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4일 일요일

경기대 공예디자인 학과

지금은 디자인 공예학부로 바뀌었다.

신생학과였기 때문에 내가 처음 과에 들어갔을 때는 4학년이 없었다. 1학년 남학생이 8명이라는 사실에 선배들이 감동의 눈물을 죽죽 흘릴 정도로 남자가 부족한 학과다.(말이 공예과지 거의 노가다 학과여서 학생들의 근력이 많이 필요하다)

일명 '발물레'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 호감을 느꼈다. 발로 차서 돌리며 접시를 만들고 컵을 만드는 게 무척이나 재밌어보였다. 하지만 정말 재밌을까? 예전에 포스팅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발물레를 돌리며 작업했을 때 누군가 외쳤다. "오빠! 머리에서 김 나!"

어지간한 다리힘이 아니면 발물레를 다루기 어렵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힘이 덜 들어가긴 하지만...

아무튼... 바로 그 물건 때문에 경기대의 역사가 뒤틀어진 적이 한 번 있다.

가을에 열리는 경기대학교 체육대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체육계열 학과도 참여가 가능했다. 때문에 구기종목 같은 경우는 언제나 체육과 학생들이 1등을 쓸어모았다. 어쩌다 한 번씩 남자 족구에서 이공계 1위가 나오곤 했다.(이공계 건물 주변에는 항상 족구를 즐기는 학우들이 있다)

'타도 체육과'의 역사를 거쳐, '넘사벽 체육과'의 신세기에 접어들었을 당시.

'여자 발야구'

도예를 전공하게 된 여학우들이 '차보지 않겠는가'급 포스를 풍기며 말 그대로 휩쓸었다. 당시 경기대의 꽃은 공예과와 불문과! 2D에 빠진 내 눈높이로 보기에도 우리과 여선배들은 눈부신 생물류였다. 그 미모를 가지고 팔랑팔랑 뛰다가 공을 '뻐억!' 차면 농담 조금 보태서 일식을 본다. 3연타석 홈런도 봤고, 일직선 다이렉트 홈런도 봤다. 풍문으로는 체육대회가 끝난 뒤 우리과에 들어오는 미팅주선 용량이 몇 배가 더 늘었다고도 했다.(예쁘고 강한 학과다! 랄까?)

불문과가 가냘프게 꺾이고 체육과가 무너지는 걸 봤을 때, 난 여선배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남선배들에게 측은함을 느꼈다. ㄱ-(거의 청일점급으로 지내면서 CC가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달까...)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추잡: 결국 선배들은 후배를 날름하셨다. 아놔. 우리과 CC들은 다 결혼까지 가.

댓글 10개:

  1. ...반항할 수가 있을 리가....-ㅅ-;;;

    답글삭제
  2. .......미팅주선이라..........애니과는 그런거 안들어와요. 여자 많은데.........=_=;;

    애니과 여자는 여자도 아닌듯 ㅠㅠㅠㅠㅠㅠ

    답글삭제
  3. ...넌 왜 CC 안했어? (방긋)

    답글삭제
  4. 난 우리과가 아니라 사학과 애랑 CC해서 차였어. ;ㅅ;

    답글삭제
  5. 제가 경기대생이라 여자 발야구하는거봤는데... 체대 정말 잘하던데...



    체대를꺽다니...대단하군요...;;

    답글삭제
  6. 자 잠깐... 공예과면 도자기 빚는 거 맞죠? 순간 5살때 나이차 많이 나는, 공예과 다녔던 큰누나 손을 잡고 대학교 따라갔다가 수많은 누나들에게서 둘러쌓여서 "어머나 귀엽네?"라는 이야기 듣고 꽃병 하나 받아온 기억이 납니다. (물론 어렸던 시절이라 다 기억나는건 아니지만 훗날 누나가 말해준 것도 첨부한거죠 ^^)

    답글삭제
  7. 이런 말 하면 조금 건방져보일지도 모르나;;;레이딘경은 지금도 귀여우십니다!!!(도망간다)

    답글삭제
  8. Lemiel// 동감입니다!(집을 버리고 도망간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