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7일 월요일

[투귀류] # 서장

투귀류(鬪鬼流)


서장(序章)


강호(江湖)에서 승천한 기운이 협객(俠客) 전설을 혈우와 단비로 소호(沼湖)에 되돌린다. 소호는 곧 강호가 된다. 무엇이 먼저라 할 수 없는 법이며 끝을 볼 수 없는 윤회이자 굴레였다. 누구도 시작을 몰랐고 누구도 끝을 몰랐다.


허나 많은 무인들이 시작이라 이르던 때가 있었다.


실존했는지조차 확인할 길 없는 연호, 마력 원년(魔曆 元年) 이전은 누구도 내공을 말하지 않았다. 이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설이라 불릴 이 시기에 남아있는 유일한 기록은 마군 곽문원(魔君 郭紊原) 일대기였다. 짐승 가죽에 새겨진 몇 자 기록만 봐도 곽문원이 원시강호(原始江湖)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극성으로 외공을 수련한 곽문원이 일백 십년 간 마도천하를 이루며 강호를 다스리는 동안, 처음으로 내공이라는 존재가 알려졌다.


정성을 다하여 수련에 정진하다보면 하늘이 감동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힘 씨앗을 몸에 심는다 했다. 어리석은 무인들이 그리 알며 수련과 제사를 동일시하다가 곽문원에게 가르침 받았다. 하늘이 내린 힘이 아니라 애초부터 몸에 감춰진 또 다른 힘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수련하는 법도 배웠다.


내공 탄생이자, 원시무림 종말이며, 중세강호의 시작이었다. 다수 무림인들은 더 이상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저 무를 숭배하고 연구했다.


황궁서고 기록은 그것으로 끝이었으나, 무인들 사이에 구전되는 곽문원에 대한 전설은 몇 개 더 있었다. 곽문원은 운남성 봄(春)에서 점치던 사내였다고 한다. 주술을 빌어 내공을 이루었고 정령을 달래는 춤을 통해 외가 보법을 깨치어 수천 종 무공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혹자는 곽문원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개했다. 오랜 수련으로 깨친 외공이 내공을 불러왔고, 그것을 느끼어 내공체계를 이룬 것이 분명하다 말했다. 단지 영적인 힘에 의해 고수가 되었다면 어찌 강한 자라 말할 수 있을까.


마도 마인들은 곽문원이 모든 무공의 원류(原流)라고 주장한다. 무인들은 마도 세력이 강성할 때만 그 주장을 인정해줬다. 그리고 마도 세력이 약해지면 그 주장을 내세워 마음껏 핍박했다. 마도는 자신들 시조 곽문원을 드높이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했다. 심지어 전설대로 주술적 힘을 이용해 내력증진을 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마군 전설에 언급된 내공수위에 이른 자는 없었다.


증명되지 않은 오직 하나뿐인 기록이지만, 강호 후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마도천하는 일백십삼 년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강호와 관련한 가장 확실한 기록은 ‘군웅시대(群雄時代)’였다. 당시 군웅들이 활약했던 여러 가지 기록이 세상에 남겨졌다. 이러한 군웅들은 훗날 각각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여 마도시대를 끝맺었다. 후에 세력이 부패하고 세상에 강제력을 보이니, 여러 영웅들이 집단을 멀리하며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때를 ‘협객시대(俠客時代)’라 불렀다.


협객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형성하던 시기가 뒤를 이었다. 정파, 사파, 마도가 천하를 삼분하던 ‘삼천강호(三天江湖)’가 이 때였는데,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쟁기로 하늘을 갈아보세’라는 노래를 부르며 뒤집어엎음으로써 십구 년 만에 끝맺었다.


이러한 강호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무공이, 새로운 지략이, 새로운 암투가, 새로운 정(情)이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구름처럼 천하에 드리워졌다. 구름은 곧 열매가 되어 강호 역사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중흥기를 맞이했다. 식솔 열 명이 채 안되던 작은 가문이 비전절기(秘傳絶技)로 천하를 얻을 때도 있었고, 한날한시에 백팔 명 절세고수가 중원을 밟으며 피와 술로 천하를 논할 때도 있었다. 수많은 후배들이 태산 같은 기틀을 잡고 성장하여 호연지기를 펼치고,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몸을 감추어 후배들에게 기연(奇緣)을 건네기도 하던 시기였다.


그것이 절정에 이를 무렵, 중원에 전쟁이 벌어졌다. 오랑캐라 하여 업신여기던 자들이 큰 세력을 이루어 중원을 유린하자, 강호 고수들도 이에 맞섰다. 그러나 정작 필요했던 절세고수(絶世高手)들은 ‘강호와 국가는 별개의 문제다!’라고 주장하며 은거에 들어갔다.


