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9일 일요일

정리에 대한 잡담.

앞으로 창작 끄적임 포스팅은 커그와 공유하기 위하여 존칭을 사용하겠습니다.(하이고~ 이삿짐 나르다가 우연히 봤다. 잘도 그러고 살았겠다. 걍 어쩌다 헛바람 들어서 이 날만 존칭썼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내를 끊어먹을 정도로 혼돈 상태가 되면, 반드시 정리합니다. 제가 귀차니즘을 떠나서 움직일 여유가 있다면 정리할 수 있는 무언가에 손을 내밉니다. 때로는 이 정리벽이 도를 넘을 때가 있어서 지금처럼 살기도 합니다.(저는 지금 컴퓨터를 포함하여 제가 가진 모든 재산을 한 품에 안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도구를 축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리벽은 '정리할 수 있는 것'에 한합니다. 정리할 수 없는 것, 다른 말로 '한 데 엮을 수 없는 것'은 애써 정리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정리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창작품이 그렇습니다.

작품 재미에 순위를 먹이는 것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다른 독자와 순위를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정한 순위도 결코 적당하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재미 자체가 하나의 분류로 규정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위를 내세워서 그것이 명확한 답, 이른바 '명제'로 남는 경우를 본 적 없습니다. 그나마 명제에 가까운 순위라면 다수 독자들이 모여 투표해서 나온 순위겠죠. 또는 판매실적이라던가. 이렇게 뚜렷한 근거를 내세운 순위가 아니고, 개인이 제시하는 순위라면 근거는 그저 개인 취향일 뿐입니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공감할 확률도 낮죠. 절대적일 리는 절대적으로 없고요.

또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몇몇 작가분들에게서 찾게되는 특별한 정리입니다. 작품성과 흥행을 한 데 엮는 정리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명 잘 팔리는 작품을 두고 '그 따위 글이 왜 잘 팔려야 하느냐'라는 논지를 펼치거나, '이러이러한 명작의 판매실적이 저조한 것은 우리나라 독자들이 문제라서다'같은 논지를 펼친다면 대중창작품에 대한 분류법을 다시 고민해야 된다고 봅니다. 모든 작품은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이 부각되어 잘 팔릴 수 있고, 장점이 부각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단점이 부각되어 안 팔릴 수 있고, 단점이 부각되어 쓰레기라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4분법으로 끝이 아닙니다. 장점이 부각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잘 팔릴 수도 있고, 단점이 부각되어 안 팔리는 쓰레기도 됩니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진 이들 작품은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갈립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거친 사람, 순한 사람 등으로 인간을 100% 단정지을 수 없는 것처럼 창작 또한 그렇습니다. 완벽하게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이걸 굳이 정리해서 정리결과와 상반되는 반응을 접하는 딜레마에 빠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재미있는 작품을 쓰려면 내가 재미있어야 하며, 다수에게 재미있는 작품을 쓰려면, 내가 그 다수라는 사람들과 재미관점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떠한 작품이 잘 팔렸습니다. 자신이 그 작품을 진심으로 비난하고 싶다면 한 가지를 감수해야 됩니다.

그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한테 책 팔 생각은 하지 말아라.

100만부가 팔린 책을 비난하고 싶다면 일단 독자 100만명은 포기해야 됩니다.

해리포터 비난하고 싶다면 해리포터 독자들이 자기 책을 살 거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야 합니다. 그 중 사는 분들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그게 운이 좋은 거지, 그 분들이 안 샀다고 하여 운이 나쁜 게 아닙니다.

'책을 잘 팔고 싶다'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내 책에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다'라는 말과 동일합니다.(불법복제나 대여시장 문제는 걍 넘어갑시다. 이건 일반론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재미를 공유하며 즐기는데, 본인은 열심히 이것저것 따져가며 비난한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작품의 단점을 부각시켜서 보는 겁니다. 언젠가 제가 올린 포스팅 중에 이런 것이 있었죠. '작품을 재미있게 접하고 싶다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지식부터 감춰야 한다. 감춰놓아도 재미를 위해서 지식이 필요한 순간에는 알아서 그 만큼만 나와 준다.'라고요. 본인이 작품에 대한 재미같은 것은 관심없고 그저 비평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 지식을 내세워 읽어도 됩니다. 하지만 재미를 찾고 싶어서 책을 읽는 분들이라면 지식은 감춰두셔야 합니다. 그래야 작가가 즐기면서 쓴 창작물을 찾아내기 쉬워집니다.

지식은 선입견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지식을 담고 있지 않다면 완벽한 지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는 나이를 먹기 때문입니다. 나이테처럼 겹치고 겹치는 동안, 지식은 미칠 듯 쌓인 자료들을 저도 모르게 정리합니다. 그 속에서 중복되는 지식들을 한 데 뭉쳐놓고 '명제'로 규정합니다. 이 명제로 규정된 지식무더기 속에 '재미를 즐기는 감정'이 빠져 나갑니다. 서류들을 한 데 뭉쳐 프레스로 꾹 누르는 사이에 기름이 빠져나가듯 말이죠. 그래서 20대가 10대 독자들의 재미를 이해 못하여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1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창작하는 60대가 드문 이유가 생깁니다.

비판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지식은 단점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의도하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까 언급했듯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정리된 그것이 완벽할 리 없으며, 정리된 그대로의 결과가 나올 수도 없습니다.

굳이 비평, 비판, 비난하고 싶다면...

작품 내 장단점을 모두 알아낸 뒤 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어느 쪽이든 대가가 되면 호응을 얻는 법이죠. 지식을 버리지 않고 창작물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입니다. 재미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지식을 품는 거죠. 그런 작가분이 우리 나라에 있기야 하겠죠. 하지만 나이 50도 채 안된 애송이 주제에 세상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다며 큰 소리 치지는 마세요. -_-

겸손은 남에게 보이는 예절이 아닙니다. 나 좋으라고 펼치는 기술입니다. 다수가 모였을 때 자신의 지식적 우월감을 내세워 군중을 제압하면, 군중에게서 지식을 얻을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지식은 군중이 지식을 충분히 내세울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 정도가 적당하죠. 창작물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를 얻으려면 작가가 의도한 재미에 맞게 자신을 맞춰야 합니다. 세계관이 설정한 라인을 넘어선 개연성까지 내세워 작품을 비난하는 경우가 이에 속합니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결론을 악독하게 말하자면...

어줍잖은 지식으로 어줍잖게 정리해 놓고 어울리지 않는 작품 비난을 진심으로 하는 작가들은 대박같은 거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해라.

입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4개:

  1. "비판" "비난" "비평" 혹은 "감상"

    팬의, 혹은 독자의 특권이라고 봐도 되려나요.내 돈주고 샀으니 까는건 내 자유다 라고 생각하는건 또 이기적인 생각이려나요.



    아우 복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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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케트라브님의 덧글에 답하자면 자유입니다!



    저는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재미를 찾는 방향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고, 포스팅이 바라보는 시각은 '대중적 작가'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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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흑. 그래서 괜찮은 소설 찾기가 어려운가봐요.(여기서 뭔 헛소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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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포스팅에서 배울것이 많았습니다. 고개도 끄덕였습니다. 레디오스님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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