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0일 월요일

가슴이 내려앉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가끔 있다.

출판사에서 글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았는데, 내릴 때가 다 되어서 잠을 깼다. 종합운동장 역이었다. 내가 내릴 역은 그 다음 역인 선학역이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됐구나 '싶어서 가방을 챙기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잠시 멍한 정신으로 있다가 또 고개를 떨궜다. 꾸벅 한 번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전동차는 역에 정차하고 있는데 문이 닫혀있다. 내가 두 번째로 졸기 전에도 전동차는 멈춰 있었고, 깼을 때도 멈춰있다. 그리고 문이 열렸던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의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다. 마치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난 지금 꿈 속에 있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하필 예전에 지하철과 관련된 공포물을 썼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무척 신경쓰였다. 나 지금 그런 글 썼다고 벌받는 건가!)

그 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저는 이 전동차의 기장입니다. 현재 이 구간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여 수습을 위해 잠시 전동차 운행을 중지하고 있습니다. 수습이 끝나는대로 출발할 예정이니 승객 여러분께 양해 말씀 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이 때 내 가슴이 내려앉았다. 누군가가 달리는 전동차에 충돌한 것이다. 오랜 시간 전동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중에 몇 번 더 기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목소리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결국 승객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비상탈출 밸브를 이용하여 문을 열었다. 그 문을 통해 사람들이 나가던 도중, 전동차가 '덜컹!'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급히 들어왔다.

하지만 전동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사람들, 그리고 나도 밖으로 나왔다. 플랫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전동차는 거의 끝까지 이동한 상태였고, 사상자는 중간 쯤에서 사고가 난 것 같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이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동차를 움직이지 못하는 듯 했다.(만약 살아있는데 전동차가 이동하면... 으겍)

난 묵묵히 역을 나와 한 정거장 걸었다. 자살했을까? 기분이 울적해졌다. 하늘도 울적하고 나도 울적해져서 그저 걷기만 했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발을 멈췄다.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처 딛지 못한 오른발을 조심스레 들어봤다. 오 마이 갓. 내 발바닥 아래 커다란 달팽이 한 마리가 목을 쭉 빼고 기어가고 있었다. 하마터면 아그작하고 밟아 죽일뻔 했었던 거다. 이 때 또 한 번 내 가슴이 내려앉았다.

패닉의 달팽이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죽지 않으셨기를 바라지만, 만약 사망하셨다면 고인의 명복을 빈다. ㅠ_ㅜ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9개:

  1. 전동차는 거의 끝까지 이동했는데 사고는 중간 지점... 안타깝네요.

    저는 제 친구가 트럭에 치이는 걸 라이브로 봤지요. 트럭 기사가 브레이크 안 밟았으면 중환자실 3개월로는 안 끝났을 거에요. -_-;

    답글삭제
  2. 아이고... ㅠ_ㅠ 죽음은 정말 사람하고가까워요ㅠㅠ

    답글삭제
  3. 초중반부에 꿈꾼 거 쓰시는 건가 했습니다. 맙소사.....

    답글삭제
  4. 안타까운 일이군요. 이런 사상사고는 대부분 사고라기보다는 작정하고 뛰어드는 경우가 많으니... 에휴. 사고를 한 번 목격한 기관사분은 거의 한달동안은 운전대 마스콘 핸들도 못 잡는다고 들었습니다.



    ....글 내용하고는 별도로, 그 상황에서 전동차 강제개폐 밸브 열면 진짜 수습하기 어려워지는데 말입니다(....) 전동차는 일반 기차처럼 압축공기로 제동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출입문을 열고닫는 건 압축공기를 동력으로 하지요. 밸브가 뭐냐에 따라 다르지만 - 그 문만 열리는 것과 제동관 내 공기를 다 빼버리는 것 두가지 종류가 있음 - 후자라면 아마 그 전동차 구난차가 와서 기지까지 끌고갔을거같네요...;;

    가뜩이나 사상사고가 플랫폼 중앙에서 발생했으면 지하구간의 경우 심하게 꼬였을 것 같습니다만, 중간에서 났는데 끝까지 밀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 급제동을 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서겠죠. 추측으로는 선학 이남의 다른 역에서 사상사고가 나서 그 방면 구간 전체를 통제실에서 통행제어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답글삭제
  5. 우우...정밀 기분이 이상야릇..묘하시겠네요.

    저도 첫 글을 접하곤 소설쓰시는 줄 알았어요. 꿈이야기나..

    답글삭제
  6. 정말로 맙소사..라고밖에;;

    무서워요 지하철..

    답글삭제
  7.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는다.



    이거 이양하님의 나무를 표절- 한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답글삭제
  8. 마로// 으. 끔찍해. ㅠ_ㅜ



    불량먹보// 살면서 한 두 번은 접할 수 밖에 없겠죠.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울적해지더라고요.



    역설// 네. 맙소사.



    박군//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게 기관사님의 음성이었어요. 얼마나 놀랐을까요? 한 달이 아니라 석 달 열흘을 못 잡아도 이해가 될 듯 싶어요. 으으... 마침 인천지하철에서 일하는 녀석이 있었는데, 듣기로는 석달 가량 그 일과 관련하여 고생할 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생각보다 지하철의 구조가 복잡한가 봐요.



    아르트레스// 다시 읽어보니 그렇네요. 큭.



    secreta// 갑자기 무서워졌죠. 흑.



    jin// 엣. 조그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이양하님의 나무라는 작품도 모르지만,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는다.'라는 문장도 기억이 안나요. 으흑. 제가 쓴 글에 그런 문장이 있었는데 기억을 못하는 거면 정말 창피한데...)

    답글삭제
  9. ...그거... 저기, 왠 여자분이 뛰어드셨다가 중태상태로 실려갔다는 가장 최근 기사.......아닌가요...? 그 후 일은 모르지만 생명이 위험하다고......

    ...



    그나저나, 레디님은 어쩜 지하철에서 그리 많은 일을 겪으시나요... (남들 두세배는 되는 듯.)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