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공부 열심히하면 뭘 하나. 배운 것이라고는 이 문장에 은유법이 쓰였는지 의인법이 쓰였는지 밑줄 체크하고, 단어의 비슷한 말이 뭔지 반대말이 뭔지 깨알같은 글씨로 적는 것 뿐이었는데. 국어수업과는 거의 상관없이 나는 처음 소설을 연재했을 때 극악의 문장을 자랑했다.
이어지는 내용
세월이 흘러서 나의 옛글을 다시 읽으면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기. 나도 모르게 문장을 수정하기. 백업을 해두지 않았다면 내 연재글의 원문은 지구상에서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실제로 결혼기념일의 초판본은 사라졌다. 이 글을 제본해서 친구들에게 돌린 적이 있다. 이 개인적인 초판본을 찾아내지 못하면 난 영원히 결혼기념일 초고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 형편없는 문장력을 가지고 20년 가까이 소설을 썼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문장력이 늘더라. 그리고 내가 배웠던 것이 뭔지를 자연스레 알게되었다. 가장 지겨운 단원이었던 논설문과 설명문에서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가 들어있었는 지를 깨달았고, 구양수와 공자가 내 인생을 좌우할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앎 중 하나가 시점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인공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이다. 인물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하며 독자에게 신뢰와 친근감을 준다.
1인칭 관찰자 시점: 작품 속의 ‘나’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이다. 이야기는 ‘나’의 눈에 비친대로 전개된다.
제한적 시점: ‘작가 관찰자 시점’이라고도 한다. 작품 속의 특정한 이름이나 ‘그’, ‘그녀’는 화자로서 이야기를 전하지만 자신은 단지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외부적 사실만을 묘사한다. 극적 효과를 얻기에 적당하며, 뒤에 독자로 하여금 대리 경험을 느끼게 하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전지적 시점: 주인공이 특정한 이름이거나 ‘그’, ‘그녀’ 등의 호칭으로 등장한다. 화자는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심리, 행동의 동기, 감정 등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소설에 개입하여 인물이나 사건을 비평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배웠지만, 대충의 의미만 알고있을 뿐이었다. 이 시점이 글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는 몰랐다.
장난 아니게 영향을 많이 주더라. -_-
내가 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된 작품이 있다. 방지나님의 '마왕의 육아일기'다. 이 작품으로 인해 나는 시점을 고민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작품의 중요한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최근 판타지와 무협문학에 많이 사용된다. 모 작품의 영향을 크게 받아 벌어지게된 오마주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중창작계에서 이렇게까지 시점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이것을 순기능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 오마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대규모의 세계관을 표현해야 할 판타지와 무협문학에게 적잖은 패널티다. 이야기가 중심이라고는 해도 다양하게 펼쳐지는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적절히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과 다양한 인물의 행동반경을 어쩔 수 없이 제한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몇몇의 작가들은 시점을 죽인다. -_-
자! 매트릭스의 세상이 왔다. 옆에서 촬영중인 다른 영화사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필름을 가져와라! 그쪽이 더 잘 찍힌 것 같다! 아따, 그쪽 카메라 얼마짜리여? 나가 지금 영화찍는데 삘이 안오니께 니들이 좀 찍어줘야긋다, 잉? 어허! 때되면 나도 찍을팅게! 아무튼 작품은 우리영화사꺼여. 어디서 어느 카메라로 찍는 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신이 지정한 카메라의 가치는 떨어졌다.
이것이 부드럽게 이어진다면, 혹은 작품의 진행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고 독자들이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변화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점의 한계에서 도망치기 위한 방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자는 절대로 실력을 키울 수 없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장점은 흡입력, 또는 몰입도다. 독자는 작중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깊숙하게 받아들이며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든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세밀한 감정이입과 이해도를 높이는 데 1인칭 주인공 시점만큼 쓸만한 게 없다. 단점은 아까 말했듯 밖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세계의 흐름과 주인공을 벗어난 인물들의 걸음을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주인공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의 커다란 변화가 작품의 내용에 반영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은 포기해야 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는 자신을 상상해라. 자신이 뭐가 되건 달려야 한다. 저들이 달리면 당신도 달리고 저들이 뛰어내리면 당신도 뛰어내려야 한다. 1인칭 주인공시점! 적이 칼을 들고 달려들건,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건 눈을 감지 마라! 당신은 세계의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
그저 멀리서 '난 글을 쓰는 사람이어라.'하며 콧노래와 함께 자판을 두드린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쓰지 말아라. 그나마 있던 장점까지 날아가버린다. 실감나는 살인장면을 쓰고싶다면 직접 죽여라. 글 속에서 칼을 쥔 기사가 바로 당신이란 말이다. 그 맛을 알았다면 다른 시점에 눈을 돌리지 말아라. 이미 당신은 세계 최고의 카메라를 스스로의 눈에 박아버린 상태다. 저쪽 영화사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보여도 당신것이 더 좋다.
