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5일 화요일

2가지 이야기

1. 학교 이야기

얼마전 판갤에서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공부하러 학교 가는 사람은 오타쿠다'

의미 전달 잘도 되겠다. 문장 하나 삐꾸나면 가차없이 어택들어가는 판갤 되시겠다. -_-

그 때는 이사 도중에 잠깐 짬내어 글을 올렸기에(누군가 검정고시로 대학에 가기 위해 자퇴했다는 글을 남겨서 낚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쫑알거릴 수가 없었다. 이제 이사도 끝났으니 느긋하게 적는다.(이렇게 밤을 새고 제사지내러 고고)

내가 이야기를 하는 특정한 직업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학교에 대한 가치관이 대단히 확고하게 정해져있고, 이것이 진실이라 믿는다. 물론 모 사이트의 말처럼 '다르다. 틀린게 아니다.'라는 말에 동감하여 내 가치관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때문에 강한 부정의 글을 올라오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얘기를 진행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얻어야 할 첫 번째 보물은 '인성'이라고 본다. 학교가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느냐'다. 그것은 사회에서 적응하기 쉬운 지표이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초등학교 '도덕(내가 살던 시절의 교과서다)'시간에 배우게 된다. 당시의 사회가 사회다보니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국가에 대한 인성'이고, 두번째가 '가족에 대한 인성', 세번째는 '그 외 주변사람들에 대한 인성'이다. 이것은 수학으로 따지면 공식이다. 이 공식이 대입된 수많은 인성들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16년에 걸쳐 배우는 것이다.

두 번째 보물은 '인간관계'다. 공부라는 것이 세 번째라는 얘기다. 공부는 기술에 불과하며 이것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 자신의 인생지표로 삼는 경우는 흔치않다. 대학교수나 연구인들이 이러한 케이스인데, 끝없이 파고들며 공부에 열중하는 이 모습을 통해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마니아를 넘어선 오타쿠의 열정'이었다. 그래서 오타쿠라는 말이 나왔다.(애초에 난 오타쿠를 싫어하지 않는다)

학교를 다니는 가장 큰 목표가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부터 이어져온 사회현상의 하나로 '과도한 교육열'이 있다. '우리가 무식해서 당했다'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하는 자식들 만큼은 그 꼴 당하지 않게 만드는 과정에서 교육열이 생겼다. '공부해서 판검사되면 부유하게 살 것이며, 판검사가 되지는 않더라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굶고살지는 않는다.'가 부모님께서 자식의 교육에 열을 올리는 지표다. 이 소박하신 분들은 과거급제에서 비롯된 의식을 가졌으며, 그나마 발전했다는 것이 '의사, 박사'다. 좀 더 소박하신 분들은 '샐러리맨이 어디냐'라고 하신다. 학교도 그 성향에 맞춰 오랜 시간동안 학과 수업 중심의 일정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는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이러한 일정표가 크게 변동하는 일이 없다. 게다가 교육부의 지속적인 삽질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쳇바퀴를 돌아서 제대로 된 교육혁신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

공부를 잘 한다고 잘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다룰 수 있는 자는 스스로가 원하기만 하면 무조건 잘 산다. 덧붙여 사람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관계가 우선이지 공부가 우선이 아니다. 앞과 뒤를 바꿔라.

공부 직싸게 해봐라.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엄청난 개발을 해봤자, 다른 주변사람들이 쑥덕거리고 단합하여 그 사람 것을 모두 빼앗는 건 일도 아니다. 스스로가 인간관계를 잘 갖고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관계를 기본으로 깔아둔 뒤에 나머지 시간을 공부에 돌리는 게 좋다는 얘기다.

다시 학교로 가자. 학교에서 자신이 제일 먼저 보게되는 것은 칠판이 아니다. 친구들의 뒤통수거나 선생님의 앞모습이다. 제일 먼저 듣는 소리는 수업관련의 공식이나 문장이 아니라, '안녕!' '안녕하세요!'다. 서로를 배려하는 인사가 최우선인 이유를 한 번만 고민해보자.

