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일 토요일

나이 40이 다 되어가는 녀석의 생각입니다.

나이 30을 넘기지 못했다면 자신을 작가라 칭하지 마라.

읽었습니다. 같은 생각도 있지만 다른 생각도 꽤 있네요. 하필이면 타이틀이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분의 글도 아닌, 선배의 글이니 반말로 찍찍 써댈 수야 없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40나이 되어가면서 느꼈던 것 중에 인상적인 게 하나 있습니다. 뜻이 있는 어떤 단어에 유행을 따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신봉하는 모습입니다. '재미'라는 단어가 비하되고, '순수'를 높게 칭송하고, '무협지'라는 재미 있는 단어를 쓰레기의 대표적 단어로 규정시키고, '작가'라는 단어의 위상을 하늘에 두고, '글쟁이'에 비하의 뜻이 담겨지는 이 모든 세태에 대하여 전 솔직히 고깝습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다 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니까요.

순수문학이 대중문학에 비해 더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오랜 역사를 거쳐 쌓아온 금자탑이어서입니다. 그 외의 무엇은 없습니다. 순수문학도 마찬가지로 재미를 위한 글입니다. 그 속에 담겨진 '다양한 재미, 또는 공감의 재미'를 찾기 위해 공부하는(그래서 문학인 겁니다) 사람들이 많을 뿐입니다. 대중문학으로 구분했지만, 현재 순수문학으로 불리는 작품의 상당수도 대중문학입니다. 애초에 순수문학이라는 줄기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 머물며 창작된 작품만이 순수문학일 뿐이죠. 만약 창작의 순수성을 따진다면 순수문학이라 불리기 위해 창작된 작품이 가장 불결하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창작의 종을 결정할 뿐 아니라 창작계의 정치적 계단까지 염두에 두고 쓴 그 작품을 두고 순수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군요.

작가는 작가일 뿐입니다. 창작으로 일가를 이룬다? 그런 뜻 아닙니다. 그럼 한 때 만화가셨던 고우영 화백이나 김수동 화백께서는 왜 만화가가 아닌 화백으로 불리셔야 했겠습니까. 의사의 '사' 청소부의 '부' 공무원의 '원'처럼 직업의 구분을 두는 일종의 직책규정명칭에 불가하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창작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바로 작가입니다. 그 때문에 창작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지도 않고 그냥 취미로 창작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작가'라 칭할 수 없는 것이고요.

10살 소년이라해도 스스로의 일생이 창작에 있다고 여긴다면 작가입니다. 어린이의 의식을 그저 초딩으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제 어린시절은 그랬으며 그 꿈을 이루고 사는 지금의 나로서는 10세도 아닌 9살 때의 의식을 무시하지 못합니다.(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창작을 제 인생의 목표로 삼아왔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죽도록 터져가면서도 이 자리를 고수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특별한 놈이라 여길만한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어린이가 우리나라 팔도강산에 잔뜩 깔려있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전 만화와 화폭에 담겨진 그림을 두고 어느 것이 더 고귀하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이건 다릅니다. 억지로 고저를 따진다면야 역사가 깊은 화폭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 순간에 모든 시간이 정지된다면 또 모를까,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쓰레기가 없는 공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리어왕이 호빗보다 고결한 작품처럼 보이지도 않고 어린왕자가 해리포터보다 나아보이지도 않습니다. 모두 제 마음에 드는 작품일 뿐입니다. 코믹한 소설 얘기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쉘 실버스타인의 시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창작의 경계를 순수와 대중으로 나누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전 그 모든 창작들이 재미를 위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한 재미인가가 문제일 뿐입니다. 고결한 철학 자체에 심취하는 건 재미있어서가 아니냐고 묻겠습니다. 철저한 물리학 이론을 통해 현대 과학자들중 누구도 반론하기 어려울 만큼 철저하게 노력하여 창작된 SF소설이 정말 재미따위 다 때려치고 고결하기 위해, 순수한 SF를 위해 창작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본문의 의식에는 동조하지만 그를 위한 비유에 동조하지 않기에 이런 글을 적는 것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 작가입니다. '글을 쓴다'라는 말에 창작의 의미가 담겨져있으니 '글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 자체가 어거지죠. 하지만 구분을 둬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처음 첫 비유부터 반박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글은 자랑하기 위해 쓰는 겁니다. 내 자식을 가장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은 남에게마저 인정받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든 자기 자식이 짱입니다. 하지만 남들마저 인정하는 자식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자신의 창작을 글로 남기는 이유는 그것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식이 어떤 자식인지 알고 싶어서 나를 발전시킵니다. 자식키우는 법을 익히기위해 내 자식을 먼저 보이고, 키우는 법을 배우거나 스스로 깨닫고, 결국 그것으로 자식을 성장시키는게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글은 자랑하기 위해 써야 합니다.