묻고싶다. 세상이 보이는 지를. 자신이 쓰고있는 단어가 물질로 변화하여 눈앞에 머물러 있는 지를.
자자! 힘내자!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하하하.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이 형편없는 문장력을 가지고 20년 가까이 소설을 썼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문장력이 늘더라. 그리고 내가 배웠던 것이 뭔지를 자연스레 알게되었다. 가장 지겨운 단원이었던 논설문과 설명문에서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가 들어있었는 지를 깨달았고, 구양수와 공자가 내 인생을 좌우할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앎 중 하나가 시점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인공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이다. 인물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하며 독자에게 신뢰와 친근감을 준다.
1인칭 관찰자 시점: 작품 속의 ‘나’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이다. 이야기는 ‘나’의 눈에 비친대로 전개된다.
제한적 시점: ‘작가 관찰자 시점’이라고도 한다. 작품 속의 특정한 이름이나 ‘그’, ‘그녀’는 화자로서 이야기를 전하지만 자신은 단지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외부적 사실만을 묘사한다. 극적 효과를 얻기에 적당하며, 뒤에 독자로 하여금 대리 경험을 느끼게 하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전지적 시점: 주인공이 특정한 이름이거나 ‘그’, ‘그녀’ 등의 호칭으로 등장한다. 화자는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심리, 행동의 동기, 감정 등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소설에 개입하여 인물이나 사건을 비평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배웠지만, 대충의 의미만 알고있을 뿐이었다. 이 시점이 글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는 몰랐다.
장난 아니게 영향을 많이 주더라. -_-
내가 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된 작품이 있다. 방지나님의 '마왕의 육아일기'다. 이 작품으로 인해 나는 시점을 고민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작품의 중요한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최근 판타지와 무협문학에 많이 사용된다. 모 작품의 영향을 크게 받아 벌어지게된 오마주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중창작계에서 이렇게까지 시점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이것을 순기능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 오마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대규모의 세계관을 표현해야 할 판타지와 무협문학에게 적잖은 패널티다. 이야기가 중심이라고는 해도 다양하게 펼쳐지는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적절히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과 다양한 인물의 행동반경을 어쩔 수 없이 제한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몇몇의 작가들은 시점을 죽인다. -_-
자! 매트릭스의 세상이 왔다. 옆에서 촬영중인 다른 영화사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필름을 가져와라! 그쪽이 더 잘 찍힌 것 같다! 아따, 그쪽 카메라 얼마짜리여? 나가 지금 영화찍는데 삘이 안오니께 니들이 좀 찍어줘야긋다, 잉? 어허! 때되면 나도 찍을팅게! 아무튼 작품은 우리영화사꺼여. 어디서 어느 카메라로 찍는 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신이 지정한 카메라의 가치는 떨어졌다.
