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력만능주의자다. 에디슨이 말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나는 그 1%의 영감마저 노력으로 만드는 것임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분야만 다를 뿐이지, 사람이 사람에게서 얻어내는 매력은 대부분 노력에 있다. 그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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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이성에게 호감을 받고 싶다면, 그 이성에게 자신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제일이다. 그 이성이 느낄 수 있는 곳에서 뭔가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히 호감을 받는다. 그 노력이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라도 효과가 있다. 또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노력' 그 자체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 속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가지가 아래를 향하더라도 가지는 가지다. 가지가 가지를 낳고 잎을 낳고 열매를 낳는 것이다. 가지를 내밀고 그것을 보살피면 놈을 꺼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상관없이 열매는 자란다.
사람들은 강한 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300Kg의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며 웃을 필요는 없다. '힘이 세다'와 '강하다'는 다르다.
사람 앞에서 강해지고 싶다면 익혀둬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가 자기 자랑을 삼가는 것이다. 자기 자랑은 약자들의 전유물이다.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남에게 자신의 업적을 자랑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이룬 업적이 자신의 능력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힘을 발휘했다고 여겼기에 남에게 당당히 꺼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업적의 경계선보다 못한 존재라고 떠벌리는 꼴이다.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룰 자신이 있다면, 더 강해질 자신이 있다면, 나중에 자랑해라. 남자는 세 번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사람은 한 번 자랑을 한다. 자랑의 내용은 누구나 같다. "난 해냈어."
둘째가 신세한탄을 삼가는 것이다. 당면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신세한탄을 하는 것인데, 육체적인 무능력 상태에 빠졌다면 또 모를까, 평상시의 만남이나 술좌석에서 남발할 이유가 없다. 당면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방법을 논하는 게 더 효율적인 시간이 아닐까? 친구의 도움은 신세한탄을 들어주는 것보다, 상황 역전의 발판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셋째가 뒷말을 삼가는 것이다.(불평 자체를 삼가하면 더 좋다. -_-) 뒷말은 혼자서 못한다. 누군가 반드시 들어줄 사람이 있게 마련이며, 뒷말을 하는 목적은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능력으로 한 사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누군가를 찍어 누르려는 나약함의 발로다. 걔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며 너도 사람이다. 1:1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조건 2:1, 3:1로 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1:1을 펼칠 수 없지만, 1:1로 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다수:1의 효과도 가질 수 있다.
넷째가 분노를 삼가는 것이다. 화를 내는 이유는 직면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상황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개처럼 으르렁댄다고 보면 된다.(그래서 개새끼가 나온 건가!) 직면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다스려라. 꼭 화를 내야겠다고 생각되면 말은 더듬지 마라. -_-;;
이것을 두고 '자신을 다스리는 법'이라고들 한다. 자신의 내면적인 능력에 충실한 뒤 남을 상대하면 어떻게 될까? 자기 자랑도 하지 않고, 신세한탄도 하지 않고, 뒷말도 하지 않고, 시비를 걸어도 화를 내지 않으면 난 대체 이들 앞에서 뭘 해야 할까?
듣게 된다. 저들의 이야기를 듣게되고 그것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내가 나의 이야기, 나 자신이 갖고있던 여태까지의 경험을 꺼내고 있을 때 얻지 못했던 타인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 속에 지닌 맹점을 찾아내어 짤막하게 지적할 수 있는 힘까지 얻을 수 있다. 백 날 떠들어도 얻을 수 없었던 우월감이 단 한 마디로 품을 찾을 것이다.
남은 것은 행동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무엇을 하던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영웅이야 결과를 보여줘서 과정을 인정받지만, 나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과정까지 지켜보는 존재들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을 받고 매력있는 존재로 각인된다.
다음은 결과다. 세상이 스피드 시대인 데에다, 매스컴이 떠들어대는 건 모두 다 럭키펀치라서 혼동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세상은 도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도박에 혹하지 말아라. 당신의 인생은 도박이 아니다.
"이걸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어!"
"좋아! 이 기획만 성공하면 우린 된 거야!"
"같이 고생하자! 이것만 된다면......"