인간관계도 수업의 구조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과,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 어디서 티가 나는 지 아는가? 사람과의 대화방식이나 인간관계에 적응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대학생과 대화하는 고졸자의 노력이나, 대학교 내에서도 인간관계를 회피하는 학생처럼 예외를 가지고 있다. 대학이 고교시절과 큰 차이를 보이는 원인 중 하나는 '동호회'나 그 밖의 교류 기회가 많다는 부분이다. 이 또한 인간관계이며, 가장 중요한 배움이다.

사회로 나가보자.

수업이 도움되던가? 하나는 도움이 되겠다. 자격증. 어느 대학에서 어떤 성적으로 졸업했는지. 하지만 그 뿐이다. 그것으로 사회에 입문하기는 쉽지만, 그 다음은 일에 대한 감각과 대인관계로 승진 등 여타의 관문을 돌파하게된다. 일에 대한 센스가 공부만으로 된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그것은 오히려 대인관계나 문화습득을 많이 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가장 힘든 직장은 '일이 어려운 직장'이 아니라 '성질 더러운 직원(상사)이 많은 직장'이다. 사회를 살다보면 학교에서 배운 '공부'보다는 학교에서 배운 '사회를 사는 법'이 더 큰 도움을 준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모님이 자식에게 원하는 '잘 사는 법'이란 게 그거다. 부모님들은 그저 '공부, 공부'하시지만, 자신은 '적당할 정도의 공부'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대신 사람과의 관계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살필 수 있는 지혜를 쌓아라. 진짜 중요한 것은 '지혜'다. 아무리 지식을 쌓아봤자, 그것을 담을 지혜라는 그릇이 없는 한 쓸모가 없다.

그러니 학교 공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겨져도 자퇴라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것은 집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돌아다닌다고 이사하는 꼴과 같다. 다른 집은 바퀴벌레가 없을 것 같은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벌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고작 몇 백, 몇 천 명만 모인 사회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튀어 나가면서 수 십, 수 백만이 모인 사회를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가.

2. DC이야기
몇 년 전부터 DC 판타지 갤러리와 무협 갤러리를 꾸준하게 들렀다. 대부분 글을 읽기만 하다가 최근 들어 직접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가끔 판갤을 벌레들 소굴인 것처럼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판갤에서 활동하는 사람까지, 나에게 '이런 곳에 참여하는 쓸 데 없는 짓을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글을 써라'고 말한다.

잊고있나본데 난 대중창작가다. -_-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쓸 데 없는 문화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마약조차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재의 하나다.

판갤은 독특한 공간이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깊숙하고 안전한 공간에 감춰두고 마리오네뜨를 내세워 행동할 수 있다. 속에 담겨진 어둠을 마음껏 꺼낼 수 있으며, 어둠으로 전투를 벌이면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유럽 쪽에 어떤 달변가가 있었다. 세네카였던 것같다.

철학자이자 달변가인 이 사람은 시장을 거닐다가 한 상인을 찾았다. 상인은 다른 곳보다 싸게 물건을 팔았는데, 달변가는 그 가격에서 더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상인은 거절했지만, 달변가는 여러 가지 말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달변가는 물건값을 깎는데 실패했다.

비교적 부유하게 사는 이 달변가가 몇 시간에 걸쳐 물건값을 깎으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설득력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웹상에서 DC만큼 내 의식을 시험해보기 좋은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특히 판갤은 각자의 논리와 진실까지 담겨진 좋은 실험대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문화공간이다. 다수의 판갤러들이 마리오네뜨를 내세우듯 나 또한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뛰어들려면 제대로 뛰어들어야지. 나라는 거 까발리고 마리오네뜨들과 치고받지 않고서야 거길 뛰어든 의미가 없잖은가. 재미있는 글을 쓰려면 문화 하나하나가 다 아쉽다. 그런데 저렇게 좋은 극단적 문화를 어떻게 내버려둔단 말인가.

살다가 캑 죽으면 그거야 팔자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내 스스로가 인정하는 재미있는 글이 내 손으로 계속 나와줬으면 한다. 쓸 능력을 갖고 발전시키는 게 우선이고 쓰는 건 그 다음의 얘기다. 게다가 글 쓰는 걸 쉰 적은 거의 없는 걸.

