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9일 토요일

창작의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니다.

지금도 레디 오스 성화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경험자들은 3가지 단어를 제시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그것이다.

일부의 작가들이 무진장 부러워하는 '재능'은 위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즉, 재능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반석차 31등이 29등을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 노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재능이기 때문이다. 재능을 선천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지레 포기한 채 구름 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그 구름은 아무나 불러도 날아오는 근두운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재능은 만들 수 있다.

그럼 이 천재들은 어떤 노력을 했기에 재능을 가졌을까?

본의 아니게 삶을 찾고 욕심을 부린 결과다. 어릴 때 만화를 좋아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고 남을 즐겁게 만드는 과정에서 쾌락을 찾는 삶이 창작에 대한 재능을 만든다. 좀 더 많은 만화를 보고, 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좀 더 많은 놀이를 즐길수록 재능은 증폭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는 새 오늘에 이른다. 숨쉴 때 들어오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놈이라서 미처 의식하지 못하기에 재능을 선천적인 것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물론 이 속에서도 운이 따른다. 사귀는 친구의 재능이 어떠하냐에 따라 자기발전의 폭이 달라진다. 읽고있는 만화책이나 소설책의 수준이 어떠하냐에 따라 재능의 폭이 달라진다. 좀 더 높은 재능을 유발하는 친구나 책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최대한 많이 얻어야 한다. 그래야 확률이 높다.

이것을 다른 말로 '다독'이라고 한다. 다독은 그저 책을 읽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수많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고, 그 경험 중 무언가가 자신의 다음 행동에 재능으로서의 도움을 주게된다. 그렇다면 창작과 관련된 경험이 뭘까? 모든 것이다! 창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겪은 모든 경험 자체가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A와 B가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친구를 사귀고 똑같은 경험을 했다면 이 둘의 재능은 같을까?

그렇지 않다. 이 경험 속에서 재능의 수준이 또 다시 나뉜다. 그것은 경험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다.

똑같이 당구를 시작해서 똑같이 연습을 했어도 실력차이가 난다. 그 이전에 당구와 관련된 경험(예를 들어 구슬치기나 야구같은 경험)을 했다는 건 예외로 치자. 똑같은 과거를 가졌어도 실력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 경험에 대한 집중력과 사고의 차이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더니 천장에서 빨간공과 하얀공이 쿠션을 그리며 돌아다니고, 친구가 공을 칠 때 그 공이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스스로도 모르게 떠올리는 것. 단독 드리블 돌파로 골키퍼와 1:1상황이 되어 슛을 날릴 때 시네루로 골대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경험에 대한 집중력이 재능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똑같은 만화를 봐도 그 만화에 대해 이것저것 떠올리고,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농담을 들으면 그것을 다른 친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더 재미있는 반응을 불러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소설책을 읽는데 각 지문이 말하는 배경이 스스로도 모르게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다상량'이라고 한다.

'다작'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재능에서 제외하겠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이 삶들이 당신을 만든 것이다. 당신에게 창작의 재능이 있다면 당신은 창작의 재능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 삶을 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가꾼다면 당신의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중창작을 하면서 '작가는 고독해야 돼'라며 주변을 떨치는 사람. 대중창작을 하면서 '남의 작품을 읽으면 내 작품이 흔들릴 수 있어'라며 타작품을 외면하는 사람. 장담하건대 대중창작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알고 세상의 작품을 알아야 대중을 위한 창작의 재능을 놓치지 않는다.

나이를 따지고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 따져야 할 건 있다. -_-;;

나보다 10여 년이나 어린 것들이 자신은 나보다 재능이 없다며 투덜대는 걸 보면 칵 쥐어박고 싶다. 나보다 10여 년이나 나이 많은 선배가 늙으면 젊은애들 감각을 따라갈 수 없다고 불평하는 걸 보면 칵 물어버리고 싶다. 일단 어린아?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단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창작에 목을 매며 살던 놈이란다. 3년만 기다려라. 30년 채운다. 30년간 창작에 목을 매며 재능을 키웠던 놈에게 투덜이가 웬 말이냐. 내가 선배의 재능을 훔치듯 너도 지금 내 재능을 훔쳐서 10년 후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질 수 있잖냐. 투덜대야 할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늙은님? 젊은애들이 백 날 노력하면 뭐합니까? 늙은이들도 백 날 노력하는데. 똑같이 노력하면 늙은이가 죽을 때까지 젊은이는 당신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니막. 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요즘 젊은이들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외면하거나 '에잉, 요즘 젊은 것들이란... 쯔쯔.'라고 궁시렁대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재능을 키워도 늦지 않다. 진작부터 재능을 키웠던 녀석들보다는 빨리 성장할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강화된 상태니까. 다만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접하는 문화의 일면을 티껍게 바라보지만 마라. 창작적 관점에 있어서 이 세상에 잘못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접하는 모든 생활에,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라. 그것이 당신의 창작재능을 키우는 열쇠다.

창작의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9개:

  1. 저는 창작의 재능은 선척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같은 노력을 해도 얻는게 전혀 다른 경우가 태반이란것도 예중하나고,

    일부만이 갖고있는 그들만의 특이함이나 참신함, 그것도 재능의 일종이죠, 기본적인 능력, 그러니까 문체라던지 매끄러운 전개따위야 노력으로 얼마든지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력으로 못얻는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재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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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같은 노력이라는 것의 기준점에 오류가 있을 뿐입니다. 같은 노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전혀 다른 노력이란 얘기죠. 스타트 지점은 태어나서 경험을 얻는 순간부터입니다. 어떤 경험을 얻느냐에 따라 특정한 노력에 대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을 하게된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그걸 재능이라고 부릅니다. 노력으로 얻지 못한다고 여기는 이유는 상대방의 역사를 무시한 채 당장 직면한 상황만을 견주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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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 투털이는 날 두고 하는 소리냐?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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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넌 그 재능에서 더 욕심부리면 맞아 죽어도 싸. 넌 투덜댄 적 없잖앙.(게다가 넌 말이지... 노년기 쪽이세요.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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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런...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ㅠ 트랙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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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가 '재능' 의 차이라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같은 노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노력인 이유는,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결과론이 아닐까요.



    *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와 본인을 예로 들고 싶군요.(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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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 글좀 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출처 반드시 밝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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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좋은글 담아가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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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rackback from: 창작의 재능은 선천적인가?
    창작의 재능은 절대로 선천적인 게 아니다. 레디오스 성화 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이미 중요한 말은 링크에 다 되어있으니 궁금하면 읽어보세요(특히 "난 창작의 길을 가고야 말리라!" 고 다짐하는 lv.1 견습작가 분들은 반드시 가실 것을 권유하는 바올시다... 물론 이 블로그에 그런 분이 오실 리는 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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