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7일 월요일

[연재] [호스트 바둑왕] 4국. 용서할 수 없는 폭언

제4국 용서할 수 없는 폭언

※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 위하여 이번 회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했습니다. 모든 인물들이 다 가명으로 되어있으니 알아서 감지하시기 바랍니다.

히루세는 오늘도 기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보도블록엔 껌딱지 하나 없이 깔끔했으며, 뛰노는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군침이 돌았다. 히루세는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2개의 간판이 보였다. 일직선으로 흘러내리는 피와 함께 헌혈룸임을 알리는 간판이 있었고, 그 아래 기원(돈 내고 바둑을 두는 곳)이 있었다. 당연히 히루세는 기원을 선택했다.

“아키랑 선생님 계셔?”

인사대신 던진 히루세의 말에 이치카라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히루세는 짐작한 듯 반짝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이치카라가 아키랑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또 복기하고 있어요.”

“지난주, 동년배 남자아이에게 두 집 차이로 무너졌던 거 말이지? 복기가 재미있대?”

“아닐 걸요? 배경 스크린톤이 SSE-409번이잖아요. 저기만 저렇게 어둡다고요. 저거 봐요. 방금 이마에 철십자 마크 솟았던 것 보셨죠? 저러다가 가끔 피도 토해요.”

“그래? 그래서 저렇게 마스크를 하고 있는 거야?”

“마스크 아니에요. 제가 빌려줬어요. 아직 어려서 많이 놀랐을 거예요.”

얼굴을 붉히는 이치카라를 향해 히루세가 으르렁거렸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성희롱이야. 당장 치우지 못해? 여자만의 물건을 어디다 갖다 붙이는 거야?”

히루세는 이치카라가 아키랑의 입에서 거시기를 떼어내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쉬었다. 1주일 전부터 도우야 아키랑은 아무하고도 대국을 하지 않은 채, 시카루와의 대국만을 수도 없이 복기 할 뿐이었다. 히루세는 아키랑과의 대국을 포기하고 귀퉁이의 바둑판으로 쓸쓸히 걸어갔다.

‘이 한수도… 이 한수도…’

아키랑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뽀록이다! 이게 혹시라도 그 아이의 실력이라면…’

곧 아키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아이의 실력이 그 정도일 리가 없어!’

“신도우 시카루…”

아랫입술을 문 아키랑에게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을 때였다.

“어린이 사마, 어린이 사마. 꼭 한 번 들러 주십시오.”

“에?”

아키랑은 자신의 얼굴 앞에 날아든 찌라시에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심각한 패션이 아키랑에게 빙긋 웃으며 찌라시를 흔들고 있었다. 찌라시를 본 아키랑은 바둑알을 쥔 손이 그려진 중앙에 시선을 고정하며 잠시 침묵했다. 손인지 구데기 기어가는 야구공인지 알 수 없는 그림. 세상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다카하시 오바토와 아키랑의 아버지인 도우야 구요뿐이었다. 아키랑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래! 아버지에게 물어보자!”

한편 시카루는 등짝을 어루만지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시가 옆에서 오도방정을 떨며 서럽게 울어댔다.

[시카루,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시끄럿! 한 번만 말해도 다 알아들어!”

[훌쩍! 어린이와의 대국을 즐겨보려 했을 뿐인데…]

“그걸 누가 믿어?! 이게 다 네가 쓸 데 없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야!”

[너무해요, 시카루! 손해본 건 누군데요? 안되겠어요. 시카루 고추라도 보여줘요!]

“죽을래, 너?! 자꾸 그러면 바둑 따위 안 둘 거야!”

시카루가 허공의 사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주위의 시선을 받을 때였다.

“신도우…, 신도우 시까루!”(까? 뭐… 가명인데 아무렴 어때. --;;)

갑작스런 외침에 놀란 시까루(이걸로 정착됐군. --;;)가 고개를 돌리니 도우야 아키랑이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까루는 멍한 얼굴로 아키랑을 응시했다.

“도우양…”(--??)

시까루는 반가운 얼굴로 도우양에게 걸었다.

“도우양이구나! 웬일이니?”

아키랑은 주춤 물러서며 반문했다.

“너, 너야말로 어쩐 일이지? 설마 바둑대회에 갔었던 거야?”

“나? 난 그냥 놀러갔었어.”

도우양은 잠시 시카루(하나만 해!)의 얼굴을 응시했다. 시카루 또한 도우양을 멍하게 응시하며 멋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곧 시카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봤더니 굉장하더라. 그런 경험은 처음이야. 나보다 어린애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신중하더라고.”

도우양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능가하는 실력자의 입에서 그런 뜻밖의 말이 나온 것은 의외였다. 시카루가 말을 이었다.