다만 자식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자식을 내놓고 날 자랑하면 이런 병신같은 부모가 세상에 또 없습니다. 자식 키우는 법은 뒷전이고 '난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어!'라며 그 자리에 안주하여 떠드는 부모를 둔 자식만큼 불쌍한 녀석도 없습니다. 그 순간 자식의 발전은 끝이니까요. 글의 발전이 거기서 멈춰 버리니까요. 더 많은 자랑을 하고싶어도 그만큼 키울 능력이 못되는 부모로 전락해 버리니까요.

'글쓰는 사람은 글로 말한다'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정말이지 다른 말이 필요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랑을 하거나, 남에 대한 트집,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본인의 발전 영역이 크게 줄어듭니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그 위치에 만족하기 때문에 자랑하는 것입니다.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그 다음의 성장을 보기 때문에 자랑할 틈이 없습니다. 좀 더 성장해서 자랑하고 싶죠. 여기서 말하는 자랑은 글 자체로서의 자랑이 아니라 주둥이로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글이 행동이라면 주둥이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에 대한 비난, 남의 글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 분들은 상대의 감각과 문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의미로 그것은 편협입니다. 범죄라고 할 수 있는 표절에 대한 손가락질이 아닌, 문화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이라면 자신의 영역이 트여있지 못한 것을 증명하는 꼴입니다.

이우혁 선배님의 세 번째 글에 대해서는 적극 부정합니다. 작가의 인생은 글 한 편 딸랑 쓰고 인생 종치는 게 아닙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입니다. 그것은 곧 공부이며 문학에 열중하는 인생입니다. 처음에 언급했듯 순수한 문학이란 건 없습니다. 있다면 '순수한 문학'이라는 허울 만빵의 좁은 틀을 만들어서 그 제약을 갖고 만들어진 창작물입니다. 창작의 영역 곳곳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그 안에서 낑낑대는 우물안 개구리에게 높은 평점을 주고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를 비웃듯 역사조차 짧은 한국 판타지류 소설에 '문학'의 개념을 실어주신 분이 바로 이우혁님 본인이십니다. 일명 코묻은 돈 내밀어 구매하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면서도 자료조사에 충실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분이 아니십니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임을 확신하는 것까진 좋습니다.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고 미래에 자신이 앉을 자리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은 아니신지 묻고 싶습니다. 궁극의 자리라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는 그 순간의 글이 궁극의 글이고, 먼 훗날 더 뛰어난 실력과 노력으로 창작된 글은 그 시대의 궁극의 글일 뿐입니다. 내 실력이 더 좋아졌다고해서 과거의 내가 최선을 다해 썼던 글을 쓰레기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겁니다.

전 이것이 떳떳한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이 대중문학입니다.(본의아니게 대중문학이 되어버린 안네의 글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의 젊은 의식이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 취하는 행동에 대해 꾸지람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도 아니고 실수도 아닙니다. 과정입니다.

