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었다 우리 어깨를 걸고. 전대협의 깃발 아래.
강철같은 우리의 대오. 총칼로 짓밟는 너.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아아 전대협이여. 우리의 자랑이여.
나가자. 투쟁이다! 승리의 그 한 길로.
대학 시절에 하도 자주 불러서 지금도 외우고 있는 '전대협 진군가'다. 당시의 나는 경인총련 소속이었고, 경인총련은 한총련 소속이었다. 한총련 소속이었던 나는 '전대협 진군가'는 기억해도 '한총련 진군가'는 기억하지 못한다. 전대협 진군가가 더 부르기 편해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느낀 노래의 의미는 '당시의 한총련이 전대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가 더 컸다.
이어지는 내용
전대협. 세계의 시위문화는 한국의 전대협에게 호평을 내렸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투쟁하고, 하나로 똘똘 뭉친 조직체계로 국가 대표자에게 6.29선언이라는 백기를 들게 만든 주동세력이다. 여러 나라는 한국의 시위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점점 더 발전하는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지켜봤다. 그리고 좀 더 거대한 조직 한총련이 출범되었다.
한총련은 성공시대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전대협의 뜻을 존중하며 이어받았다.
세월이 흘렀다. 시대가 바뀌었다. 내가 대학에 첫발을 내밀고 군대를 나와 복학생이 되었을 때, 전대협은 전총련으로, 그리고 한총련으로 바뀌었다. 한총련은 여전히 신입생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했다. 발대식에 모인 학생들은 투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학우, 차디찬 감옥바닥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우, 광주항쟁 당시에 민주화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애국선열들을 기리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차디찬 강의실 바닥에서 신문지와 박스를 덮고 잠을 청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운동장에 앉아서 소주 한 병을 가운데 두고 작게는 한총련의, 크게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토론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진실을 가르쳤고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진실을 물었다. 토론으로 밤이 새는 줄 몰랐으며, 사방에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와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졌다.
나는 그 때 한총련에게 회의를 느꼈다.
그 이후로도 총학생회를, 총여학생회를, 투쟁의 토론장을 오랫동안 찾았다. 그럴 수록 나의 회의감은 짙어졌다.
시대가 바뀌고 정치인들이 수작하는 레벨도 올랐는데 유독 한총련만 그대로였다. 누구보다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직시해야 할 대학생들의 모임이 전대협의 그늘에 안주하며 과거의 향수에 취해있었다.
학생들은 이미 깨쳤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 없어도, 무엇이 잘못됐는 지는 감지할 수 있는 학생들이 대학을 찾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총련 선배들은 전대협이 성공시켰던 주입식 교육의 향수에 젖어서 그 방법을 버리지 않았다.
"정부는 이래서 나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이렇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하여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노태우 대통령이 저지르는 잘못은 이것이다. 그중 이게 제일 큰 잘못이다!"
"같은 동포인 북한과 친해져야 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과거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국민들이 깨치고 일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들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아니, 우리들만이라도 일어나서 민주주의의 참뜻을 알려야 한다!"
좋은 말 참 많았다. 진실도 많았다. 이제까지 북한에 대해서라면 5호 담당제라느니 김일성이 모래알로 쌀을 만든다느니만 들어왔던 신입생들에게 새로운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한총련은 그 충격을 이벤트로 사용했을 뿐이다.
한총련은 절대로 북한의 단점을 얘기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절대로 주한미군 철수 이후에 벌어지는 문제점을 얘기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정부가 행하는 정책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 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잘못을 지적할 때, 그 잘못이 야기하는 이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하나를 주장하되, 그 하나의 주변 모든 상황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른다.
이것은 한총련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법이다. 적어도 내가 있었을 당시엔 그랬다. 지금은 어떨 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내가 보기에도 구시대의 유물을 이끌어가는 주입식 교육, 또는 최면법의 설득에 불과했다.
난 천칭좌 태생이다. 천칭좌가 좀 그렇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다싶으면 그걸 또 못견딘다. 여러 모로 한총련의 선배들과 말다툼을 많이 했었다. 심한 경우, 나는 상대가 주장하는 방향의 반대 위치에서 과격한 주장을 한다.
