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7일 일요일

잠을 청하던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를 상당히 많이 마셨던 탓도 있지만, 그 날 따라 일찍(새벽 3시쯤) 잠을 청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24시간 넘게 안 자고 버텼던 때라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럼 나 제 명에 못 살 테니까.(이미 늦었... 말이지...)

행복한 숙면을 위해 이불을 3개나 겹쳐서 푹신하게 했건만 지겨울 정도로 잠이 안 왔다. 오죽하면 책상 위에 있던 재떨이까지 갖고 내려와서 누운 채 담배를 피웠을까.(어쩌면 그게 원인일 지도)

무엇이 계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잠을 청하는 방법에 돌입했다.

양을 세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백 마리 넘게 세다가 문득 고민에 빠졌다. 왜 하필 양일까. 그러고보니 고병규씨 만화를 보면 양을 세다가 그 양들이 합체되던데. 그냥 처음부터 합체될 부품들을 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조립식 부품들이 플라스틱 파이프에 달라붙은 초기세팅부터 떠올려보자. 잠은 절대 오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생각을 하고있으니까 잠이 오지 않는 거야. 그래. 은은한 소리가 들리면 잠이 오겠지. 나는 히키코모리 음악의 대명사인 포티쉐드 1집을 틀었다. 한참을 듣던 와중에 음을 따라서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아예 컴퓨터까지 꺼버렸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해. 그래. 텔레비전을 틀고 지루한 뉴스를 보자. 졸음이 올 거야.

제기랄. 빌어먹을 정치인 놈들! 그 따위로 세금을 축내지 마! 40대에 육박하는 아저씨 정신이 내게 있음을 깨닫는 절망스러운 새벽이었다.

채널을 돌려서 가장 지루할 것같은 방송을 찾아봤다.

나에 대해 상당한 실망을 했던 날로 기억된다. 왜 'XX의 은밀'같은 19금 방송이 제일 지루해야 되는 거지? 종교방송같은 것도 있잖아. 근데 어째서! 이제 저런 슴가 따위는 주부처믿으세보다 더 지루한 존재가 되고 만 거냐.

성질나서 정규방송으로 돌렸다. 치지직거리는 낮은 소음. 회색잡류가 날뛰는 무의미한 화면이었다. 그 어떤 방송도 이보다 지루할 수는 없겠지. 난 녀석을 멍하니 응시한 채 잠을 청했다.

대체 왜 그 화면을 향해 매직아이를 시전하냐고. 게다가 되는 건 또 뭐냐. -_-

우물이 보일까봐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예문판 반지전쟁을 읽었다. 깨알같은 글씨들이 가득하고 수시로 등장하는 노래들. 잠을 청하기에 적격인 익숙한 문장들이 나를 휘감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즈음에 날이 밝았다. -_-

결국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엎드려 잤던 날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4개:

  1. 그 따위로 세금을 축내지 마!...ㅠㅠ 아저씨 정신이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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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결국은 날을 세셨군요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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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ㅋㅋㅋㅋ; 양을 세되 숫자를 붙이면 오히려 잠이 달아나요.

    그럴 땐 아예 일어나서 더 피곤하게 일을 하면....... 다음날 정확히 죽을 수 있다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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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양을 잘못세셔서 그렇습니다. 옳은 방법은 1억부터 3마리씩 빼는 겁니다.(그게 너무 크면

    처음엔 1만 정도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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