옛날에 미치도록 즐겨 읽고 열광했던 작품을 향해 어느 순간 손가락질을 하며 쓰레기로 치부하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지금 당장 쓰레기라고 부르는 창작물이 있는데 시장에서는 잘 팔렸습니다. 이 소리는 이 작품을 즐겨읽는 독자층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먼 훗날에도 이 독자층이 계속 이러한 창작물에만 열광할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여기서 비롯되어 좀 더 다른 좀 더 자신을 만족시킬 창작물의 줄기를 따라갑니다.

나이 깨나 먹은 분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중 하나죠.(물론 저도 나이 깨나 먹었지만...)

마징가Z나 로보트 태권V등이 화제에 오르면 향수에 취해 감탄사를 뱉는 세대가, 요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향해 유치뽕짝이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시간을 빼버리면 작품성만으로는 요즘 것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지금 유치뽕짝이라는 것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이 나중에 어른되면 지금의 저희가 열광하는 작품보다 훨씬 더 뛰어난 명작에 열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판타지 무협계는 발전단계니까요.

그 때문에라도 전 어린나이에 자신을 작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일찍부터 창작에 일생을 맡기는 분들이 많아야 제가 바라는 좋은 작품들 넘쳐나는 세상이 빨리 지나칠 테니까요.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39개:

  1. 아니, 무슨 감사를...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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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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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아...... 추천 버튼 없나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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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글루스에서 보고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쓰실 수 있을까 하고 봤더니...

    레디오스 님이시로군요.

    역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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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오공감을 타고 왔습니다. 좋은 말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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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제 자신이 황희정승이 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그 말도 맞고 이 말도 맞고...



    명심 또 명심, 유념 또 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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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시간을 빼버리면 작품성만으로는 요즘 것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라는

    문장만 하나만 빼고 적극 동의할만한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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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기보단 특정 본문을 전제로 "까는" 내용이군요.

    그 특정 본문(이우혁씨의 글)은 요즘 너무 쉽게 만연하는 양산형 판타지, 인터넷 소설 기타 등등의 경솔하고 가벼운 문학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인데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반발한 건 아닌지 묻고 싶군요.

    어떠한 주장이 제기되면 그것은 모든 경우를 커버한다기보다 어떤 일정세태를 겨냥한 글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글쓴이는 굳이 이우혁씨가 까지 않아도 잘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거품은 넘치고 실속은 퇴보하고 있는 분위기인 거 맞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그 시대 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은 고사하고 그 소설 이름이 뭐였더라? 하면서 기억에도 안 남을 작품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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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장르, 비장르를 불문하고 현재 출판되고 있는 모든 소설의 80%는 10년 후가 되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작품들인 겁니다. 이건 거품이라기보다 당연하다고 해야 될 일이고, 여기에 일침을 가해 봤자 하늘에 대고 삽을 대는 행동과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우혁씨가 자신의 직업에 굉장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작가와 작가-아님, 작품과 작품-아님의 분류에 집착하는 그 모습은 자신이 쓰는 글의 특성에 비추어 봤을 때 굉장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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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흑. 그 글 보고 엄청 울었는데(?) 이 글 보니 또 그게 아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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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분위기에 어울리진 않습니다만, 코스모스 스토리는 언제 완결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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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레디님,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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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문학에는 별 조예가 없는 고등학생입니다. 작가라는 단어에 의미없는 아우라를 덧씌우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예술은 창작에도 의미가 있는건데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팬픽을 무시하는건 조금 아니다 싶었습니다. 쓰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고, 그걸 향유하는 독자들도 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물론, 프로 작가와 프로슈머 작가들 사이의 명확한 경계선은 필요합니다만, 너무 글 쓰는 걸 신성화하시는 것 같아서 좀 보기가 그렇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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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글, 잘 읽었습니다.

