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일 목요일

손이 가는대로

난 감정적이다. 감성이 심하게 앞서서 내 스스로를 망가뜨릴 때마저 있다.

그것을 보호하고 싶어서 난 이성을 내세운다. 인간사 모든 것을 계산하고 정리하여 반박의 근본마저 뿌리뽑을 이성을 내게 남긴다. 손 하나 까닥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고, 누군가를 응시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나의 이성은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명령하며 나를 만든다.

물론 감성적인 나란 존재에 대한 반항심이며 진심으로 내가 두려워질 때가 감성적인 나이기에 이를 용인한다. 아니, 권장한다.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감정에 비틀리는 나이기에 고독의 금단증상으로 괴로워한다. 하지만 상처는 존재할 수 없다.

내게 명령하는 이성의 힘은 수긍을 반드시 받아낸다. 그리고 과거의 감성적인 내가(이성은 내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저질렀던 잘못은 내가 창조한 이성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결론을 이끈다. 그리고 이성이 명령한다. 나의 명령에 만족하라고. 난 만족한다.

금단증상이 심할 때면 미친놈이 되고 싶다. 날뛰고 싶고, 악인이 되고 싶다.

내 안의 싸움에서 대부분 승리하는 자는 이성이며, 감성 속 내가 저지른 잘못을 수습하는 자도 이성이다. 이 고마운 친구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외면하지 않는 것이 나를 생존케 한다.

오늘은 금단증상이 심하다. 군중 속 금단증상을 느끼며 나를 다스렸다.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눈이 아프다.

곧 정상으로? 좋군. 이성이 주장하는 정상적인 나로 돌아가겠지만, 이 금단증상을 기억에서 지우기 싫어졌다. 어찌되었건 이것도 이성이 주장하는 경험이니까. 그래서 글로 적었다.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모니터를 응시하는 것도,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도 세심하게 인식하며 그럴 수 있음을 즐거워해야 할 내가.

지금은 모든 것에 우울증을 느끼고 있다. 웃는 얼굴로. 눈 부릅뜨고.

잠에서 깨어 이 글을 읽으면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신변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감정이 갑작스레 바뀌는 경우가 제일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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