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5일 목요일

토고전 응원. 그 이후.

한국이 토고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춤을 췄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인터넷은 토고전의 그 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외친다.

"개자식들이 쓰레기 안 치우고 성추행에 여기저기 난동부리며 남의 차 부시고 발광한다."

이 짓 한 사람들은 욕 먹어도 싸다. 잘못한 거 맞다. 아무리 좋게보고 싶어도 한심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가지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얘기도 좀 하고싶다.

쓰레기의 경우는 정말 다수의 문제다. 2002년 월드컵 때와 지금의 월드컵 응원문화에서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쓰레기다. 당시의 뉴스는 한국의 응원문화가 쓰레기까지 치우는 모습을 방영하며 '대단하다!'를 연발했다. 아쉽게도 최근의 뉴스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궁금한 점이 있다. 정말 그 엄청난 응원인구 중 쓰레기를 치운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가? 매스컴 기자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응원시민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이것에 엮어서 성추행과 타인의 기물을 부수는 사람들 얘기도 해보자.

응원하는 사람 대다수가 그 짓 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어떤 한 맺힌 싸이코들이 '기회다'싶어서 뛰쳐나와 그 지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 외치는 상당수의 게시물에 대해 난 당황하고 있다.

쓰레기를 치운 사람도 소수고, 성추행을 한 사람도 소수다. 성추행을 한 사람이 뉴스에 나오는 건 이해하겠는데(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쓰레기를 치우는 소수가 완전히 외면받는 모습은 내 입장에서 보기에 무척 고깝다.

다 알잖는가. 상대방에게 "너 이 자식,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넌 쓰레기야, 임마!"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그렇군요. 제가 큰 결례를 범하였으니 자중하겠습니다."하던가? 오히려 "오냐, 제기랄. 나 이런 놈이야! 이번엔 좀 더 제대로 보여주지!"가 더 많았던 듯 싶다. 악플러에겐 무플이 최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 그리 많지 않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거냐면, 한쪽으로 치우쳐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행동 자체가 지속적인 악을 조성할 수 있다는 거다.

2002년에 쓰레기를 치우는 문화가 끝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원인은 매스컴의 영향이 크다.

'한국 응원문화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면서도 쓰레기까지 정리한다.'

이 뉴스가 사방에 퍼지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은 훌리건과 다르다'라는 극찬을 받고, 또 한국인들은 그 극찬을 보며 기꺼워했다. '나도 그래야지.'라는 사고를 조성하는 큰 원인이었다.

성추행 등의 사건들을 덮어두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치우는 '똑같은 소수'의 뉴스도 같이 보여주며 옳고 그름의 선택권을 공유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게시판을 판치는 욕설과 비난은 내 시각에서 지극히 위험해 보였다.

물론 이 때문에 다음 시합 때의 응원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대비하는 공식적 대책이 급속히 진행될 수 있었던 이점은 얻는다. 하지만 비난하는 행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개개인의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는다. 혹시 당신은 문제가 됐던 사건의 현장을 보고, 또 다른 곳에서 현장을 보고, 또 다른 곳에서 현장을 보며 '어. 이것 봤던거네? 그래도 열받아!'라고 분통 떠뜨리는 건 아닌가? 바른 응원문화의 조성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생각은 없는 지 묻고싶다. 물론 이런 시간에 힘쓰는 분들이 계실 거다. 내가 못 찾고 있을 뿐이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러한 분들을 좀 더 많이 보고싶어서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문제점은 발견했다. 그에 대한 비난이 있고 대책 마련이 시작되었다. 문제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고 있으면, 이제는 바람직한 방향을 떠올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성추행에 대한 부분에서 논란이 이는 것을 봤다.

내가 남자라서 여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방구들에 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다양한 생각을 해봐도 아니다싶은 부분이 있다.

남자가 성추행을 하는 부분과 여자가 노출하는 부분을 왜 엮지?

여자의 노출이 남자의 성적인 욕구를 자극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 수영장, 해수욕장 볼만 하겠다. 한 번 따져보자. 여자가 노출하는 이유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냐? 그럼 남자가 헬스하고 머리 다듬고 옷 쫙 빼입는 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냐? 물론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던가?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남들에게 어필하고 싶어서라고 여겼던 내가 비정상인가.

월드컵의 노출은 축제라는 마약을 통해 그동안 용기내지 못했던 과감한 표현을 시도하는 행위라고 보고 있다. 소극적인 사람들이 '축제'의 이름이라는 '안전'을 믿고 그런 결심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들의 노출행위는 자신을 위한 행위이지 남자 성욕을 불러 일으키며 약올리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반면 남자의 성추행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다. 이것은 범죄이며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왜 여기에 여성 노출을 갖다붙이는 건지 모르겠다.

난 키보드 워리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비난 그 자체만을 즐기는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 어디서 기분 더러운 내용들만 골라 찾아가며 남들에게 보여주고 속에 담긴 쌍욕들을 내뱉는 행위,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행위, 그 삶을 즐기는 행위. 이러한 행위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 묻고싶다. 왜 세상을 그 따위로 만들고 싶어하는지. 기분 좋은 얘기들만 즐기며, 보기 싫은 거 보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잖는가.

투덜이 스머프가 '난 스머패트가 노출하는 거 싫어.' '난 파파스머프 수염이 싫어.' '난 스머프들의 사회주의 사상이 싫어.' '난 가가멜이 싫어' '난 아즈라엘이 싫어.'라며 끝없이 싫어하는 것을 얘기했을 때, 당신은 투덜이 스머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로 투덜이 스머프는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있다면, 당신은 투덜이 스머프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낼 수 있는가?

당신이 싫어하는 것만을 내비칠 때, 당신을 대하는 사람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지금 동떨어진 공간에서 당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사회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지, 사회 그 자체에 속해서 같이 움직이는 게 아니다. 공공 게시판은 그것을 사용하는 유저 모두의 사회다. 그 속에 비난 일색의 글만 올리는 것은 자기 만족을 위해 사회를 악용하는 태도 이상이 될 수 없다.

한 번쯤 스스로를 향해 '내가 왜 이 사람을 비난하는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비난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걱정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술, 담배, 마약만 중독성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몸을 망치지만, 뒷말 중독은 정신을 망친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5개:

  1. 윽, 많이 찔립니다.



    하지만 전 그 상황이 또 한번 되도 그들을 욕할 겁니다. 특히 저와 주위 사람까지 당해 버리니 돌아버리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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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언론에 의한 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네요. 시모 오늘 견문을 크게 넓히고 갑니다.(포권)

    노출과 성추행, 완전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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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노출한 것이 만지고 더듬어달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놈들에게는...

    "얼굴에 보호구 안 쓴 건 패달라는 뜻이렸다?"라고 말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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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둔저/안구에 폭풍이 몰아치게 만드는 명언이십니다..T_T

    어디서 저런 무개념 발언 보일 때 가져다 써도 될까요? 이런 명구는 자자손손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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