남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을 말할 때, 북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도 같이 말해서 신입생에게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면 안되는가? 또는 남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과 제대로 펼치는 정책, 북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과 제대로 펼치는 정책을 함께 말해서 신입생들에게 정보를 주는 관점으로서의 한총련이 존재하면 안되는가? 신입생들은 알고싶을 뿐이지 주입식 교육을 받고싶은 게 아니었다.
한총련은 북한이 남한보다 통일을 위한 노력이 더 열성적임을 강조했었다. 정말인가? 남한의 노력은 아예 없었고, 북한의 노력만이 존재했기에 통일이 안된 것인가? 남한의 노력과 북한의 노력, 남한의 방해와 북한의 방해가 모두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신입생들은 알고싶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싶은 게 아니었다.
당시의 신입생들이 가장 혹했던 이야기가 바로 주한미군 철수였다. 주한미군에게 들이는 돈이면 대학생들 모두가 10만원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고 했었는데, 주한미군이 떠나면 정말 그 돈이 꽁으로 남는가? 주한미군이 떠남으로 인해 벌어지는 파생효과도 자세히 알고싶었는데 무쟈게 희망적인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정말 희망적인가? 파생되는 위험에 대해서도 얘기해달라. 신입생들은 알고싶었다.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고 '투쟁'이라 외치면 의심은 사라지노라. 믿겠느냐?"정도로 신입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198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총련은 점점 멀어지는 신입생들을 두려워했다. 한총련의 몰락이 그들의 눈에 조금씩 보였다. 떠나는 사람들. 외면하는 신입생들. 단대총회가 벌어지고 투쟁의 깃발을 치켜들었으나 학생들은 차라리 나이트를 갔다. 그럴 수록 한총련은 감췄다. 진실을.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또 다른 진실을 저 편으로 던지고, 득이 될 정보와 두려움만을 학생들에게 역설했다.
이미 학생들은 판단하고 있었다. 정부는 좀 더 고단위의 술수로 국민을 기만했으며, 한총련의 투쟁방식은 옛 어리버리 정부를 상대할 때의 그것과 변함이 없었다. 학생들은 정부가 외치던 '딴 거 신경쓰지 말고 너나 잘해'에 머리를 끄덕였다. 투쟁을 볼 때마다 학생들은 먼저 개인주의를 떠올렸다. 한총련은 여전히 입에 발린 소리로 반쪽의 정보만을 내세운 채 투쟁의 동참을 원했다.
그 결과 한총련은 몰락했다. 과거 전대협의 영화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 구석에 틀어박힌 '어떤 조직' 한총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진실을 알리기가 두려웠을까? 내 생각은 아니었다. 속이고 술수를 부리는 데 열중하는 정부가 상대였다. 진실을 알면 알수록 속이는 자에게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한총련은 진실만으로도 충분히 발전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한총련은 그 스스로도 진실을 모를 만큼 정보습득에 소홀했다. 투쟁. 투쟁. 열혈의 꿈을 가슴에 품는 것만으로도 모든 민주주의가 세상을 찾을 것이라 믿었던 이 순진함. 세상은 그에 대해 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이미 한총련을 떠났으니, 지금의 한총련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지 모른다. 그러나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그것도 현역 대학생들마저 고개를 젓는 한총련의 이름은 내가 있던 시절의 한총련을 떠오르게 한다. 변한 게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알고있는 한총련은 선구자다. 선구자는 "눈에 안띄는 걸 꺼내보자. 누가 따라오다보면 내가 선구자 되겠지.'가 아니다. 세상을 바로 알고 그 속에서 제대로 된 진실, 남들이 잊고있던 진실을 찾아내는 자가 선구자다.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면 한총련은 절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확신이 서지 않는 학생들을 단지 군중심리만으로 선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확신을 주는 일이다. 그것은 그 학생들이 알고있는 사항이 주변의 수많은 진실과 거짓의 정보 속에서 스스로 판단한 끝에 만들어져야 한다. 진실을 알리는 것. 한총련의 목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왜 다쳐야 하는가. 왜 유혈투쟁이 있어야 하는가. 인터넷 정보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든 시대다. 전대협이 왜 유혈투쟁을 했는지 근본부터 따져보자. 알리기 위해서다. 전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제2의 박종철 열사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그저 내가 삐딱한 건가?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 만 못하다지만 막 가느니 그냥 중지하는 게 더 낫다. 일단 옆에 있는 학우에게 진실을 토론해라. 어쩌면 본인조차 모를 수도 있다. 먼저 알자. 알고 깨우쳐서 아는 자가 되는 게 우선이다. 지금 국민들은 진실에 목말라 있다. 진실이 있는 곳으로 국민들의 발길이 향한다. 어거지로 부르는 건 '어이쿠, 관상봐라! 도에 관심있으세요?'만으로도 족하다. 누군가를 부르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을 찾게끔 만드는 것이 한총련의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총련에 대한 나의 애정은 그곳에 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한총련은 성공시대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전대협의 뜻을 존중하며 이어받았다.