이것이 부드럽게 이어진다면, 혹은 작품의 진행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고 독자들이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변화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점의 한계에서 도망치기 위한 방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자는 절대로 실력을 키울 수 없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장점은 흡입력, 또는 몰입도다. 독자는 작중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깊숙하게 받아들이며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든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세밀한 감정이입과 이해도를 높이는 데 1인칭 주인공 시점만큼 쓸만한 게 없다. 단점은 아까 말했듯 밖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세계의 흐름과 주인공을 벗어난 인물들의 걸음을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주인공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의 커다란 변화가 작품의 내용에 반영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은 포기해야 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는 자신을 상상해라. 자신이 뭐가 되건 달려야 한다. 저들이 달리면 당신도 달리고 저들이 뛰어내리면 당신도 뛰어내려야 한다. 1인칭 주인공시점! 적이 칼을 들고 달려들건,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건 눈을 감지 마라! 당신은 세계의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
그저 멀리서 '난 글을 쓰는 사람이어라.'하며 콧노래와 함께 자판을 두드린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쓰지 말아라. 그나마 있던 장점까지 날아가버린다. 실감나는 살인장면을 쓰고싶다면 직접 죽여라. 글 속에서 칼을 쥔 기사가 바로 당신이란 말이다. 그 맛을 알았다면 다른 시점에 눈을 돌리지 말아라. 이미 당신은 세계 최고의 카메라를 스스로의 눈에 박아버린 상태다. 저쪽 영화사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보여도 당신것이 더 좋다.
묻고싶다. 세상이 보이는 지를. 자신이 쓰고있는 단어가 물질로 변화하여 눈앞에 머물러 있는 지를.
자자! 힘내자!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하하하.
레디 오스 성화 올림
개인적으로 그 스케일적 패널티 때문에 장편을 쓸때는 1인칭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전지적 작가시점은 객관적에서 주관적까지, 자유자재로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감정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폭넓은 가능성을 제공하지요. 물론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지만요 :)
답글삭제저도 전지적 작가 시점을 많이 애용합니다. '망나니의 피'나 몇몇의 공포단편들처럼 예외를 두는 글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장편은 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죠. ^^;;
답글삭제전글에서 1인칭 써봤는데 정말 답답하더군요. 답답한데다 표현의 한계까지 있어서 가슴이 터지고 열불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는 1인칭따위 쓰지 않으리!'하고 맹세했건만... 또 의외로 1인칭이 즐기면서 쓰기엔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답글삭제=ㅅ=
최근 새로 유행하는 시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1인칭 전지적 시점-_-;; 경이적이죠.
답글삭제장편에서 1인칭으로 쓰다보면 주인공과 안맞아서 그냥 넘겨야 하는 난감한 장면들이 생기니 낭패입니다.=_=;
답글삭제요코미쓰 리이치가 4인칭을 시도했다고 해서 <문장>을 구해 읽어보려했는데 사정상 못봤지요;
답글삭제이르나크의 장을 요즘 다시 읽었는데, 완전히 보물섬스럽더군요 (시점이 화자에 따라 멀티플레이어로 가고 있음...--;)
답글삭제저의 경우는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아예 더 절제해서 연대기처럼 극단적 사실만 나열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새 읽은 '내 이름은 빨강'은 독특하더군요-ㅅ-;
답글삭제1인칭 시점의 화자가 계속 이동; 예전에 무라카미 류의 글도 릴레이로 1인칭 시점의 화자가 이동했었던 기억이 있지요;
읽을 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쓰면 시점이 정말 중요하더군요. 처음엔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많이 썼는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써버릇하니까 이젠 그게 더 쉽고..... 결론은 어렵다는 것.
답글삭제이런 게 하나씩 나타나서 딴 글로 연습하게 만드는 게 참 고민이죠. -ㅅ-;;
답글삭제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는 자신을 상상해라. 자신이 뭐가 되건 달려야 한다. 저들이 달리면 당신도 달리고 저들이 뛰어내리면 당신도 뛰어내려야 한다. 1인칭 주인공시점! 적이 칼을 들고 달려들건,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건 눈을 감지 마라! 당신은 세계의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
답글삭제그저 멀리서 '난 글을 쓰는 사람이어라.'하며 콧노래와 함께 자판을 두드린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쓰지 말아라. 그나마 있던 장점까지 날아가버린다. 실감나는 살인장면을 쓰고싶다면 직접 죽여라. 글 속에서 칼을 쥔 기사가 바로 당신이란 말이다. 그 맛을 알았다면 다른 시점에 눈을 돌리지 말아라. 이미 당신은 세계 최고의 카메라를 스스로의 눈에 박아버린 상태다. 저쪽 영화사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보여도 당신것이 더 좋다.
이 말 너무 짜릿한 글이네요
FPS 화면이 순간 연상되면서 짜릿한 쾌감이 몸을 순간 훓고 지나갔어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