    리플 없이 그냥 나갈 수도 있겠지만 소위 순수문학에 열정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한마디만 남깁니다.(저는 문단에 등단해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물론 얼마전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은 새 항로를 가고 있지만 시는 버릴 수도, 버려지지도 않는 영혼의 작업이니까요)



    글은 아무리 명성이 높은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상업적인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해도 절대 자랑하며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따라주면 저도 모르게 자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누구나 공통된 인간의 얕은 마음이겠지만 글을 자랑하기 위해 쓰는 사람은 그 글에 자신의 전부 (혹은 영혼까지도)를 불어넣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겁니다.



    글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지 않는 오만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름이 작가라 해도 자신이 속하지 못한 '순수'의 영역이 제대로 보일 리 없겠지요.

    순수는 님의 그 어릴적 열정, 그것이 순수입니다.

    글 몇줄로 남의 이론을 공격하는 열정이 아니라 정말 자랑도 모르고 명예나 돈도 떠나서 문학에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그 자체가 순수라는 것입니다.(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님은 순수의 열정을 무모함이나 무지의 소치라 말하고 싶으시겠지만.)

    최소한 순수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순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실수를 범하진 마십시오.



    님의 몇가지 의견엔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선, 남의 글에 대한, 그리고 남의 인격에 대한 무례함과 방자한 공격성부터 제어하지 않는 한 나이 40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자랑하기 위해 쓰는 글이 얼마나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한 공감을 줄 수 있을까요?

    글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겸손함에서 우러나와야 참된 글입니다. 자신의 인격이 담겨지니까요.



    세대차이에서 비롯된 시각차일 수도 있다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마징가 세대라고 무조건 누구나 무협지 세대를 공격하고 얕보지 않습니다. 신세대 문화의 신선함이나 그들만의 공감은 분명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걸 아십니까? 오래되어 쉬어터진 것처럼 보이는 세대에겐 오래된 삶의 지혜가 있고, 신선발랄한 세대에겐 깔끔함이나 상큼함과 공존하는 유치함과 경솔함도 있다는 것을. 세대간의 공감이 있지 않는 한 문학에서도 공감이 있을 수 없으며 교류또한 꿈꿀 수 없는 거겠지요. 그 사람이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썼는지, 감싸안기 위해 썼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셨습니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주는 따끔한 지침을 자존심부터 세우고 듣는다면 누가 일깨우고 이끌어주겠습니까? 문학은 상대를 죽이고 내가 올라서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경해야 자신의 글과 인격도 비로소 존경을 받습니다.



    *상업적인 글로 먹고사는.. 같은 표현은 특별히 비하의 뜻이 아님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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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비밀글// 아닐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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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이오공감 타고 오니, 어라 레디옹 글이었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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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이오공감 타고 와서 읽는데.... 제일 마지막 줄 보고 엇, 레디님이라니 이건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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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잘 읽었습니다. 이우혁님의 글은 분명 마음에 담아 놓아야 할 쓴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가지고 있던 '글'에 대한 가치관과는 차이가 있어 혼란스러웠는데,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정리가 된 것 같네요.

    방해가 안 된다면 링크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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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저는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좋아했고, 앞으로도 이쪽 계통의 일을 하고싶고 공부도 하는 사람입니다.(학교 공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문학을 비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만.... 이 글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정말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원본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담은 글이라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나이 40이랑 문학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문학/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개인의 축적된 지식/생각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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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adself님께.



    '나이 40'의 의문을 푸셨을 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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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아참참참참! 첫 번째 비밀글을 쓰신 분! 뒤늦게 감사드립니다. '일기'하면 떠오르는 이름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볼 생각도 없이 대뜸 썼는데, 그 덕에 좋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다른 분들 덧글에는 그저 사랑뿐. -ㅁ-/(저 예전에 덧글에 목매달다 쌍코피 터지고 실신까지 했던 거 아시죠?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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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쿠쿠쿠... 이오공감에 딱 두번째 들어왔는데 본의 아니게...^^;

    댓글 남겨주셔서 다시한번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대중문학에의 책임감 기대하겠습니다.