세월이 흘렀다. 시대가 바뀌었다. 내가 대학에 첫발을 내밀고 군대를 나와 복학생이 되었을 때, 전대협은 전총련으로, 그리고 한총련으로 바뀌었다. 한총련은 여전히 신입생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했다. 발대식에 모인 학생들은 투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학우, 차디찬 감옥바닥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우, 광주항쟁 당시에 민주화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애국선열들을 기리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차디찬 강의실 바닥에서 신문지와 박스를 덮고 잠을 청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운동장에 앉아서 소주 한 병을 가운데 두고 작게는 한총련의, 크게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토론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진실을 가르쳤고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진실을 물었다. 토론으로 밤이 새는 줄 몰랐으며, 사방에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와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졌다.
나는 그 때 한총련에게 회의를 느꼈다.
그 이후로도 총학생회를, 총여학생회를, 투쟁의 토론장을 오랫동안 찾았다. 그럴 수록 나의 회의감은 짙어졌다.
시대가 바뀌고 정치인들이 수작하는 레벨도 올랐는데 유독 한총련만 그대로였다. 누구보다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직시해야 할 대학생들의 모임이 전대협의 그늘에 안주하며 과거의 향수에 취해있었다.
학생들은 이미 깨쳤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 없어도, 무엇이 잘못됐는 지는 감지할 수 있는 학생들이 대학을 찾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총련 선배들은 전대협이 성공시켰던 주입식 교육의 향수에 젖어서 그 방법을 버리지 않았다.
"정부는 이래서 나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이렇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하여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노태우 대통령이 저지르는 잘못은 이것이다. 그중 이게 제일 큰 잘못이다!"
"같은 동포인 북한과 친해져야 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과거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국민들이 깨치고 일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들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아니, 우리들만이라도 일어나서 민주주의의 참뜻을 알려야 한다!"
좋은 말 참 많았다. 진실도 많았다. 이제까지 북한에 대해서라면 5호 담당제라느니 김일성이 모래알로 쌀을 만든다느니만 들어왔던 신입생들에게 새로운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한총련은 그 충격을 이벤트로 사용했을 뿐이다.
한총련은 절대로 북한의 단점을 얘기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절대로 주한미군 철수 이후에 벌어지는 문제점을 얘기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정부가 행하는 정책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 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잘못을 지적할 때, 그 잘못이 야기하는 이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한총련은 하나를 주장하되, 그 하나의 주변 모든 상황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른다.
이것은 한총련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법이다. 적어도 내가 있었을 당시엔 그랬다. 지금은 어떨 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내가 보기에도 구시대의 유물을 이끌어가는 주입식 교육, 또는 최면법의 설득에 불과했다.
난 천칭좌 태생이다. 천칭좌가 좀 그렇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다싶으면 그걸 또 못견딘다. 여러 모로 한총련의 선배들과 말다툼을 많이 했었다. 심한 경우, 나는 상대가 주장하는 방향의 반대 위치에서 과격한 주장을 한다.
