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7일 월요일

[연재] [호스트 바둑왕] 3국. 사활의 급소

제3국 사활의 급소

“어린이 사마, 어린이 사마. 꼭 한 번 들러 주십시오.”

“예?”

히카루는 머리를 온통 금색 무쓰로 떡칠하고 같잖은 몸빼양복에 마녀 신발짝같은 구두를 신은 녀석이 내민 찌라시를 받았다. 히카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것을 보지도 않고 버리려고 했다.

[히카루, 안돼요!]

“응? 악! 하지마!”

사이가 히카루의 귓불을 살포시 무는 동안, 히카루는 자신이 구겼던 찌라시를 펼쳐 재빨리 읽었다. 며칠 간의 경험에 의하면 이런 경우 사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때, 혀가 들어온다.

“어린이… 바둑대회?”

[가요, 가요! 히카루! 어서요!]

사이가 폴짝폴짝 뛰며 즐거워할 때, 히카루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방향을 돌렸다. 며칠 전 히카루는 링을 보며 울었다. ‘차라리 쟤가 나’라고 중얼거리며.


제19회 어린이 바둑대회.

“우와.”

그곳에 수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히카루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며 그들의 진지함을 감상했다. 아이들은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바둑판에 열중했는데, 학부형들은 잔뜩 긴장한 채 자식들의 한 수 한 수에 침을 꿀꺽 삼켰다. 바둑에 일가견이 있는 학부형은 입술 사이로 ‘거기다 두면 먹히지! 복날인데 잡혀볼래?’라며 불평하기도 했다. 히카루는 바둑을 두는 아이들의 무리로 걷기 시작했다.

“사이… 대단하다.”

사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신나요!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천년 전 바둑을 향한 내 열정도 지금 여기 있는 아이들의 뜨거운 열기와 똑같았어요!]

“너가 그런 말을 해 봤자 신빙성이 없어.” 히카루가 불만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이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군요. 천년 후 미래 바둑의 열기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그러니까… 사이? 네가 그런 말을 해봤자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니까.”

[근데 히카루? 왜 다들 옷을 입고 있죠? 아직 먹힌 돌이 없나봐요.]

“그래. 앞으로는 그 말부터 해. 하아아.”

“아 참. 그 애.” 히카루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도우야 아키라는 여기에 없나?”

[없어요. 엇!]

“엇? 또 뭐야?”

[저기요, 저기. 까딱 잘못하면 흑이 죽게 됩니다.]

히카루는 사이가 가리킨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곳엔 히카루 또래의 소년이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서로가 신중하게 집중하며 한 수 한 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히카루는 말없이 그들의 바둑판 옆에 섰다. 사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히카루도 사방의 길이 막히면 알이 죽는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히카루가 속삭였다. “우상변의 흑돌 말이지? 17의 3.”

[아녜요. 그곳이 아니라 히카루한테서 좌상변이에요. 1의 2가 급소입니다.]

“왜? 17의 3에 두지 않으면 먹히잖아?”

[거긴 먹혀봤자 1개 짜리에요. 문제는 좌상변의 돌들이죠. 저기는 무려 24집 짜리 대마라고요.]

“에? 저기 흑이 다 먹혀봤자 대여섯 집 밖에 안될 것 같은데?”

[그 흑이 살면 그 집도 없겠죠. 오히려 안쪽의 백이 죽을 거예요. 따낸 돌과 빈 공간과 백이 살아남을 것까지 감안하면 24집이에요.]

“하지만 나는 우상변의 돌이 더 맛있어 보이는걸?”

[원래 맛있어 보이는 게 더 허접해요.] 사이가 불평했다. 하지만 히카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시끄러. 17의 3이야.”

[1의 2라고요!]

“17의 3!”

[1의 2!]

사이의 목소리야 들릴 리가 없겠지만, 히카루의 목소리는 꽤 메가폰틱했다. 그 앞에서 바둑을 두던 두 소년이 대단히 티꺼운 표정으로 히카루를 주시했다.

탁.

소년은 히카루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1의 3에 두었다. 그곳의 패는 대단히 위험해서 소년이 선택한 것은 먹여치기의 공격법이었는데, 사이가 말했던 1의 2에 두지 않으면 안쪽의 백이 살아나서 개작살나는 형세였다. 히카루는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가 백돌의 소년이 수를 두기 직전에 말했다.

“아깝다. 여기 두면 안돼! 그 16칸 위라고.”

