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3일 수요일

[단편] 옆집 아이를 조심하세요 (2/3)

옆집 아이를 조심하세요(2/3)

희진이는 곧 과일이 잔뜩 담겨진 접시를 들고 우리에게 걸어왔다.

“오빠. 과일 먹어.”

“어, 나는 먹으면 안 돼?”

과일을 보고 안도한 듯 성필이가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그러자 희진이도 농담을 받아줬다.

“백수 오빠, 이런 거 먹을 줄 알아?”

성필이가 들고 있던 샤프가 부러졌다. 성필이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어, 어저께 연습해서 먹을 줄 알아.”

“영물이네.”

“…….”

친해진 건가, 얘네들?

“자, 문영오빠. 아아…”

희진이는 포크에 찍혀있던 사과를 내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난 성필이의 눈치를 잠깐 보다가 입을 반쯤 벌렸다. 사과가 희미하게 미소짓는 것을 난 눈치채지 못했다.

퍼걱!

“…….”

내가 뒤로 엉덩이를 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희진이의 손이 타키온의 가속을 발하며 내 아가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내 이빨은 사과를 급히 막아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사과가 분신술을 펼치며, 속에 감춘 포크의 추진력을 가동시켰다. 결과적으로 사과 2조각은 바닥을 뒹굴었고, 외롭게 남은 은빛 포크만 내 아가리가 포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 혓바닥과 입천장을 비추는 금속체의 끄트머리가 목젖을 희롱하는 중이다.

“그럼 공부해, 문영오빠.”

희진이는 깜찍하게 웃더니 몸을 일으켜 나갔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의 120분 동안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는 희진이의 그림자에 감춰진 다크소울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성필이가 아니라 늘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유나와 함께 왔었다면, 포크는 목젖 앞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덜컥.

“유나?”

“지문을 읽지 마!”



그날 이후, 난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아니 아예 집 근처로 데려오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학원에 다닌 지 4개월쯤 지났을 때, 난 옆자리의 유나와 학원커플이 되어 있었다. 학원에서는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있었는데 나만 모르는 괴상한 커플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가 고백했단다. 녹두전 집에서 술을 잔뜩 마신 내가 성필이를 밀치고 유나 옆자리에 앉더니 고백을 하면서 유나 옆구리에 손을… 우레베레레베게! 아무튼 그 날 이후 나와 유나는 공식적인 학원커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좀 그렇다, 유나야.”

난 투덜거렸다.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바래다주는 것은 다소 낯뜨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바래다주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유나라는 점이 더 문제였다. 어느새 우리 집 앞까지 조르르 쫓아온 유나가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팔짱을 꼈다.

“뭐 어떠니? 어차피 난 돌아가면 오빠가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기다려주는 걸? 행여나 납치라도 당하면 문자 보낼 테니까 영화 한 편 찍어 줘.”

“내 실력으로?”

유나가 ‘꺄르르’웃으며 내가 죽어도 굳건히 살아남아서 해피앤딩을 만들겠다고 떠든다. 불안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유나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공인되지 않은 비극을 나누기에는 우리 집, 그리고 희진이의 집이 너무 가까웠다. 공인된 비극이 아닌가, 이건! 하지만 유나는 아랑곳 않고 내 옆구리에 볼을 묻으며 적극적 대시를 했다. 비극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해피였다. 난 유나의 대담성에 감격하며 조심스레 팔을 뻗었다. 그리고 유나를 품에 안듯 감쌌다. 그 순간 유나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더니 말했다.

“너… 키스해봤니?”

“으, 응?”

난 당황했다. 첫키스의 경험이란 게 선택받은 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여기는 쑥맥 중의 쑥맥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리들은 집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유나는 나와 마주한 채 표정으로 분위기를 잡았다. 아마도 내 얼굴 역시 분위기를 잡고 있었을 것이다. 유나가 흡족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난 용기를 내어 유나의 얼굴에 가까이 접근했다.

“문영오빠아!”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가 어쩜 이렇게 왕짜증일까? 젠장, 희진이였다. 유나와 난 기겁하며 거리를 벌린 뒤 고개를 돌렸다. 희진이는 밤 11시가 넘도록 날 기다렸던 것인지 하염없이 웃으며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내 품에 뛰어들면서 사정없이 즐거워했다. 유나가 물었다.

“누구야?”

“옆집 동생.”