“진짜 놀랐어. 감동도 약간 받았고.”

“감동?”

도우야가 당황하며 물었다.

“너… 넌 진지하게 바둑을 둬본 적이 없니?”

“진지?”

시카루는 미친놈이라도 보듯 도우양을 응시하며 코웃음을 쳤다. 도우양은 좀 더 곤혹한 얼굴이 되어 시카루의 손을 잡아챘다.

“손 좀 보여줄래?”

“손?”

시카루의 손은 손톱조차 닳지 않은 초보자의 그것이었다. 도우양은 더욱 난감해졌다. 시카루는 쌩초보였던 것이다. 내가 이런 놈에게 깨지다니! 혹시나 싶어서 손가락을 입속에 넣어 혀끝으로 얼마나 거친가를 감상했지만, 여전히 쌩초보의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왜, 왜 이러니!”

시카루가 기겁하며 도우양의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그리고 곁에서 [나도 시카루의 손가락이 되고싶어요…]며 중얼거리는 사시에게 발길질을 했다. 그 때 도우양이 말했다.

“넌… 프로기사 되고싶니?”

“프, 프로?”

시카루는 갑작스런 말에 충격을 먹은 듯 한동안 입을 벌린 채 말을 못했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풉!”하고 헛바람을 뿜으며 미친듯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내가 프로?! 진심으로 말한 거야? 프로기사따위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 넌 정말 예상외로 재미있는 친구구나?!”

“3천 8백만 엔.”

시카루의 웃음이 멈췄다. 도우양이 말을 이었다.

“명인전 타이틀의 상금이지. 그리고 기성전이라면 3천 3백만 엔.”

정확하게 시카루의 맥을 찌르는 말이었다. 시카루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당황하며 외쳤다.

“자, 잠깐! 타이틀전이라는 게 몇 개나 있는 거냐? 전부 우승하면 얼마를 받는 거야?”

“모든 대회에서 상금을 받는다고 치면 1억 2천만 엔 정도…”

차르르륵 덜컹. ¥

차르르르… 덜컹! ¥

1억 2천만 엔. 2002년 9월 23일 16시 47분 현재. 고시 시각 16시 33분에 이루어진 4번째 고시회차의 환율로 따진다면 1억 2천만 엔은 한화로 12억 1천 58만 4천원. 출판사 잘못 걸린 작가가 하루 한 회 꾸준하게 연재를 해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출간해도 딱 101년 만에 벌 수 있는 금액이다. 시카루는 이성을 잃고 사시에게 흥얼거렸다.

“히히히히. 사시? 네 실력이라면 명인전같은 건 우습지?”

[시카루! 돈 때문에 바둑을 두겠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바둑이 진짜 그렇게 돈 잘 버는 건지 몰랐어. ¥♡ 그래서…”

[저질! 시카루 저질!]

“이봐, 사시…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냐…”

시카루가 불평하며 손을 휘저었다.

“돈 때문이라면 아주… 가끔이라고, 사시.”

그 말을 들은 아키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가끔?”

“어? 아니 그냥 프로가 된 후, 간간이 타이틀이나 하나둘 정도 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시카루의 대답에 아키랑은 할 말을 잃었다.

“그냥… 프로가 되어… 간간이 타이틀이나 하나둘 정도 따겠다고…?!”

그러니까…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아키랑… --+

턱.

아키랑은 위협적으로 발을 내밀었다. 시카루가 움찔하며 물러섰지만, 아키랑과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아키랑이 좀 더 가깝게 다가가며 눈을 부릅떴기 때문이다.

“그 말… 프로기사 모두를 모욕하는 말이다.”

“어… 나?”

“넌… 바둑을 좋아하지 않아! 바둑을 두는 사람이 그런 폭언을 할 리가 없어!”

시카루가 당황하며 몸을 기울였다. 시카루는 긴장하며 사시에게 속삭였다.

“사, 사시.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당연하죠! 바둑을 그렇게 우습게 보시면 안돼요, 시카루! 자신의 정조와 바꿀 만큼 바둑은 위대하다고요!]

“전혀 잘못 말한 게 아니었군…”

시카루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을 때 아키랑이 고함쳤다.

“그냥 프로나 돼 보겠다고? 프로기사의 존엄성과 명예를 알기나 하니!? 인내, 노력, 고통, 좌절…! 절망까지 뛰어넘어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바둑인들이 대부분이야!! 아버지 곁에서 그런 기사들을 수없이 봐왔었지!! 그런데 넌…”

아키랑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왜 내가 이런 녀석 따위에게 진 거지? 분하다, 분해!

