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내용
공포는 희망이 있어야 그 위력이 더해진다. 살고자하는 이에게는 죽음 만큼 두려운 것이 없고, 진실하고자하는 이에게는 자신에게서 언제 어느 때 튀어나올 지 모르는 거짓 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 죽지 않을 거야. 들키지 않을 거야. 잃지 않을 거야. 이런 희망(누군가는 욕심이라고도 한다)이 남아있을 때, 공포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30세를 한참이나 넘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을 겪었다.
엄마와 아빠를 만났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 아빠를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기 싫었다. 내가 스스로 늙고싶어하지 않듯, 내 입으로 나의 성장을 언급하여 부모님의 세월을 떠올리게하기 싫었다. 그래서 35살이 넘은 지금도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어느날 엄마가 말했다.
"일은 잘 되니? 굶지는 않니?"
"예. 열심히 해요, 엄마. 그리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요리 하나는 기차게 잘해요. 자취생활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요리 못하고 굶고 살면 문제죠. 자취생 베테랑은 잘 챙겨먹어요. 음허허!"
"그래. 미안하다."
와, 정말 소름끼쳤다. 그 날 하루가 멍할 정도로 소름끼쳤었다. 엄마의 한 마디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무서웠다.
자식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열심히 방향을 지시하시던 분이다. 잘나가는 자식을 둔 부모를 만나면 어떻게 키웠는 지를 물어보고 그걸 나한테 도입하시던 분이다. 공부는 안하고 그림을 그리면 회초리로 때리시며 엄하게 입술을 다무시던 분이다. 내 모든 인생이 창작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을 때는 없는 살림 더 조여가며 미대에 보내주신 분이다. 집안이 풍비박산나서 가족 모두가 흩어졌을 때도, 대범하게 코웃음을 치며 '손발로 뛰면 어떻게든 된다. 내가 그러니 너희들도 그래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으시던 분이다. 아무 것도 없는 손바닥이 마이다스의 그것인 양, 어느새 분식점을 차리시고 터전을 만들어놓은 분이다. 50줄이 넘으셔서도 거침없이 달리셔서 환갑 전에 터전을 만들어 환갑이 지난 지금도 힘차게 가정을 꾸리시는 분이다. 억대의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말투로 '지금 일 하는 거 안 보여요? 일을 방해하는 데 어떻게 갚아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나에게 환갑이 지난 지금도 "기왕 하려고 마음 먹었으니 최고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엄마가 하신 '미안하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담겨져 있으셨다. 내가 고생한다 여기시어 '돈 걱정 안 하는 몇몇 소수의 집 자제분'처럼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담겨진 말씀이었다. 일은 일대로 틀어지고 IMF의 파도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이시고, 그 위협속에서도 단 한 걸음조차 멈추지 않으신 분이 후회를 하셨다. 내가 보았던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신 분께서 내 앞에서 후회를 하셨다.
나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공포였다. 엄마의 그 한 마디 속에는 인생의 마무리를 설계하는 슬픔이 깃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아주 흔한 말이 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이 말은 부모가 자식에게 취하는 행동의 99%를 담당한다. 내가 부모에게서 느꼈던 부분은 이렇다. 그것이 나에게 맞건 틀리건 동기는 분명하다. 내가 그로 인해 망가지건 성공하건 상관없다. 동기는 분명하니까. 그로 인하여 내가 부모를 원망하건 존경하건 다 상관없는 그 때 그 때의 문제일 뿐이다. 동기는 변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다 너 잘되라고...'라며 말끝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하는 거야'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인생의 마무리를 설계하여 더 이상 자식의 방향을 지정할 수 없을 때 그렇게 된다. 지금 부모님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떠날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관을 확정한다. 난 너 때문에 살았단다, 얘야.
엄마는 당신의 자식들에게 절대로 흰머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염색하여 늘 갈색머리를 유지하신다. 무슨 수를 써서든 얼굴에 깃든 주름살을 최소화하신다. 말투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어서 환갑을 넘기신 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깨를 주무를 때, 무릎을 주무를 때, 저리신 뒷목을 안마해 드릴 때마다 느껴지는 손의 감촉엔 분명 환갑을 지난 힘겨움이 담겨져 있다.
이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잠을 자다가도 눈을 곱게 감고 편안하게 입을 다무신 엄마의 얼굴이 꿈에 나타나면 창백해져 벌떡 일어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직 때가 아닌데. 엄마가 나에 대해 안심하며 기쁜 얼굴을 보이시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무섭다.
나도 모르게 자판 위로 볼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 지 알 수 없으나 너무도 끔찍하여 의자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무서운 꿈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보니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에 대한 꿈이 아닐 수도 있겠으나, 생각이 생각을 낳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른 그 어떤 말을 내게 할 수 있어도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실 자격은 없는 분이다. 그 말씀이 어찌나 내 가슴을 저리게 하던지. 수줍음도 많이 타고 내 주장을 펼치지도 못했으나 고집이 세서 묘하게 반항을 많이 하던 나.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외친 다음에 바로 그 잘못을 반복하던 나.(덕분에 창작가의 꿈을 이루었지만... -_-)
여전히 엄마의 말을 안듣고 고집피우는 자식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깊은 속에 담겨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의 뜻을 아는 이상, 엄마가 미처 익히지 못한 세상의 모든 것을 깨우치고 성공하고만 싶다. 엄마를 대신하여 세상을 알고 늘 악쥐는 주먹의 말씀 '최고가 되라'를 실현하고 싶다.
제발 그 때까지 내 마음속 공포가 희망을 밀어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ㅠ_ㅠ
졸다가 악몽을 꾼 레디 오스 성화 올림 -_-
전 아직 젊어서리...
답글삭제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훌쩍.. 부모님은 언제나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는 존재에요..
답글삭제덕분에 반성 많이 하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한 번쯤 더 읽고 생각해 봐야겠군요...
답글삭제정말이지 공감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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