“또는 붙어사는…”

재빨리 희진이의 입을 막았다. 유나는 가로등에 비친 희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낮은 신음을 터뜨렸다.

“너 정말 귀엽다. 이렇게 예쁜 애, 첨 봤어. 얘, 너 이름 뭐니?”

희진이는 대답대신 날 돌아봤다.

“이건 또 뭐야?”

“응? 으응? 그… 저…….”

나와 유나는 동시에 당황했다.

“저기… 희진아. 얘는 유나라고 하는데 오빠의 친구야.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그러니까… 동급생?”

“재수 파티겠지. 화장빨 보니까 재수하게 생겼네.”

“호호호호호.”

유나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에서 채찍과 하이힐이 느껴졌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유나와 희진이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 나도 가운데 낑겨서 웃고는 있었지만, 다들 그만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때 희진이가 나를 돌아보더니 턱을 반쯤 들며 말했다.

“문영오빠.”

“응?”

희진이가 고개를 좀 더 돌려서 역동적으로 볼을 내밀었다.

“인사 안 해?”

“아.”

난 유나의 눈치를 보다가 희진이의 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유나가 놀란 눈으로 날 응시했다가 곧 헛웃음을 터뜨리며 뽀뽀뽀를 구경할 마음가짐을 갖췄다. 관대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긴 했지만, 희진이의 버릇에 대해서 내일이라도 따질 것같은 태세다. 빨리 이 원수의 볼에 뽀뽀해주고 유나랑 도망가야지. 오늘은 진짜 뽀뽀를 하고 싶었다고! 이, 애송이 볼따귀야! 난 원수같은 볼을 향해 후딱 주둥이를 날렸다.

쪽.

“…….”

“음?”

쪼옥.

“읍?”

지금……. 무슨?

쪼오오옥!

저, 저기 여보세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왜 희진이의 볼이 방향전환을 해서 입술과 교체된 거죠? 이 입술은 또 왜 이렇게 안 떨어지죠? 억? 에일리언인가? 방금 들어온 게 뭐죠? 아니, 여보세요! 하나님, 내 볼을 꽉 잡고 있는 이 고사리 손의 ‘꽉’이 3년 전 공업시간에 배운 프레스급 파워예요! 하나님, 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데 자꾸 더 들어와요! 으앙, 막 돌아다녀요! 뭐야, 이 꼬마! 뭐 하는 거야, 지금!

“파하!”

희진이는 내 입술 등등을 무려 5초나 음미… 크아악! 음미한 뒤에야 시원하게 떨어지며 상쾌한 밤공기를 들이켰다. 그리고 만세를 부르듯 치켜들었던 손을 옆구리에 가져가며 여왕님의 자세를 취했다. 곧 희진이의 손 한 개가 스스로의 턱을 치켜세우더니 더 여왕님같은 자세를 만들었다. 희진이는 창백해진 유나를 향해 진정한 여왕님의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깔깔깔깔깔! 턱없는 애송이! 감히 내 문영오빠의 첫 키스를 강탈하려고 해? 나조차도 아껴두고 있었던 걸? 머리가 어떻게 된 언니 아냐? 엄마 젖이 아직 뇌에는 도달하지 않은 것 같은데, 집에나 가서 맘마밀이나 충분히 먹고 온 뒤에 까불지 그래?”

“오 마이 갓!”

이이이이이게 저저저 귀귀여운 여여자 아아이가 내내내뱉을 수 있는 마마마말인가? 나와 유나는 끝없이 어버버하며 희진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희진이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동네방네 퍼지면서 두 집안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문영아, 왔으면 들어오지 여기서 뭐하… 어머, 희청오빠! 잠옷 참 이쁘다! 어디서 샀어?”

“으, 으응. 문희 네 잠옷도 이쁜걸?”

“안녕하세요. 옆집에 살면서 한 번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이사온 지 꽤 됐는데…….”

“아아. 이번에 이사오신 분이시군요. 우리 희청이와 희진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소란에 놀라 뛰쳐나온 주제에 이웃상봉을 하고 있다. 그 새 유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난 새벽 5시까지 일기장에다 서러운 나의 첫 키스 경험담을 적으며 눈물을 쏟았다.


학원 자습실. 나와 유나를 위시하여 또 다른 4명의 친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차라리 새로 이사를 가버리는 것이 어때?”

