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네타 방지로 수정 중입니다.
네타 있어요.
내 신경이 집중된 부분은 부르스 윌리스가 어린 아이를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여기서 헐리우드의 특정한 성향을 떠올렸다.
헐리우드는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팀 버튼의 영화에서 어린아이 분의 머리까지 자루에 담아 나오는 장면이 미국의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헐리웃 영화가 어째서 그러한 노선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짐작은 간다. 그것에 대한 비난이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어쨌건 럭키 넘버 슬레븐은 그 노선을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이 속에서 럭키 넘버 슬레븐은 헐리웃의 그 풍조를 비꼬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에 대한 목적은 '창작의 한계선을 짓는 헐리웃 풍속도에 대한 작가로서의 손가락질'이다.
헐리웃의 대중영화는 의외로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어린 아이 죽이지 말아주세요'가 대표적이고, 작품을 위한 현실적 상업물을 피한다. 작품 진행에 꼭 필요해서 모 업체의 상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는 '그것을 이용해 먹는 상업 영화'를 두려워하여 제한된다. 이 경우는 국내 작품에도 반영된다.
자. 럭키 넘버 슬레븐의 주제를 보자.
[애를 살려두면 나중에 작살난다.]
아닌가?
악행의 문제가 아니다. 한 소년이 성장하여 복수를 한다는 얘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죽은 결정적 원인은 헐리웃의 제약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럭키 넘버 슬레븐'은 헐리웃의 이러한 풍조를 노골적으로 비꼰 작품일 지도 모른다. 즉, 여기서 부르스 윌리스는 헐리웃에게 제약을 주는 '위대한 존재'이며 매력적인 존재다. 소년이 성장하여 적들의 자식들을 죽일 때, 그 자식들 모두가 성장한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그 자식들이 2세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 다 자식이 없다는 건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으니 그 중 한 명을 '동성 연애자'로 설정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헐리웃이 노골적으로 동성 연애물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태도를 비꼬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똑같이 자식을 죽이려고 한 이 행동 속에서 '성장한 자식은 죽었고, 어린 아이는 죽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영화는 헐리웃의 제한된 사고가 창작영역을 좁힌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현재의 헐리웃 영화들은 소재의 한계에 목말라 허덕이는 중이다. 작가가 정말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냉혹한 킬러 부르스 윌리스가 왜 어린아이를 죽이지 않고, 왜 '루시 리우'의 죽음을 형식적으로만 가했는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맥을 찾아보면 영화는 헐리웃(부르스 윌리스 분)이 어린 아이를 죽여서는 안되고, 의도에 부합되지(루시 리우를 죽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감동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총을 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영화의 중요한 맥이 되는 그 부분이 유일한 오점 임을 감안할 때, 이 작품은 헐리웃의 관례를 꼬집는 의도를 담고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부르스 윌리스는 정말이지 꺆이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으으... 네타 방지 기능을 다 까먹어서 괴롭다. 이게 대체 몇 번째 수정이야...
내 신경이 집중된 부분은 부르스 윌리스가 어린 아이를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여기서 헐리우드의 특정한 성향을 떠올렸다.
헐리우드는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팀 버튼의 영화에서 어린아이 분의 머리까지 자루에 담아 나오는 장면이 미국의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헐리웃 영화가 어째서 그러한 노선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짐작은 간다. 그것에 대한 비난이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어쨌건 럭키 넘버 슬레븐은 그 노선을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이 속에서 럭키 넘버 슬레븐은 헐리웃의 그 풍조를 비꼬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에 대한 목적은 '창작의 한계선을 짓는 헐리웃 풍속도에 대한 작가로서의 손가락질'이다.
헐리웃의 대중영화는 의외로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어린 아이 죽이지 말아주세요'가 대표적이고, 작품을 위한 현실적 상업물을 피한다. 작품 진행에 꼭 필요해서 모 업체의 상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는 '그것을 이용해 먹는 상업 영화'를 두려워하여 제한된다. 이 경우는 국내 작품에도 반영된다.
자. 럭키 넘버 슬레븐의 주제를 보자.
[애를 살려두면 나중에 작살난다.]
아닌가?
악행의 문제가 아니다. 한 소년이 성장하여 복수를 한다는 얘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죽은 결정적 원인은 헐리웃의 제약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럭키 넘버 슬레븐'은 헐리웃의 이러한 풍조를 노골적으로 비꼰 작품일 지도 모른다. 즉, 여기서 부르스 윌리스는 헐리웃에게 제약을 주는 '위대한 존재'이며 매력적인 존재다. 소년이 성장하여 적들의 자식들을 죽일 때, 그 자식들 모두가 성장한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그 자식들이 2세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 다 자식이 없다는 건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으니 그 중 한 명을 '동성 연애자'로 설정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헐리웃이 노골적으로 동성 연애물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태도를 비꼬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똑같이 자식을 죽이려고 한 이 행동 속에서 '성장한 자식은 죽었고, 어린 아이는 죽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영화는 헐리웃의 제한된 사고가 창작영역을 좁힌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현재의 헐리웃 영화들은 소재의 한계에 목말라 허덕이는 중이다. 작가가 정말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냉혹한 킬러 부르스 윌리스가 왜 어린아이를 죽이지 않고, 왜 '루시 리우'의 죽음을 형식적으로만 가했는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맥을 찾아보면 영화는 헐리웃(부르스 윌리스 분)이 어린 아이를 죽여서는 안되고, 의도에 부합되지(루시 리우를 죽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감동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총을 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영화의 중요한 맥이 되는 그 부분이 유일한 오점 임을 감안할 때, 이 작품은 헐리웃의 관례를 꼬집는 의도를 담고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부르스 윌리스는 정말이지 꺆이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으으... 네타 방지 기능을 다 까먹어서 괴롭다. 이게 대체 몇 번째 수정이야...
성공이다. ㅠ_ㅜ
답글삭제;;;; 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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