순간 소년이 움찔하며 “어!”하고 외쳤다. 곧 백돌을 쥔 소년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히카루를 돌아봤고, 히카루도 뒤늦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

히카루가 스스로의 손으로 입을 막으며 당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너!”

콰악! 아까부터 긴장한 얼굴로 히카루를 주시하던 감독관 모리가 급히 달려와 그를 잡고 외쳤다.

"뭐 하는 짓이냐! 대국 중에 훈수를 두다니! 이게 장난인 줄 아니!"

"아! 미, 미안해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정도로 큰 소란이 벌어졌다. 히카루는 당황해서 눈물까지 찔끔할 정도였는데, 그 옆에서 사이가 "난 몰라요."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모리가 히카루에게 뭐라고 다시 외치려하자, 그 뒤에서 누군가가 낮게 말하며 그의 입을 막았다.

"모리씨, 조용히 처리하세요."

아무도 원문의 대사가 19금이라는 것을 몰랐다. 모리는 오가타의 지시에 따라서 사시미를 꺼내며 말했다.

"오가타 선생님. 이 아이는 저 쪽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살려주세요!" 히카루가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오가타를 봤다. 하지만 오가타는 냉담하게 말했다. "부탁해요."라고.

"으앙!"

히카루가 끌려간 뒤, 오가타는 낮게 한숨을 뱉었다.

"거 참." 그는 히카루가 훈수를 두었던 바둑판을 보며 두 소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줄래?"

흑돌의 소년은 자신이 돌을 놓았던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여기에 놓으니까 저 애가 '아깝다! 바로 16칸 위야.'라고 말했어요."

오가타는 소년이 가리킨 지점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음. 여긴 어려운 형국이군. 프로인 나로서도 손이 멈춰진다.'

그는 시선을 옮겨 히카루가 훈수를 두었다는 17의 3을 보았다.

'뭐 하자는 플레이지? 훈수야 꽁수야?'

오가타는 픽 웃으며 소년에게 물었다.

"넌 이 훈수의 의미를 파악했니?"

"혹시 이 새끼 친구가 아닐까요? 여기다 뒀다면 짤 없이 질 텐데."

오가타는 싸늘한 눈으로 백돌의 소년을 봤다.

"너?"

"아니요!" 백돌의 소년이 급히 대답했다. "뭔가 안면이 있을 것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오가타가 생각하기에도 히카루의 존재는 그냥 깽판을 치러 왔던 얼뜨기 소년일 것 같았다. 오가타는 확인을 위해서 뒤에 있던 또 다른 감독관에게 물었다.

"그 아이는 참가자입니까?"

"아닙니다!"

대답은 감독관이 하지 않았다. 오가타는 뒤를 돌아봤다. 어인 아주머니께서 오가타를 노려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오가타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지금 대국 중인 소년의 학부형임을 눈치챘다.

"전혀 관계 없는 아이입니다." 아주머니는 말했다. "명찰을 달지 않았거든요."

오가타는 고갯짓으로 그녀에게 계속 말을 하라고 지시했다. 아주머니는 대회장의 문을 가리키며 반 울상의 얼굴로 말했다.

"아까 대회장으로 들어오는 걸 봤어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우리 애가 있는 곳에 서 있구나했더니만……." 갑자기 아주머니가 눈을 부릅뜨며 흥분했다. "한참 쳐다보고는 '아깝다'라고 말해서 우리아이의 대국을 엉망으로 만들었답니다!"

순간 오가타의 눈에 들어오는 형국이 있었다. 비로소 오가타는 17의 3이지닌 사활의 급소를 눈치챘다. 오가타는 믿을 수 없는 듯 입술을 떨다가 아주머니를 향해 낮게 말했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가타의 눈에 험악한 기운이 맴돌았다.

"한참 쳐다봤다고요?"


"하하하!" 히카루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웃을 일이 아냐."

모리는 사시미를 내세우며 표정을 굳히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은……. 그의 눈빛은!

[히카루. 저는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아요.♡]

사이와 같았다. 혼인보 슈우사쿠를 덮쳤다고 말했을 때 지었던 그 눈빛. 그 수많은 공간을 놓아두고, 하필 지하실에 이상한 천막이 있는 이곳까지 데려온 모리의 눈빛! 히카루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금세라도 오바이트를 할것만 같았다.

"정말 잘못했어요."

"주절거리는 건……." 모리가 천막 귀퉁이의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만 됐으니까 뒷문을 향해서 돌아서거라."

"싫어요!"

"돌아서라면 돌아서!"

