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0일 일요일

가정을 위하여 포기.

“봉하마을 방문하면 노무현이 10만원씩 준다더라”...

아빠는(40 다 되어서도 난 아빠라고 부른다. 형이랑 동생이 아버지, 아버님 부르는데 나라도 아빠라 불러야지) 지금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엄마도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다만 조금 다른 방식의 지지다. 아빠의 경우 고집적인 지지고, 엄마의 경우 주변 상황을 파악하여 '그나마 이쪽이 더 낫다'라는 판단을 내리신다.

6년 전 삼형제가 모두 합심하여 두 분 마음을 바꿔버렸다. 두 분 모두 노무현을 찍었다. 하지만 5년 간의 고된 생활 끝에 한나라당으로 노선을 바꿨다. 특히 아빠는 노무현과 민주당, 열린우리당이라면 치를 떠신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대단히 고집이 센 분이라서 무슨 말을 해도 안 먹히고, 이제는 정치 얘기만 나오면 화부터 내신다. 그냥 얘기가 나오면 이유없이 화부터 내신다. 노무현, 민주당, 열린 우리당, 이회창, 문국현 등 뜬금없이 한 명 꺼내들어서 마구 욕하고 화내시니 화목한 상태에서는 얘기 자체를 꺼낼 수가 없다. 이명박 얘기를 해도 노무현이 바로 나오니 소통될리 없다. 그나마 정치적 소통이 가능하려면 박정희 얘기를 꺼내야 한다. 박정희 얘기가 나오면 찬양하느라 바쁘시다. 나 이런 집에서 용케 노빠됐다. -_-

어제 집에서 엄마빠와 대화하던 도중, 텔레비전 뉴스에 미도 폭격 사건이 언급되었다. 그 순간 모든 대화가 단절되었다. 아빠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시며 "그 때 월미도에 무슨 사람이 살았다고 그래! 그 때 당시에는 아무도 없었어! 저 할머니(인터뷰하던)도 그 때라면 고작 10살인데 뭘 안다고 저러는 거야?"라고 고함치셨다. 미국이 우리 나라를 공격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즘 뉴스들 상당수가 언론왜곡으로 일관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내셨다. 그나마 왜곡이 덜한 언론은 조선일보뿐이라며!

가정 화목을 위한 이성의 끈이 잠깐 끊어졌다. -_-

조선일보가 오히려 언론왜곡이 심하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냐고 물었다. 더 화를 내시더니, 정신차리라며 일장 연설을 하셨다. 주변 친구들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가지를 직접 보고 듣는데 그게 진짜이며 조선일보가 그와 가장 비슷한 내용을 싣는다고 하신다. 일순간 '내가 혹시 세상을 잘못 알고있는 것일까?'라는 의혹에 빠졌다. 하지만 아빠가 만나서 대화하는 분들 목록을 알고서 나는 문제 없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빠는 지금 한나라당에서 출마하는 후보 쪽 사람들과 자주 얘기하시는 듯 하다. 출마자는 같은 문중에 있는 분이며, 선거운동을 하시는 분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어른이시다. 아빠는 이번 선거에 반드시 그 분을 찍어야한다고 했다. 난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가정화목. 가정화목.

속마음이야 뭐...(혈연이니 지연이니 내가 알 게 뭐야!)

이제 정말 아빠 엄마를 설득할 생각은 포기해야겠다. 그나마 대운하 파면 나라 작살난다는 데 동의하게 만든 것만도 어디냐.(저번 명절 때 4살이나 어린 내 동생이 대운하 찬성론을 펼쳤을 때는 진짜 식겁했었다. -_-;;)

어른들 세계(어? -0-???)에서 이루어지는 카더라 통신들은 대부분 정(情)이 근간이다. 정으로 엮인 것을 이용하여 카더라에게 믿음을 심는 것이다. 나라를 망치는 것은 정치(政治)가 아니라 정치(情治)라는 말이 실감났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16개:

  1. 저희 부모님은 저번 대선때 "이명박 그 도둑놈의 새x를 찍겠냐?" 라고 하시더라고요.



    나라를 망치는 것은 정치(政治)가 아니라 정치(情治)라는 말이 실감났다.-이거 좀 명언이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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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ㅋ; 저만 엄마 아빠..하는 게 아니었군요?

    물론 전 대외용으론 잠깐씩 엄마 아버지라 하지만요. 근데 다 큰 남자는 엄마 아빠..라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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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래서 우리집은 되도록 정치얘기는 안한답니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

    비슷한 걸로는 종교문제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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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희 부모님도 한나라당 지지하시지만 운하는 싫어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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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희 집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금물입니다; 가정 화목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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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치가 아니라 정치라...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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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우리 아버지는 예전에 이명박 만나서 대화 한번 나눠봤다고 '그 사람 인물이야!'라십니다. 듣는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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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우리 집과 상황이 비슷하시네요..

    그네공주 열혈팬 엄마로부터 한나라당과 친박연대를 찍지 않겠다는 답을 받아냈지만,

    아빠는 정치얘기 꺼낼라치면 잔뜩 화를 내셔서...