남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을 말할 때, 북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도 같이 말해서 신입생에게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면 안되는가? 또는 남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과 제대로 펼치는 정책, 북한의 정치계가 저지르는 잘못과 제대로 펼치는 정책을 함께 말해서 신입생들에게 정보를 주는 관점으로서의 한총련이 존재하면 안되는가? 신입생들은 알고싶을 뿐이지 주입식 교육을 받고싶은 게 아니었다.
한총련은 북한이 남한보다 통일을 위한 노력이 더 열성적임을 강조했었다. 정말인가? 남한의 노력은 아예 없었고, 북한의 노력만이 존재했기에 통일이 안된 것인가? 남한의 노력과 북한의 노력, 남한의 방해와 북한의 방해가 모두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신입생들은 알고싶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싶은 게 아니었다.
당시의 신입생들이 가장 혹했던 이야기가 바로 주한미군 철수였다. 주한미군에게 들이는 돈이면 대학생들 모두가 10만원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고 했었는데, 주한미군이 떠나면 정말 그 돈이 꽁으로 남는가? 주한미군이 떠남으로 인해 벌어지는 파생효과도 자세히 알고싶었는데 무쟈게 희망적인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정말 희망적인가? 파생되는 위험에 대해서도 얘기해달라. 신입생들은 알고싶었다.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고 '투쟁'이라 외치면 의심은 사라지노라. 믿겠느냐?"정도로 신입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198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총련은 점점 멀어지는 신입생들을 두려워했다. 한총련의 몰락이 그들의 눈에 조금씩 보였다. 떠나는 사람들. 외면하는 신입생들. 단대총회가 벌어지고 투쟁의 깃발을 치켜들었으나 학생들은 차라리 나이트를 갔다. 그럴 수록 한총련은 감췄다. 진실을.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또 다른 진실을 저 편으로 던지고, 득이 될 정보와 두려움만을 학생들에게 역설했다.
이미 학생들은 판단하고 있었다. 정부는 좀 더 고단위의 술수로 국민을 기만했으며, 한총련의 투쟁방식은 옛 어리버리 정부를 상대할 때의 그것과 변함이 없었다. 학생들은 정부가 외치던 '딴 거 신경쓰지 말고 너나 잘해'에 머리를 끄덕였다. 투쟁을 볼 때마다 학생들은 먼저 개인주의를 떠올렸다. 한총련은 여전히 입에 발린 소리로 반쪽의 정보만을 내세운 채 투쟁의 동참을 원했다.
그 결과 한총련은 몰락했다. 과거 전대협의 영화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 구석에 틀어박힌 '어떤 조직' 한총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진실을 알리기가 두려웠을까? 내 생각은 아니었다. 속이고 술수를 부리는 데 열중하는 정부가 상대였다. 진실을 알면 알수록 속이는 자에게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한총련은 진실만으로도 충분히 발전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한총련은 그 스스로도 진실을 모를 만큼 정보습득에 소홀했다. 투쟁. 투쟁. 열혈의 꿈을 가슴에 품는 것만으로도 모든 민주주의가 세상을 찾을 것이라 믿었던 이 순진함. 세상은 그에 대해 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이미 한총련을 떠났으니, 지금의 한총련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지 모른다. 그러나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그것도 현역 대학생들마저 고개를 젓는 한총련의 이름은 내가 있던 시절의 한총련을 떠오르게 한다. 변한 게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알고있는 한총련은 선구자다. 선구자는 "눈에 안띄는 걸 꺼내보자. 누가 따라오다보면 내가 선구자 되겠지.'가 아니다. 세상을 바로 알고 그 속에서 제대로 된 진실, 남들이 잊고있던 진실을 찾아내는 자가 선구자다.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면 한총련은 절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확신이 서지 않는 학생들을 단지 군중심리만으로 선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확신을 주는 일이다. 그것은 그 학생들이 알고있는 사항이 주변의 수많은 진실과 거짓의 정보 속에서 스스로 판단한 끝에 만들어져야 한다. 진실을 알리는 것. 한총련의 목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왜 다쳐야 하는가. 왜 유혈투쟁이 있어야 하는가. 인터넷 정보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든 시대다. 