"아 씨! 이것만 됐어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결과물을 신용하지 말아라. 성공은 도박이 아니다. 그저 일순간의 결과가 도박처럼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착각하는 것이다. 성장은 사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이다. 노력하며 축적했던 것이 일순간 효과를 보이며 계단처럼 껑충 뛰어오른 뒤, 다시 노력을 쌓는 평행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벌어진 착각이 '도박 인생'이다. 학생이 공부할 때 갑자기 반석차가 뛰어오르는 것도 도박이 아니라 계단상승의 일면이고, 만년 과장이던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바이어 한 명 잘 상대했다며 이사가 되는 것도 계단상승이다. 그런 상황을 맞이할 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나에 집중하여 전념하는 건 좋다. 그러나 그것에게 인생 끄트머리 만큼의 성공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자. 하나에 집중하고, 다음 하나에 집중하고, 또 그 다음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언젠가 그 하나들 속에서 어떤 녀석이 펄쩍 뛰어오를 것이다. 그걸 알고 전념하면 낙담하지 않게된다. 똑같이 성공하는 자라도 '도박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자', '정말 도박으로 성공한 자(당연히 이런 사람도 있다. 이번주 로또에 1등으로 당첨되면 이 사람은 당신이다. 자신 있는가?)'보다 '노력의 과정에서 성공한 자'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매력이 빠져나갈 시간의 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매력이다.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매력중에 가장 으뜸은 자신을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불안감도 없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상대할 때 진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인 매력이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서로가 동등한 능력을 갖췄다고 여기는 상대에게) 화를 내면, 10에 9는 상대방도 같이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강도가 거세질 수록 상대도 거세지고, 주먹을 날리면 주먹이 날아온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사회라는 것을 겪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본능이며 '거울이론'이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도 진심으로 대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만약 상대가 그것을 실패했을 때 무엇이 남겠는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한 상대존재에게 부러움과 매력을 느끼게 된다. 진심이라는 것은 강렬한 매력이다. 물론 스토커와 진심을 헛갈리지 말기 바란다. 스토커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진심이 열심히 가지를 뻗고 뻗다가 다른 가지에 얽혀버린 특이케이스다. -_-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 우물을 파자. 뭔가에 전념했던 사람이 그것에 지쳐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꼴이다. 이것은 계단을 처음부터 다시 밟는 경우인데, 당연히 이전에 겪었던 계단오르기의 경험 덕에 좀 더 빨리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층에 이르렀을 때는 옛날 그 때처럼 지쳐버릴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이 새로운 계단을 밟아도 매력을 느낄게 분명하지만, 그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다. '쟤는 계단을 저렇게까지 밟아 오른 녀석이야. 이번에도 그만큼 밟아주겠지.'가 전부일 뿐이다.
명확한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그 문제를 언급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나에겐 없다. 다만 선택한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자주 목표를 바꾸는 걸 삼가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높은 층의 계단에 당신의 힘이 있고 매력이 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사람들 속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가지가 아래를 향하더라도 가지는 가지다. 가지가 가지를 낳고 잎을 낳고 열매를 낳는 것이다. 가지를 내밀고 그것을 보살피면 놈을 꺼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상관없이 열매는 자란다.
사람들은 강한 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300Kg의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며 웃을 필요는 없다. '힘이 세다'와 '강하다'는 다르다.
사람 앞에서 강해지고 싶다면 익혀둬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가 자기 자랑을 삼가는 것이다. 자기 자랑은 약자들의 전유물이다.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남에게 자신의 업적을 자랑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이룬 업적이 자신의 능력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힘을 발휘했다고 여겼기에 남에게 당당히 꺼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업적의 경계선보다 못한 존재라고 떠벌리는 꼴이다.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룰 자신이 있다면, 더 강해질 자신이 있다면, 나중에 자랑해라. 남자는 세 번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사람은 한 번 자랑을 한다. 자랑의 내용은 누구나 같다. "난 해냈어."
둘째가 신세한탄을 삼가는 것이다. 당면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신세한탄을 하는 것인데, 육체적인 무능력 상태에 빠졌다면 또 모를까, 평상시의 만남이나 술좌석에서 남발할 이유가 없다. 당면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방법을 논하는 게 더 효율적인 시간이 아닐까? 친구의 도움은 신세한탄을 들어주는 것보다, 상황 역전의 발판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셋째가 뒷말을 삼가는 것이다.(불평 자체를 삼가하면 더 좋다. -_-) 뒷말은 혼자서 못한다. 누군가 반드시 들어줄 사람이 있게 마련이며, 뒷말을 하는 목적은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능력으로 한 사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누군가를 찍어 누르려는 나약함의 발로다. 걔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며 너도 사람이다. 1:1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조건 2:1, 3:1로 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1:1을 펼칠 수 없지만, 1:1로 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다수:1의 효과도 가질 수 있다.
넷째가 분노를 삼가는 것이다. 화를 내는 이유는 직면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상황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개처럼 으르렁댄다고 보면 된다.(그래서 개새끼가 나온 건가!) 직면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다스려라. 꼭 화를 내야겠다고 생각되면 말은 더듬지 마라. -_-;;
이것을 두고 '자신을 다스리는 법'이라고들 한다. 자신의 내면적인 능력에 충실한 뒤 남을 상대하면 어떻게 될까? 자기 자랑도 하지 않고, 신세한탄도 하지 않고, 뒷말도 하지 않고, 시비를 걸어도 화를 내지 않으면 난 대체 이들 앞에서 뭘 해야 할까?
