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7일 월요일

[연재] [호스트 바둑왕] 2국. 까마득한 높이

제2국 까마득한 높이

슥.

히카루의 할아버지는 실망에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카루.”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반년 후에 다시 와라.”

바람이 불었다. 히카루는 벙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염없이 뜻밖의 낙엽을 맞으며 고정되어 있었지만, 마음만은 끝없는 열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어이 사이? 우리 사이. 무슨 사이? 니캉 내캉 협잡해서 할아버지 등쳐먹고 100엔 받아 노는 사이? 니가 내를 물로 보고 할아버지 등돌려서 개쪽 주는 깨는 사이? 이봐 사이? 대답해봐이대빵허접한바둑실력으로순진한어린애가슴들뜨게해서절망의나락탱이로열나빠뜨려깰깰대는거지그지그지! 죽일 테야! 너 꽤 한다고 했잖아!

[흑흑흑, 하지만 저 할아버지는 제 취향이 아닌 걸요.]

사이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히카루는 불만스런 얼굴로 “내가 지금 옷벗기 바둑을 했냐?”라며 중얼거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집을 나오며 대단히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난 이제 바둑 안 둬.”

[으아앙! 다음부턴 꼭 이길게요!]

“조까 안 둬.”

[으아아아앙, 히카루우! 정말 미안해요! 좋은 거 해드릴테니까 화 푸세요오!]

“좋은 거?”

[네!]

“으아아아아아악! 그만 둬!”



다음날 바둑 교실.(뭘 했길래. --;;)

“여기 두는 수가 흑으로는 최상의 수로서…….”

바둑 선생을 맡은 시라카와 7단은 금테 안경이 인상적인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정장이 대단히 잘 어울리고 친절한 인상이 배여 있는 자였는데,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즐거웠다. 그가 막 기보에 흑돌을 놓고서 사활의 맥을 설명하자, 교실 뒷좌석에 앉았던 히카루가 길게 하품을 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모르겠어.”

[히카루는 초보니까요.] 사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이는 바둑교실에 왔다는 것과 시라카와가 선생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간단한 묘수풀이에요.]

“그럼 강의는 여기서 마치고 대국에 들어가겠습니다.”

시라카와는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서 대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등 사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지는 히카루였다. 히카루와 같은 어린아이가 바둑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바둑계의 앞날에 대한 청신호’였고,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네 이름은 신도우 히카루로구나. 바둑, 처음이냐?”

“아.” 히카루는 그가 말을 걸었던 것이 의외인 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예. 전혀 모릅니다.”

“그래, 알았다. 왜 바둑에 흥미를 갖게 되었니?”

시라카와가 빙긋 웃으며 히카루에게 흥미를 보이자, 사이가 망설이지 않고 [히카루! 저 사람, 히카루에게 호감 있나 봐요. 덮쳐요!]라고 외쳤다.

“덮치기 위해서요.”

“…….”

“…….”

“하하하. 돌 뺏기에 재미를 들였나 보구나. 그래. 처음 바둑을 하는 사람들은 바둑알을 포위해서 덮치는 데 맛을 들이지.”

“예! 하하하! 그래요!” 히카루가 급히 대답하며 시라카와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우우우우우우웃! 었! 따! 그 웃음을 본 사이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먹였지만, 히카루는 으우우우우우우웃! 음! 을! 지우지 않았다. 변태로 남기엔 히카루의 미래가 창창했기 때문이다. 모르지, 혼인보 슈우사쿠가 몇 살에 갔다고? 혹시……. --;;;

“좋아. 네가 좋아하는 돌 뺏기 게임을 하자.”

시라카와는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사람좋은 얼굴로 히카루와 마주했다. 히카루가 멍한 얼굴로 바둑판을 보자, 시라카와는 히카루의 손에 검은 돌을 쥐어 주며 말했다.

“자. 아무 곳에나 한 번 둬 보렴. 어떨 때 단수(원작은 아다리 ;;)가 되고 어떨 때 돌을 빼앗을 수 있는 지 가르쳐 줄게.”
히카루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바둑돌을 쥐었는 데, 금세라도 바둑알을 놓칠 듯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라카와는 히카루가 처음 바둑을 두는 아이임을 잘 알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여기다 두었어요.”

히카루는 바둑알을 바둑판 정 중앙의 천원에 놓았다. 그러자 시라카와가 빙긋 웃으며 그 옆에 돌을 놓았다. 물론 그 때 사이가 [어쭈?]라고 외치며 코웃음을 친 것을, 시라카와는 듣지 못했다.

[오른쪽 위 소목!]

“에.”

히카루는 사이가 시키는대로 했다. (자, 잠깐…… 내용이 이렇게 바뀌면 나중에 어쩌라고!)