    바람이 향긋한 9월도 레디오스님의 열정으로 채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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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왜 둘 중 하나만 진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우혁씨의 글도 좋게 보았고, 이 글도 좋게 보아서 두 분 모두에게 참 감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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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임팩트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포스팅 제목이 좀 오류였던 모양입니다.

    본문을 작성하신 작가분의 의도는 '나이도 어리면서 작가라니'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저 죄송할 따름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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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죄송합니다만...

    순수예술 종사자로서의 고지식함을 양해해 주십시오

    만화와 화폭에 담긴 그림은 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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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글은 내 자식과 같고, 글은 자랑하기 위해 쓴다.





    재미있는 비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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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Earthy 님// 엄연히 다릅니다. 만화는 '화폭에 담긴 그림'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장르도 아니거니와 그림은 만화를 구성하는 요소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물론 만평에는 속하지 않는 얘기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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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바이올렛님께.



    Earthy님께서는 '만화'와 '화폭에 담긴 그림'의 형식을 염두에 두고 '같다' '다르다'를 언급하신 게 아닙니다. 그 이전에 언급하신 먼님도 마찬가지고요. 그 대상의 귀하고 천함을 뜻한 거죠.



    저야 당연히 Earthy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원문도 그렇게 썼고요. ^^;;



    이건 먼님께.



    제가 어릴 때부터 만화 등의 대중창작에 인생을 맡겼다고해서 오로지 대중창작만을 붙들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쪽으로 가기 위한 길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고교 때 제 어머니께서 방향을 선회하시며 절 지원하기 시작하셨는데, 그 때의 방향이 미술계과 문학계였습니다. 전 도예과 중퇴생입니다.



    도예과에서 도예를 전공하면서 제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만난 도예쪽 대가이신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옹기'를 우습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에 1,000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팔리는 옹기를 만드는 사람이더라도 그것에 인생을 걸면 대가로 인정하시더군요. 전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오지랍이 넓어서 동양화와 서양화쪽 교수, 학생분들과도 친분을 가졌습니다. 광고를 위한 그림, 만화 등의 대중쪽 활동에 대해 '서자'취급을 하는 사람은 학생쪽에 제법 있었습니다만, 교수 쪽에는 없었습니다. 모르죠. 제가 의식적으로 맞는 분들만 찾아다니며 친했던 것일 지도.



    그 때문인지 몰라도 여전히 제 의식은 확고합니다. 인생을 건 무언가에게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죠.



    예술의 고귀함을 염두에 두시는 분들에게, 그와 흡사한 형태의 만화를 한 편 소개시켜드리고 싶네요. 작가분이 평생에 걸쳐 창작하신 '죽음의 행군'이라는 작품을 한 번 감상해보세요. 물론 인생을 건 수많은 작가분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해하는 데 빠른 도움을 줄 것 같은 작품인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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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아우, 졸려요. 저는 왜 아직도 웹세상을 떠돌고 있을까요? 아무튼 간만입니다.



    이우혁 씨의 글을 보고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래도 전면적으로 반론을 펴기에는 장비가 조금 부족해서 던전 구석탱이에서 노가다를 뛰고 있었는데 레디옹께서 쏘셨군요.



    이쪽으로 오기 전에도 글 하나 보고 왔는데, 아니 뭘 그렇게 생각할 게 많을까요. "어, 나이 많고 명망 높은 사람이 작가라고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 글 쓰고 싶으면 쓰면 되는 거고, 글 만드는 사람(作家)이면 그렇게 자칭하면 될 일이지 뭐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레디옹의 글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리플을 읽어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걸 토해놓지 않는 한 오늘 밤 잠들기는 글러먹은 것 같아요. 아래는 기본적으로 달린 덧글들에 대한 반박입니다.