판갤 활동이 내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그게 내 시간이다. 내 시간이 아깝다고 여겨질 때는 잠을 잘 때뿐이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7개:

  1. 제가 다니는 학과는 죽을 때까지 남는 것 중 하나가 '성적'인 학과라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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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타쿠가 되시는 방법 밖에는 없군요, 해산진님. ㅠ_ㅠ 부디 성적의 정상에 오르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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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판갤 끊고 글 쓰라고 했던 건 그 글을 쓸 당시에 약간 흥분해 있어서 사용했던 극단적 표현입니다.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말투였죠. 이제와서보니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군요. 그 점은 사과 드립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바에서 벗어나 판갤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벌레들의 소굴은 아닙니다. 말씀하셨듯 내면을 자기 꼴리는데로 내보일 수도 있고 정반대로 모든 것을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극단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는 공간이죠. 다만 아쉬운 것은 판갤이 '디씨' 갤러리의 하나로써는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할지 몰라도 '판타지' 갤러리로써는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그러니까 불성실한 연재에 대한 답변이 없는 건 좀 아쉽군요. 답변하기 곤란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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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퇴, 부분에서는 좀 뜨끔.

    ....워낙 학교 가는 걸 싫어했어서 [.......]



    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은 '높은 성적'을 원하지요.

    정작 사회 나가면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할 뿐인데도....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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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파인로님 곤란할 리가 없잖아요.



    그 답은 다들 알고 있고, 저도 자주 하는 말인걸요. 감춘다고 감춰질 일도 아니고... -_-



    [전 프로 작가로서의 마인드가 부족해요.]



    이 부족함을 채우려고 발악하는 중이죠. -0-/



    Kapir님의 아이러니에 한표!



    그런데 일단 '공부'라는 기준점 하나만이라도 성실히 수행했다면, 다른 무언가에게도 그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까하는 논리가 있더라고요. 저도 그 논리에는 어느 정도 동감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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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레디오스 // 잔인하게 파고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연재하지 않으시면서 커그에 입성하신 까닭(이건 다른 커그 작가가 거의 공통적으로 품은 문제지요)이나 결과적으로 보면 제대로 연재하지 않을 [코스모스 스토리]를 커그에 성실 연재할 듯 올리신 까닭이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책임이랄까 그런 건 어떻게 하실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듣고 싶었습니다.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딱 잘라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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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커그 사이트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저는 커그에 있었어요. 다만 웹공간으로 커그가 공식화되었을 때, 전 이미 마천루라는 사이트에서 활동중이었죠.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의 구성원이 공유불가라는 규칙을 갖고 있어서 커그 작가가 되지 못했을 뿐이에요.



    공식적으로 커그에 입성했을 때는 연재란을 만들어서 어떤 글이건 연재하고 싶었어요.(때마침 감상란에 레이딘경이 '급하신 것 같아서'라는 내용을 적으셨는데,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급하지 않았죠. -ㅁ-;;) 코스모스 스토리를 연재한 이유는, 제가 묵시강호 출간 이후 계속되는 악순환 때문에 코스모스 스토리를 건드리지 못한 탓이에요. 제 인생의 목표인 글이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거죠.



    제가 오히려 잔인하게 말하는 꼴이 되겠지만,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연중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어요. 생활 문제나 출간 문제들이 너무 엮여있어서 코스모스 스토리를 붙들 틈이 거의 없었거든요. 저도 이 지겨운 쳇바퀴에 한이 맺혔어요. 버텨 보겠다고 죽어라 발악하다가 결국은 탈진하며 컴 속 글들 중 하나를 찾아내어 세상에 꺼내놓죠.(아직도 수십편의 글들이 하드에서 기다리는 중인지라 왠지 소름끼치네요)



    근데요, 파인로님.



    저렇게 개인사정 줄줄이 늘어놓는 것 말예요. 막말로 '찌질'대는 거 아닌가요? 저런 사정 말고도 더 많은 복합적인 문제들이 깔려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제 문제예요. 저한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건 결론은 하나예요. 프로 작가 마인드가 부족한 놈이다라는 것.



    독자분들이 제 개인적 문제를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아요. 글로 벌인 일이니 글로 해결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해결이 되기 전까지의 저는 무조건 [프로작가 마인드 부족]상태일 뿐이에요. 알고 있고 하고 있지만 해내지는 못한 상태라는 거죠.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내가 보기에 재미없으면 죽어도 책 안 내'마저 놓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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