“후후후……. 울 엄마랑 누나들과 분가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아니면, 그 애의 오빠가 차바퀴에 얼굴이 깔려버리던지.”

“그렇게 할까? 현진이 너 차 몰고 다니지?”

“이봐…….”

애초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희진이 얘기였다.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올 리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희진이의 그 처참막지한 포스를 깔아뭉갤 대안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것들 장난포스도 만만치 않았다.

“아가리를 찢어버릴까?”

“아가리를 찢어버린다. 좀 진지하게 얘기해 봐.”

“이번에 정부에서 새롭게 어린이 삼청교육대를 신설했다는데, 거기에 보낼까?”

“정말?”

“내 말을 믿어주려는 놈도 있었군.”

“배 짼다. 농담하지 말고 진지하란 말야!”

“우리가 단체로 너희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어때?”

“응?”

성화의 의견에 모두가 정신을 집중시켰다. 성화는 모두를 한 번씩 돌아본 뒤 말을 이었다.

“이에는 삼, 눈에는 안경이라고 했어. 그 계집애의 말하는 싸가지가 문제라면, 우리들은 좀 더 강력한 말공격을 펼치는 거야. 설마 여섯 명이 애 하나를 못 당하겠니?”

“…….”

“흠. 그것 괜찮군.”

“…….”

“성화는 언제나 똑똑해서 마음에 들어.”

“성화야, 너 혼자 뭐 하냐? 생각 좀 하게 입 좀 다물어.”

모두가 불평했지만, 성화는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고집했다. 생각해보니 나쁜 의견도 아니었다. 다수의 파워가 무엇인가! 백두산까지 진격했던 국군도 개떼에 밀려 장동건을 죽이지 않았던가. 결국 우리들은 성화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성화가 신이 나서 외쳤다.

“좋았어! 지금 당장 가자!”

“그래! 개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가자!”

빠앙!

성화가 폭죽까지 터뜨리며 미래를 밝혔다. 그 순간 우리들은 잽싸게 침묵했다. 또 하나의 폭죽을 터뜨리는 성화의 뒤에서 학원 수위아저씨와 장수생 형들이 찌를만한 것을 들고 미소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1시.

“흠. 동네가 마음에 드는군. 무척 깨끗해.”

풍문에 의하면 남의 집에 초대를 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는 성화에게서 즐거운 콧노래가 흘렀다. 6명의 결사대는 마음속으로 ‘타도 강희진’을 외치며 우리 집을 향해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희진이가 작살나는 날이리라. 얼마 전처럼 희진이가 나를 향해 굴러오기를 기대했지만, 대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난 희진이의 등장을 기원하며 초인종을 무시했다.

“엄마! 문 열어!”

쾅쾅쾅쾅쾅!

주먹을 쥐고 열심히 대문을 두드렸다. 최대한 커다란 소리가 나도록. 그러면서 희진이의 집을 향해 눈을 흘겼는데, 목표물이 좀처럼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새 대문이 열렸다. 난 잽싸게 대문을 잠그고 다시 두드렸다.

“안 열렸어, 엄마! 다시 열어줘!”

쾅쾅쾅쾅쾅!

“어, 문영 오빠.”

비로소 옆집 2층에서 희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어어, 희진아! 집에 있었구나!”

“응. 근데 그건 또 웬 개떼들이야?”

“응?”

“희진이 졸려. 잠깐만 잤다가 밤에 갈게, 오빠.”

희진이는 피곤함이 담겨진 음성으로 짤막하게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내가 반박할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또한 내 주변의 개떼들이 힘을 발휘할 타이밍도 없었다.

“음…….”

난 지원견들을 돌아봤다.

“너희들… 오늘 우리집에서 밤 샐 생각 없냐?”

“훗날의 기약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난 좋아! 밤 새자!”

“성화, 넌 안돼.”

“…….”

“…….”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다음날이 되었다. 일요일. 희진이가 아침부터 쳐들어오는 날이다. 나는 어제 오후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몸져누운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아침 8시. 때르르르르 울려대는 시계의 알람소리를 닥치게 하고서 재차 단잠에 빠져든 내 주위로 음험한 그림자가 접근했다. 물론 그랬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영오빠아?”

귓불을 간질이는 나긋한 음성에 난 잠깐 미소를 지었다.



2회 끝(2회로도 나눌 수 없다니... ㅠ_ㅜ)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