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어른들의 세계

2008.09.15: 서울귀환 (중!) (머잖아 엔트로 2차 전직하실 나무님 댁에서 트랙백)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아니 그저께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인식만큼은 확실하게 박혀있었다.

명절 때 문중 어른을 만나면 싫은 소리 잔뜩 듣는다는 거.

어릴 때 수도 없이 들었던 "공부 잘 하니?" "곧 시험이겠네." "이번 학력고사 잘 봐라. 자신 있니?" "너 어느 대학 칠 거냐?" 는 내가 빨리 어른이 되어 저런 소리 안 듣고 살 날을 기원하게 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직업 얘기가 나오고 결혼 얘기가 나오며 한나라당 루트와 좌빨씨빨 얘기가 나온다. 이쯤 되면 어른이 되어도 이런 과정을 벗어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영원히 변치않을 친척들과의 대화인 것이다.

그래서 자포자기했다. 그냥 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지.

여기까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자, 다음 버전이 궁금하지 않은가!

어제 새벽 첫차 타고 제사지내러 갔다. 이제는 훌쩍 커버려서 대학도 졸업한 조카가 있고 올해 수능을 보는 조카도 있으며,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푹 빠져 컴퓨터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초등학교 5학년 조카(전설의 초딩을 직접 뵙는 순간, 대단히 황공했다)도 있다.

조상님과의 퍼스트 임팩트를 위해(명절 때 우리 가문은 제사를 두 군데서 순차적으로 지낸다. 한쪽은 가문 최 연장자이신 당숙부님 댁이고, 또 한쪽은 문중 직계인 사촌큰형 댁이다.) 사촌 작은형, 사촌 큰형의 장남과 함께 당숙부님 댁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사촌 작은형과 국내 부동산 실태에 대하여 몇 마디 주고 받았다. 그리고 현재 고3인 내 귀여운 조카를 붙들고 이것저것 물었다.

"넌 특별히 좋아하는 취미 있니?"
"없어요."
"게임 좋아해?"
"안 해요."
"어떤 사이트 자주 가?"
"인터넷 안 해요."
"어떤 스포츠 좋아해?"
"안 좋아해요."
"여자친구 있어?"
"없어요."
"평소에 뭐 하고 놀아?"
"그냥 저냥요."
"......"
"......"
"이번에 너 수능이지? 무슨 과 생각하고 있어?"
"......"

아악! 씨발! 말하고 말았어! 난 이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아니란 말야! 이건 정말 아니라고! 나는 그저 내 귀여운 조카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흑흑. 위 대화를 보면 얘가 대단히 무뚝뚝한 아이일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호감도를 지닌 채 나를 상대하는 애다. 그저 등교하고 공부하고 하교하고 잠자고 다시 등교하는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할만큼 특별한 뭔가를 찾기가 어려웠던 거다.

서럽다. 조카와 대화할 코드가 그저 공부 뿐이라니. 막 불안해졌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중인 얘 누나한테 정말로 결혼 얘기라도 꺼내는 거 아냐?(그래서 세컨드 임팩트 때 최대한 말조심했다. ;ㅁ;)

엉엉. 이런 어른 되기 싫었다고... ㅠ_ㅜ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추잡: 근데 초등학교5학년 조카(얘는 친형 아들이어서 직계 조카다)는 카스를 한다는 이유로 더 말이 잘 통했다. 문제는 이 녀석의 카스 수준이 좀 수상했다는 거. 문중 어른들이 얘가 컴퓨터하는 걸 막아서 대단히 아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가끔씩 그걸 몸으로 표출하며 꺼진 컴퓨터로 다가가 자판을 매만졌다.

자판 누르는 손놀림이 피아니스트야!!!! 이건 헤드샷 원킬을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잖아?!

얘는 또 얘대로 무서웠다. ;ㅅ;

댓글 34개:

  1. 푸하하하 ;ㅁ; 더러운 삼촌이 되었다 ;ㅁ;bbb

    wasd 키가 닳고 있어 ㅠㅠb

    태그가 더 멋지군요. ㅠㅁ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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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목만 보고 야한거라고 생각한 저는 쓰레기인가효....







