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일 금요일

한국 대중 소설계의 가장 큰 타격

대여 시장 중심으로 흘렀던 사건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먼저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꽤 많은 사람들이 '대여점 없으면 출판계가 망한다'라거나 '대여점이 망해야 출판계가 산다'라는 말을 한다. '대여점이 없어지면'이라는 명제가 화두에 오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중 소설계에서 대여 시장이 없었던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댁들 마음대로 망한다 흥한다 하지 말아라. 대여점 문제와 관련한 포스팅 때 밝혔던 내용이지만, 현재의 출판계 문제가 대여점 때문인 건 아니다.

그런 고로 저 주장은 둘 다 틀리다.

지금 상황에서 대여점이 망해봤자 출판계가 갑자기 살아날 리 없다. 또한 출판계가 망할 리도 없다. 만약 대여 시장이 무너진다면, 그를 대체할 동인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여 시장의 양산형을 욕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동인 시장의 작품들을 욕하는 것으로 바뀔 뿐이다. 동인 시장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소규모 출판사도 생길 수 있다. 희박하긴 해도 E북 쪽이 대여 시장의 대체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어느 쪽이건 양산형이라 불렀던 수준의 글들이 반드시 독자의 손에 쥐어진다. 만약 동인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좀 더 재밌어지겠지. 대중적인 커트라인을 개인이 정하게 될 테니까, 야설급 이상의 창작물을 손쉽게 구할 가능성이 높다.(단체의 자정능력보다 개인의 자정능력이 더 막장이다)

뭐 그런 저런 문제를 떠나서...

몇십 년에 걸쳐 기껏 만든 시스템을 왜 뽀개냐. -_-

너무 심할 정도로 대여 시장 쪽에 치우쳐서 현재의 대중창작계가 휘청거리는 건 사실이다. 그 한계에 이르러 NT라는 조약돌이 서점 시장의 저울그릇에 떨어졌고, 시드노벨, 아키타입, 젬스노벨 등이 연이어 떨어지고 있다. 지금은 대여 시장과 서점 시장이 다시 균형을 잡아가는 과도기다. 혹자는 조만간 여러 출판사들이 떼거지로 라이트 노벨계에 덤벼들어서 시장바닥을 개판으로 만들 것이라고 걱정한다. 물론 그런 과정이야 잠깐 동안 생기겠지만 말이지. 서점 시장을 대여 시장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준치 미달의 글은 독자들이 안 산다. 서점 시장이 점점 확산되다보면 랩핑질도 끝난다.(이건 견본품-내용을 볼 수 있도록 곁에 배치하는 책-의 등장과 같은 맥락이다. 랩핑이 되어 있어도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동일 서적이 옆에 배치되는 것은 랩핑질의 종말을 의미한다) 서점시장이라는 것은 양산화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시장이다. 잠시 정신 없을 때 잠깐 그런 일이 벌어지긴 하겠으나 오래 못간다.

어? 나 지금 딴 소리를 하고 있다. -ㅁ-;;

아무튼 다시 타격 얘기로 돌아가자. -_-

대중 소설계의 가장 커다란 타격은...

창작물의 장편화다. 통신망에서 연재되는 글들이 대부분 할 말 다 쓰는 순간 연재물이어서 장편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들을 중심으로 출간된 것이 현재까지 웹 연재 우선 컨택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공모전이나 투고 등의 방식으로 컨택되고 출간하는 게 맞다. 연재작 컨택의 방식은 작품뿐 아니라 작가에게도 피해를 주는 위험한 방식이다.

생각해보라. 이제 처음 글을 쓰는 신인이 토지급 대하소설부터 시작한다. 단편이라고는 한 번도 쓰지 못한 누군가가 10회 연재분 인기 얻어서 10권 넘게 줄기차게 달린다. 이쯤 되면 하늘에게 선택받은 존재가 아닌 이상 멀쩡하게 글쓰기 힘들다. 중간에 지쳐서 뻗은 '역량 있을 신인작가'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무려 10년 가까이 지속되는 '연재 컨택+대여 중심 시장'이 얼마나 많은 신인을 사장시켰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갔으면 지금쯤 눈이 뒤집어질 명작을 썼을 누군가가, 108미터 첫 계단을 보고 한숨쉬며 발길 돌린 어느 날이 있었을 지 모른다.

난 이것이 우리나라 대중 소설계의 가장 커다란 타격이라고 본다. 이 문제만 없었다면 국내 대중창작계는 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이야기를 다루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초 장편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문제도 있다. '1권에 보여줘야 한다'라는 관대함이 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1권으로 불타오르고 재까지 되는 게 정상이다. 그 위력을 믿게끔 만드는 '네임밸류'가 형성되어 '좀 더 불타오르기 위해' 그 작가의 장편에 손을 대는 것이 난 제대로 된 수순이라고 본다. 내가 빡 세게 말한 감도 있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너무 무르다. 작가를 까대는 건 '나쁜 돼지'지만 작품에 대해서는 좀 더 다그쳐야 한다. 그러니 내가 버티지.

계속 서점 시장에 무게가 실려 대여 시장과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대여 시장의 네임밸류와 서점 시장의 투고작들이 서로 엮이면서 좀 더 다양한 종의 책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6개:

  1. '대여 시장의 네임밸류와 서점 시장의 투고작들이 서로 엮이면서 좀 더 다양한 종의 책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부분. 지금만 보면 정말 꿈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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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러 사람들이 여러방법으로 대안을 가지고 진행중이다라는 것은 책을 읽는 이들이 설 자리가 늘어간다는 다른 말이기에 기쁩니다. 전 시간이 흐르면 독자 스스로가 변한다고 생각하는 낙관론자인지라 시장의 흐름이나 그러한 것들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생계에 관련된 일인지라 쉽게 말을 하기가 힘드네요.^^



    글을 읽을때 장편으로 가며 글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 자주 보게되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레디오스님꼐서 위에서 말씀하신 '우리나라 독자들은 너무 무르다.;라고 하신것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장편의 장르소설에 길들여진 독자들이 너무 무르다라고 표현하신걸테지만, 제또래의 독자들은 상당히 독한면이 많더라구요.^^;;



    좋은글 보고 갑니다.

    ps.무심코 추천이 어디있나 찾아보았네요..(..)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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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장편화. 문제죠 -_-; 요즘은 예전보단 좀 줄어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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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작가를 까대는 건 '나쁜 돼지'지만 작품에 대해서는 좀 더 다그쳐야 한다.'

    이 문장만 읽고 순간적으로 연중을 자주하시는 어느 작가분이 떠올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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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rackback from: 한국에서의 라이트노벨 - 추가편 및 현재 상황
    한국에서의 라이트노벨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동아리 회지에 낼 용도였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젬스노벨이 나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제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라인이 아니라... (먼산) 아무튼, 젬스노벨의 탄생과 함께 이후 한국 라노베 시장에 대해 약간의 예측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전 글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잠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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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trackback from: 대중소설의 가장 큰 태클
    한국 대중 소설계의 가장 큰 타격 내가 단편을 싫어하는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보면 어떤가, 물량은 많다 (솔직히 소비자의 숫자가 가뜩이나 적은 우리나라) 결과적으로 보면 선택할 여지가 많은 독자입장에서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독일이든 내키는대로 꼴아보면 되고 좀 오래오래즐기면서 봤으면 하는 소설이라면 당연히 장편을 선호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뭐 우리나라 대중소설에서 현재의 장편구도를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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