    정보를 아무리 디밀어도

    당신의 경험에 의해 노무현은 죽일x이고 이명박은 시기를 잘못만나 불쌍하시답니다...

    가급적 아빠한테는 정치얘기 안하지만,

    가정의 화목을 위하다가 당장 내 목줄을 죄게 생겼으니.. 곤란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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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저희 아버지도 지선쯔음부터 한나라당노선이더니

    민주신당경선 끝날쯤에 민주신당으로 노선을 바꾸시더군요

    이유는 단지 저희 아버지 고향이 순창이라는것 밖에;

    情治는 참 무섭다는걸 그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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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저희 아버지도 노통과 민주당을 엄청 싫어하시는데 (정책 덕에 제조업 회사 경영이 타격을 입으신터라...) 대운하와 재벌 정책 덕에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더 싫어하십니다.

    저희 어머니는 개신교 목사인데다가 감정 몰입을 잘 하시고 정에 약한 분이라 사랑실천당과 한나라당을 보고 찍자는데... 이번 후보는 땅투기 재산이 25억(송파갑)이라서 고민 중이시죠.



    대략 제 가족들은 민주당을 찍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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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저희집은 파란색에 대한 의리는 지켰다 분위기지요. (...)

    금민씨네나 밀어줄까- 하고계십니다. 어차피 지역구 국회의원이야 현역이 일은 괜찮게 했으니 찍어주고....라기보다. 제일 조용조용하게 유세해요. 민주당하고 문선명이 네 이놈들!!!!!! 아침 6시부터 고성방가를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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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저희는 온 집안이 단결! 이명박 타도! 한나라당 타도! 라는 분위기지만..



    지난 대선에 어머님은 정동영을 찍으셨고, 아버지는 권영길을 찍으셨으며, 저는 문국현을 찍었답니다.



    진보세력 대 분열의 현장을 보여주는듯한 집구석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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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저 ..... 주말동안 외가댁에 다녀왔는데효.... 속으로 한숨만 폭폭 쉬다 왔씁니다. 아니 워째 그리 다들 그러시는지...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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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애이니드님//



    집구석..;;; 집안으로 순화를..그래도 자신의 집구석인데..어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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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에효 아울님 포스팅 보고 안 적을라 했던 거 그냥 한 마디 생각 나서 올립니다. 기실 인터넷이란게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지만 찾는 것 자체가 사람 머리에 스팀 올라 오는 일이지요. 젊은 제가 이런데 저희 아버지 세대들은 오죽하겠나요. 가장 손쉽게 들어 오는 정보가 일단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라는 관념이 콱 박혔는데 이걸 제거 하기가 쉽지 않죠. 아니 손 쉽지 않다라는 말보다 그런 왜곡된 정보가 들어 간다는 것을 저희 세대가 그냥 관조 하거나 방치 한다는게 더 현상에 근접한 말이고 따지고 보면 우리 세대가 윗세대들과 커뮤니티라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댁들은 댁들 믿고 싶은 거 믿고 우리는 그런 거에 대해서 한 마디도 안하겠다 좋을 대로 해라...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적어도 386 세대들의 민주 투쟁 시절만 하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옳음이란 믿음이 있었죠. 사람이 백주대낮에 경찰 한테 끌려 가서 개 맞듯이 맞으면 사람이 서정적으로 판단할 근거도 충분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가 현상을 호도 하면 최소한 그것을 분별해 낼 다른 루트가 없거나 현상에 대한 판단을 미룰 정도의(솔직히 이건 용렬함이라 표현해야 하지만)현명함이 없다면 다수가 진실이라 외쳐대는 것을 믿고 싶어 하는게 저희 윗 세대들의 삶의 방식이겠죠.



    저도 솔직히 집안 분란 만들면서까지 정치 문제따위로 싸워야 하겠느냐 싶지만 20대 이상이고 무엇이 반드시 옳은 것인지 그런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생각이 똑바로 박힌 지도자를 뽑는 것이 권리가 아니라 내 이익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라면 윗세대들과 정치가 아닌 커뮤니티를 그만두어서는 안되겠죠.(하아 말하는 저도 굉장히 이론적인 건 압니다만)



    보이는 현상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뒤에 있는 것 까지 알아서 생각하고 또 그 근거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자체가 저희 윗세대들한테는 그게 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 살다 보면 생각하는 것 조차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도 벌써부터 생각이고 뭐고 다 때려 치웠으면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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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trackback from: 귀향한 노대통령 피곤한 일 있을 수도
    봉하마을 다녀왔습니다. 많이 활기 차 있더군요. 노대통령 퇴임 전까진 혼자서 하던 매점엔 이제 세분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매점에서 낮술 한잔 걸치고 계시던 마을분은 "현금인출기 어딨지" 하는 제 혼자말에 끼어들어 아주 친절히 열심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얼굴이 최근 마을의 변화에 많이 들떠 보였습니다. 매점에서 국수를 한 그릇 비우고 노대통령 사저로 향했습니다. 비가 간간이 내려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저 앞에는 대여섯분 정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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