모리가 험악한 눈을 빛내며 히카루의 어깨를 잡아 틀었다. 위험했다. 히카루는 뒷문을 향해 강제적으로 몸이 돌려졌고, 모리는 히카루의 뒤통수를 힘껏 밀어서 허리를 숙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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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조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

① 청소년보호위원회와 각 심의기관은 제8조의 규정에 의한 심의를 함에 있어서 당해 매체물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청소년보호매체물로 결정하여야 한다.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행사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이에 해당하는 짓을 해버린 자는 2연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99.2.5>
아! 이런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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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는 모리를 뒤로하고 완전히 허리를 구부린 상태가 되었다. 히카루가 울상이 되어 “왜 이러세요!”라고 외치자, 모리는 충혈된 눈을 하고 찬연히 웃으며 외쳤다.

"가만있어, 이놈아! 네 등짝 좀 보자!"

"네?" 히카루가 반문했다.

"등짝 말이다, 등짝! 난 네 등짝이 보고싶어! 등짝을 보잔 말이다, 등짝!"

"사이! 도와줘!"

[네! 그러니까…… 좌우의 다리를 좀 더 벌리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고개를 반쯤 들고서 입을 살짝 벌리면 등짝을 보여주는 느낌이 좀 더 가깝게 다가올 거예요!(너도 등짝이냐? ㅡㅡ;;)]

"그런 쪽으로 도와달라는 게 아냐!"

히카루가 처절하게 고함을 질렀을 때였다.

탁!

히카루는 누군가에 부딪치며 옆으로 쓰러졌다. 모리는 뜻밖의 제3자를 보고 흠칫했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당황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어. 미, 미안…… 합니다."

"조심하거라."

도우야 명인은 천천히 둘을 지나쳤다. 어째서 천막 뒤쪽에 그가 있었는 지 알 수는 없었으나, 도우야의 뒷모습은 히카루의 등짝에 대한 셋의 관심을 제거하기에 충분했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히카루가 가슴을 진정시키며 모리에게 물었다.

"도우야 고요. 현재 신의 한 수에 가장 가까운 남자다."

모리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사이의 눈에 이채가 어리며 도우야 명인이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신의 한 수에 가장 가까운 남자!

덜컥.

도우야 명인이 진행사무실의 문을 열었을 때는 그곳 내부의 모두가 바둑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도우야 명인은 문을 닫으며 물었다.

"불상사가 있었다고?"

"아, 도우야 명인."

희끗한 백발의 진행자가 반색하며 말했다.

"이걸 보십시오."

도우야 명인은 그가 가리키는 바둑판을 보았다. 조잡한 수로 점철된 행마가 가득한 판이었다. 도우야 명인은 그것이 어린이 바둑대회의 내용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도우야 명인의 시선을 끄는 곳이 있었다. 우측의 전면에 걸친 행마였는데 제법 묘한 국면으로 되어 있어서 함부로 행마를 결정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물론 그것은 주변의 다른 행마로 보아 우연히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여기 17의 3말입니다. 우리들 프로들로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수인데도 어린애가 훈수를 했답니다."

"아이가 초보자라면 그냥 단수를 피하기 위해서 지적한 게 아닐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한참을 들여봤으니 좌하변의 경계와 우상변의 위험한 국면을 모두 감안한 듯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참을 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도우야 명인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흑의 생사를 결정짓는 급소를 알아차리다니. 이런 능력을 갖고있는 아이가 내 아들 아키라말고 또 있었군."
그 때 막 모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우야 명인이 그를 힐긋 보며 "즐거웠는가?"라고 묻자, 모리는 당황하며 "못 봤습니다."라고 뜻 모를 소리를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알아봤나?"

오가타가 모리를 보며 물었다. 모리는 당황하며 "죄송합니다!"라고 외치곤 고개를 숙였다. 오가타가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자, 도우야 명인이 픽 웃었다.

"상관없어."

도우야 명인은 바둑통에서 흑돌을 하나 꺼냈다. 부드럽게. 마치 바둑알이 그의 손에 빨려들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 아이가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도우야 명인은 그것을 들고 바둑판을 향해 힘껏 일수를 뻗었다.

따아악!

"조만간에 우리들 프로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가 돌을 놓은 곳은 17의 3.5였다.

"미안하네."

도우야 명인은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앉은 모리를 향해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돌을 내려놓을 때 17의 4에 있던 흑돌이 비껴 맞으며 퉁겨나가 모리의 콧잔등을 조졌던 것이다.

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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