젊은 호걸들과 늙은 하수들이 은거한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오랑캐를 물리쳐 줄 것을 간절하게 요청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고수들은 말했다.


‘나라를 돕다니! 관직을 바라는 속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열과 혈을 기울여 싸우는 것 자체가 유치하다고 느낀 절세고수들이다. 남은 것은 그저 자존심 뿐. 어디 저 편에 있을 또 다른 동급 절세고수들에게 속물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모든 절세고수들이 국가 위기에 등을 돌렸다.


나라는 망했다.


그리고 절세고수들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황실이 내버려두지 않았다. 은거했던 수많은 고수들이 한 가을 메뚜기 떼처럼 몰려든 자들에게 죽임 당했다. 앞잡이가 된 고수사냥꾼 대부분은 한 때 오랑캐와 맞서 싸우던 자들, 바로 젊은 호걸과 늙은 하수들이었다.


이리 하여 강호는 상류사회와 하류사회 사이에 큰 불신이 쌓였다. 절세고수들은 자신들 무공을 싹수머리 없는 후배들에게 전수하느니 차라리 가슴에 끌어안고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후배들은 나라를 등진 매국노들에게 무공을 배우느니 차라리 아는 것들 대충 모아서 그저 그런 무공하나 창안하고 ‘이것이 최고일세!’라며 자조하는 삶을 누리는 게 낫다고 여겼다.


강호도 망했다.


무려 칠백 년 가까이 쇠퇴한 ‘하류강호(下流江湖)’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된 것은 오랑캐 황제가 내린 칙령이었다. 드디어 ‘황가천하(皇家天下)’가 도래한 것이다.


황제 칙령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선발됐다.


황실천마대(皇室天馬隊).


황하비마수(皇下飛馬手).


쌍룡금위영(雙龍禁衛營).


규화환조군(硅華宦爪軍).


황제는 네 개 집단으로 이루어진 이들을 통칭하여 황하군웅지(皇下軍雄池)라 불렀다. 황하군웅지는 강호에 기를 세우고 기존 무가들을 간섭했다. 그나마 뜻 있던 협객들이 크게 반발했다. 바로 밟혔다. 황하군웅지는 천지기존 백도운(天地奇尊 伯圖雲)에게 강호접수 실행기관인 군웅지(軍雄池)를 맡겨 모든 불만을 힘으로 풀어주라는 명을 내렸다. 백도운은 성심성의껏 무인들 불만을 해결했고, 협객들 무리는 금세 흩어졌다. 그렇게 불만 가득했던 협객들이 중원을 떠나 변방으로 흩어지니 강호에 유래 없는 괴이한 시대가 열렸다.


세외강호(世外江湖)!


좋은 말로 강호 영역이 넓어졌고, 나쁜 말로 중원 물이 흐려졌다. 백도운이 무림을 다스린 이후 이십 년이 흘러, 중원보다 세외 변방에 더 많은 고수들이 살게 되었다. 특히 호진족(虎眞族) 영역인 흑호강성(黑虎江城)이나 노림성(路林城)은 강호 절세고수라 불리던 무인들이 절반 이상 모였을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강호는 급변했다. 시정잡배들이 뭉친 작은 정보 집단이 천하를 장악할 때가 있고, 서막(西漠) 이름 모를 세력이 갑자기 성장하여 산천초목을 뒤흔들 때도 있었다. 흑호강성 일대가 강호 세력 중심지가 될 때도 있고, 흑두산(黑頭山) 산적들이 천하제일이라 불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중원이 세력을 장악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세력들이 중원 회귀를 꿈꾸건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느 누구도 백도운이 있는 중원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래도 무인들은 중원을 잊지 않았다. 중원이 품었던 협객 도리와 무, 그리고 순수한 정신을 그리워했다. 그 마음만은 결코 변치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변치 않는 것이 있었다. 전설 시대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소문이었다.


[신천방록부(新天方錄符)를 지닌 자를 상대하지 마라. 천하를 상대할 자가 아니면 지닐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마령연환나이서(魔靈連環挪移書)를 지닌 자를 상대하지 마라. 그것을 지닌 자는 이제 천하를 상대할 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鬪鬼流★


K.O.G나 믿어주시고 얘는 그러려니 하세요. 작정하고 연재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댓글 6개:

  1. 또 실패다...



    왜 내가 하면 안 되는 걸까? 다 맞춰놓은 것 같은데...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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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제 마이글 이용법을 마스터 하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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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협소설에서 한자 나올 때마다 신기... 저런 한자가 있었나 싶은 것도 있고요... 별도로 한자 공부를 하신다면 대단하단 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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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이고.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에서 보기 형태 적용이 안되는 버그가 있었군요.

    레디님 덕분에 발견해서 고쳤습니다. 역시 사용자가 있어야 어떤 무시무시한 버그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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