전대협이 왜 유혈투쟁을 했는지 근본부터 따져보자. 알리기 위해서다. 전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제2의 박종철 열사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그저 내가 삐딱한 건가?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 만 못하다지만 막 가느니 그냥 중지하는 게 더 낫다. 일단 옆에 있는 학우에게 진실을 토론해라. 어쩌면 본인조차 모를 수도 있다. 먼저 알자. 알고 깨우쳐서 아는 자가 되는 게 우선이다. 지금 국민들은 진실에 목말라 있다. 진실이 있는 곳으로 국민들의 발길이 향한다. 어거지로 부르는 건 '어이쿠, 관상봐라! 도에 관심있으세요?'만으로도 족하다. 누군가를 부르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을 찾게끔 만드는 것이 한총련의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총련에 대한 나의 애정은 그곳에 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예전의 대학생 민주 투사와... 지금의 대학생 비리 투사와는 많이 다르다고 봐요. 개인적으로 한총련이 여지껏 닦아넣은 돈만 다시 내뱉어도 주한미군에 들어갈 만큼의 돈은 만들어진다고 생각을... -_);
답글삭제서, 설마... 그렇게까지 타락했다고는 여겨지지 않아. 난 대학생들의 순수를 믿어. ^^;;
답글삭제한총련계 모 대학 학생회 간부께서 입학하실 때 무일푼으로, 나가실 때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셨다 하더군요. (...)
답글삭제그거야 말 그대로 일부의 학생이겠지. 그것 하나로 전부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그런 소문은 옛날부터 많이 돌았어.(글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난 그런 걸 뒷다마의 하나로 치부하고 무시하자는 주의야.(체조 평점에서 최고득점과 최저득점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_-)
답글삭제사실 한총련을 욕하는 쪽이긴 한데; 정말 저런 사람들이 극히 소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런 놈들이 대다수면 참... (...)
답글삭제설득력있는 얘기네요. 안타깝네요 많이.
답글삭제언젠가 지하철에서 본 한총련 대학생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까지 대학생들은 잘못된 결정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옳은 결정만 했습니다. 믿고 따라와 주세요.'
답글삭제-_-;; 그냥 닥치고 따라오라는 식이었습니다-_-;; 진짜 난감;;;
휘긴경이글루에서 보고왔습니다. 좋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지나친 공산주의 찬양론과 남한 혐오론은 옳지 못하니까.)
답글삭제휘긴경블로그에서 보고 왔습니다.
답글삭제심하게 공감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랑 생각이 많이 비슷하신것 같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속시원한 글 잘 봤습니다. 저도 96년 이후의 한총련은 한총련이 아닙니다- 라고 보는 주의라.. (무슨 부채표 활명수 광고인가?)
답글삭제좀 핀트 빗나간 얘깁니다만 흔히 저같은 신세기 학번더러 회색분자라고 하는데 무슨, 고민이라도 해야 회색분자죠. 그리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놈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의 망령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고, 깨달은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로 숨어 버렸고. (부산에서 87년 당시 같이 연대투쟁했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털어보면 제 주위에서만 한 타스가 넘게 나오는 걸 보고 경악했었죠.)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 많네요. ^^(용각산 광고로 여겼던 저는...)
답글삭제동감합니다. 학교에 퍼진 한총련의 모습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독재에 가까웠으니까요...글 잘 보았습니다.
답글삭제레디님 이글루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링크 납치합니다^^/
답글삭제^^
답글삭제저기 퍼가도 될까요? 이글루 주소하고 '레디오스님 작성'이라는 문구 추가해서요...^^a
답글삭제네. 퍼가셔도 좋아요. ^^
답글삭제trackback from: 다른건 둘째치고..
답글삭제전대협과 한총련 자신들이 엄청나게 아름답고 훌륭하고 숭고한 짓을 하고 있다고 자뻑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수면에 비친 지 모습이 하여튼 너무 아름답지? 크고 아릅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