    대중창작의 가장 큰 장점은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호흡'.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호흡이 맞아야 하죠. 그래야 팔립니다. 이것이 안 되면 도태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대중창작은 문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시대상의 반영이죠! 좀 극단적인 예가 되기는 합니다만 일본의 가장 오래된 소설인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모노가타리]는 소위 말하는 [하렘물]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문학사를 공부할 때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속하죠. 궁중의 [뇨보]들이 어떤 생활을 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어떤 이야기였는지 알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순수예술 또한 기술과 기법, 그리고 그 정수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원하는 바가 완전히 틀릴 뿐이지요.



    자아, 조금 이상한 예가 들어갑니다. TOEIC 초급반과 고급반의 강사 중 누가 더 훌륭한 걸까요? 초급반 강사는 자신을 강사라고 칭하면 안 될까요?



    어? 완전히 틀린 예라구요? 뭐가 틀린데요? 초급반의 강사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쉬운 내용만 줄창 가르치고 고급반의 강사는 소수정예의 학생들에게 고급의 기법과 지식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초급반의 강사와 고급반의 강사가 갖춰야 할 능력은 완전히 틀립니다. 그것은 물론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차이와 똑같이 대입할 수 있습니다. 대중문학은 굳이 말하자면 대중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고, 순수문학은 좀 더 고급의, 순수한, 정수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기술을 수련하고 순수를 추구하는 순수문학가에게 있어 겸손은 미덕일지 모릅니다. 겸손하지 않은 자가 그 이상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소설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그 해당되는 위치가 중세의 광대에 완전히 일치하는 대중소설가가 겸손하다면 대중들은 그 겸손을 깨닫지 못하고 비굴로 받아들일 겁니다. 비굴한 광대라니 너무나도 재미없죠. 그의 글은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누가 자기보다 훌륭하지도 않은 사람의 글을 사서 읽는대요? 게다가 대중소설가의 글에는 생활이 걸려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구요? 글 하나 실패하면 그 작품에 투자한 시간만큼 피가 확 튀어버리죠.



    물론 그렇다고 대중소설가가 완전히 생각없이 자화자찬에 빠져 살라는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삐에로의 화장 뒤의 얼굴이 우는지 웃는지 서커스의 관객석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중소설가에게도 겸손은 미덕이지만 그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이우혁 씨의 글에 전면적인 반론을 펴지 못한 것은 스스로도 이우혁 씨의 글에 일정 부분 공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시나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레디옹의 글에도 전면적인 찬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역시나 반론은 펴지 못하겠네요.



    그저 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다고 믿고, 그대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저 저 자신의 사상으로만 남겨둘 수 밖에 없겠네요. 선배님들에 비해 어리기는 하지만 지금껏 지켜왔던 자아를 부수기에는 조금 늦은 듯 합니다.



    밤이 깊었달까, 해가 뜨네요. 저는 이만 잠자리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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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안녕하세요 :) 이오공감을 타고왔습니다. 현재 소설 지망생입니다 ㅠ 현재 방황하고 있는 도중에 두가지의 좋은 글을 읽고 갑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D 참, 그리고 트랙백 해가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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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레디오스 님// ;; 먼 님 댓글부터 잘못 이해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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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이 글 무척이나 오래된 글이죠 -ㅅ-ㅋ

    이글 읽으면서 아 그글인가? 했는데 역시 이 글이었네요



    저도 순수문학에 대한 우월의식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지만...

    (물론 요즘 대중문학 특히 한국판타지 쪽을보면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요)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유희적으로 쓰지 말라는 것 같습니다



    '아 난 글을 올렸으니 글을 쓰고 있어 작가라고

    조회수가 이만큼이야 으하하'



    어휘가 딸려서 제 능력으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허영심, 우월감이 가까울것 같습니다

    게시판 얘기도 그렇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작가라고 칭하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으시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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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아레스실버//'가르치는 것'이 같으니 '초등학교 교사'는 스스로를 '교수'라 칭해도 되겠네요? 이건 뭐 애초에 비유가 허술해서 더이상 논의를 만들 가치도 없을 듯 합니다만.