듣게 된다. 저들의 이야기를 듣게되고 그것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내가 나의 이야기, 나 자신이 갖고있던 여태까지의 경험을 꺼내고 있을 때 얻지 못했던 타인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 속에 지닌 맹점을 찾아내어 짤막하게 지적할 수 있는 힘까지 얻을 수 있다. 백 날 떠들어도 얻을 수 없었던 우월감이 단 한 마디로 품을 찾을 것이다.
남은 것은 행동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무엇을 하던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영웅이야 결과를 보여줘서 과정을 인정받지만, 나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과정까지 지켜보는 존재들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을 받고 매력있는 존재로 각인된다.
다음은 결과다. 세상이 스피드 시대인 데에다, 매스컴이 떠들어대는 건 모두 다 럭키펀치라서 혼동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세상은 도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도박에 혹하지 말아라. 당신의 인생은 도박이 아니다.
"이걸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어!"
"좋아! 이 기획만 성공하면 우린 된 거야!"
"같이 고생하자! 이것만 된다면......"
"아 씨! 이것만 됐어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결과물을 신용하지 말아라. 성공은 도박이 아니다. 그저 일순간의 결과가 도박처럼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착각하는 것이다. 성장은 사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이다. 노력하며 축적했던 것이 일순간 효과를 보이며 계단처럼 껑충 뛰어오른 뒤, 다시 노력을 쌓는 평행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벌어진 착각이 '도박 인생'이다. 학생이 공부할 때 갑자기 반석차가 뛰어오르는 것도 도박이 아니라 계단상승의 일면이고, 만년 과장이던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바이어 한 명 잘 상대했다며 이사가 되는 것도 계단상승이다. 그런 상황을 맞이할 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나에 집중하여 전념하는 건 좋다. 그러나 그것에게 인생 끄트머리 만큼의 성공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자. 하나에 집중하고, 다음 하나에 집중하고, 또 그 다음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언젠가 그 하나들 속에서 어떤 녀석이 펄쩍 뛰어오를 것이다. 그걸 알고 전념하면 낙담하지 않게된다. 똑같이 성공하는 자라도 '도박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자', '정말 도박으로 성공한 자(당연히 이런 사람도 있다. 이번주 로또에 1등으로 당첨되면 이 사람은 당신이다. 자신 있는가?)'보다 '노력의 과정에서 성공한 자'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매력이 빠져나갈 시간의 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매력이다.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매력중에 가장 으뜸은 자신을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불안감도 없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상대할 때 진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인 매력이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서로가 동등한 능력을 갖췄다고 여기는 상대에게) 화를 내면, 10에 9는 상대방도 같이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강도가 거세질 수록 상대도 거세지고, 주먹을 날리면 주먹이 날아온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사회라는 것을 겪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본능이며 '거울이론'이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도 진심으로 대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만약 상대가 그것을 실패했을 때 무엇이 남겠는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한 상대존재에게 부러움과 매력을 느끼게 된다. 진심이라는 것은 강렬한 매력이다. 물론 스토커와 진심을 헛갈리지 말기 바란다. 스토커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진심이 열심히 가지를 뻗고 뻗다가 다른 가지에 얽혀버린 특이케이스다. -_-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 우물을 파자. 뭔가에 전념했던 사람이 그것에 지쳐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꼴이다. 이것은 계단을 처음부터 다시 밟는 경우인데, 당연히 이전에 겪었던 계단오르기의 경험 덕에 좀 더 빨리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층에 이르렀을 때는 옛날 그 때처럼 지쳐버릴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이 새로운 계단을 밟아도 매력을 느낄게 분명하지만, 그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다. '쟤는 계단을 저렇게까지 밟아 오른 녀석이야. 이번에도 그만큼 밟아주겠지.'가 전부일 뿐이다.
명확한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그 문제를 언급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나에겐 없다. 다만 선택한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자주 목표를 바꾸는 걸 삼가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높은 층의 계단에 당신의 힘이 있고 매력이 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이글루에 이렇게 힘주어 글 쓰시다가 정작 우리가 기대하고 고대하는 글을 쓸 힘이 남지 않게 되는 건 설마 아니겠지.....하고 슬그머니 걱정이 머리를 듭니다.
답글삭제글 쓰던 중에 지쳐서 휴식할 겸 썼어요. ^^
답글삭제4번뺴고는 난 다 모조리 해당불가...역시 소인인가 OTL
답글삭제그런대 형 요즘 글삘서나보냉..!!
흠이거 근시일안에 먼가나오려나...
레디형님 파이팅!!
근대형님 저위에사진 혹시 최근것?
답글삭제2003년 겨울 거였을 듯...;;;
답글삭제어쩐지 젊어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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