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7일 목요일

라이트 노벨이란?

이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라이트 노벨은 판타지고 무협이고 연애물이고 성장물이고 학원물이고 폭력물이고 철학물이고 추리물이고 SF고 엽기물이며, 그 밖에 대입할 수 있는 각종 장르를 다 집어 넣어도 맞는 말이다. 장르를 엮어넣을 생각으로 라이트 노벨을 정의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책 한 권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어느 장르 하나를 내세워 그것을 라이트 노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그 장르의 이름은 '라이트 노벨'이다.

'가벼운 소설'이라는 해석은 이미 물 건너갔다. 엄마가 딸아이한테 수세미 좀 달라고 말한다는 것이 '거기 거시기 좀 줘.'라고 하여 '거시기=수세미'가 무조건 정답이 되는 게 아니다. 시작은 하나이나 끝은 창대하리라. 이것이 현재의 라이트 노벨을 정의하기 위한 열쇠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 특정 작품을 향해 '라이트 노벨'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또는 어떤 독자가 특정 작품을 향해 '라이트 노벨'이라는 성격을 부여했을 때.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미 라이트 노벨이라는 표현은 하나를 지칭하는 존재를 넘어섰다.

내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라이트 노벨의 정의는 이것이다.

일본 만화 컨텐츠를 중심으로 확장된 애니메이션 및 동인 문화와, 그것이 문화적 근간(약속 기호, 감각, 세계관 코드 등)이 되어 이루어진 창작품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

이렇게 말했다고 하여 라이트 노벨의 근간이 무조건 일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저러한 창작관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창작물이라는 얘기다. 즉, 특정 계층의 독자(라고는 해도 대중창작계를 휩쓸만큼 다수의 독자)에게서 가장 많은 호응을 얻고, 그러한 호응을 목적으로 집필하는 소설을 라이트 노벨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소재와 주제가 문제될 리 없다. 무엇이 나와도 저 계층 독자들이 재미를 구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라이트 노벨이다. 이러한 창작품의 특징 중에서 기존 작품과 비교되는 점은[독창성의 비중이 높다.]라는 부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라이트 노벨을 찾는 독자들은 독창적이라 불릴 작품들 뿐 아니라 그것에게서 비롯되는 유사작품까지 모두 휩쓸어버린 다수창작흡수종족이다.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병이 창작무력증이다. '뭔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녀석이 없을까?'라며 하루 한 번씩 되뇌는 사람이니만큼 재미가 보장된 독창적 작품은 대단히 큰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독창적으로 나가는 것을 권장하고싶지 않다. 내가 나 자신에게 늘 다짐하는 말이 있다.


알아볼 수 있는 단순한 문장만으로 글을 써도 독자들에게 재미를 못 주는 주제에 읽기 어려운 장문 나열하지 말자.

이해하기 쉬운 동화를 써도 독자에게 호응받지 못하는 주제에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들 나열하지 말자.

내 이야기 만으로도 독자를 매료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야한 장면과 잔인한 장면의 자극성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죽여놓고 내 이야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 말자.

평범한 이야기로 독자를 매료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독창적 소재에 매달리며 거만 떨지 말자.

한국에서조차 호응받지 못하는 주제에 시장 탓하며 외국에서 성공할 생각같은 거 하지 말자.


'간단히 말해서 기본이나 하고서 뭔가 욕심을 부려라.'라는 뜻이다. 독자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재미가 중요하다. 내가 라이트 노벨을 선택했다면 그 계층에서 가장 만족할 재미를 느낄 글을 쓰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에 독창적이니 뭐니를 따져야겠지. 물론 재미를 찾다가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독창적 소재라면 예외겠지만.

이것이 내가 보는 라이트 노벨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쓴 글은 특정한 문제가 없다면(연중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미완결이라든가...) 대부분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인다.

레디 오스 성화 올림

추잡: 그러니까 너무 익숙한 창작도 좋은 게 아니다. 일단 본인이 식상할 것 아닌가!