    레디오스//

    물론 옹기를 '작품'못지 않게 만들어내시는 '장인'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옹기의 본질은 음식을 담는 것이고, 깨질까봐 애지중지 다뤄야 한다면 그건 더이상 옹기라 볼 수 없겠죠. 애지중지할 정도로 '가치'있는 옹기라면 그건 옹기가 아니라 '작품'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지금도 공장에서 수만개씩 찍어내고 있는 ‘옹기’를 ‘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가‘의 경우에 한해서만 말이죠.(제가 공산품으로 예를 들어서 벤야민의 아우라의 해체를 떠올리시는 분? 거기까지 가지 말고 쉽게 쉽게 생각해요.)

    저는 위의 화폭과 만화의 논의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전 만화를 서사장르의 하위로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억지로 ‘그림’에 국한시켜 비교하면 저는 단언코 ‘화폭‘이 월등하다고 봅니다. 그건 위에서 바이올렛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림을 ’목적’하는가, ‘수단‘으로 사용하는 가의 차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만화가들이 ’예술적인 그림‘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왜냐면 그들에게 그림은 수단이기 때문이죠.

    레비오스님은 ‘순수성‘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듯 합니다. 순수성이란 말 그대로 순수하게 ’그것’만을 목적하는 정신을 말합니다. 저는 종이에 연필로 선을 그었을 뿐인, 에곤실레의 드로잉에서 때때로 감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에곤실레가 ’재미’를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을 것 같진 않군요. 그리고 재미에도 분명히 질과 단계가 존재합니다. 어째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나은 걸까요? 쾌락의 질이 계급화 한다면, 그 쾌락의 얻는 수단 또한 계급화 할 수 밖에 없죠.

    어느 학부모단체의 공격에 '만화는 간식!'으로 일축했던 데츠카 오사무의 말이 떠오르네요. 물론 그 간식을 일류 쉐프 못지않게 차려내시는 ‘대가’들이 계시고, 그런 분들은 저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엔 당장 입에만 좋으면 된다는 '불량과자'들이 넘쳐나서 탈이죠. 더 큰 문제는 그 불량과자들이 나도 ‘요리’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작가란 호칭엔 전문가로서의 신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미대입시중인 고등학생들이 스스로를 ‘화가‘라고 부를 때, 그 포부와 배짱은 인정하지만 사회보편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저는 비록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모두 사랑하는 일개 독자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우혁님의 글은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쓸 수 있는 수준 높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주제넘은 참견인 건 알지만, 레비오스님이 스스로 '재미'를 추구한다고 말씀하신 만큼, 장르문학으로서 줄 수 있는 재미의 종류와 한계를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옹이를 만드는 장인은 ‘도예가’의 호칭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만화가는 ‘화가’의 호칭에 연연하지 않습니다.(화백이라 불리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붙여진 칭호지, 스스로를 칭하는 게 아니죠.) 하지만 몇몇 장르작가들이 왜 스스로 ‘작가’라는 호칭에 연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우혁님이 사례로부터, 스스로를 작가가 아닌 ‘타자’라고 부르는 이영도님의 사례까지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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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윗 글엔 잘린 부분이 있네요. 참, 맨 처음 포스팅한 분은 왜 제목도 그렇고 이따위로 했는지 모르겠네요.





    (* 이후 내용은 처음 글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배로서의 충고(?)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런 충고가 필요없거나 저에게 듣고 싶지 않은 분은 과감하게 건너 뛰시기를 바란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앞의 경고를 넘어갔으리라 생각하고 시작하겠다. 만약 당신이 나이가 30살이 넘지 않았다면, 그리고 넘지않았더라도 공식적인 등단과정을 거쳤거나, 공식적인 경로로 출판을 하여 책을 내지 않았다면 일단 제일 먼저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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