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7일 금요일

자책하지 마!

커피 사건과 오전의 정전 사태(글 쓰던 중 건물 전체가 정전됐다. 세 줄 정도가 날아갔다. 친구들은 '세 줄이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너희들 말야... 내가 1년에 몇 줄 쓰는 지 알아?-자랑이 아냐-)를 괜히 엮어서 글이 잘 안된다는 핑계를 대고 이글루질.

실은 아까 쓰고 싶었다. 쓰는 순간 이 좋은 현실도피처에 만족하여 24시간 내내 칠랄레 팔랄레할까봐 참았다.

자. 칠랄레팔랄레.

너무 익숙하고 편하고 즐거워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생긴다. 뭐, 나도 그러고 살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자기 글 출판한 적 없는 사람에게, 그리고 출판하고 싶은 사람에게, 출판되면 자기 책 잘 팔리길 바라는 사람에게 하는 말.

제일 쉬운 방법을 알려주겠다.

"노세요."

이게 기본 조건이다. 놀아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잘 팔리는 글을 쓸 수가 없다. 만약 잘 팔렸다면 그것은 대단한 우연이며 로또 당첨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만 구분하자.

'논다'와 '시간 때우기'는 전혀 다르다. 친구와 만나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것은 '논다'다. 다음날 그 친구와 만나서 같은 얘기 비슷한 얘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것은 '시간 때우기'다. 게임을 해서 길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던전과 퀘스트에 열 올리는 건 '논다'다. 캐릭터를 키우며 옷을 입히고, 익숙해진 던전에서 템파밍에 힘쓰거나 기술숙련 노가다를 하는 건 '시간 때우기'다.

노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간 때우는 건 말 그대로 시간을 버리는 행위다. 이를 동일시할 경우, 노는 것에게조차 죄책감을 느끼며 '악의 축'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대중창작가에게 있어서 노는 것은 에너지원이다. 놀았기 때문에 대중창작을 할 수 있고, 많이 놀거나 노는 데 열중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창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열심히 걱정하고 고민해야 재미있고 좋은 창작물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서 또 하나 구분하자.

될 성 싶은 나무는 고민을 하고, 떡잎부터 암담한 새싹은 걱정을 한다.

고민과 걱정은 전혀 다르다. 고민의 목적은 '하기 위해서'다. 걱정의 목적은 '하느냐 마느냐'다. 자신이 갈 길을 확실하게 정해놓고 취하는 행동은 어지간해서 마이나스 요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단은 '한다'는 전제 하에 움직여라. 그게 도움이 된다.

자. 이제 알아보자.

재미있는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에게 묻는다.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사람에게 묻는다. 그 원천적 에너지가 어디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재미있는 글을 읽으며 놀았고, 재미있는 만화를 보며 놀았고, 재미있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사귀면서 놀았고, 듣고싶은 음악을 들으며 놀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놀았던 역사 속에 창작의 노력을 덧붙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열심히 창작하다가 슬럼프에 빠진 작가에게 묻는다. 최근에 놀았는가 시간을 때웠는가.

이론만 따져보자.

10대에게 가장 잘 팔리는 글을 쓰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이 뭘까?

10대랑 놀면서 서로가 공통적인 재미를 느낀 뒤에, 자기가 재미있는 글을 쓰면 10대도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노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마라. 시간에 아무리 쫓겨도 노는 것에 소홀하면 안 된다. 그것은 당신의 에너지원이다. 노는 건 어디 쉬운 줄 아는가. 이 세상 최강의 적이 당신의 목을 끌어안고 있다. 귀차니즘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곁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글에 매달리고, 이론에 빠삭하고, 어떤 글이 잘 팔리고, 어떤 글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써야 독자들이 좋아하는 지를 다 인지하고서도 출판사한테조차 '블라블라블라'의 가면을 쓴 '니 책 안 팔리지롱'이란 답을 듣는 사람은 한 번쯤 고민해라. 처절하게 글과 싸운답시고 노는 것에 소홀한 건 아닌지. 노는 것을 천민취급하며 코웃음쳤던 것은 아닌지.

근 몇 달 간 DC판갤과 무갤에 자주 갔다. 아직 적응하지 못했지만 거의 모든 게시물들을 읽고있다.(엄마 침공의 날에 붕가붕가 짤방 올린 게시물 클릭해서 걸리게 만든 레테님 만행은 지금도 잊지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공 쌓내게 생소하기 때문이고, 생소한 만큼 즐거워서다. 각종 신문 사이트나 논문 자료 받아서 읽고 청와대 사이트에 들어가 나라 돌아가는 사정들을 읽는 것보다, 판갤 무갤 아마츄어 모임의 연재글을 읽는 것이 내겐 더 도움이 된다. 이들의 재미에 빠져서 놀다보면 내가 쓰는 글에서도 같은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그런데 나만 재밌... 쿠쏘!)

즐기는 것에 자책하지 말아라.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기는 것은 즐기는 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멍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때 느끼는 공허같은 괴로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좋은 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 대단히 큰 죄책감을 느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의미를 찾을 날이 오겠지.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4개:

  1. 아...논다와 시간을 때운다에 대해 정확하게 개념이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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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레디옹, 레디옹, 심정은 알지만 쬐금 현실도피-_-;;;;;;;;;;



    그렇다고 이 글이 틀린 것이 아닌 이유는 '전교 1등은 항상 잘 논다' 이론과도 도치될 수 있는 진실이기 때문이지요. 가장 강한 자는 물론 그 자체를 즐기는 자이지만 그것만 줄창한다고 그걸 즐길 수 있는 인간이 현생인류 중 몇 %나 될지. 그러므로 차선책, 잘 놀아야 합니다.



    뭣보다 대중작가는 기술의 단련보다 대중과의 호흡이 중요하므로 더더욱 노는 것의 중대성이 증가되니까.



    그건 그렇다치지만 역시나 쬐금 현실도피-ㅅ-;;;;;;;;;;; (심정은 백이십분 이해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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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몰살의실버옹// 히리리롸라~(현실과 100만광년 떨어진 저기서 같이 춤추자는 제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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