“나도 그걸 각오하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왔다!! 어려서부터 매일매일, 몇 시간씩 바둑을 두면서 자랐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운명처럼 바둑을 뒀다!!”

“근데 그렇게 허접이야?”

“쿠릅!”

아키랑은 입술 틈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피를 손바닥으로 급히 막으며 허리를 굽혔다. 씹탱이! 그래! 그 때 진 건, 내가 방심했기 때문이야. 초보자라 생각하고 깔 본 내가 패배를 자초한 거야. 아키랑은 피가 고인 손을 불끈 움켜쥐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금부터… 우리… 다시 한 번 승부를 가르자.”

“뭐?”

“난 프로가 될 거다.”

“…….”

“언젠가 네가 쉽게 프로가 된 후, 쉽게 타이틀을 쟁취하려고 한다면 지금 나한테 진다는 건 말이 안되지!! 피하지 말고 지금 겨루자!!!”

힘껏 손을 내미는 아키랑의 눈빛은 도전적으로 불타고 있었다. 시카루는 당황감을 못 이겨 주춤 물러섰다.

“싫어.”

“싫다니! 그런 폭언을 해놓고도 너무하지 않아?!”

“너무한 건 너야! 이번 회의 네 대사들을 차분하게 다시 읽어봐! 아키랑, 너의 대사는 거의 네타 수준이라고! 이 정도면 비뢰도나 묵향을 타자로 쳐서 인터넷에 올리는 거와 뭐가 달라?!”

“그렇다고 지금까지 쓴 걸 다시 편집할 수는 없는 일이야! 겨루자, 시카루!”

“싫어!”

“겨루자니까!”

“싫다니까!”

시카루는 야멸치게 몸을 돌리며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키랑의 분노에 어린 눈이 시카루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봤다. 아키랑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열며 싸늘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도망가지 마라, 오노.”

뚝. 시카루의 뒷목 안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시카루는 세계 최고의 메카닉 선행자라도 된 것처럼 버벅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저기… 방금 내 이름이 뭐라고?”

“도망가지 말라고 했다. 이회창의 탈을 쓴 부시야!”

풉! 퍼래랩! 재빨리 손을 들어 입을 막기는 했지만, 피분수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갔다. 시카루는 비틀거리다가 보도블록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저었다. 산만한 세상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툭. 투둑! 투둑!

쏴아아아아!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금세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보도블록엔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시카루는 보도블록의 한 귀퉁이에 고여있는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었다. 조지 부시가 씨익 웃으며 이회창의 인피면구를 뜯고 있었다. 시카루는 입가에 흐르는 선혈을 닦으며 매서운 눈으로 아키랑을 노려봤다. 그리고 사시에게 물었다.

“사시… 저 자식이랑 또 한 판 해도 이길 수 있어?”

[물론입니다. 제게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까요.]

사시 또한 아키랑을 노려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시카루는 아키랑이 내민 손으로 자신의 손을 뻗었다.

“좋아. 한 판 뜨자. 어떻게 나를 그따위 것들과… 절대… 네 폭언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아키랑!”

“훗, 김성모.”

“커헙! 쿨르억!”

손가락 틈으로 쿨럭쿨럭 쏟아지는 피를 무시한 채, 시카루는 아키랑의 손에 도움을 받고 몸을 일으켰다.

쏴아아아아아!

둘은 달렸다. 앞서 달리는 아키랑의 눈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래. 내가… 내가 신의 한수를 추구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여기서 질 수는 없어!! 세찬 빗줄기가 얼굴을 후려쳤지만, 아키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천히 가!”

시카루가 소리쳤지만, 아키랑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방심? 훗! 신도우 시카루는 초보자가 아니다. 방심하지 않는다!! 그의 특징이라면 특이하게도 오래된 정석을 쓴다는 것. 슈우사쿠의 행마같은! 그 슈우사쿠의 수는 현대와는 규칙이 다른 옛날, 공제없던 시대의 바둑이었으니까 선수가 ‘좋은 수’였던 것이다!! 그거다!! 거기에 이 녀석을 무너뜨릴 수 있는 해답이 있어!!

“너… 또 네타야. 평소에 느낌표 두 개나 찍고 그러던 애, 아니었잖아? 이러면 원본을 누가 사겠냐?”

“생각같은 건 읽지 마!”

아키랑은 기원을 향해 달리면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것은 시카루도 마찬가지였다. 용서할 수 없는 폭언을 던진 아키랑의 입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아아, 시카루. 사시는 행복해요♡]

“시꾸랏!”

시카루에게 있어서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을 지도… 이봐, 그 길이냐? 그 길로 가는 것이냐, 시카루!

계가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회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했습니다. 행여나 눈에 익은 이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가명으로 전환한 이름임을 먼저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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