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5일 월요일

사과하는 법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사과를 할 때가 있다. 상대가 두려워 사과를 할 때도 있고, 서로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지고 들어가자'라는 의미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여기기에 사과를 한다. 특히 연인관계에서의 물베기 놀이에 사과는 필수 스킬이다.

사과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내가 잘못해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용서라는 것을 받기 위한 작업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상대는 용서를 줄까 말까라는 선택적 권한이 있지만, 자신은 용서를 꼭 받아야하는 필수 의무를 가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말 사과를 하고싶다면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사과하는 법.

제일 중요한 건 사과부터 해야 된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 잘못에 대해서 사과해야 된다. 그 이외의 부수적 요소는 절대 언급해선 안된다. 지금 자신은 사과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서론, 본론, 결론이자 주제다. 예시니 비유니 다 필요없다. 왜 사과가 필요한 지를 알고 있음을 인지시키고 그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해서 용서를 받은 뒤에 변명이 들어가야 한다.

사과 전의 변명은 타협이다. 내가 앞으로 할 사과의 수위를 낮춰도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흥정하는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불리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수작'이다.

사과해서 용서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변명을 하지 마라. 변명을 타협으로 만드는 순간 당신의 사과는 가치가 희석된다.

사과하여 용서를 받은 이후에 하는 변명은 용서에 대한 감사의 뜻이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불리한 상황이 아닌-이른 바 평등해진 상황- 상태에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용서를 받은 이후에 변명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상황이 다시 악화됐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건 당신의 착각이다. 당신은 용서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변명했기 때문에 그 꼴 난 거다. 용서는 말 한 마디로 결정지어지는 유형 문화재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서서히 완성되는 게 용서다. 그 이전까지는 변명을 선물할 생각은 마라. 단, 오해에 대한 해결은 예외다.

두 번째는 행동방식이다.

자신이 사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는 행위는 결코 사과가 아니다. 그건 도전장이다. 영화같은 걸 보면 용서해달라며 밤 새 문 밖에서 무릎꿇고 비맞는 청춘이 계시다. 안쪽에 계신 분은 마음 아파하며 우수에 젖은 얼굴을 하시거나, 때로는 다음 날 아침에 창 밖으로 그 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라는 척 감동하신다. 이로 인해 용서를 받는 장면 연출은 엄밀히 따지면 '용서를 받은 게 아니라 용서를 강탈한 거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의 육체적 고통을 통해 '상대가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약점을 공격하고 있다. 사과의 취지와 전혀 다르다. 용서만 내 품에 안으면 된다는 방식의 이기적 행동이다. 이런 당신은 같은 일 또 저지르고, 또 이렇게 사과받고, 또 물 벤다.

세 번째는 용서를 받아야 할 시간적 배경이다.

용서를 품에 안을 시간은 당연히 용서를 줄 사람이 결정한다. 그것을 사과하는 당신이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시간을 결정하려는 당신이 존재한다. 이 또한 사과하는 자세가 아니다. 상대가 용서할 마음이 없을 때 사과로 용서를 강요하지 말아라. 사과의 뜻을 보일 수 없는 시기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 때 당신은 그 시기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들일(이것은 말 그대로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용서를 준다는 건 아니다) 시기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용서를 받고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전까지는 사과를 줄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났다고해서 사과할 마음이 희석되면 당신은 용서받을 생각이 별로 없었던 거다. 때로는 시간의 흐름을 이용해서 사과 없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은 용서를 주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용서를 슬그머니 훔쳐가는 당신을 배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네 번째는 용서를 받기 위한 선물(또는 대가)이다.

용서를 구매할 수도 있다. 그만한 가치의 정신적 물물교환이며, 이 가치를 가진 물건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맹세가 될 수도 있고, 그것에 더 하여 자신의 앞일에 대한 행동방침을 보여주는 행동도 될 수 있다. 그것이 상대의 용서를 쉽게 이끌 수 있다. 만약 자신이 그 선물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당신이 받은 용서의 가치 또한 높아질 것이다.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거나 자신이 약속한 행동방침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용서는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과의 방법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과하는 이유가 용서를 빼앗기 위한 이기적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만 어떻게 해결하면 둘 사이의 관계가 원만해질 것이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게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상대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또는 악화되었을 경우에 '내 사과가 뭐 잘못됐나?'라는 의문점을 떠올릴 필요성이 있다. '사과했는데 왜 저래?'라는 불쾌감을 느낄 때도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 그럴 때 위의 사항을 제대로 인지했는 지 고민해봤으면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기적 사과가 나쁜 건 아니다. 상황을 좋게 해결하기 위해서 사과를 이용하는 것은 생활의 처세이지, 범죄가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정말로 정말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혀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 지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3개:

  1. 뜬금없지만 연중 타박한다고 사과 안하셔도 되요.

    우리는 레디옹을 믿으니까. 사랑하니까.

    답글삭제
  2. 아니 저기...(뭔가 내 무덤을 판 기분이...)

    답글삭제
  3. trackback from: 어떻게 하면 사과를 잘 할 수 있을까? - 두 번째..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도서관 이용자에게 제가 잘못을 하였고, 거기에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사과가 상당히 서툴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과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여 블로그에 글을 적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과를 잘 할 수 있을까?' 그 일이 있은지 반 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러나 지금 만약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하면 그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과할 듯 싶습니다. 그 이상 좋게 사과하는 법을 모르......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