“음?”

시라카와는 히카루의 수가 엉뚱한 것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그는 히카루에게 돌을 뺏는 법만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기에. 시라카와는 천원에 놓았던 히카루의 돌 옆으로 다시 백돌을 놓았다. 2면이 막혔으니, 그 다음에 히카루가 어디에 또 지랄을 하건 신경쓰지 않고 단수를 칠 셈이었다. 하지만 사이는 남 잘되는 꼴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천원에 놓은 돌 위에 붙여서!]

“음.” 시라카와는 단수를 놓치고 낮게 신음했다. 이젠 두 개가 붙은 돌을 노리는 것보다, 히카루가 두 번째로 놓았던 엉뚱한 돌을 노리는 것이 더 이로웠다. 시라카와는 자신의 왼쪽 아래 소목에 놓인 히카루의 바둑알 옆으로 돌을 놓았다. 그러자 사이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왼쪽 위 소목! 오호호호호! 적어도 40집은 앞서고 있어요, 히카루!]

“정말?” 히카루가 그렇게 말하며 사이가 부채의 끝으로 찍은 지점에 돌을 놓았다. 시라카와는 그것을 외면하며 왼쪽 아래 소목에 놓인 흑돌을 2면으로 감쌌다. 행여나 또 도망을 칠까 두려워서 그는 흑돌 바깥쪽을 막음으로써 그가 멀리 도망칠 수 없도록 했다. 이미 시라카와는 히카루의 수에 불쾌감을 느끼는 상황이었고, 어떻게든 빨리 단수 한 개를 치고서 “이게 단수라는 거다. 그리고 여기에 돌을 놓으면 이 안의 네 돌이 빼앗기는 거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꿈도 큰 것.] 사이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빙긋 웃었다. [옆으로 한 칸 째세요, 히카루. 평생 단수치게 해 주나 봐라.]

히카루는 사이가 시키는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30분 후…….

“졌습니다.”

시라카와는 히카루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는 분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왜! 내가 왜 얘랑 대국까지 가게 된 거냔 말이다! 왜 머리를 숙여야 하고 왜 “졌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지? 이봐봐, 히카루? 뭐지, 너? 내 생전에 너같이 얍삽하게 바둑을 두는 놈은 처음 봤다. 그깟 단수 한 번쯤 당해주면 안돼? 시라카와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히카루를 노려봤는데, 그때 히카루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허접이시네요.”

“죄송합니다.”

내가 왜 죄송한건데! 시라카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라는 이유로 히카루는 기원을 찾아갔다.

“어서오세요.”

갈색으로 물들인 단발머리의 이치카와가 형식적인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가 히카루의 모습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엔 ‘초짜네.’의 비아냥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곧 테이블 위의 장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을 적으렴. 여기는 처음이지?”

“여기든 어디든 완전히 처음이에요. 누구든지 바둑을 두나요?”

“물론이지. 경력은 어느 정도니? 응. 여기에 적어.”

“경력? 잘 몰라요. 방금 허접하고 둬서 이겼어요.”

“잘 모른다?” 이치카와가 멍한 얼굴로 히카루를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주변을 둘러보며 기원 내부로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누구와도 대국한 적이 없어요. 아마 강하다고 생각되지만…….”

“대국한 적이 없는데도 강하다고?” 이치카와가 다시 비아냥의 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그 순간 히카루가 검지를 뻗으며 외쳤다.

“앗! 저기에 애도 있네요!(원문 그대로지만… 넌 어른이냐? --;;)”

도우야 아키라는 막 바둑판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검지를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어, 나?”

히카루는 빙긋 웃었다. 아키라가 히카루를 향해 걸으며 빙긋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이치카와의 웃음과 비교하여 싸가지의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좋아. 내가 상대해 줄게.” 아키라가 말했다. “난 도우야 아키라.”

“난 신도우 히카루. 6학년이야.”

“아, 나도 6학년이야.” 아키라가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아키라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라는 이유로 기원의 요금이라던지 기타의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 --;;)

아키라는 히카루의 첫수를 보며 한숨을 뱉었다. 조금 전 히카루는 대국을 원했는데, 아키라는 그에게 3점 내지는 4점을 깔고 두게 할 셈이었다. 대국을 원한 자라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키라는 대단히 실망하고 있었다. 히카루의 돌을 놓는 모습이 초짜중에서도 개초짜였기 때문이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퍽! (죄송해요. 담부턴 안 그럴게요. ᅲ_ᅲ)

아키라는 다소 놀라고 있었다. 갓 10수를 넘긴 후였지만, 히카루의 수는 대단히 뛰어났다. 가끔 엉뚱한 곳에서 손이 멈추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던 것도, 혹시 겐세이(방해기술)가 아닐까 여겨질 만큼. 아키라는 조금씩 긴장했다.

