. 몸이 안 좋은 지 자꾸 헛것이 보이네요.”

그 순간 강채성의 안색이 굳었다.

“뭐가 보였는데요?”

“금가루가 떨어지고 피가 폭포처럼 흘렀어요.”

“예?”

“말하기가 참……. 아무튼 아까 그래서 차에 치일 뻔 했어요. 좀 괜찮아지면 갈 테니까 채성이형 먼저 가세요.”

강채성은 불안한 듯 오록현의 미소를 잠시 응시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사무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오록현의 얼굴을 주시하던 강채성은 뒤늦게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밖으로 나간 강채성이 다시 들어왔을 때는 자신의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화환이 들려져 있었다. 오록현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뭐예요?”

“며칠 째 계속 밖에 있기에 누가 버린 것 같아서 주워왔어요. 여기에 놓으면 어울리겠죠?”

“네. 거기엔 그게 필요했어요.”

오록현이 웃음을 참고 간신히 칭찬했다. 강채성은 만족한 듯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손바닥을 털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그제야 오록현은 강채성이 들어오기 전의 자세로 돌아갔다. 키보드를 세워 모니터에 걸친 채 엎어진 것이다.

“아아, 요즘 왜 이러지? 할 일 많은데.”

오록현은 자신의 이런 상태가 싫었다. 회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비록 불법이었지만, 일에 대해 자세히 알게된 이후로 오록현은 자신이 나쁜 짓을 한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오록현은 양인상을 몽상가로 치부했고, 그래서 존경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양인상의 몽상이 현실이 되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 * *

“하. 웃음 밖에 안 나오네.”

양인상에게 들었던 첫마디였다. 오록현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오록현이 12세부터 16세가 되는 5년 간 소매치기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다. 손재주는 별로였으나 타겟을 잡는 능력과 일을 벌이는 장소를 잘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인상을 만난 날만큼은 예외였다. 이전과 다른 느낌을 주는 자였으나 ‘저 사람의 주머니는 꼭 털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양인상을 미행하다가 최적의 상황을 선택하여 지갑을 슬그머니 빼내는데, 양인상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더니 중얼거렸다. 한숨과 함께 웃음 밖에 안 나온다는 말을. 그리고 양인상은 오록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아냐?”

“누군데요?”

오록현은 겁에 질렸으면서도 도전적으로 물었다. 양인상의 지갑을 뒤에 감춘 채. 양인상은 곧 또 하나의 지갑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나도 너랑 같은 직업이거든. 게다가 여긴 내 시장이거든.”

“어, 몰랐어요.”

“너 여기서 언제부터 했냐?”

“처음이에요, 이 동네는.”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처음이에요. 한 번만 봐주세요, 선배님.”

1회 끝 ㅇㅅㅇ!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잡담: 갑자기 이글루가 휴지통이 되어간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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