    핫핫핫

    전 울집이 첫째인지라, 장녀인 제가 슬슬 결혼 압박이 들어옵니다..ㅇ>-<

    안한다니까;ㅁ; 흑흑

    그런 거 안물어봤으면 좋겠어요..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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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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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는 제 귀여운 조카를 데리고 말했습니다.



    "엄마, 해봐.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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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음.. 예전에 이대미대 입시 앞두고 있는 아가씨들 넷한테 합격하면 뭐하고 싶냐고 물었었던게 생각나는군요.



    네명 다 입모아서 "다 상관없으니 붙기만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던...



    연애는? 알바는? 여행은? 쇼핑은? 다 어디루 간건가요... ; ㅁ ;

    참 재미있게 쓰셨는데 실상은 너무 가슴아픈 이야기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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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트랙백타고 왔습니다.

    다음에 만나시면 인류의 관심사인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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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어른이라니! 내가 어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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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자, 그리고 어느새 9월의 절반이 지나갔는데...(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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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저런... ㅠ_- 저는 요번 추석때 4살짜리와 초3짜리 사촌동생들의 습격을 몸으로 받아내고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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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더러운 삼촌이 되셨군요(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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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키보드가 닳고있어.. 무섭네요..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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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피, 피아니스트...;; 저는 처음 동아리 후배들에게 끌려가서 서든어택을 잡은 후 두 시간만에 절망하고 나왔습니다.... 41킬 92데스가 뭐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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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몇년 지나면 나도 이렇게 되는 건가...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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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저희집은 종손이 학생인지라 나이가 서른을 바라보는데도 결혼얘기는 의도적으로 안한거 같네요. 뭐. 애인있는 사촌언니한테 제일먼저 하는거 아니냐고 놀리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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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더러운 삼촌이 되신것을 축하드리면서...음...





    지금부터 피화술같은거라도 익히셔야하지 않을지... 불타는 성전 대신 불타는 운명이 막 다가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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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태그가 본론이군요 ;;;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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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아뇨, 전 레디오스님이 9월중에 내실거라는 것에 대해서 단 한 치의 의심도 가진적이 없습니다! 전 믿습니다!







    그저 올해가 아닐 뿐이죠. 사실 그래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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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경험해 보라고요! ;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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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근데 정말 할 말이 없어요. 내년 쯤에 진짜로 결혼 안 하냐고 물어볼 거 같아서 무서워요. 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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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내가 악마면 넌 얌마다. 8일후 네가 저지른 짓을 보고 반성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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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10년 전 저도 그런 거 해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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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그러고보니 옛날 입시미술학원에서 학생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로지 구성데생구성데생 야, 단계 틀렸어! 줄리앙이 칼에 찔려 죽었지 모가지가 비틀어져 죽었냐! 다시 그려! 등등등... -_-



    흑흑. 저도 옛날에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하니 시간이 아까워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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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아...



    "너 뭐 좋아해?"

    "그냥 이것저것요."

    "특별하게 좋아하는 거 있어?"

    "사주시게요?"

    "뭐 우리 귀여운 조카가......"

    "로마네 콩티에 캐비어를 안주 삼아..."

    "잠깐 따라나와."



    오오! 대화가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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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게다가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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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자, 그리고 어느새 분신정모까지 잡혀 버렸는데...(진짜 그 날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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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그게 행복할 때입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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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네. 어릴 때 걔들 목마 엄청 태워주고 그림도 막 그려줬는데 하나도 기억 못해요. 이 더러운 조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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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우리 정민이, 게임 잘 하나 보네?"

    "뭐 대충 원샷 원킬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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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1킬 492데스보다야 훨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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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현실도피하지 마세요. 이미 더러운 삼촌 타이틀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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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그쵸?! 이제는 명절 때가 되면 손아랫 친족보다 손위 친족을 보는 게 더 편해지고 있어요.(이명박 얘기만 안 하면) 저도 울 사촌형을 놀리는 재미에 제사 지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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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아, 그 부분은 레이븐님의 친구분께 도움받아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 않을... 아니라고요! 9월 중에 낼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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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오호호호호호호호(웃고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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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냅레디! 본론이자,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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