댓글 17개:

  1. 본능적인 영역에서의 라노베는 그냥 "작은책" 이네요.좀더 생각을 해보니 여러개가 더 나오긴 하는데 딱히 정의 내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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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마도 라이트 노벨이 '가벼운 이야기'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캐릭터의 개성이나 번뜩이는 소재나 이런 것에 기대어 나머지 부분들이 소홀해져 작품들이 가벼운 이야기만 나올것이다.. 라고 편견이나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작품도 있고 아닌 작품도 있습니다만.. 그 편견이 꽤 큰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일단, 저에게 있어서 라이트 노벨은 대중들이 좀더 부담없이 읽고 호응해줄 수 있는 그런 류의 소설들이라 생각합니다. 딱히, 어느 하나로 정하기는 애매한게 라이트 노벨이라는 네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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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지막의 ()가 눈에 와닿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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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녕전화 뇌풍회시절에 만났던 신진우라고 합니다. 만화 스토리 쓰던...^^

    제가 아는 그 성화님 맞지요? 웹서핑하다가 이 블로그 발견하고 반가움에 글 올립니다.

    전에 이 비슷한 글 쓴 것 같은데...(데쟈뷰인가. -0-) 기억 더듬어보니 싸이 만스작에서 안부글 남긴 듯... ^^;



    늦었지만 KOG 출간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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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연중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제 책장에 성화 님 완결을 기다리는 책이 대락 몇 질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

    아니, 그래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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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잘 읽고 갑니다. 많이 공감되네요. 문장은 간결하되 표현은 재밌게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또 어려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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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안녕하세요. 밸리 타다 들어왔습니다. ^^;

    웹을 돌아다니다가 주워들은 말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말은 이거였네요. "일반 소설이 묘사하는 대상이 현실 세계라면, 라이트노벨이 묘사하는 대상은 만화/애니메이션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설명이 여러모로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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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KOG는 와우를 중심으로 확장된 문화와, 그것이 문화적 근간(약속 기호, 감각, 세계관 코드 등)이 되어 이루어진 창작품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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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연중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미완결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미완결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연중이라든가 미완결이라든가...



    다른것보다 왠지 이부분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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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O.G open 재미있게 읽고 이글루 놀러온 독자입니다.

    그냥 이말이 하고 싶어서요~

    근데 라이트노벨하면 떠오르는건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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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미X레이// 감사합니다. 덕분에 수정 마무리하고 편히 자러 갑니다. ^^



    비밀글// 오오. 네엡!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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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라이트 노벨!'하면 본능적으로 우부메의 여름부터 떠올리는군요

    (이상하게 삐뚤어진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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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안녕하세요, 홍성화님이시죠?

    소설 타락고교와 코스모스 스토리, 정말 감명깊게 보고 있습니다.

    코스모스 스토리, 한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3차대전을 벌이는 스토리가 처음엔 말도 안되게 느껴졌지만 읽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네요-_- 타락고교의 등장인물명과 코스모스의 등장인물명이 비슷하더군요. 아 다른 작가분들 성함이시구나. ㅋㅋ



    조진행이나 이경영 등등.. 임상언도 있더군요. 임상언 총살형 캐안습 ㅠㅠ



    그리고... 코스모스 보면서..지우 메이링에게 반했어요. 혹시 일러스트 있으신가요?

    있으시면 보내주세요~ 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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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꾸악. 안녕하세요. 임상언님한테는 늘 애도를...



    지우 메이링 일러스트는 분실했어요. 대규모 원고 폭파 때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쩌면 느닷없이 발견될 지도 모르고요.



    늘 전전긍긍하며 붙잡고 있는 글인데 막상 독자분께 이름을 듣게되니 기분이 좋네요. 타락고교는 꼬옥 완결하고, 코스모스도 최대한 빨리 수정을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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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비밀글// 쿨럭. 이제야 글을 읽었습니다. 전혀 문제되지 않으니 마음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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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와우 라이트 노벨이 이런 것이었군요. 정의를 들으니 그런것 같습니다. 저도 많이 궁금했어요. 가벼운 소설이라고도 생각했었고 만화같은 소설이라고도 생각했었는데 적절한 표현이 있었군요. 시작은 하나지만 끝은 장대하리라-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거 제 블로그에 링크해 갑니다.

    혹시 안된다면 말씀해주셔요 바로 지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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