‘이 녀석. 내 묘수에 넘어오지 않는다.’

아키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 히카루는 사이가 내민 지점으로 돌을 내밀고 있었다. 탁. 그 일수에 아키라가 눈을 부릅떴다.

‘너, 넘어오지 않는 게 아니라……!’

히카루의 일수는 아키라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국면을 저 아이가 리드하고 있어!’

긴장으로 인해 아키라의 손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리고 히카루의 한 수. 그것은 바둑판의 격전지에서 한참을 떨어진 텅 빈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키라는 그 수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의 한수였을까? 히카루의 수는 대단히 뜻밖이면서도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아키라가 그것에 응수하면 이제껏 박 터지게 싸우던 곳이 은근하게 휘말리며 절망적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고, 응수하지 않으면 불모의 땅을 모조리 빼앗길 위험이 있는 그런 수였다.

‘이건 최선의 한 수가 아니다! 최강의 한 수는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아키라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뽀록이다, 씨발 새끼!’

하지만 동기를 따질 수 없는 것이 바둑임을 아키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돌을 들었다. 도우야 아키라. 현재 신의 한수에 가장 가까운 남자로 알려진 도우야 명인의 외동아들이다. 그는 결코 도망치는 바둑을 둔 적이 없었다. 도우야는 힘껏 손을 뻗으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네가 뽀록이라면 나는 실력이다! 피하지 않겠어!’

땅! 아키라의 수는 히카루의 일 수에 단호히 맞서며 힘있게 빛을 발했다. 그러자 사이가 조용히 말했다. [15의 24. 조져요.]

톡. 히카루의 일 수. 그리고 따항! 아키라의 눈에서 광채가 일며 그의 힘있는 일 수가 히카루의 돌 사이를 가차없이 가로질렀다. [훗.] 사이는 웃었다. [17의 24. 기다려요, 히카루. 곧 개처럼 기어가며 짖어대는 저 녀석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너무 심하게 하지 마, 사이.” 히카루는 낮게 불평하며 그가 지정한 곳에 돌을 두었다. 아키라가 다시 힘있게 돌을 내려놓는 순간, 사이는 흠칫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턱과 입술의 사이에 손등을 수평으로 하고 엄지 검지 새끼 손가락을 곧게 뻗으며 나머지 손가락은 수직으로 하향시켰다.

[꺄르르! 백년도 못 사는 게 천년 짜리한테 개겨? 히카루. 10의 7에 돌 한 개 톡! 놓으실래요? 그리고 입을 살짝 벌리셔서 ‘다안수?!’ 해 보세요.]

“다안수?!” 히카루는 시킨 대로 했다.

“헉!”

아키라는 품안에서 강심제를 꺼내 먹었다가 그것으로도 부족한 지 휴대용 호흡기를 사용하여 몇 번 숨을 들이켰다. 그는 좌상변을 포기하고 우하변의 널찍한 공간에 괴로운 한 수를 놓았다. 사이는 잠깐 침묵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히카루가 사이를 부르자, 사이가 둘 곳을 정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어린애니까…….] 사이는 아키라의 절망적인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곧 눈을 부릅뜨며 검지를 뻗었다. [지금 단수친 거 따먹어요! 저런 놈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싹부터 밟아야 해요!]

따악!

“커헉!”

14개의 돌을 먹는 히카루를 보며 아키라는 피를 토했다. 그리고 10분 후. 아키라는 다시 피를 토해야만 했는데, 이번엔 21개의 돌이 운명을 달리했다. 아키라가 눈물 가득한 얼굴이 되어 손수건으로 눈의 물기를 닦아가며 열심히 두었지만, 히카루의 어설프게 내려놓는 돌은 열나 얍삽했다. 아키라는 12개의 돌을 또 따 먹혔다.

“너무 심한 거 아냐, 사이?”

세 번째로 피를 토하는 아키라를 보며 히카루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러자 사이는 서글픈 눈으로 아키라를 주시하며 말했다.

[전 저런 미소년이 피 토하는 게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이봐.” 히카루는 더 이상 아키라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졌다.

툭. 모든 것에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채 힘없는 1수를 내민 아키라. 히카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게 히카루를 올려 보는 아키라에게, 히카루는 까마득한 높이의 권좌에 있는 사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따먹은 47개의 돌을 보여주며.

“많이 먹었다. 그만 해라.”

“커헙!” 아키라는 또 다시 피를 토했다. 그리고 바둑판에 엎어져서 혼절하고 말았다.

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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